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C 2023의 네번째 날, CDPR의 시네마틱 디자이너인 카제탄 카스프로비츠(Kajetan Kasprowicz)가 CDPR의 서사 구성 방식, 그리고 위쳐3와의 비교를 통해 달라진 차이점에 대해 강연을 진행했다.

카제탄은 CDPR의 콘텐츠 팀을 구성하는 3개의 직무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CDPR의 콘텐츠 팀은 게임의 골조가 되는 서사 구조를 만드는 팀으로, 사이버펑크에서는 7개의 팀이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 CDPR의 시네마틱 디자이너 '카제탄 카스프로비츠'


콘텐츠 팀을 구성하는 세 직무는 다음과 같다.

1. 퀘스트 디자이너(Quest Designer)


퀘스트 디자이너는 모든 콘텐츠 팀 업무의 시발점이 되는 직무다. 서사의 구조와 흐름, 선택적 요소 등의 골조를 모두 만들어내는 직무이기도 하다. 콘텐츠 팀의 업무를 다시 게임 개발의 3요소에 빗대서 설명하면, 퀘스트 디자이너는 기획자에 해당한다 볼 수 있다.

2. 라이터(Writer)


라이터는 퀘스트 디자이너가 작업한 골조를 기반으로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한다. 작가는 해당 씬에서 사용되는 모든 대사와 선택지 등 활자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콘텐츠 팀이 공동으로 작업해둔 인물 및 공간, 세계관에 대한 설정이 드러나면서도 위화감이 없도록 이를 맞추어나가는게 라이터의 역할이다. 게임 개발로 빗대면 프로그래머에 해당한다.

3. 시네마틱 디자이너(Cinematic Designer)


시네마틱 디자이너는 이렇게 만들어진 서사 구조를 게이머가 직접 볼 수 있게 비주얼화하는 작업을 맡는다. 대화 시 인물의 동선이나 시선 처리, 플레이어의 위치, 장소의 조명 등 시각에 관여하는 모든 부분에 관여하는데, 그 중에서도 '서사의 전달'에 초점을 둔다. 단순히 시각을 구현하는게 끝이 아닌, 주어진 서사를 최대한 효과적이고 몰입감 있게 조형해내는게 주 업무이다.

이들의 업무는 이전부터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하는 성격의 업무였지만, 위쳐3를 떠나 사이버펑크 2077을 작업하면서부터 그 강도가 한층 더 올라갔다. 카제탄은 두 게임에서 볼 수 있는 '장례식'씬을 통해 두 게임 간 서사 전달의 차이를 설명했다.

먼저, 위쳐3의 장례식에서는 게롤트라는 정해진 주인공이 알아서 움직이고, 게이머는 무언가를 선택할 필요 없이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 3인칭이라는 시점 덕분에 카메라가 굳이 게이머의 눈을 따라갈 필요가 없으며, 주인공의 모습을 비추는 장면이 게이머에게도 익숙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위쳐3에서 게이머는 추모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추모까지 이르는 과정은 단지 한 번 버튼을 누름으로서 이뤄지며, 그렇게 컷씬이 시작되면 게롤트가 알아서 추모를 진행한다.

반면, 사이버펑크 2077의 장례식은 훨씬 절차가 복잡하다. 장례식 중 게이머가 자유롭게 이동하고, 끊임없이 시선을 돌리기 때문에 게이머가 상황에 몰입할 수 있는 훨씬 많은 양의 장치가 동원되어야 한다. 어디를 봐도 분위기가 유지되게끔 공간 전체의 분위기를 애도와 슬픔으로 채워야 하며, 게이머의 선택지에 따른 비주얼의 변화 및 주변 인물의 대사도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이 문제없이 진행된다면 위쳐3에 비해 훨씬 강력한 몰입감을 줄 수 있겠지만, 빈틈이 조금이라도 존재하면 몰입도가 큰 폭으로 떨어지기에 완벽에 가까운 준비가 필요하다.

