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e숍을 통해 3DS, Wii U로 출시된 모든 게임을 구매하고 다운받은 사람이 있다. 들인 돈만 22,791달러, 약 3,000만 원. 구매 기간만도 거의 1년이 걸렸다. 흔한 수집가의 치기로 평할 수 있지만, 그가 큰 돈을 들여 갑자기 게임을 모은 이유가 있다. 3월 e숍이 문을 닫으면 자금 추가도, 게임 구매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2022년 3DS, Wii U의 온라인 마켓인 e숍의 서비스 종료를 예고했다. 그리고 8월에는 게임 구매에 필요한 잔액 구매도 막고, 오는 3월 28일에는 서비스까지 종료된다. 게임 전문 채널 더 컴플리셔니스트를 운영하는 지라드 카릴이 328일 동안 게임을 사고, 저장한 기록을 남겨 공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카릴이 정리한 구매 필요 타이틀은 3DS 1,547개, Wii U 게임은 866개에 달했다. 카드 정보 등록하면 쉽게 구할 수 있는 요즘 e숍과 달리 과거 e숍은 잔액을 따로 등록해야 했기에 기프트카드를 구매하러 오프라인 매장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카릴과 동료는 464장의 기프트 카드를 샀고 하나하나 코드를 넣어가며 등록했다. 그마저도 한 번에 너무 많은 코드를 등록하면 부적절한 계정으로 등록됐고 이를 풀기 위해 닌텐도 서포트 채널에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구매도 쉽지 않았다. e숍 반응 속도, 다운로드 속도는 느리고 일정 숫자를 받으면 기기에서 게임을 하나하나 지워야 했다. Wii U는 그나마 게임 개별 페이지에서 DLC를 찾을 수 있었지만, 3DS는 e숍에 모든 DLC가 나열되지 않아 하나하나 게임을 켜고 추가 콘텐츠를 찾아야하기도 했다. 괜히 모두 다운받는 데 328일이 걸린 게 아니다.

어차피 별로 즐기지도 않는 옛날 게임 뭐하러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고생하느냐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게임을 소장한다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로 남겨, 역사로 기록한다는 의미로 보면 그 행위도 달라보인다.

스팀 등 온라인 마켓은 게임 구매를 일종의 대여 개념으로 접근한다. 기업에서는 수익성이 나지 않는다면 스토어 자체를 폐쇄하고 이를 일찌감치 고지한다. 출시 몇 달도 되지 않아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도 아니다. 출시 12년, 11년이 지난 3DS, Wii U 이후 이미 닌텐도의 새로운 기기인 닌텐도 스위치 출시된 만큼 이용률 자체가 적은 스토어를 중단하는 건 일견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e숍이 종료되는 3DS의 경우 닌텐도 스위치를 독자적인 휴대용 기기의 후속작으로 볼 수 있는지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또 이미 10년 정도 운영한, 대형 게임사라 할 수 있는 닌텐도가 e숍 문을 닫으며 비슷하게, 그보다 길게 운영한 다른 플랫폼이 온라인 마켓의 서비스 종료를 선택할 가능성 역시 남겼다.

더 큰 아쉬움은 최근 게임의 역사를 남기고자 하는 여러 움직임이 커져서다. 엠브레이서 그룹은 별도의 게임 아카이빙 부서를 만들고 유럽의 게임들을 보관할 센터를 준비 중이다. 넥슨 컴퓨터 박물관은 물론 더 스트롱, 비디오 게임 히스토리 파운데이션 같은 비영리 단체도 게임을 단순히 즐기는 순간을 넘어 기록하고, 보존할 콘텐츠로 남긴다.

특히 게임 자체가 디지털 콘텐츠인 만큼 게임을 디지털로 남기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게임 팩인 카트리지, 광학 디스크처럼 손상에 취약하고, 영구적 보관이 어려운 물리적 제약을 넘어 판본 복사, 보존이 용이한 디지털로 게임을 남기고자 하는 식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최신 기종 콘솔인 Xbox 시리즈 X에 하위 호환 기능을 적극 담고, 구세대 게임의 프레임 향상, 텍스쳐 개선 등을 통해 플레이 Xbox 전체 플랫폼의 연속성을 구현했다.

e숍 같은 온라인 마켓도 그런 디지털 기록으로서의 게임을 이용자들이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창구로 꼽힌다. 닌텐도 팬은 물론 업계 전체에서 아쉬운 목소리를 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합리적인 기업 운영과 팬들의 사랑을 받는 대형 게임사로서 게임 역사를 기록하는 책임 사이에서 말이다.

펀딩, 게임 팬들의 후원을 통해 e숍 종료를 겨우 1주일 여 남기고 약 1년의 게임 저장 일정을 마친 카릴은 이렇게 모인 데이터를 비영리 재단인 비디오 게임 히스토리 파운데이션에 기부한다. 게임이 그저 위키피디아 한 줄이 아니라, 역사로 기억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