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구 박종현 프로그래머

최근 몇 년 간 화두가 됐던 단어 중 하나를 꼽자면 '유니버스'가 있다. 각각 다른 작품에 등장한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결해주는 세계관이자 각각의 이야기의 묶음까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이 단어는 이야기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만들어보았으면 하는 꿈으로 자리잡았다.

'로코 아일랜드'의 개발사 코구도 그러한 꿈을 안고 게임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 중 하나다. 지난 2022년 3월 출시한 '로코 아일랜드'는 머나먼 미래 미지의 섬에 떨어진 소녀 에블린의 이야기를 담아낸 퍼즐 어드벤처 게임으로, BIC 2022 그랑프리 파이널리스트에 선정됐다. 아쉽게도 수상은 실패했으나, 펄어비스와 BIC가 인디 게임의 해외 전시를 지원하는 BIGEM 사업에 선정되어 타이베이 게임쇼에서 참가했다.


로코 아일랜드에서 메인 프로그래머를 맡은 박종현 프로그래머는 이번 작품이 코구가 그리고자 하는 유니버스의 첫 걸음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으로부터 30,000년 뒤 가상의 미래로 가게 된 소녀 '에블린'의 이야기이지만, 그 세계가 왜 그렇게 됐나 하나하나 퍼즐과 함께 단초를 풀어나가는 게임이기도 했다.

코구가 '유니버스'라는 개념에 주목해서 큰 그림을 그려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간 매치3 퍼즐을 비롯해 여러 게임을 만들어왔던 코구였지만, 단순 캐주얼 게임만으로는 수도 없이 많은 신작이 범람하는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아트, 사운드뿐만 아니라 '맥락'과 '세계관' 그리고 '유니버스'라는 개념으로 유저에게 몰입감 있는 무언가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접근해나갔다.


▲ 아트와 퍼즐, 스토리 3박자의 조화로 독특한 세계관을 풀어나간 '로코 아이랜드'

로코 아일랜드의 이야기는 문명이 멸망한 미래에 오게 된 '에블린'이 섬의 왕들을 만나 각 섬을 정화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간단하지만, 디테일의 완성도를 높이면서 유저로 하여금 몰입감을 느끼게끔 했다. 포인트 앤 클릭으로 누구든 쉽게 조작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엽서 같은 풍치가 느껴지는 맵 곳곳에 있는 소소한 물건들도 그 세계를 알아가는 또다른 이야기의 단초로 자리잡게끔 했다. 그래서 간단한 조작법이지만 맵을 괜히 클릭해보고 툭툭 건드려보면서 자연스레 이야기에 접근하게끔 유도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사운드, 그리고 각각 테마에 맞는 다양한 퍼즐도 게임플레이의 완성도를 높이는 포인트였다. 특히 퍼즐은 3매치 퍼즐 외에도 그림자 퍼즐, 수수께끼, 퀴즈, 2048 등 각 장면의 테마에 맞는 다양한 퍼즐로 깊이를 더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어려운 나머지 퍼즐을 못 풀어서 엔딩을 보지 못하는 일은 없게끔 난이도를 조율해나갔다.

다소 모호한 개념이 뭉뚱그려진 만큼, 로코 아일랜드의 개발은 쉽지만은 않았다. 박종현 프로그래머는 로코 아일랜드의 본격적인 개발의 시작은 1년 정도 걸렸다고 회고했다. 방향성을 정하는 것부터 어떤 메시지와 스토리를 전할지, 무슨 장르를 골라야 할지 등등 모든 것들이 난제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밝혀질 세계관뿐만 아니라, 바로 지금 드러나는 세계 자체부터가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해 당장 보아도 무언가 끌리는 요소들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선이 딱딱 나눠져있지 않은 거친 핸드드로잉의 아트, 그에 못지 않게 마치 그림책이나 그림 엽서를 보는 듯한 거친 색감과 질감은 멸망한 이후의 세계라는 소재에 따뜻함과 삭막함 두 요소를 보여주기 위한 특색으로 자리잡았다. 일견 단순해보이는 요소들을 짜임새 있게 갖춰나가면서 로코 아일랜드는 타이베이 게임쇼를 방문한 바이어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특히 바이어들은 엽서 속에 숨은 그림 찾기 같은 감성과 짜임새에 주목했다.


코구는 현재 로코 아일랜드와 유니버스는 동일하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인 '토보르'를 개발하고 있다. 멸망 이후의 세계를 따스한 톤으로 그려낸 것이 로코 아일랜드였다면, 유저가 스파이 로봇이 되어 경쟁사의 비밀 연구소에 CCTV를 몰래 설치한 뒤, 이를 매일매일 관찰하는 것이 '토보르'의 핵심이다. 로코 아일랜드와 비슷하게 포인트 앤 클릭 방식으로 감시, 도청, 그리고 불신이라는 소재를 그려낼 토보르는 거친 삽화의 선과 기묘한 이미지들까지 더하면서 심리적 공포와 불안감을 주로 그려내는 색다른 작품이 될 예정이다. 그렇게 정반대의 느낌이 드는 세계관이지만, 그 자체가 유저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그 뒤에 풀어낼 거대한 세계를 기대하게끔 하는 것이 코구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아예 다른 배경에서 시작하지만, 로코 아일랜드 이후 작품이 세계관의 연장선으로만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그 자체가 매력적인 세계관이란 것에 주력했다. 궁극적으로 유니버스는 그 회사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면, 그 작품이 먼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이야기일까 먼저 호기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 나중에 그 다양한 세계의 연결고리까지 이어지는 것 아닐까 싶다. 아예 다른 배경에서 확장될 때 '어? 이상하다' 이런 반응이 아니라 그 자체에 궁금해해야지만 자연히 세계관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으로 이어질 테니까.

하나의 커다란 세계를 완성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다. 마블 같은 경우도 수많은 작품을 오랜 세월 동안 쌓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일구어내지 않았나. 우리도 '로코 아일랜드'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커다란 세계 안에 유기적으로 자리잡아서 마침내 그 세계를 완성하는 회사가 됐으면 한다. 그 시작점인 로코 아일랜드, 그리고 전혀 다른 이야기인 '토보르'를 기대해주셨으면 한다."

▲ 차기작으로 CCTV로 감시하고 도청하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 '토보르'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