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끼리 즐길 수 있는 코옵 게임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레드폴'은 올해 상반기 AAA게임 중에서도 가장 기다렸던 게임이었다. '레프트 4 데드'의 뱀파이어 버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오픈 월드와 파밍이 가능한 육성 시스템 그리고 '프레이'를 개발한 아케인 스튜디오 오스틴 지부의 이름값이 더해져 색다른 재미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기다림이 후회와 허망으로 바뀌기까지는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게임명: 레드폴(Redfall)
장르명: 오픈월드 FPS
출시일: 2023.5.2
리뷰판: 1.0.0
개발사: 아케인 스튜디오 오스틴 지부
서비스: 베데스다 소프트웍스
플랫폼: PC, Xbox
플레이: PC



뱀파이어 헌팅, 기본적인 틀과 구성은 잘 갖춰져 있다

흔히 뱀파이어하면 떠오르는 상식 아닌 상식이 있다. 햇빛에 취약한 탓에 밤에만 활동하고 창백한 피부에 뾰족한 송곳니를 갖고 있다. 늘 피가 부족해 인간의 피를 갈망하는 것도 대표적인 뱀파이어의 특징이다.

뱀파이어는 불멸의 존재로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다.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면 타 죽고 은으로 만든 무기에 닿아도 치명적이다. 특히, 심장에 말뚝을 박으면 즉시 죽는다는 설정은 대부분의 뱀파이어에게 해당되는 약점이다. 이처럼 특별한 죽음은 다른 크리처보다 더욱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다만, 게임에선 이러한 설정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굳이 심장에 말뚝을 박지 않아도 체력이 다 달면 죽는다. 간혹 신성 마법에 더 큰 피해를 입게 하기도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뱀파이어가 주역으로 등장하는 게임에서도 마찬가지. 꽤 현실적인 설정을 가졌지만 단순한 몬스터로 취급되는 사실이 한편으로 아쉽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 뱀파이어에게 점령당한 레드폴에서 살아남기

레드폴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뱀파이어를 상대하는 방식이다. 흔히 하던 단순한 방법으로 뱀파이어를 사냥한다면 타 액션 슈팅 게임과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이를 피하고자 대중들이 익숙하게 생각하는 뱀파이어의 특징을 게임에 녹여냈고 결과적으로 레드폴만의 액션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모든 뱀파이어는 총은 물론이고 주먹으로 때려도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완벽하게 죽이기 위해선 반드시 심장에 말뚝을 박거나 UV 빔을 쏴서 석화 상태가 된 뱀파이어를 부숴야 한다. 만약,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면 일정 시간 후 완벽하게 부활해서 다시 플레이어의 목숨을 노린다.

게임 내 장비 구성에도 이러한 고심의 흔적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권총, 돌격 소총, 샷건, 저격총 외에도 대 뱀파이어 헌팅을 위한 말뚝 발사기, UV 빔 무기가 존재한다. 이러한 무기는 인간을 상대로 싸울 땐 효율이 떨어지지만 뱀파이어 한정으로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 말뚝을 박아야 비로소 죽는 뱀파이어

가령, 말뚝 발사기로 뱀파이어를 쏘면 거의 일격에 죽일 수 있다. 애초에 탄환 자체가 말뚝이기 때문에 탄환에 맞아서 빈사 상태에 빠지는 순간 즉사 판정을 받는다. 태양빛과 비슷한 효과를 주는 UV 빔은 뱀파이어를 일시적으로 석화 상태에 빠트릴 수 있는데 재빠르게 움직이는 뱀파이어를 상대로 큰 효과를 낸다.

일반적인 화기라고 해서 뱀파이어에게 타격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무기의 성능만 뒷받침된다면 특수 무기 못지 않게 뱀파이어를 처리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보다 훨씬 많은 탄환을 써야 하며, 빈사 상태에 빠트린 이후 말뚝을 박아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뒤따른다.

따라서 일반 화기는 주로 그들을 추종하는 인간 세력을 상대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각 무기마다 총기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는 편이며, 최대 세 자루의 무기를 휴대하면서 사용할 수 있으니 건물 안과 야외에서 쓰는 용도, 뱀파이어 퇴치용으로 바꿔가면서 사용할 수 있다.

