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선입견을 갖고 싶지 않지만 이 게임은 그걸 지키기가 꽤 어려웠습니다. '마호켄시'. 한국어로 마법검사라 번역된 게임명은 부담스러운 일러스트와 함께 어딘가 꺼림칙한 느낌을 들게 하기 충분했거든요. 모바일 게임 광고로 본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이런 선입견 없이 해보면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게임이었습니다. 개발사인 게임 소스 스튜디오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유럽 게임사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디자인이 어느 정도 납득이 되기도 했고요.

게임은 TRPG를 기반으로 덱 빌딩과 턴제 전술, 로그라이트 등 여러 장르의 특징을 섞은 느낌입니다. 비슷한 장르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어떻게든 변화를 주고자 한 흔적이 보였죠. 실제 플레이에서 신선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 의도는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마냥 재미있게 다가오진 않았다는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었습니다.


게임명: 마법검사(Mahokenshi)
장르명: 턴제 전술 덱빌딩
출시일: 2023.01.24
리뷰판: 1.0.0
개발사: 게임 소스 스튜디오
서비스: 아이스버그 인터랙티브
플랫폼: PC
플레이: PC



덱 빌딩에 큰 변화를 선사해준 이동 시스템

마법검사는 헥사곤 타일의 보드 게임을 베이스로 깔고 그 위에 턴제와 덱 빌딩, 로그라이트를 접목해 차별화를 꾀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게임은 스테이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각 스테이지마다 정해진 메인 목표가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4명의 캐릭터 중 하나를 선택해 제한된 상황에서 이를 해결해야 하죠.

스테이지 내에서 이동과 전투는 턴제로 진행되고 캐릭터 육성과 전투 방식은TRPG 및 덱 빌딩 스타일을 채용했습니다. 여기에 로그라이트 요소까지 추가됐으니 여러 장르에서 괜찮은 시스템만 빼서 섞은 완벽한 짬뽕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 할 때 가장 신선했고 또 활용도가 높다고 느낀 점은 역시 앞서 언급했던 이동 시스템의 존재였습니다. 일반적인 덱 빌딩 방식의 게임은 이동이란 개념이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나열된 루트 중 마음에 드는 곳을 선택하면 해당 지역으로 가고 제공하는 이벤트가 끝나면 별도의 코스트 소모 없이 다음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하기 때문이죠.


반면, 마법검사는 수많은 헥사곤 타일로 이뤄진 스테이지 안에서 기력(코스트)을 소모해가며, 캐릭터를 움직여야 합니다. 주어진 기력을 모두 소모하면 턴 종료를 하고 다시 기력을 채워서 움직여야 하죠. 보통은 이동 시 기력 1개를 소모하지만 숲, 산맥 등 특수 타일에서는 더 많은 기력을 소모하게 됩니다.

기력을 카드를 낼 때 소모되는 필수 자원이므로 단순 이동으로도 기력이 소모된다는 사실이 게임 플레이에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가령, 눈 앞에서 적을 마주쳤는데 이동하느라 기력을 다 썼다면 한 턴 정도는 무방비로 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늘 적과 나의 거리를 계산하며, 전략적으로 동선을 짜야 했습니다.

이처럼 이동 자체도 전투 못지 않게 중요하다 보니 게임 내에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더욱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해주는 지원 카드가 존재하거나 제한된 턴 안에서 특정 지점까지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이동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볼 수 있죠.


특히, 턴 제한이 걸려 있는 스테이지에서는 최단 거리 루트를 미리 설계해야 했는데요. 이동 구간마다 적과의 전투와 캐릭터 육성을 지원해주는 타일까지 고려해야 하니 익숙하지 않았던 처음에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자유로운 이동 시스템이 가져온 또 다른 변화는 캐릭터 육성과 전투를 원하는 대로 고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일은 앞서 언급했던 숲과 같은 자연 환경 외에도 카드 뽑기, 상점, 도장, 성과 같이 육성에 도움을 주는 게 존재합니다. 플레이어가 해당 타일 위에 서면 관련 이벤트를 겪게 되는 방식이죠.

초반에 제공되는 카드는 굉장히 기본적인 효과만 제공해주기 때문에 원활한 이동과 전투를 위해선 이러한 육성 타일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정 시설은 강력한 효과를 제공해주는 대신 일회성에 그쳤고 상점과 같은 NPC 시설은 이용할 때마다 돈이 필요하지만 재 방문이 가능했습니다. 시간과 돈만 넉넉하다면 충분히 그라인딩을 통해 덱을 강력하게 만들 수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메인 미션은 방식에 차이만 있을뿐 턴을 제한하는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무방비로 턴만 소비해선 깰 수가 없죠. 따라서 플레이어는 수많은 육성 타일 중에서 목표 달성에 도움을 줄 것들만 골라서 이동 경로를 짤 필요가 있습니다.

