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정식 출시 이후, 만으로 17년을 채웠고 이제 18년차를 향하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수능을 앞두게 될 정도의 시간. 명실상부 장수 게임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테일즈런너'의 이야기다. 생존이 당면과제가 되어버린 지금의 국내 게임산업에서, 17년이란 세월은 가볍지 않다.

하지만, 10년만 서비스해도 정상부터 밑바닥까지 훑게 되는 게임 서비스에 어찌 우여곡절이 없으랴. 한때 수백만 명의 유저 수를 자랑했던 테일즈런너도 최근의 상황은 딱히 좋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라온엔터테인먼트의 입장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게이머들이 실망한 건 사실이니까.

저점과 고점을 모두 겪어봤기에 그럴까? 꽤 오랜 시간만에 인터뷰로 만나게 된 박한수 선임 디렉터는 뭔가 초탈한 모습으로 테이블에 앉았다. 한때 테일즈런너를 진두지휘했었고, 잠시의 공백 끝에 다시 지휘봉을 잡은 그가, 앞으로 테일즈런너가 어떻게 바뀌게 될지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 라온엔터테인먼트 박한수 선임 디렉터



반성의 1년, 테일즈런너의 변화는?

Q. 작년 간담회 이후 간만에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 같다. 요즘은 어떤가?

=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 간담회 이후, 내부적으로 많은 반성이 있었다.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멘트가 아닌, 말 그대로 반성과 성찰이 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잘못이 많았다. 우리는 소통을 한다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방적이었고, 원할 때만 했다고 해야 하나? 내부 데이터가 유출된다거나 하는 사건도 있었고, 이래저래 업보가 많이 쌓인 상태였는데 그걸 팀 전체가 자각하지 않았나 싶다.

간담회를 돌아보면, 그런 형태로 유저와 만난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대표로 선임된 유저와 개발자 대표가 만나 쌓인 이슈를 논하고,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는데, 꽤 많이 혼났다. 그 자리가 우리에겐 그동안 해왔던 대로 하면 안된다는 자성의 시간이 되었고, 이후 전격적인 변화를 추진할 계기가 될 수 있었다.


Q. 간담회 이후, 실제로 팀 내적 변화를 진행했다는 뜻인가?

= 간담회를 진행하며, 우리는 꽤 촉박한 시간 제한이 생겼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되고 어영부영 미루다간 남은 신뢰마저 흐지부지 흩어질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팀을 덮었고,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때문에, 개발팀도, 퍼블리싱 팀도 작년 한 해는 정말 바쁘게 일했다.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여름 시즌 업데이트를 기획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론이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한 상태로 일을 하다 보니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Q. 본래 기획이 잡힌 상태에서 변화까지 노리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다.

= 맞다. 근육을 풀어두지 않고 급격한 운동을 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 처럼, 급한 마음에 추진한 변화 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조직 개편을 진행하고, 간담회에서 접수한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여름 시즌 업데이트를 진행하다 보니 8월즈음 되서는 개발 부하가 쌓여 버렸다. 직원들은 다들 지쳤고, 이렇게 와버린 번아웃이 또다른 문제를 만들었다. 미리 하나씩 해결했으면 보다 나았을 텐데 싶었다. 여러모로, 작년 한 해는 많은 반성을 했다.

▲ 우여곡절 끝 18년째를 맞이한 테일즈런너


Q. 조직 개편은 어떻게 진행된 건가?

= 게이머들에게도 공개된 사항인데 UHT라는 팀을 새로 조직했다. 이들은 신규 콘텐츠의 개발이 아닌, 게임의 유지 보수를 집중적으로 진행하는 팀으로, 기획, 개발, 아트 팀이 모두 포함된 하나의 독립 팀이다. 이들은 꾸준히 쌓이는 게임 내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하는 팀이며, 유저 제보를 기반으로 1~2달 주기로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Q. 테일즈런너가 장수 게임인 만큼 게임 내적 문제도 적지 않을 것 같다.