▲ 다양한 총기와 더불어 주인공 캐릭터들의 스킬도 육성할 수 있다

등장하는 뱀파이어의 종류도 다양한 편이다. 거의 순간 이동하듯 움직이면서 기습하는 일반 뱀파이어 외에 뱀파이어 낚시꾼, 감시자, 장막 소환사 등의 개체가 존재하며, 지역 점령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언더 보스 뱀파이어 그리고 뱀파이어 신의 분노를 살 때마다 마주칠 수 있는 루크라는 강력한 뱀파이어도 있다.

아쉬운 점은 다양한 뱀파이어 개체가 등장하지만 이들 고유의 특징을 게임 내에서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가령, 뱀파이어 낚시꾼은 이름 그대로 먼 곳에서 플레이어를 낚아 자기 앞으로 당겨오는 공격을 가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스킬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습적인 공격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낚시꾼의 외형이 너무 화려하다는 점이다. 공격 속도 또한 느리고 동작이 커서 보고 피하는 게 가능해 역으로 기습해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다.

▲ 일반 뱀파이어 외에 특수한 능력을 가진 뱀파이어도 등장한다

감시자 역시 어딘가에 숨어서 플레이어를 지켜보다가 알람을 울리는 역할인데 눈에서 쏘는 빛이 강렬해 멀리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설령 발각된다고 해도 주변 적들이 앞서서 다 알아채기 때문에 특별한 개체라는 느낌이 덜하다. 솔직히 게임 내에서 툴팁으로 알려주고 외형에 차이가 있으니 그렇다고 느낄 뿐 전투 상황에선 일반 뱀파이어와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뱀파이어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인간이 도구의 힘을 빌려 역으로 그들을 사냥한다는 전개와 이를 멋지게 구현한 시스템은 분명 긍정적으로 볼만 하다. 그러나 전투를 뒷받침해주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미흡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구성만 그럴듯할 뿐 재미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단순한 AI와 텅 빈 오픈 월드

아케인 스튜디오는 예전부터 이머시브 심 게임을 잘 만드는 개발사로 이름을 알렸다. 현실적으로 설계된 게임 속 세계는 플레이어가 순식간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줬고 이를 통해 타 게임에선 쉽게 느낄 수 없는 고유의 경험을 선사했다. 레드폴의 개발사인 아케인 스튜디오 오스틴 지부의 전작인 프레이는 이러한 이머시브 심의 장점을 잘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그들의 후속작인만큼 레드폴 역시 이머시브 심 시스템을 넣었지만 그보단 오픈 월드와 루트 슈터 시스템에 더욱 힘을 줘 색다른 재미를 추구하고자 했다. 특히, 멀티 플레이로 전향하면서 기존 이머시브 심의 특징을 완벽하게 구현하진 못했지만 대신 대중성과 협동 플레이를 어느 정도 챙길 수 있었다.

몰입할 수 있는 세계관을 잘 만드는 개발사답게 레드폴의 세계관과 뱀파이어 설정은 그럴듯하다. 스토리에서도 이러한 설정을 잘 풀어냈고 전투 구성 역시 어느 정도 틀을 갖췄다. 문제는 모든 것들이 그럴듯한 수준밖에 안 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AAA게임에서 기대하는 수준에 한참 못 미치며, 세세하게 파고들면 미완성이라 불러도 무방할 수준의 플레이 경험을 안겨 준다.

▲ 세계관 설정은 좋지만...

가장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적들의 AI와 텅 빈 오픈 월드가 있다. 레드폴은 강력한 뱀파이어 무리에 의해 점령당한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이러한 설정은 뱀파이어가 인간보다 훨씬 강력하고 위협적인 존재일 때 비로소 성립된다. 그러나 게임 내에서 플레이어가 마추지는 뱀파이어는 강력함은 고사하고 제대로 밥은 먹고 다닐지 걱정되게 만들 정도로 단순하다.

앞서 뱀파이어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그들의 색이 뚜렷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도 결국 단순한 AI 때문이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뱀파이어는 대부분 강력한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근접 공격을 펼친다. 송곳니와 손톱을 세우면서 달려드는 뱀파이어는 분명 재빠르다.

하지만 빠른 움직임과 별개로 행동이 너무 단순하다. 오직 직선 공격만 할 줄 알아서 빙글빙글 돌면 한 대도 맞지 않는다. 주변에 방해하는 적이 없다면 주먹으로 패서 죽일 수 있을 정도다. 또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움직이다 멈춰 서서 멍 때릴 때가 많다.

