2019년 블리즈컨에서의 첫 발표 이후, '디아블로4'를 둘러싼 루머는 끊이질 않았다. 기대와 걱정이라는 양가감정 속에서 개발팀이 엎어져서 새로 개발한다느니, 개발에 여러모로 난항을 겪는다던지, 혹은 게임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등 온갖 루머가 자칭 '믿을만한' 경로를 통해 번졌다.

이 루머 중,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일단 한 가지는 확실했다. '디아블로4'가 오랜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 출시된 몇 개의 작품 중,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하는 천형을 뒤집어썼다는 점이다. 그런 상황에서, 블리자드는 이 숱한 루머와 개발 상황에 대해 정기적인 개발 일지를 제외하곤 말을 아끼며 침묵을 이어왔다.

그렇게 최초 발표 이후 3년이 지난 후, 이제는 어느정도 윤곽이 드러났다. 블리자드가 마련한 '디아블로4'에 대해 한 시간의 미디어 브리핑. 그들은 디아블로4의 모든 것을 말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디아블로4'가 어떤 게임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전달했다.

관련 기사 바로가기: [인터뷰] 디아블로4, "출시는 이어질 업데이트의 시작일 뿐이다"

※ 해당 기사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공식 미디어 브리핑과 초반부로 제한된 플레이어블 빌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게임의 기획 과정과 의도

디아블로 시리즈는 첫 출시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플레이되고 있는 시리즈다. 게임 디렉터인 '조 셀리'는 디아블로4의 기획 과정을 이렇게 요약했다.

'전작들에서 반응이 좋았던 부분들을 더 발전시킨다'

이는 개별적인 시스템만을 의미하는 바가 아니다. '디아블로4'는 영광된 첫 작품의 분위기를 물려받았다. 실제로 플레이해본 빌드에서, 디아블로4의 어두운 분위기는 가장 절망적인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1편보다 더욱 침잠되어 있었다. 성역의 사람들은 생존의 욕구와 광기의 중간에서 방황하고 있었으며, 온갖 기괴한 제의와 주술들이 세계 곳곳을 물들이고 있었다.

▲ 시리즈 중 가장 어두운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디아블로2'의 심도 깊은 빌드 육성 과정도 갖춰져 있다. 각 클래스는 게이머가 원하는 다양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몇 가지 변수를 통해 같은 방향을 추구하면서도 다른 플레이어들과는 상이한 전투 스타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에 관한 설명은 하단에서 더 이어갈 예정이다.

동시에, '디아블로4'에는 '디아블로3'의 장점인 긴박한 페이스의 전투가 가미되어 있다. 전작 대비 매우 밝아졌지만, 동시에 빠른 페이스와 호쾌한 전투를 제공했던 디아블로3의 스타일은 꽤 다른 느낌임에도 틀림없이 디아블로4에 녹아들어 있다.

▲ 전작의 장점들을 하나로 녹여낸 게임이다

이 모든 전작들의 장점에 거대한 오픈 월드와 서사, 그리고 라이브 서비스로의 전환을 더해 만들어진 게임이 바로 '디아블로4'라 할 수 있다.



성역의 세계

앞서 말했다시피, '디아블로4'는 매우 어두운, '다크 판타지'를 표방하는 게임이다. 디렉터 '조 셀리'는 디아블로4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디아블로4는 성인에게 적합한 암울하고 현실적인 세계이며, 결코 모두를 위한 게임이라 할 수는 없다"

실제로 플레이어블 빌드에서 그려진 성역의 모습은 단순히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했다. 이방인은 식량 취급을 받았고, 해체된 인간의 부속들이 세계 곳곳에 너절히 널려 있었으며, 상반신만 남은 시신이 끊임없이 저주의 말을 뱉어내기도 했다.

▲ 잔혹함이 일상이 되어버린 세상

이 어두운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디아블로4'의 주제는 '증오'다. 말티엘이 사라진 후 생존의 위기에 처한 인류는 희망과 절망의 틈바구니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성역을 창조한 자를 소환했고, 그렇게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의 딸인 '릴리트'가 성역에 당도했다.

개발진은 이 배경에서 펼쳐지는 '디아블로4'의 서사가 '전작에서 보지 못한 수준의 파란만장함'일 것이라 자신했다.

▲ 증오의 딸이자 성역의 공동창조자 '릴리스'

단순히 마을과 필드가 존재하던 전작들과 달리 오픈월드 게임이 되면서, 게임 플레이도 많은 부분에서 변화했다. 성역에 아직 남아있는 정착지에는 다양한 NPC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은 채 자리하고 있으며, 필드에서는 약초와 금속을 채집할 수 있다. 이 약초와 금속은 소모성 물약(30분 지속의 강화 물약)이나 기본 포션의 업그레이드, 아이템 강화 등에 쓰인다.

