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R.R 톨킨의 소설이 중세 판타지 장르에 남긴 족적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으며, 영화 삼부작의 흥행에 힘입은 '반지의 제왕'이란 이름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콘텐츠의 형태를 막론하고 짜임새 있는 미들어스의 모험을 꿈꾸게 하는 것, 전 세계의 팬들에게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름이 가진 힘이자 무게입니다.

본격적인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하기도 전, '반지의 제왕: 골룸'이 발표되었을 당시 팬 대다수는 골룸이 주인공인 것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미들어스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만은 공통적이었습니다. 반지 원정대나 곤도르의 순찰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게임은 많았지만, 하고 많은 인물 중 골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은 신선한 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사인 데달릭 엔터테인먼트 또한 그 점을 셀링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반지 원정대의 모험 이면에, 모두에게 버림받은 흉물인 골룸의 시선으로 미들어스를 조명한다는 점을 말입니다. 노력은 가상했지만, 4년 후 마침내 베일을 벗은 게임은 그 주인공만큼이나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게임명: 반지의 제왕: 골룸
장르명: 어드벤처
출시일: 2023.5.25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Daedalic Entertainment
서비스: Daedalic Entertainment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샤이어! 베긴스!" 이후 골룸의 행방... 궁금하신가요?

▲ 게임을 시작한 당신, 앞으로 몇 시간은 골룸입니다

데달릭 엔터테인먼트는 '반지의 제왕: 골룸'이 J.R.R. 톨킨의 문학 작품을 공식으로 각색했으며, 반지 원정대의 여정과 동일한 시간대를 다루고 있음을 상당히 강조합니다. 공식 홈페이지는 물론, 스팀 상점 페이지의 정보 칸에도 대문짝만하게 적어두었죠. 골룸을 주인공으로 한 것에 대한 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시도로 '정당성'을 내세우려는 시도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모르도르 한 구석에서 오늘내일 먹을 식량을 찾아 헤매는 골룸(또는 스미골)을 곧바로 조종하게 됩니다. 튜토리얼 과정에서는 골룸의 움직임과 특유의 강력한 점프, 스태미너를 소모하는 달리기 등을 배울 수 있으며, 이따금씩 순찰을 도는 오크의 시선을 피해 '잠입'액션을 진행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튜토리얼이 마저 끝나지도 않는 시점에서 무언가 잘못됐음을 느끼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픽과 최적화 문제는 차치하고, 골룸의 어색한 움직임도 캐릭터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치더라도, 중간중간 컷신부터 잠입 액션, 심지어 오크에게 발각당해 죽는 장면까지도 미흡함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핵심만 말하자면, '반지의 제왕: 골룸'의 게임플레이는 마지막까지 튜토리얼에서 배우는 조작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골룸은 옷이나 무기를 착용하지도 못하고, 그저 네 발로 땅을 박차거나 벽을 타며 앞으로 나아갈 뿐입니다. 무기를 들고 두 발로 서 있는 이들 대부분은 작고 나약한 골룸의 적입니다. 수풀이나 그림자, 가끔 줍는 돌을 이용해 이들을 따돌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선택지도 없습니다.

▲ 주변 감지와 잠입, 골룸이라는 점 말고는 흔한 요소들

▲ 내가 뭘 본거지? 눈을 의심케 하는 연출은 덤

반지의 제왕이라는 이름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세계관에 대해 기대하는 일정 이상의 수준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골룸은 외형적으로나 스토리적으로나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죠. 수년 전부터 우려가 있었던 것은 우연도, 기우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골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자 했다면, 무엇보다 게임 초반부터 모두가 납득할만한, 흥미로운 게임플레이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는 데 실패한, 흥미롭지 않은 주인공을 내세운 게임은 빠르게 무너져내리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어떤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흥미를 잃고 나면 '앞으로' 준비된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튜토리얼의 마지막 시점에서, 나즈굴(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추격을 받게 되는 골룸은 결국 이들에게 사로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문의 결과는 우리가 영화 반지의 제왕 1편 초반에서 본 그 장면과 이어지죠. 내 프레셔스한 반지를 샤이어에 사는 베긴스놈이 가져갔다. 샤이어! 베긴스!

▲ 초토화된 완성도로는 스토리의 흥미를 끌 수 있을리 만무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이야기하자면, 게임플레이가 조금만 더 흥미로웠다면 고문 이후 골룸이 겪게 되는 이야기가 조금은 관심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서 흘러가는 반지 원정대 이야기 저편, 골룸이 프로도와 조우하기 전까지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는 분명 상당한 잠재력을 가진 주제입니다. 비록 그 생김새는 흉측해도, 골룸은 '반지'와 얽힌 작품의 이야기를 마지막까지 끌어가는 데 결정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영화가 아닌 게임으로 만들어진 이상, 플레이어가 납득할만한, 흥미로운 게임플레이를 전달하는 데 실패하면 앞으로의 이야기도 무용지물입니다. 가뜩이나 고문받던 골룸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할 사람의 수도 적은 마당에, 게임플레이마저 기대를 져버린다면 이용자는 게임을 플레이할 이유를 찾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렇다 할 특별한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지 못 한 '반지의 제왕: 골룸'은 튜토리얼을 견뎌낸 플레이어에게 또 다른 시련을 던집니다.


