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좀 되니 소개팅을 빙자한 맞선을 볼 일이 꽤 있었다. 그 중에 한 분은 부동산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는지 분위기가 풀리자 '초품아'와 '임장' 같은 말을 꺼내며 꿈꾸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풀어냈다. 안타깝게도 당시의 나는 소개팅 시간마저 레이드 일정 피해서 잡은 저축 원툴 겜돌이였으니 초품아라는 말도 못 알아듣고 초풍신→n↓↘만 생각났다. 철권 좋아하시는 줄 알았는데... 초품아라는 말에 반가워하던 나를 보고 동공이 흔들렸던 그녀에게 늦게나마 사과를 드린다.

올해 CES를 보고 있는데 문득 몇 년 전에 스쳐 지나갔던 그 단어, 초품아가 떠올랐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는 주변 도로에 속도 제한이 있어 교통이 쾌적하고 유해 시설도 들어올 수 없어 남녀노소 모두 살기에 좋은 지역이 된다. 초등학교부터 이어지는 학군이나 편의 시설도 많고. 덕분에 초품아는 아파트 값이 잘 안 떨어지고 시세도 상승하기 쉽다. 초등학교로 인해 갖춰진 주변 환경이 좋은 아파트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늘 기발한 신제품들이야 나오지만, CES 2023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게임이 자동차와 만났다는 것이다. 소니가 자동차를 선보였고 엔비디아는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인 지포스 나우를 자동차에 도입했으며 종합 하드웨어 제조 업체인 MSI까지 자동차 장비 분야를 두드렸다. 해외에서는 자동차와 게임을 함께 묶어보려는 시도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자동차를 도로 위의 게임방으로 만들려는 시도, 표현 그대로 게임을 품은 자동차가 태어나는 것이다.

▲ 엔비디아 드라이브 플랫폼 (사진 출처: 엔비디아)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자동차가 엔진의 힘으로 돌아가는 동력 기계였다면 최근의 전기차는 모터로 돌아갈 뿐 커다란 전자 제품에 가깝다. 그리고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는 자율 주행까지 더해지면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던 자동차와는 조금 느낌이 달라진다. 운전이 사라진다면 운전자는 자동차 안에서 이제 뭘 해야 할까?

결국 전기차를 만드는 업체는 지금까지 운전대를 잡아야 했던 소비자의 손에 뭘 쥐어줄 수 있을 지를 고민하게 되고, 자동차에 머무는 시간은 이제 전세계의 모든 콘텐츠 기업들이 탐낼 수 밖에 없는 여가 시간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지루했던 출퇴근 시간의 반전,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전기차와 자율 주행이 일상화될 가까운 미래에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을 유혹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물론 멋진 디자인, 성능에 대한 신뢰, 브랜드의 가치 등 전기차 자체를 잘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전기차 기술이 대중화될수록 자동차 안에서 다양한 여가를 즐기기 위한 콘텐츠인 게임, 교육, 엔터, 쇼핑, 성인 산업을 어떻게 확보하고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를 것이다.

▲ 소니(Sony)가 CES 2023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전기차 아필라(Afeela)

▲ 전면에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그림, 좌석에서 플레이 중인 게임 정보 등을 나타낼 수 있다

지금도 꽤 많은 자동차들이 옵션으로 보조 모니터를 제공하고 자동차 전면부의 디지털 화면 역시 계속 커지고 있다. 이동하면서 칭얼대는 아이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자동차 뒷자리 모니터로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는 신세대 부모님들을 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콘셉트 모델에 그치긴 했지만 아예 자동차 내부의 뒤나 윗 공간에 거대한 화면을 넣은 자동차도 있었다. 그 정도 화면이 자동차 안에 실제로 구현된다면 영화관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아 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에 하나가 바로 게임 솔직히 1위는 성인 산업 이다. 미래에는 스팀(Steam)이 실행되는 벤츠, 블리자드와 손잡은 현대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달리는 게임방, 차박이 아닌 차겜방이 더이상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올해 CES 2023에서부터 이런 추세를 확인할 수 있으니 미래에는 명품 전기차가 급에 걸맞는 게임사나 스트리밍 기업, 영화 배급사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 기업들과 손을 잡게 될 것이다.

이미 경쟁자가 있긴 하다. 전기차에 탄다고 스마트폰이 사라지지는 않으니, 여러분들의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들어가는 모든 콘텐츠들도 똑같이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할 것이다. 다만 환경이 달라지면 작은 변화로도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플랫폼의 영역을 차지하는 주인공들이 태어난다. 고인물 경쟁이 되어버린 모바일 시장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의 땅이 하나 더 생긴다는 뜻이다.

초기에는 기존의 게임들을 이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냥 순수한 게이머의 입장에서 전기차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어떻게 게임에 활용할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다. 전기차 내부의 다양한 스크린과 장치를 활용하면서, 전기차에 꼭 맞는 UX와 재미를 함께 갖춘 게임들이 과연 등장할 수 있을까?

오락실, 게임기, 컴퓨터, 스마트폰... 게임 산업은 새로운 플랫폼을 만날 때마다 크게 성장하며 영역을 넓혀 왔다. 게임 산업이 전기차라는 플랫폼을 딛고 한번 더 거대한 도약의 시대를 맞게 될까? 어쨌든 미래는 준비하는 자의 것이니 부디 한국의 게임사들도 웃으며 새로운 시대를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