필드 도처에는 다양한 사이드 퀘스트가 존재하며, 각 필드는 플레이어의 레벨에 맞춰 레벨 스케일링이 이뤄지기 때문에 이미 지나친 지역의 콘텐츠를 나중에 플레이하는것도 가능하다.

▲ 필드에서는 사냥과 모험, 채집이 모두 가능하다

메인 퀘스트 또한 선형적이지 않고 분기가 존재하기 때문에 다양한 스토리 경험이 가능하며, 진행 과정에 따라 다른 형태로 퀘스트를 수행하거나, 새로운 퀘스트를 수주하게 될 수도 있다.

또한, 각 지역마다 탐험이나 수집을 완료함으로서 베네핏을 얻을 수 있는 '명성' 시스템이 존재한다. 일종의 지역 별 업적 시스템에 가까운데, 이를 통해 해당 지역을 얼마나 탐험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세계를 표현하는 게임의 그래픽은 퀄리티는 딱 적당한 수준. 빈말로도 최정상급이라 말하긴 어렵지만, 쿼터뷰 핵앤슬래시에 적당한 시인성과 퀄리티를 지니고 있으며, 별도의 렌더링 없이 바로 카메라를 전환해 인게임 컷신으로 넘어가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보여준다.

▲ 스크린샷으로 전달하기 꽤 어렵지만 딱 적당히 좋은 수준의 그래픽

아쉬운 점은 게임의 종반 콘텐츠 구성이 어떻게 될 지를 아직 알 수 없다는 점인데, 개발진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으며, 제공된 플레이어블 빌드 또한 성장이 제한된 버전이었기에 종반부의 콘텐츠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개발진은 디아블로4라는 게임을 개발하며 '라이브 서비스'를 염두에 두었다고 말했으며, 꾸준한 업데이트와 3개월마다 갱신되는 시즌을 통해 이에 걸맞는 다양한 종반 콘텐츠와 스토리 확장팩을 제공할 것이라 말했다.

별개로, '디아블로4'에는 인게임 상점이 존재하지만, 여기서 살 수 있는 아이템은 위력과 관계 없이 외형에 국한된 상품들만 존재한다.



장비와 성장 시스템

디아블로 시리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장비 시스템은 기존의 네 단계(일반, 마법, 희귀, 전설)가 아닌 다섯 단계(일반, 마법, 희귀, 전설, 고유)로 구분된다. 이중 고유 아이템은 게임 종반부에 이르러 얻을 수 있는 최종 장비이며, 성장 빌드의 핵심이 될 만한 강력한 능력을 보여준다.

각각의 아이템은 대장장이를 통해 강화를 할 수 있다. 각각의 능력치를 소폭 강화하는, 한국식 MMORPG에 가까운 형태의 강화 시스템인데, 강화 단계 제한이 그리 높지 않은데다(희귀 기준 3회까지 가능) 확률 기반이 아니며, 강화 소재도 필드에서 채집하거나 쓰지 않는 아이템을 분해해 쉽게 얻을 수 있기에 악용될 만한 여지가 보이지는 않았다. 대장장이를 통하면 전작에서 '카나이의 함'으로 수행했던 전설 속성 추출과 각인도 가능하다.

▲ 강화는 아이템 등급에 따라 최대 5번까지 가능하다

'스킬 트리' 시스템은 디아블로2 이후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전통적인 성장 시스템이다. 다만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인데, 일단 클래스 별로 스킬 트리의 모습이 다르며, 보다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있다.

극초반부 플레이어는 '베이직 스킬(3편의 주 기술에 해당하는 자원 소모 없는 기술)'을 찍을 수 있으며, 이 '베이직 스킬'에 연계된 노드에 몇 개의 포인트를 투자하면 '코어 스킬'중 하나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또 몇 개의 포인트를 투자하면 다음 티어의 스킬들이 열리는 시스템이다.

때문에, 스킬에 레벨 제한이 걸려 있으면서도 자유로운 육성이 가능하다. 원할 경우 두 가지 이상의 코어 스킬을 배울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의 스킬에 올인하면서 방어 옵션을 더 챙길 수도 있다. 이 스킬들은 반드시 스킬 포인트를 찍지 않더라도 아이템을 통해 올릴 수도 있기 때문에 적정 레벨보다 이르게 더 강한 스킬을 사용하거나, 제한 레벨 이상의 강한 스킬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 부분은 '디아블로2'와 유사한 부분이다.

▲ 스킬 트리는 노드 시스템을 따르되 디아블로에 맞춰 최적화된 느낌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스킬 트리를 통해 '성장 빌드'를 만드는 부분이다. 디아블로4의 각 클래스는 몇 가지 키워드를 품고 있는데, 이를 통해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성장 빌드를 설계할 수 있다. 가령 '출혈' 키워드에 집중한 야만 용사를 키울 수도 있으며, 'Crackling Energy(전격 기술 사용 시 떨어지는 에너지 구슬을 주울 경우 주변 모든 적에게 세 번의 전격 피해를 주는 시스템)'를 중심으로 하는 전격 원소술사를 키워낼 수도 있다.