즉, 일반적인 덱 빌딩 게임이 덱 그라인딩에 모든 것을 집중한다면 이 게임은 그라인딩에 이동 경로까지 계산해서 움직여야 합니다. 이 점이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육성을 원하는 대로 설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성취감이 흐려지는 덱 빌딩 육성

전투는 단순하면서도 나름의 전략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적과 조우하면 공격 카드를 내서 최대한 덜 맞고 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방어, 이동, 기력 계산 등의 과정을 항상 생각해야 하는 것이죠.

4명의 캐릭터는 각각 고유의 카드를 갖고 있는데요. 첫 번째로 플레이할 수 있는 아야카는 텐구의 축복을 받아 비행 능력을 가진 카드를 사용하며, 주로 공격적인 능력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반면, 두 번째로 해금되는 카이토는 갓파의 축복을 받아 방어도를 쌓고 이를 공격에 활용하는 수비 플레이에 최적화되어 있죠. 캐릭터 공용 카드 외에 이러한 직업 카드는 각 캐릭터의 레벨이 오름에 따라 추가적으로 풀리므로 후반으로 갈수록 캐릭터 고유의 색이 뚜렷해지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적들도 후반으로 갈수록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적은 정해진 범위 안에 플레이어가 진입하면 발견 후 끝까지 추적하는 패턴을 갖고 있습니다. 특정 적은 경계 범위가 굉장히 넓고 연계돼서 주변 몬스터를 부르는 경우도 있어서 특히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매번 정해진 적과 싸우는 일반적인 턴제 덱 빌딩 게임과 달리 이 게임은 스스로 이동해서 적과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전장의 변수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실수할 경우 더 많은 적에게 포위돼서 순식간에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스테이지 내에서 캐릭터 육성을 조절하고 안정된 전투 위주로 이끌어갈 필요가 있었죠.

초반에는 적도 별로 없고 약해서 쉽다고 느낄 수 있지만 갈수록 적도 강력해지고 숫자가 많아져서 육성이 부족하다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럴때는 사이드 임무에서 챌린지를 깨고 마법검의 길이라는 육성 노드를 활용하는 게 좋았습니다.


한편, 게임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러한 캐릭터 고유의 색과 전투, 덱 그라인딩 등 덱 빌딩 장르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가 반감되는 게임 설계를 갖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덱 빌딩 장르는 나만의 덱을 맞춰가면서 캐릭터가 성장하는 재미를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쪽 장르에서 대표적으로 꼽히는 '슬레이 더 스파이어'를 예시로 들어보면 수많은 적을 꺾으면서 나만의 덱을 갈고 닦고 반복 플레이에서도 색다른 재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있죠.

반면, 마법검사는 나만의 덱을 만드는 것보다 스테이지의 목표를 클리어하는데 모든 부분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제한된 턴 내에서 목표를 달성하려면 정교하게 덱을 깎는 것보다 최대한 많은 자원을 획득하고 빠르게 강력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점은 앞서 장점으로 언급했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걸림돌로 다가옵니다.


특히, 원활한 진행을 위해선 거의 반 강제적으로 이동 카드를 덱에 넣어야 하는데 전투 상황에서는 특정 버프를 제공해주는 이동 카드를 제외하면 효과가 없으므로 이동에 투자할수록 전투가 불리해지는 상황이 꽤 자주 발생했습니다.

이점을 보완하기 위함인지 특수 필드마다 공격력 혹은 방어도 증가 등의 버프를 제공해 전투 중에도 계속해서 이동하며, 전장의 상황을 전략적으로 쓸 수는 있었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전투 보상이 적다는 점도 아쉽게 느껴집니다. 보통 덱 빌딩 게임은 전투를 통해 캐릭터가 강력해집니다. 싸워서 이기면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니 승리의 쾌감과 성장에 따른 성취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죠.


반면, 마법검사는 전투가 필수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캐릭터 육성에 전투가 필수가 아닙니다. 적을 쓰러트려도 얻는 것은 돈뿐입니다. 돈을 소모하는 시설에서 카드를 구매하거나 강화할 수 있긴 합니다. 다만, 필드에서 돈을 수급할 수 있고 시설을 이용할 때마다 돈 요구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라 엄청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성장에 따른 강력함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도 있는데요. 카드를 강화할 수 있는 횟수는 1회에 그치고 특수 카드라 해서 엄청난 효과를 제공해주지 않으니 대체로 비슷한 느낌의 육성 성취감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즉,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목표치만 이룬다면 굳이 무리해서 덱을 깎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단순히 턴제 어드벤처 게임으로만 본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덱 빌딩이 차지하는 비중에 꽤 크기 때문에 이러한 육성법이 아쉽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6시간 정도의 짧은 플레이 타임과 반복 플레이에 따른 성취감이 적다는 점 등 전체적으로 볼륨이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취향만 맞는다면 생각보다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팀 평가수가 적긴 해도 매우 긍정적 평가를 받은 것을 본다면 절대 못 만든 게임은 아닙니다.

덱 빌딩에 중점을 두지 말고 턴제 전술에 중점을 둔다면 레벨 디자인도 괜찮고 긴 호흡을 가지는 게임 플레이도 부담스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일단 기존 덱 빌딩 중심의 게임과 비교했을 때 차별화 되는 재미는 충분히 느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