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가 추구하는 유스 시스템, 안정적인 환경의 게임단, 잠재력이 뛰어난 유망주. 이 삼박자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물이 이번 스프링 스플릿의 '페이즈' 김수환이 아닐까 싶다.

이미 지겹도록 자주 언급된 이야기지만, '페이즈'는 중학생 시절부터 젠지가 공들여 키운 선수다. 솔로 랭크 단 두 판 만에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연습생으로 발탁됐고, 이후 성골 유스의 정도(正道)를 걸었다. 만 16세가 되자마자 2군 로스터에 등록돼 2022 시즌 동안 LCK CL에서 뛰었고, 이듬해에 만 17세의 나이로 LCK에 입성한다. 1년 반의 연습생 생활에 이은 1년의 CL 활동, 이후 LCK 데뷔까지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나간 거다.

사실 '페이즈'의 1군 데뷔는 예상보다 빨랐다. 젠지에는 정상급 원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룰러' 박재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3 시즌을 앞두고 '룰러'가 팀을 떠났고,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젠지는 영입 대신 콜업이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시작된 '페이즈'의 데뷔 스플릿. 정규 시즌 초반에는 확실히 불안한 부분도 있었다. 유망주답게 한타 피지컬은 돋보이는데, 라인전에서 힘들어하는 게임이 많았다. 신인이라는 걸 감안하면 괜찮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경기력이었으나, 소속 팀이 상위권 경쟁 중인 젠지고, 전임자가 '룰러'라 더 냉정한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정규 시즌을 마친 지금, '페이즈'는 그런 꼬리표를 떼어내는데 성공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라인전에서 안정감을 찾아가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특별히 코스트를 들이지 않아도 라인전 페이즈를 준수하게 마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뿐만 아니라 '딜라이트'와 함께 쟁쟁한 플레이오프권 바텀을 상대로 듀오 킬을 만들어내는 장면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지표로도 볼 수 있듯 CS 수급면에선 여전히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정교한 딜 교환과 날카로운 킬각을 통해 이를 만회하고 있다. CS는 경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여러 관계자들이 '페이즈'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게 아닐까.


*2023 LCK 스프링 바텀 듀오 킬 순위 (LCK 제공)
1위 T1 '구마유시-케리아' : 28킬 (43경기)
2위 젠지 '페이즈-딜라이트' : 24킬 (43경기)
3위 KT '에이밍-리헨즈' : 23킬 (43경기)
4위 디플러스 기아 '데프트-켈린' : 22킬 (40경기)

한 관계자는 '페이즈'를 두고 "이대로 큰다면 내년에는 최상위권 원딜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구마유시' 이민형, '에이밍' 김하람, '데프트' 김혁규, '바이퍼' 박도현 등 이미 뛰어난 원딜 자원이 넘치는 LCK에서 들을 수 있는 굉장한 칭찬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갓 데뷔한 신인이 '도란-피넛-쵸비'의 템포에 맞춰간다는 게 놀랍다"고 표현했다.

젠지의 이지훈 단장에게 직접 '페이즈'에 대한 내부 평가도 들어봤다. 이지훈 단장은 예상보다 일찍 잠재력을 증명한 '페이즈'를 칭찬하면서도 그러한 환경을 만들어준 코치진과 팀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잘할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오히려 불안할 정도다. '페이즈'는 워낙 강심장이라 무대에서 떨지 않는 게 가장 큰 강점이다. 처음엔 낯을 많이 가렸는데, 이제는 많이 친해져서 자기주장도 하고, 그러면서 제 플레이가 많이 나올 수 있게 됐다.

'페이즈' 혼자서는 이렇게까지 할 수 없었을 거다. 생활면에서도 감독이나 코치, 선수 형들이 워낙 잘 챙겨줘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인게임적으로도 많이 신경 쓰면서 도와줬다. '페이즈'는 가진 무기가 많아서 더 매력 있는 선수다. 비원딜 메타가 와도 걱정 없다. 아직도 보여줄 게 너무 많다."



이 단장의 말처럼 아무리 잠재력이 뛰어난 선수라 하더라도, 혼자서 그 잠재력을 터트리기는 쉽지 않다. 할 수 있어도, 시간과 노력이 몇 배는 더 들 거다. 젠지는 '페이즈'가 성장할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이었다. '재벌집막내원딜'이라는 밈이 생길 정도였으니.

'피넛'이라는 베테랑 사령관이 물심양면으로 '페이즈'를 지원했고, '도란'과 '쵸비'는 '페이즈'의 손에 코인을 한 움큼 쥐여줬다. 덕분에 '페이즈'는 승리와 경험치를 동시에 흡수할 수 있었고, 시너지는 배가 됐다. 그리고, 그런 보살핌에 보답이라도 하듯 굉장히 빠르게 젠지에 녹아들었다. 최상위 수준으로 평가받는 상체에 위화감 없이 어우러진 거다.

데뷔 스플릿에 정규 시즌 2위를 찍은 '페이즈'는 이제 더 높은 무대로 나선다. 세계 최고의 지역 리그라 꼽히는 LCK의 플레이오프다. 정규 시즌과는 무게감이 차원이 다를 거다. 강심장이라는 평가 답게 변함없이, 어쩌면 더 성장한 경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슈퍼 루키 '페이즈'의 플레이오프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