= 맞는 말이다. 테일즈런너는 실제로 오래 된 게임이고, 엔진 단에서 처리할 수 없는 문제가 산재되어 있다. 이 점이 사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엔진을 개조해 테일즈런너용으로 개발했던 엔진 개발자들은 더 이상 회사에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유저분들이 고친다고 해 놓고 왜 안 고치냐고 묻는 부분들도 대부분 이렇게 엔진 문제가 얽혀 있다. 조직 개편을 진행하면서 UHT를 분리한 가장 큰 이유도 이렇듯 시스템 오류를 고치기 위한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개발 팀 전체가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하면서 동시에 디버깅을 겸하다 보니 QA를 진행할 시간도 촉박했고 갖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그렇다고 아예 새로운 엔진으로 갈아타기엔 그간 쌓여버린 콘텐츠가 너무나 많아 이 또한 쉽지 않다. 여러모로 고민되는 상황이다.



Q. 게임 최신화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뜻인가?

= 엔진의 한계는 분명하지만, 최신화는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가령 맵 제작 툴로 만든 '누리툴'의 경우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꾸준히 발전해왔고, 초기와 비교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새로운 맵을 만들 수 있는 상태다.

다이렉트X도 11버전으로 업데이트하면 게임 퍼포먼스도 상당히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 환경이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쉐이더나 포그, 라이팅, 수면 처리 등이 개선되기 때문에 동사양 PC기준으로는 20~30% 정도 상승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연말 즈음에는 게임의 모든 시스템을 64비트에 맞춰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기존의 32비트는 메모리 리소스에서 큰 한계가 있었다. 한 화면에 캐릭터가 몇 종 이상 나오면 메모리가 다 차서 튕긴다거나, 복장을 너무 많이 착용하면 튕기는 등 누가 봐도 낡은 한계들이 존재했고, 더 많은 캐릭터 추가마저 어려웠다. 지금은 내부 코딩 작업은 거의 완료되었으며, 기존 콘텐츠를 64비트로 전환하고 있는 상태로, 꽤 빠르게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Q. 그러고 보면 박한수 디렉터는 한동안 디렉터를 맡지 않았었는데, 복귀하게 된 뚜렷한 이유가 있는가?

= 말씀드렸다시피 여름방학 업데이트 이후 개발 부하가 쌓이면서 내적으로 문제가 많이 생겼다. 여름방학 업데이트는 그래도 괜찮게 이뤄졌는데 겨울방학 업데이트에서 아쉬움이 많이 발생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때까지 이재준 PD가 개발을 총괄하고 있었는데, 이재준 PD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개발팀도 개발팀이지만, PD도 업무 과부하가 생겨 모든 것들을 다 챙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이대로 가다간 힘들겠다는 생각에 퍼블리셔와 호흡을 많이 맞춰 온 내가 일단 다시 복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Q. 게임 내적 오류들도 지적이 있었지만, 부계정이나 악성 유저, 그리고 게임 내 과금 정책에 대한 유저 피드백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되었나?

= 부계정이나 리그 대리 플레이 등은 전부 다 잡아냈다. 이 과정에서 지표 상의 유저 하락은 있었지만, 클린한 게임 환경 구축을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과금 정책 관련해서도 많은 반성이 있었고, 현재 개선의 초점은 '가치의 보전'에 두고 있다. 새로운 아이템을 출시하고, 이를 할인가에 판매하는 간격이 너무 짧다 보니 최초 판매 시 제값을 주고 산 유저들의 불만이 매우 많았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잘못된 게 맞고, 다시 이런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국, 누가 생각해도 합리적인 선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기존에 판매했던 아이템들도 꾸준히 재판매를 하고, 먼저 아이템을 구매해도 나중에 가치가 떨어지지 않으며, 재화 수급을 다원화해 비교적 저렴하거나, 무료로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기획하고 있다.


다음 업데이트 'Re:Flash'에 대해

Q. 다음 업데이트의 키워드가 Re:Flash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설명해줄 수 있나?

= 'Re'와 'Flash'라는 두 단어를 기반으로 새로 고치다라는 뜻인 'Refresh'의 의미까지 담은 업데이트다.

먼저 'Re'는 게임의 근본적 재미를 되살리고, 테일즈런너의 가장 좋았던 시절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저 간 격차를 좁히고, 오래 된 유저들이 항상 이기는 게임이 아닌, 비숙련 유저들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허들을 낮추는 방향으로 기획되어 있다.

테일즈런너는 오래 된 게임인만큼, 신규 유저와 올드 유저 간의 격차가 큰 게임이었다. 이를 보다 합리적인 게임이 되도록 바꿔나가고, 비수기와 성수기에 관계 없이 즐겁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하는게 목적이다.

