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 그 자체가 무기가 된 '에버소울'


2023년 토끼해가 밝았습니다. 그리고 토끼해의 첫 서브컬쳐 게임도 출시됐습니다. 바로 카카오게임즈의 '에버소울'이죠. 올해 처음 등장한 서브컬쳐 게임, 그것도 국산 게임이기에 꽤 큰 관심을 받았는데요. 3D 모델링의 캐릭터, 그리고 이를 잘 활용한 연출, 영지 꾸미기와 적절한 방치, 다양한 콘텐츠와 성장 요소 등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게임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게임명: 에버소울
장르명: RPG
출시일: 2023. 1. 5.
리뷰판: 출시 버전
개발사: 나인아크
서비스: 카카오게임즈
플랫폼: And, iOS
플레이: And



과하지 않은, '평범함' 속 에버소울의 색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에버소울은 참 괜찮은 평범한 게임이라는 겁니다. 여기서 평범하다는 건 나쁜 의미가 아닙니다. 누구나 쉽게, 그리고 어렵지 않게 재미를 느낄 정도의 게임이라는 의미죠.


에버소울의 콘텐츠들은 완벽하게 새로운 뭔가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기존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장점들을 하나하나 가져와서 섞어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그중에서도 AFK류 게임이라고 불리는 방치형 게임, 그리고 캐릭터와의 소통이 중심이 되는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요소들이 많은 편이죠.

같은 유형 캐릭터들을 합성하고, 레벨은 동기화되며, 일정 시간 방치 후 얻은 재화를 활용하는 등 이제는 거의 도식화되었다고 볼 수 있는 강화 시스템을 비롯해 캐릭터와 호감을 쌓아 새로운 스토리를 풀어내는 호감도 시스템, SD 캐릭터들이 돌아다니는 영지를 꾸미고 운영하는 하우징 시스템 등이 그 대표적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흔히 탑이라고 불리는 일회성 보상이 제공되는 콘텐츠, 전투를 진행하면서 옵션을 선택해 점점 강해지는 방식의 단계형 콘텐츠, 다른 게이머와 겨루는 아레나 등 전투 관련 콘텐츠도 마찬가지로 매우 익숙한 편이죠.

재미있는 건 이렇게 모든 부분이 익숙한 게 에버소울의 특징 중 하나라는 겁니다. 요 몇 년 간 모바일 게임을 다수 플레이해 본 게이머라면 튜토리얼이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졌거든요. 이는 게임에 적응하고 즐기는 데 큰 걸림돌이 없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 어디서 많이 본 승급 시스템

▲ 그리고 또 익숙한 레벨 동기화

콘텐츠 측면에서 큰 특징 없이 평범한 게임이라는 게 그렇다고 해서 장점이라고 할만한 건 아닙니다. 최근 게임들의 경우 10개의 콘텐츠가 있다면 최소한 1개 이상의 독특한 ‘뭔가’를 넣어놓습니다. 익숙함 사이에서 그래도 해당 게임만의 신선함을 느낄 수 있는 리프레시 콘텐츠를 말이죠. 물론 이게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과도한 새로움 때문에 게이머들에게 피로감을 주는 요소로 전락하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에버소울은 그런 시도가 크게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서브컬쳐 게임에 없는 에버소울만의 차별점이 뭔가 생각해보면 바로 머리에 짠하고 떠오르는 게 없달까요. 다양한 게임에서 이미 검증받은 콘텐츠를 하나하나 잘 가져와서 버무려내긴 했지만, 새로운 뭔가는 글쎄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버소울은 평범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럽지도, 과한 뭔가가 들어가 있지도 않죠. 대신 그 평범함을 에버소울이라는 양념으로 잘 무쳐냈습니다. 평범하고 익숙한 콘텐츠에 조금씩 에버소울의 색을 칠해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생각보다 진형과 종족 조합이 중요하게 작용

전투 시스템을 예로 들어 볼까요. 우선 전투를 위해 덱을 구성하죠. 탱커, 힐러, 버퍼, 딜러 등 역할 구분, 광역과 단일로 나뉘는 공격 범위, 추가 버프가 붙는 진형, 여기에 유불리가 정해져 있는 종족, 동일 종족을 활용하면 점점 강해지는 공격 및 체력 버프까지 너무나 익숙하고 익숙한 분류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익숙함 속에 에버소울의 색이 입혀진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종족’과 ‘진형’, 그리고 정말 너무 당연해서 언급하지도 않았던 ‘레벨’입니다.

이런 게임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다들 알 겁니다. 흔히 말하는 인권캐릭터, 그 성능이 너무나 좋아서 없으면 안 되는 그런 캐릭터를 키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요. 이런 메인 캐릭터 하나를 ‘매우 강력하게’ 육성하면 스테이지 대부분을 참 쉽게 해결할 수 있거든요.

나머지 캐릭터에 비해 기본적으로 한 단계 그 이상의 레벨링을 더 해주고, 모든 성장과 강화 요소를 그 캐릭터에게 몰아주면 전투 자체가 참 쉬워지곤 하죠. 종족 상성? 버프? 그 모든 것도 이러한 강력한 캐릭터 앞에선 크게 의미가 없고요.


