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팬은 물론 국내 게임 팬이라면 기다려 마지않던 디아블로4. 출시 3개월여를 앞두고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 얼리 액세스 베타를 시작했습니다. 한발이라도 더 칙칙하고 '찐득'해진 성역에 발을 대기 위해 디지털 버전을 구매한 유저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아블로3, 디아블로2 레저렉션 모두 침대에 누워 뒹굴대며 스위치로 수백 시간은 즐겼는데 이번에는 PC, 거치 콘솔로만 출시된 데에 대한 아쉬움도 컸습니다. 풀옵션으로 돌리고도 남을 PC는 맞췄지만, 디아는 역시 누워서 해야 제맛이라는 생각에 스팀 덱 구동을 일찌감치 준비했습니다.

디아블로4는 스팀 덱에서 얼마나 잘 돌아갈까요? 일단 영상부터 보시면 됩니다.



1 스팀 덱 구동, 지금 단계에서도 꽤 할 만합니다

뭐 다 알다시피 스팀 덱의 사양 자체는 고급 사양의 PC와 비교하면 턱없이 낮습니다. 대신 해상도가 1280x800으로 굉장히 작은 편이고, 스팀 덱에 맞춰 제작된 칩셋도 굉장히 효율이 높은 편으로 알려져 있죠.

실제로 세부적인 옵션 설정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높음 옵션 정도면 초당 30 프레임(30fps) 정도로 디아블로4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중간 옵션으로 게임을 진행하면 60fps까지 찍히기도 하지만, 보통 40~50을 오가죠. 그래서 30보다 높고, 프레임이 일정한 주기로 반복돼 더 매끄럽고 안정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40fps로 제한을 걸어두고 플레이 해봤습니다.


더 나아가 기본 설정은 낮음, 여기서 텍스쳐 품질을 좀 줄이고 해상도와 FSR까지 건드려주면 60fps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던전처럼 맵이 개방된 지역이 아니라면 요동치는 프레임을 볼 일은 거의 없죠.

별도의 언더볼팅도, 게임에 맞춰 따로 전력 설정을 맞추지도 않았고 스팀 덱 설정에 필수로 꼽히는 스왑 정도만 활용한 상태로 말이죠.

옵션 자체도 꽤 세밀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실제 게임 구동 해상도보다 낮은 상태로 해상도를 낮춰 성능을 높이는 기능도 있고 절반의 픽셀만 먼저 랜더링해 시각 품질은 낮지만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는 시간차 재구성, AMD 업스케일링 기술인 FSR2도 성능부터 품질까지 적용할 수 있습니다. 엔비디아 그래픽 카드가 달린 PC에서는 DLSS가 잡히는 거 보니 이 부분은 게임에서 알아서 잡아주는 거 같았고요.

여기에 세부적인 옵션 요소도 셰이더 품질, 안개, 사물 표현, 털, 물, 반사 성능 등등 많은 부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죠. 이런 옵션들을 적당히 잘 조합한다면 좀 더 높은 그래픽 연출을 구현하면서도 안정적인 프레임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습니다.


대신 이렇게 할만한 상황이 항상 나오는 것만은 아니었지만 말이죠.


2 느려지고 멈추고, 스팀 덱 맞춤 최적화는 아직

아직 오픈 베타에 1주일 앞서 진행되는 사전 베타인 만큼 스팀 덱에 맞는 최적의 성능을 기대하는 건 너무 뻔뻔한 생각이었을까요? 그래도 현 단계에서 구간 구간 발생하는 랙이나 스터터링은 꽤 거슬리는 수준입니다.

게임에는 셰이더라는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그걸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데 이게 게임 중에 발생하면 몇 프레임씩 멈추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걸 보통 스터터링이라고 부르는데 이 작업은 그래픽 카드 모델마다 다르고, 드라이버가 바뀌면 다시 해줘야 합니다.

스팀 덱은 모델마다 용량은 달라도 안에 있는 GPU는 모두 똑같죠? 그래서 이런 작업을 스팀 덱 GPU에 맞춰 미리 받아둡니다. 게임 중에는 발생하지 않도록요. 그래서 보통 스팀으로 산 게임들은 이 사전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다운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필요 셰이더 컴파일을 미리 받아놓는 작업이 가능해 똑같은 PC 게임인데도 오히려 스팀 덱에서는 스터터링이나 랙이 덜 발생하는 경우도 꽤 많아요. 물론 그래픽 품질 같은 부분은 고사양 PC가 훨씬 좋지만요.

▲ 프레임이 1자리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초반에는 잦습니다

그런데 디아블로4는 스팀이 아닌, 배틀넷으로 출시됐죠? 구동은 리눅스의 호환성 도구로 이루어지고 있고요. 당연히 셰이더 사전 데이터를 미리 다운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작업이 발생하는 시기에 프레임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때로는 게임이 멈춘 것 처럼 보일 때도 있고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던전이나 이벤트 지역에서는 덜 한데 오픈 필드, 새로운 지역 이동, 많은 NPC들이 모여 있는 마을 진입 같은 경우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메인 구역인 필드 위에서는 프레임이 떨어지는 구간이 종종 있습니다.