▲ 기둥 하나에 무력해지는 보스

혹여나 어디에 끼이는 순간 아무것도 못하고 바라만 보기 일쑤이며, 샷건 한 방에도 자세가 무너져 무릎을 꿇는다. 솔직히 말뚝으로 심장을 찔러서 죽인다는 설정만 없었다면 송곳니가 유달리 발달한 조금 쎈 좀비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단순한 AI는 뱀파이어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인간형 몬스터인 추종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적들은 총 소리나 기척에 따라 탐지 모드에 들어서고 적을 발견할 때 경보를 울리면서 전투 상태에 돌입한다. 탐지되는 범위나 경보 등의 시스템은 일반적인 잠입 게임들과 큰 차이가 없다.

반면, 적을 발견하고 전투 상태에 돌입하는 순간에 허점이 너무 많다. 일단 적을 발견하면 곧바로 총을 쏘면서 긴밀하게 대응하는 게 아니라 주변 엄폐물을 찾거나 아님 기척이 들린 지점 가까이로 달려가서 흔적을 살펴본다. 플레이어가 다른 곳으로 옮겨서 총을 쏘고 있어도 말이다.

▲ 품질이 떨어져 보이는 텍스처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긴장감이라곤 1도 찾아볼 수 없는 적들의 AI는 전투에 흥미를 채 느끼기도 전에 지루하게 만든다. 심지어 특별한 전투 경험을 선사해줘야 할 보스전도 비슷한 양상이다. 혹시나 난이도에 따라 적들의 반응이 달라지는지 확인을 해봤는데 별 차이는 없었다.

레드폴의 차별화 포인트 중 하나인 오픈 월드도 딱히 장점으로 다가오진 않는다. 플레이어는 거점을 제외한 필드를 로딩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맵에는 마을이 구역별로 나눠져 있으며, 각 구역마다 안전 가옥을 찾고 서브 미션을 완료하거나 뱀파이어 은신지를 습격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필드에는 다양한 파밍 요소가 존재한다. 퀘스트와 연관되지 않은 건물이라 해도 내부에는 다양한 장비와 아이템이 존재하니 여유가 된다면 이런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파밍하고 장비를 갖춰가는 게 가능하다.

▲ 누차 말하지만 있을 건 다 갖추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이게 레드폴이 내세우는 오픈 월드의 전부라는 것이다. 게이머가 오픈 월드에서 기대하는 자유로운 플레이가 레드폴에는 없다. 사실 퀘스트를 위해 가는 것을 제외하면 굳이 필드를 돌아서 파밍할 이유가 없는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전투의 루즈함과 파밍의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게 한 몫 한다.

필드에서 폐지 몇 개 줍자고 가기엔 구미가 당기지 않는 것도 있다. 오픈 월드라고 해서 게이머가 무조건 자유롭게 탐험하길 바라는 건 말이 안된다. 특별한 보상과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지 않는 이상 굳이 가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레드폴은 오픈 월드로서의 구색만 갖춰놨을 뿐 텅 비어있는 것과 다를 바 없게 만들어졌다.





▲ 마을이 망했다는 내용

레드폴은 전반적으로 미완성된 게임이라는 느낌을 준다. 단순한 AI와 오픈 월드를 제외하더라도 여러 버그와 최적화, 캐릭터 육성과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허술한 점이 많다. 가령, 무기 등급에 따른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점과 레벨이 높아져도 비슷한 플레이가 계속 이어진다는 점 등이 있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는 경험, 색다른 즐거움을 줄 것인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어떻게든 게임처럼 보이기 위해 구색만 갖춰져 있다는 게 세세한 부분에서 느껴지니 게임에 흥미를 붙이기 어려웠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론 아쉬움이 남는 게임이었다. 뱀파이어의 특징을 더욱 살렸다면, 무기 퍽을 단순한 능력치 보정이 아니라 특수 효과를 붙였다면, 오픈 월드에 더욱 다양한 이벤트를 추가하고 필드 콘텐츠를 채웠다면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임이 됐을 것이라 생각된다.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슈팅 게임 중 컨셉과 전반적인 설정 자체는 꽤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아케인 스튜디오가 레드폴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후에 평가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개발사의 전작인 프레이도 후속 패치를 통해 좋은 평가가 더해졌던 만큼 레드폴 역시 현재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긍정적인 개선이 이뤄지길 바래본다.

▲ 과연 개선은 이뤄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