하지만 에버소울은 다릅니다. 그냥 별 의미 없이 뻔한 홍보 문구로 사용되는 ‘전략적인 전투’를 진짜 느껴볼 수 있죠. 바로 덱 구성을 통해서요. 생각보다 종족 상성이 매우 중요하고, 또 생각보다 진형과 캐릭터들의 위치, 스킬의 사용 타이밍 등이 너무나 중요한 편입니다.

당장 몇몇 구간에서 기존에 사용하던 덱으로는 뚫지 못하는 그런 스테이지를 마주하게 되는데요. 이를 클리어하기 위해선 종족의 변화, 그리고 다양한 진형의 변화를 시도해봐야 합니다. 레벨링은 당연한 이야기고요. 특히 처음 마주하게 되는 통곡의 벽, 8-35 스테이지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캐릭터 풀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게 되죠.

▲ 고른 성장이라는 에버소울의 색

그리고 가장 눈에 띄는 건, 바로 레벨링이에요. 강력한 캐릭터 하나를 성장시키는 것만으로는 절대 수많은 스테이지와 콘텐츠 등을 진행할 수 없거든요. 덱에 활용하는 다섯 캐릭터 모두를 비슷하게 레벨링해야 탱킹도, 딜링도, 힐링도 모두 딱 적절하게 맞아 들어가게 되죠. 물론 게이머들이 선호하는 캐릭터, 스테이지를 클리어할 때 좀 더 수월하게 느껴지는 캐릭터는 있습니다.

이런식으로 에버소울의 경우 익숙한 요소들을 가지고 와서 작은 변화만으로 좀 더 전략적이고 다채로운 게임을 만들어냈습니다. 당장 특정 캐릭터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것, 심지어 처음부터 무료로 주어진 캐릭터, 쉽게 구할 수 있는 픽업 캐릭터를 꾸준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도 초반 이탈률을 감소시키고 부담을 줄여주는 요소로 작용하죠.

▲ 매우 유용한 픽업 캐릭터 메피스토펠레스



순한 맛 캐릭터, 부족한 인연 스토리

서브컬쳐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다양한 콘텐츠, 뛰어난 게임성, 멋들어진 그래픽, 높은 퀄리티의 성우 연기 등 정말 많은 것들이 있겠죠. 하지만 정말 당연하게도, 그 모든 걸 차지하고서라도 가장 중요한 것, 서브컬쳐 게임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장 우선시되는 뭔가가 있습니다.

바로 캐릭터죠. 서브컬쳐 게임이 다른 게임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그 게임성도, 그래픽과 사운드도 아닙니다. 매력적인 캐릭터의 유무죠. 서브컬쳐 게임에 지갑을 열고, 꾸준히 플레이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건 그 무엇도 아닙니다. 나의 모든 애정을 쏟을만한 캐릭터들이 존재하는가에요.


에버소울은 어떨까요. 캐릭터들의 일러스트는 훌륭하고, 성우들의 연기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영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SD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참 귀엽죠. 연출에 상당히 공을 들인 것이 티가 나는 3D 캐릭터의 모습도 인상 깊습니다. 로딩 중간중간 마주하는 캐릭터 한 컷 만화도 볼 때마다 웃음이 나고요.

캐릭터성도 뛰어난 편입니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캐릭터 중 하나인 메피스토펠레스는 방주를 지키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정령이라는 설정부터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비하인드까지 더해지며 흔히 말하는 '덕심'을 자극합니다.

▲ 부담없이 다가오는 캐릭터들

메피스토텔레스 외에도 하늘색 단발머리와 별이 반짝이는 눈을 가진 탈리아, 뭔가 커다란 비밀을 숨기고 있는 아름다운 여왕 유리아, 티격태격하지만 그 누구보다 사이가 좋은 삼인방, 마치 온몸으로 '마녀'라고 외치는 듯한 비비안, 정의감에 넘치는 열혈 슈퍼 히어로 아드리안, 나이는 많지만 겉모습은 어린아이인 레베카 등 등장 캐릭터 대부분이 잠깐 보더라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확실한 특징을 가지고 있죠.

여기에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남성으로 고정하고 수집 가능한 캐릭터에서 남성형 캐릭터를 모두 제외하면서 타겟층 역시 명확하게 잡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비주얼적으로, 혹은 캐릭터의 설정 등에서 자극적인 요소를 제외해 부담 없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죠.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이 마치 신뢰, 우정을 쌓아가는 느낌이라 오히려 참 좋았습니다. 캐릭터에게 가지는 애정도가 부담스럽지 않고 라이트 하달까요.

▲ 직접 하나하나 꾸밀 수 있는 프로필

뿐만 아닙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장점, 엔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콘텐츠도 있습니다. 바로 프로필 꾸미기에요.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를 메인에 내보이는 것이 참 중요한 이런 게임에서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프로필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꾸며낼 수 있다는 건 정말 커다란 즐거움입니다.

