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 정도 지났나. 이렇게까지 뭐 하나에 꽂혀본 적은 오랜만이다. 사실 어디서나 볼 수 있기도 하고 당장 내가 이 기사를 작성하는데 90%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는 녀석. 10%는 조잡하고 몇 안 되는 지식이 담긴 내 머리, 그리고 나머지 지분은 모두 이것이 차지한다.

키보드. 누군가 '살아가며 어떤 물건을 가장 많이 사용했나'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키보드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정도로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월 사용하기도 했고, 이젠 없어선 안 될 생필품 같은 존재가 되었으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동고동락한 사이인데 왜 이제와서 친한척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가볍게 설명해 보자면, 첫 번째로는 동료 기자의 무심한 듯하면서도 친근한 방식의 영업이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 난 누가 '이거 진짜 좋아요' 내지는 '안 써보면 후회할 정도' 등의 적극적인 영업에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저는 좋아하는데, 굳이 추천은 안 해요' 라던지 '궁금하면 내꺼 써보던가' 등의 멘트에 더 끌리는 스타일. 동료 기자가 그랬다. 그렇게 처음 진심을 담아 만져본 키보드는 동료 기자의 스펠링 첫 자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R사의 무접점 키보드.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돌아온다는 그 키보드. 신세계였다.

같은 키보드인데 이렇게까지 다를 수가. 어쩌면 나도 키보드를 좋아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나둘 알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대충 알고 있었다. 조용한 건 적축, 시끄러운 건 청축, 애매한 놈은 갈축이라는 정도. 문제는 이게 다였다는 거다.




하는 일과 무색하기도 너무 모르는 수준. 그래서 업무 능력치도 높이고, 내 취미생활도 늘려볼까?라는 별볼일 없는 위안을 삼으며 키보드에 관한 지식을 쌓아갔다. 근데 이게 뭐람. 내가 아는 세상에 존재하던 적축, 청축과는 다르게 많은 스위치들이 즐비해 있었고, 이외에도 하우징 소재부터 키캡, 스프링, 철심(스태빌라이저) 등 알아가야 할 게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래서 굳이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후회가 몰려오면서도 이미 시작한 거 끝은 보지 못해도 어디 가서 아는 척이라도 조금 하려면 알아두는게 좋을 것 같아 열심히 공부 아닌 공부를했다. 역시 21세기 정보화 시대에 안될 건 없었다. 대충 검색해 봐도 맞춤형 정보들이 쏟아져 내려왔으니 말이다.

그중 가장 친숙하기도 하고 만만했던 녀석인 스위치가 눈에 띄었다. 다른 건 몰라도 핵심 부품인 스위치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사실 스위치는 키보드에 들어가 있던 부품은 아니었다. 애초에 플라스틱으로 된 막과 고무돔이 들어가 있는 멤브레인 키보드가 원조니까. 물론 세월을 더 거슬러본다면 타자기가 더 먼저지만 거기까진 태어나기 전 이야기니 딱히 언급하진 않겠다.


스위치는 바로 기계식 키보드의 부품이다. 십자 모양이 네모난 본체 위 툭 튀어나와 있는 부품. 종류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체리사의 적축, 청축, 갈축, 흑축, 회축 등의 색깔놀이하는 듯한 스위치부터 스피드축, 클리어축 등. 키를 처음 누를 때 걸리는 걸림 압력부터 눌렸을 때 느껴지는 입력 압력, 최종적으로 느껴지는 키압인 최종 압력까지. 각 축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이 중에서도 카테고리를 나눠보면 대표적인 체리스위치로 확인해 봤을 때 클릭 계열에 청축, 녹축, 백축 넌클릭계열에 갈축, 회축, 클리어축 리니어 계열의 적축, 흑축으로도 나누어 볼 수 있다. 벌써부터 어지러워지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이다. 이렇게까지 알아볼까. 애정이 없다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니까.

▲ 좌측부터 적축, 갈축, 청축

그나마 쉽게 알고 싶다면, 종류별 대표적인 스위치 정도만 기억해 주면 편하다. 나머지는 거기서 조금 더 높거나 낮은 정도니까. 클릭 계열의 대표 스위치 청축부터 알아보자면, 우리가 PC방 문을 열었을 때 정겹게 들리는 '철컥 철컥' 경쾌한 소리의 주인공이다. 요즘은 내구성 이슈에 광축으로 바꾸는 추세긴 하지만 아직 PC방 현역 스위치다. 소음이 크고 키감이 찰진 게 특징이다.

넌클릭은 갈축으로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위에서 말한 청축에 비해 소음은 더 줄이고, 적축보단 구분감이 높은 그사이 어딘가에 있는 스위치다. 사실 갈축은 청축, 적축에 비해 이렇다 할 특징은 크게 없지만 입문용으로 제격인 스위치. 한마디로 적당한 느낌이라는 거다.