▲ 장르 변화에 따라 훨씬 복잡해진 콘텐츠 팀의 업무

이어, 카제탄은 사이버펑크의 퀘스트 중 주디 홉스와 함께 클라우드 습격을 기획하는 'EX-FACTOR'퀘스트를 예시로 서사 작업을 한 과정을 소개했다. 이 과정은 RED엔진의 활용 방법 및 파이프라인을 주로 보여주었으며, 'EX-FACTOR'퀘스트는 중간 정도의 복잡함을 지니면서도 작업 과정의 모든 면을 조금씩이나마 보여줄 수 있는 퀘스트이기에 예시로 지정했음을 말했다.

이어 그는 게임 개발의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콘텐츠 팀의 업무 흐름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1. 디자인

첫 번째는 디자인 단계다. 이 단계는 직접 엔진을 조작하거나 프로그래밍이 가해지지 않은 형태로, 글자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단계인데, 주로 배경 설정과 인물의 성격 묘사, 어떤 상황에 따른 각 인물의 속마음과 심리 상태 변화 등을 설정하는 단계다. 뚜렷하게 정해지지 않은 인물의 성격은 이후 작업 과정에서 위화감이나 어색함을 만들어낼 수 있고, 서사의 개연성을 흩뜨리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콘텐츠 팀은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면서 '이 상황이라면 이 인물은 이런 식으로 행동할 것이다'라는 결론이 자연스럽게 나올 때 까지 서로의 작업물을 리뷰한다.

카제탄은 여기서 '구글 독스'의 힘이 컸다고 덧붙였다. 사이버펑크 2077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콘텐츠 작업물이 들어갔으며, 단순 업무 시간이 아니더라도 언제 어디서든 생각이 나면 코멘트를 덧붙일 수 있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공통된 업무 공간이자 커뮤니케이션 툴인 구글 독스가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되어준 구글 독스


2. 초안 작성

기획안이 완성되면 초안(Draft) 단계로 넘어간다. 이때는 실제 게임 엔진을 다루면서 기획 상으로는 가능하다 실제로는 구현이 어려운 장면이나, 눈으로 보았을 때 어색한 장면이 있는지 등을 리뷰하고, 시네마틱 디자이너는 그간 기획안으로 만들어둔 다양한 장면을 직접 만들면서 실제 게임 상에서 게이머들이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를 가늠한다.

여기서 카제탄은 개발 중인 초기 사이버펑크 2077의 퀘스트 모습을 공개했다. 몇몇 애니메이션은 존재하지 않아 캐릭터가 순간 이동을 하고, 인물의 생김새나 복장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만 이런 거친 상태의 사이버펑크 2077을 보는 건 그 자체로도 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 다소 거친 모습의 초기 사이버펑크 2077


3. 알파

알파 단계에서는 초안 단계에서 완성된 결과물을 실제 게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에 가깝게 다듬는다. 이쯤 되면 실제 플레이 가능한 레벨에 이르게 되지만 폴리싱과 QA를 비롯한 많은 작업이 진행되기 전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태이기도 하다.

이 단계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작업은 하나의 퀘스트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게임의 서사와 설정에 비추어 각 퀘스트가 이와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서사적으로 돌출되어 있지는 않은지를 면밀히 살핀다.



4. 베타

출시를 목표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사실상 완성된 게임에 가까운 결과물이 나오기 마련이며, 당연히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글리치나 버그를 찾기 위해 말 그대로 게임의 모든 것을 다 클릭하는 단계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의 작업물이 완성된 모습을 보이는 단계이기 때문에 개발자들에게는 감회가 새로운 단계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막바지 작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쯤에 이르면 구체적인 출시일이 확정되기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기다.

▲ 모든 것들을 클릭해야 하는 단계

여기까지 설명한 카제탄은 강연을 마무리지으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앞서 구글 독스를 추천한 이유도 구글 독스에 존재하는 코멘트 기능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협업 체계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임을 밝히며, 모든 개발 과정이 그렇듯, 서사 작업도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동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