스킬 트리에 존재하는 모든 액티브 스킬은 배타적인 두 개의 하위 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출혈 야만용사를 키운다고 해도 주로 사용하는 스킬은 또 다를 수도 있다. 가령 야만용사의 주력기인 '소용돌이'를 예로 들면, 오래 사용할수록 피해량이 점진적으로 오르는 노드와 타격 시 강력한 출혈 피해를 입히는 노드 중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

▲ 같은 스킬도 포인트 투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

여기에 50레벨부터 해금되는 '정복자 보드'라는 시스템과 '전문화(Specialize)' 시스템을 통해 스킬 메커니즘을 완전히 변조하거나 다른 키워드와 융합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많은 선택지를 만들어낸다.

문제는, 결국 이 중에도 '가장 효율적이며 강한 빌드'가 선택될 것이 뻔하다는 점인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디아블로4 개발진이 논의하고 있는 주제가 바로 '위력 성장의 유한함'이다. 어느 빌드가 특별히 더 강하지 않게, 동시에 만능이 될 수 없도록 강함의 정도를 제한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이 핵심 철학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를 보일지는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일단 개발진은 모든 빌드가 동등한 수준의 위력을 보이게끔 노력하고 있다.



클래스 디자인

디아블로4의 클래스 디자인은 하나의 철학을 따른다.

"게이머가 지닌 판타지를 충족할 수 있을 것"

▲ 전통의 모닥불 샷, 캐릭터 성별은 볼 때마다 바뀌어 있다

디아블로 시리즈는 롤플레잉 게임이며, 이 '롤플레잉'이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역할극'을 의미한다. 이 역할극 게임에서, 게이머가 원하는 배역에 걸맞는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안배하는 것이 디아블로4의 클래스 디자인 철학인 셈이다.

가령, '원소술사'를 희망하는 게이머 중엔 강력한 화염을 퍼붓는 플레이를 지향하는 이들도 있지만, 동시에 적을 꽁꽁 얼리고 부수는 냉기 마법사를 희망하는 이들도 있다. 강령술사 중에도 수많은 해골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 되길 바라는 이가 있는 반면, 홀로 혈마법을 쓰면서 적을 부수는 플레이를 지향하는 게이머도 있다.

▲ 컨셉에 따라 장비 중요도와 플레이 스타일 모두가 바뀐다

이 모든 '원하는 플레이'가 가능한 환경에서, 이 플레이에 가장 적합한 형태와 메커니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전작의 경우 모든 클래스는 특정 경우를 제외하면 하나의 양손 무기나 두 개의 한손 무기를 착용했지만, 디아블로4는 무기 휴대 시스템부터 전작과 다르다. '야만용사'의 경우 총 네 개의 무기를 휴대하는데, 쌍수로 사용하게 될 한손 무기 두 자루, 후려치고 부수는데 사용하는 양손 둔기, 그리고 강력한 베기 공격에 사용되는 양손 날붙이 하나를 동시에 갖고 다닌다. 사용하는 스킬에 따라 각기 다른 무기를 활용하는 형태다.

▲ 네 개의 무기를 휴대하는 야만용사

도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두 개의 한손 무기와 원거리 장비를 동시에 휴대한다. 도적 또한 어떤 스킬을 사용하냐에 따라 활을 꺼내거나, 단검을 꺼내 활용한다.

원소술사는 화염과 냉기, 전격 마법을 쓸 수 있는데, 화염 마법에서도 불을 붙여 연소 상태를 만들어 지속적인 피해를 주는 빌드나 한 번에 강력한 피해를 주는 빌드를 고려할 수 있다. 원소술사에겐 고유의 '마법 부여'라는 시스템이 있어 원하는 스킬에 특수 효과를 부여할 수 있다.

강령술사는 '망자의 서'라는 고유 시스템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소환수 군대의 구성을 조정하거나, 소환수를 없애는 대신 본신을 강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클래스 고유 메커니즘이 게임 시스템과 결부된 클래스 디자인의 일부라면, 게임 시스템과는 무관한, 다른 형태의 클래스 디자인도 존재한다. 바로 '외형'의 설정이다.

▲ 외형 설정은 디아블로4가 추구하는 '판타지의 실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서 소개한대로 디아블로4는 전작의 자유로운 성별 설정과 더불어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제공한다. 다만,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전면에 내세운 RPG들과는 달리 슬라이더로 인체 각 부위를 조절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며, 다양한 프리셋 중에서 얼굴과 장신구, 문신과 헤어스타일, 피부 및 모발 색상을 조정하는 정도로 구현되어 있다.

캐릭터 생성 때 뿐만 아니라 게임 내에서도 '꾸미기(Wardrobe)' 기능을 통해 장비 외형이나 컬러링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으며, 디아블로4에 존재하는 고유 시스템인 '탈것' 또한 캐릭터의 컨셉에 맞춰 다양한 형태로 꾸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