리니어의 대표적인 스위치는 적축. 누를 때 느껴지는 구분감도 없고, 키압이 낮아 손의 피로도가 적은 스위치다. 조용한 사무실에 제격이지만 물론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타건소리는 존재해 조용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스테디셀러로 키보드에 제대로 빠져보고 싶다면 적축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이렇게까지 글로 써봤지만, 역시 글로만 전달하기에 키보드와 스위치를 알리기 쉽지 않다. 게이밍 키보드 맛집, 스틸시리즈 제품과 세가지 종류의 클릭, 넌클릭, 리니어 스위치를 통해 직접 타건하여 최대한 전달에 노력을 가해보려고 한다.

스틸시리즈 Apex 9 Mini US 유선 게이밍 키보드
테스트 스위치(스틸시리즈 Optipoint)
ㄴ 리니어 : 스틸시리즈 옵티포인트 리니어 스위치
ㄴ 넌클릭 : 스틸시리즈 옵티포인트 택타일 저소음 스위치
ㄴ 클릭 : 스틸시리즈 옵티포인트 클리키 스위치


▲ 바로 키보드 오픈

▲ 오늘 스위치 테스트에 사용될 녀석인 스틸시리즈 Apex 9 Mini US 유선 게이밍 키보드다

▲ 뒷판을 확인해 보면

▲ 키캡 리무버가 짜잔~

▲ 스위치는 에이펙스 시리즈의 옵티포인트 스위치 3종으로 진행했다

▲ 피시방 난동꾼, 클릭 계열의 스틸시리즈 옵티포인트 클리키 스위치

▲ 조용조용한 스틸시리즈 옵티포인트 택타일 저소음 스위치

▲ 마지막으로 스틸시리즈 옵티포인트 리니어 스위치까지


▲ 시작하기 전 스위치별 소리는 어떨지 확인해 봤다

▲ 자 이제 시작해볼까?



옵티포인트 리니어 스위치
Optipoint Switches Linear


▲ 일단 스위치는 모두 빼놓은 상태, 노란색의 리니어 스위치부터 장착해 보자

▲ 한 번 교체하면 시간 순삭 가능

▲ 리니어 스위치 맛 좀 볼까?

▲ 옵티포인트 리니어 스위치 타건 영상




옵티포인트 택타일 저소음 스위치
Optipoint Switches Tactile


▲ 택타일 저소음 스위치도 교체!

▲ 키캡까지 정성스럽게 꽂아준다

▲ 택타일 저소음 스위치 타건 영상



옵티포인트 클리키 스위치
Optipoint Switches Clicky



▲ 인벤 PC방 오픈 임박

▲ 옵티포인트 클리키 스위치 타건 영상


마무리하며..

스틸시리즈 제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업무시간의 일탈을 즐겨봤다. 요즘 일상이 바빠 머릿속에서 잊혀지나 했는데, 조금 만지작거렸다고 다시 또 뽐뿌(?)가 올 것만 같다. 역시 소리로도, 누르는 압력, 촉감으로 느껴지는 키보드만의 매력은 대체제가 없는 듯싶다.

이번 기사에서 테스트한 옵티포인트 스위치는 기계식 광축 타입에 중간 접점을 없애고 스템 기둥 센서를 가리면 입력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또한, 이것저것 확인해 보며 느낀 건데 스위치 자체에 이미 공장 윤활이 적당히 된 상태로 와서 그런지 스프링 소음이 생각보다 적었다. 대신 빠르게 타건했을 때 특유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호불호가 있을 수 있으니 잘 확인해 보자.

각 세 가지의 스위치를 교체하며 타건을 해본 결과, 예상했던 것처럼 구분감이 없고 키압이 상대적으로 낮은 리니어 스위치는 어느 정도 소음도 잡아주고 피로도도 적은 편이었다. 약간 체리사의 은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클리키 스위치는 역시는 역시, 경쾌한 소리와 확실한 구분감이 느껴져 스트레스받는 날 분노의 타건을 하고싶은 분에게 추천드리는 바이다. 대신 조용한 사무실에서는 사내 모두의 관심을 받을 수 있으니 조심하자. 집에서만 쓰자

개중에도 꽤 재밌었던 스위치는 바로 택타일 저소음 스위치가 아니었나 싶다. 기존 알고 있던 택타일과는 다르게 저소음 처리 방식이 들어가 리니어 스위치보다 소음도 굉장히 잘 잡혀있고 트레블 거리도 꽤 짧아 괜찮은 느낌을 받았다. 대신 구분감이 다른 스위치에 비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로 약해서 이러한 느낌을 선호하는 유저라면 적극 추천한다.

▲ 불 끄고 나가려는데, LED가 예뻐서 찍은 사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