게임 맵 또한 굉장히 많지만, 보상 체계의 불균형으로 인해 실제 자주 플레이되는 맵은 소수에 불과하다. 게임이 다양한 재미를 추구해야 함에도 플레이 타임이 짧은 맵만 집중적으로 플레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을 뜯어고쳐 모두가 즐겁게 게임을 즐길 수 있었던 그 시기로 돌아가는 것이 'Re'라는 키워드의 의미다.

▲ 시즌3에 업데이트될 트랙2.0


Q. 그럼 남은 하나인 'Flash'의 의미는 무엇인가?

= 'Re'가 과거로의 회귀를 뜻한다면, 'Flash'는 번쩍이고, 놀라운, 새로운 요소들을 담겠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것들의 주요 골자는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아닌, 유저들이 가장 사랑하는 콘텐츠에 대한 개선과 업그레이드이다.

서바이벌이나 협동 모드의 경우 항상 많이 플레이된다. 반면 어떤 맵들은 출시 후 2주가 지나면 더 이상 플레이되지 않고 버려진다. 때문에 사랑받는 게임 내 요소들을 연구하고, 이 맵과 모드들이 어떤 재미를 만들어내는지를 분석해면서 서바이벌 2.0과 협동 2.0등을 준비하고 있다.

시즌3에 접어들면 UCC 콘텐츠도 강화할 예정이다. 테일즈런너의 커뮤니티 콘텐츠는 팜에서 뭔가 설치하는 정도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맵을 직접 만들고 장애물을 배치할 수 있는 모드를 통해 나만의 게임을 만들 수 있는 툴을 제공하려 한다. 툴은 게임 내에서 접근 가능하며, 어렵고 복잡한 과정 없이 말 그대로 선만 그어도 맵이 만들어질 수 있는 수준의 난이도로 개발 중이다. 이렇게 직접 만든 게임들에 대한 별점 제도도 도입된다.

UCC기능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의상도 직접 만들 수 있게 지원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프리셋 형태로 만들어 내부 디자인은 직접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요소나 문제가 될 콘텐츠를 걸러내는 관리가 필요하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유니폼을 만드는 등 재미있게 활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 게이머가 직접 맵을 만들어내는 '맵크래프트'


Q. 테일즈런너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동화나라'를 기반으로 한다. 그간 대부분의 콘텐츠가 이 동화나라를 중심으로 만들어졌을텐데, 이제 슬슬 고갈될 때 아닌가?

= 안 그래도 세계관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다. 시즌2까지 '동화나라'를 컨셉으로 하다 보니 솔직히 좀 제한적이긴 했다. 이야기를 진행하려 해도 충분히 와닿게 만들긴 어려웠다고 해야 할까? 게임의 중심에 서사가 있다 보니 콘텐츠가 컨셉에 먹혀버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어두운 상황에 처하면, 그 업데이트의 콘텐츠는 죄다 어두운 무대를 배경으로 하게 되듯 말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미디어를 컨셉으로 하면서 보다 다양한 게임 내 요소들을 마련해볼 예정이다. 보다 다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너무 쌩뚱맞진 않지만 익숙하면서도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도록 말이다.

▲ 보다 다양한 재미를 보여 줄 시즌3의 테일즈런너


Q. 다음 업데이트가 아마 분수령이 될 것 같다. 17년의 서비스와 1년의 반성까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게이머의 시험대에 서게 되었는데,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 시작할 땐 참 잘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의욕이 앞서다 보니 미처 살피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너무나 많았고, 올해 초까지 보여준 아쉬운 모습들에 대해 많은 반성과 성찰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좋았던 시절도 생각하게 되더라. 분명 아름다운 추억이지만, 한편으론 그 시절의 빛이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테일즈런너의 미래에 과거의 그때처럼 좋은 시기가 다시 오게 될지는 모르겠다. 때문에, 이제는 '보답'이라는 생각으로 서비스를 이어가려 한다. 무턱대고 좋아지겠다, 바뀌겠다라고 말하기엔 지금까지 보여드린 좋지 못한 모습들이 신뢰를 가로막을 테니, 하나씩 하나씩, 테일즈런너를 사랑해주셨고, 사랑해주시는 게이머 분들에게 보답한다는 마음으로 더 나은 게임을 만들어나가려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변화를 바란다는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이 조금이나마 유저 분들에게 닿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