평범하고, 무딘 플레이 속에 묻혀버린 시도들

▲ 노예는 뚠뚠! 오늘도 뚠뚠!

사우론에게 사로잡힌 골룸은 절대반지를 가져간 빌보 베긴스의 집주소를 술술 불고, 영화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이를 회수하려는 나즈굴이 서둘러 모르도르를 떠나 샤이어로 향합니다. 이실직고한 골룸은 고문당하는 신세를 면하긴 했지만, 곧이어 노예 인식표를 부여받고 사우론의 수하들에게 노역을 제공하게 됩니다.

튜토리얼에서 언급하지 않은 게 있는데, 항상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일으키는 주인공 골룸의 특징을 반영하려는 시도 자체는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 진행 도중 플레이어는 몇몇 구간에서 골룸의 의사 결정에 관여할 수 있는데,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공격적인 골룸으로서 반응할 것인지, 아니면 유순한 스미골(스메아골)로 반응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 두 자아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며, 플레이어에게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쪽의 자아를 설득하기 위해 일련의 선택지를 고르는 상황이 주어지기도 합니다.

▲ 골룸이 가진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주려는 노력은 분명 존재합니다

▲ 하지만, 전반적인 완성도가 너무 부족하니 괜히 폰트까지 미워 보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내적 갈등 시스템은 게임의 스토리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쉽사리 알 수 없을정도로 얕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저 대사만 몇마디 바뀔 뿐, 스토리는 그저 주어진 길을 네발로 뛰어다니는 데서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름 야심차게 준비한 잠입 액션조차 엉성한 퀄리티로 인해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합니다. 시장에 이미 다수의 잠입액션 게임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골룸이 보여주는 잠입은 정말로 기초적인 선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골룸의 음습한 특징에 따라 그림자나 수풀 안에서는 적에게 인식되지 않도록 설정되어 있는데, 심지어 코 앞의 그림자에만 숨어있으면 오크들이 이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이런 낮은 수준의 AI는 잠입액션의 긴장감을 크게 해치며, 결과적으로 전반적인 게임플레이 경험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이런 걸 잠입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노예 생활을 벗어나 모르도르를 탈출하고, 어둠숲으로 가는 여정이 너무나 길고 지루한 것도 문제입니다. 게임의 절반을 모르도르에서 탈출하는 노예 골룸에 할당하고 있죠. 미로처럼 복잡한 일방통행 맵에서 반복되는 점프와 벽타기, 잠입을 하다 보면 반지 원정대 대신 골룸을 주인공으로 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점점 머리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게임의 이후 절반은 레골라스의 아버지인 요정왕 스란두일이 다스리는 어둠숲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두운 모르도르에서 벗어나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장소만 바뀌었을 뿐, 골룸이 할 수 있는 것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뛰고, 숨고, 의미도 찾기 힘든 내면의 갈등을 중재하며, 그저 조금 더 플레이해 본 뒤에는 무언가 의미 있는 장면을 마주할 수 있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찾았다, 올해의 반면교사(反面敎師)


출시 이후, '반지의 제왕: 골룸'은 전 세계 게이머들에게 '올해 최악의 게임'에 가까운 평을 받고 있습니다. 개발사인 데이달릭 측에서 정식으로 사과문을 게재한 것만 봐도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 수준인지 짐작이 가능합니다.

물론, 어떤 게임이든 개발사는 열과 성을 다해 노력을 기울이고, 또 모든 게임들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는 것도 아닙니다. '반지의 제왕'이라는 흥행보증수표를 가지고 실패한 개발사야말로 가장 뼈아픈 고통을 느끼고 있겠지만, 이번과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 노력 또한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교훈은 언제나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IP가 가진 인지도에 편승하지 않고, 게이머의 흥미를 유발하는 자신만의 게임플레이를 갖추라는, 말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미라클 모닝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라는 것이 터무니없이 어려운 일이듯, 간단하고 쉬운 교훈일수록 실천하는 데는 곱절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 엘프어 DLC...? 뭔가 준비를 많이 하긴 했습니다

사람의 여가시간은 유한하고, 게임 산업은 그 한정된 시간을 점유하려는 다른 모든 산업 중 일부일 뿐입니다.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유명 IP를 활용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도 이 경쟁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반지의 제왕'같은 거물급 IP라면, 제대로 잘만 활용했을 경우 훨씬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았을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반지의 제왕: 골룸'은 게임플레이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틀이 탄탄해야만 세계관이나 콘셉트도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세계관과 스토리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컨트롤러로 전해지는 게임플레이 자체가 눈높이에 들지 못할 경우 이를 엔딩까지 계속 붙잡고 있도록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올해는 아직 많은 다른 게임들이 출시를 앞두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정된 여가시간과 한정된 지갑 두께를 가진 우리는 좀 더 신중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골룸과 스미골이 최애캐라 해 보지 않고는 도저히 못 배기겠다는 분이 계시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막을 수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