특히 에버소울의 프로필은 그저 단순히 배경을 바꾸고, 소개 문구를 바꾸고, 몇 개 캐릭터를 선택해서 초상화만 보여주는 정도가 아닙니다. 열심히 메인 스토리와 인연 스토리를 통해 모은 컷신 일러스트, 캐릭터의 전신 일러스트, 배경 패턴, 도형, 문구, 말풍선 등등 그야말로 모든 것을 직접 그려내고 수정할 수 있죠.

개인적으로는 참 사소한 것이지만, 오히려 개발사의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뭔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거든요. 아름답고, 소중하고, 희귀한 뭔가는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만, 공유하면 더 뿌듯하니까요. 그런 니즈를 참 잘 캐치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 운명이 움직이는 인연 스토리

하지만 반대로 아쉬운 점 역시 분명 있습니다. 가장 큰 건 역시 캐릭터의 비하인드를 알 수 있는 인연 스토리의 부족이에요. 통통 튀는 캐릭터들의 성격, 특징, 심지어 인연 스토리 전체를 풀보이스로 할 정도로 캐릭터성에 힘을 줬음에도 그 모든 걸 집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본격적인 콘텐츠가 너무나 부족해요.

출시 일주일이 지난 지금, 획득할 수 있는 주요 캐릭터들이 그리 많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특히 태생 보라색 등급, 에픽 등급의 캐릭터들은 더욱 많지 않죠. 그렇기에 그 중 다수는 메인 스토리에서 짧든 길든 만나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캐릭터들의 많은 것들을 확인하고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스토리의 분량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특히 해당 캐릭터가 메인이 되는 인연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너무나 적어요.

▲ 언제쯤 미리암의 인연 스토리를 볼 수 있을까

메인 스토리를 거치며 자연스레 마음이 가던 캐릭터들, 특히 완전히 메인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등장하는 클레르, 미리암, 캐서린 등의 이야기조차 아직 미구현 상태죠. 물론 제가 가장 애정을 쏟았던 미리암의 이야기가 없어서 화가 난 건 아닙니다. 캐릭터와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요소가 적어서 아쉽달까요.

이건 아무래도 인연 스토리의 퀄리티가 높기에 더욱 크게 다가오는 부분입니다. 풀보이스라는 것 외에도 다양한 이벤트 일러스트를 얻을 수 있고 숨겨진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으며, 마치 미연시처럼 제시된 선택지 중 하나를 통해 호감도, 운명을 움직일 수도 있기에 말이죠.

▲ 나들이를 통해 어느 정도 소통은 할 수 있다

물론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천천히 하나하나 추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적용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인연 스토리만큼은 아니지만, 아르바이트를 통해 획득한 키워드를 활용하는 나들이로도 캐릭터와의 알콩달콩한 시간을 경험할 수도 있죠.

다만 나들이 시스템이나 영지에서 가끔 만나 인사를 나누는 정도로는 호감도 시스템의 깊이가 너무 얕게 느껴진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 많은 친구들이 여전히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신작 게임들을 플레이할 때 가장 집중해서 보는 건 콘텐츠도, 상점도, 뽑기도 아닙니다. 친구 리스트예요. 엄밀히는 친구들의 마지막 접속 일자죠. 출시 후 일주일간, 한 달간 얼마나 많은 친구가 게임을 여전히 플레이하는지, 남아있는지를 확인하곤 합니다.

출시 당일 수많은 사람이 게임을 시작하고, 리세마라를 하고, 플레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게임을 ‘찍어 먹어본’ 다수의 게이머 중 일주일 넘게 게임을 지우지 않고 유지하는 인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에버소울은 그런 점에 있어선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30명의 친구 중 삭제해야 하는 미접속 인원이 하루에 한두 명 정도밖에 되지 않거든요. 오히려 신기하게도 친구들의 레벨, 진행도 등이 거의 비슷하게 상승하곤 합니다. 이는 아마 '혜자스러운' 운영과 적절한 콘텐츠, 그리고 아까 언급한 '평범함' 덕이 아닐까 싶습니다.

▲ 빠르게 추가 되었으면 하는 콘텐츠들

최근 모바일 게임에서 가장 균형을 잘 맞춰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숙제에 들어가는 시간, 그리고 콘텐츠 진행에 있어서의 아주 적절한 '막힘'입니다. 그 무엇도 과하거나, 또 부족해서는 안 되죠. 하지만 그 적절함을 맞추는 건 참 어려운 일입니다. 에버소울은 약 일주일 정도 플레이하면서 그 균형을 꽤 잘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재미있게도 캐릭터의 성장 자체는 방치 시스템에 기본을 두고 있으면서도, 영지 꾸미기라는 선택형 콘텐츠를 넣으면서 게임을 붙잡는 시간을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전투는 막히더라도, 영지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반대로 하루에 잠깐씩만 플레이를 원한다면 그 역시 가능하죠.

에버소울은 그런 게임인 것 같습니다. 부담 없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그런 게임이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는 게임인 것도 확실해요. 특히 캐릭터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다양한 보완이 필요할 듯합니다. 부담은 없되, 평범하되, 마냥 가볍기만한 게임이 되면 안된다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