스팀을 통한 셰이더 캐싱은 없지만, 오버워치2 같은 경우에는 이 셰이더 사전 캐싱 데이터만 따로 공유되기도 했습니다. 이걸 통해 게임 중 발생하는 랙이 준수하게 많이 잡히기도 했고요. 다만, 이제 막 오픈베타가 열렸고, 또 주말이 끝나면 문을 닫아 다음 주말에야 오픈 베타가 시작되는 만큼 셰이더 사전 캐싱 파일들이 공유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 스팀에 나온 게임은 이렇게 주기적으로 사전 캐싱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데

일단은 이런 셰이더 컴파일 작업 분배 같은 최적화는 게임 개발 작업 후반에도 더러 이루어집니다. 적어도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오픈 베타와는 다른 더 나은 최적화를 기대해보는게 지금 스팀 덱 유저가 할 수 있는 일이겠네요.


3 그냥 하면 스팀 덱에서 못 합니다

구동 영상만 보면 스팀 덱 유저 분들도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겠지만, 그냥 하면 아마 계속 실행 불가 화면만 보게 될 겁니다.

▲ 도무지 GPU를 찾지 못하는 배틀넷

서버 오픈 시작인 1시에는 인증 오류나 대기열 등 몰려든 이용자에 디아블로4는 과거 디아블로3가 잠시 생각날 정도로 서버가 불안정하긴 했습니다. 다행히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문제가 잡히고 대기열 정도만 넘기면 게임을 즐길 수 있었죠. '그냥 PC' 유저는 말이죠.

스팀 덱의 경우 GPU를 찾지 못한다는 오류 문구와 함께 게임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픈과 함께 제일 먼저 달려나갈 생각에 흥얼거렸지만, 지옥의 문지기들은 스팀 덱 하나 덜렁 들고 성역을 찾은 이들에게는 그 문을 열어줄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사실 스팀 플랫폼 안에 출시된 건 아니지만, 디아블로3, 디아블로2 레저렉션, 오버워치2 등 많은 블리자드 게임이 게임 플레이에 전혀 지장이 가지 않을 정도로 원활하게 스팀 덱에서 구동됩니다. 적당한 옵션값을 만져주거나 게임 중 컴파일로 인한 스터터링이 발생하지 않도록 캐시 셰이더를 따로 받아야 하지만요.

그래서 일찌감치 루트리스니, 와인 보틀이니 하는 추가적인 호환성 도구들을 가지고 배틀넷을 스팀 덱에 설치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오픈 시간이 땡 울리지마자 게임을 달릴 생각으로 말입니다.

만약, 스팀 덱으로 게임을 즐기실 생각이라면 굳이 이렇게 다른 호환성 도구로 관리를 편하게 할 생각 하지 마세요. 지금은 그냥 스팀의 비스팀 앱 추가, 그리고 호환 옵션을 GE 프로톤으로 게임을 돌리시면 됩니다.

대신, 이것도 잘 선택해야 합니다. 호환 레이어인 GE 프로톤은 디아블로4 얼리 액세스 베타를 얼마 남기지 않고 51버전이 출시됐습니다. 내심 디아블로4를 위한 업데이트라는 생각도 있었고 다들 이 버전, 혹은 기존의 50이나 40번대를 사용했을 겁니다.

▲ GE 프로톤은 27로

하지만 커뮤니티 등을 통해 현재 알려진 실행 방법은 GE 프로톤 27버전을 사용하는 겁니다. 그 뒤로 20개 넘는 버전이 나왔는데 27 버전에서 구동되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요? 구동을 위해 2시간 가까이 옵션도 바꾸고, 윈도우 버전 설치, '기사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PC로 돌릴련다' 등등 많은 생각이 오갔던 시간을 생각하면 괜스레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도 합니다.

어쨌든 스팀 OS로 돌리려면 GE 프로톤, 혹은 듀얼 부팅 환경을 마련한 윈도우 OS에서 플레이하시면 스팀 덱에서도 디아블로4를 즐길 수 있습니다. 디아블로2 레저렉션처럼 키보드 마우스로도 플레이할 수 있고 컨트롤러로 조작을 시작하면 자동으로 입력 형태가 컨트롤러 기반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 GE 프로톤 27버전도 완벽한 건 아닙니다. GPU를 찾지 못한다는 오류 메시지는 똑같이 뜨는 대신 게임이 닫히지 않고 실행 가능한 것만 다르거든요.

스팀이 유저들의 관심이 높은 게임이나 개발사 작품의 경우 외부 플랫폼 호환성을 높이는 업데이트를 진행하기도 했고, 블리자드가 스팀 덱 구동 문제를 잡아낼 가능성도 높은 만큼 이 역시 정식 버전에서는 달라질 수 있겠고요.

그리고 마지막 하나. 스팀 덱은 스위치나 스마트폰과 달리 잘못 떨어트리면 진짜로 코가 깨지고 '눈탱이는 밤탱이'가 됩니다. 밤새 달릴 생각이시라면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즐기시고, 피로에 못 버텨 졸리기 시작한다면 바로 게임을 끄고 스팀 덱은 내려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