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생명e스포츠 최인규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몇 가지 특징을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느꼈던 건 그의 사투리. 스프링 스플릿에 경기장에서 최인규 감독을 인터뷰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그가 사투리를 쓴다는 걸 몰랐다. 그러나 이번 인터뷰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이야기에 빠져들수록 그의 부산 특유 억양이 들렸다.

두 번째는 그가 가진 승리를 향한 열망이다. 선수 시절의 '댄디' 최인규는 인터뷰 자리에서 언제나 정갈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가 승부욕이 강한 선수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수가 가진 정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삼성 갤럭시 시절 이야기와 감독 최인규로서 '선수 최인규를 평가해본 것, 그리고 한화생명e스포츠라는 팀 소속으로 그가 가진 목표를 듣고 나서는, '댄디'라는 닉네임이 최인규라는 사람과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중후하기보다는 열정적이었던, 멋을 부리기보다는 솔직했던 한화생명e스포츠 '댄디' 최인규 감독과의 인터뷰는 10년 전,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의 추억과 이매진 드래곤스의 'Warriors' 무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Q. 2014년 삼성 갤럭시 화이트라는 팀에서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한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지났네요. 이제는 그 사실을 모르는 팬들도 많이 늘었을 것 같아요.

거의 모른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제가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이 생겼어요.


Q. 옛날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선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승하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하던데, 2014년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했을 때 기억이 선명한가요?

우승할 때 순간의 기억보다는 우승까지 가는 과정들이 좀 더 기억에 남아요. 저희가 롤드컵에 가기 전까지 3위를 두 번 했거든요. 전년도에 우승도 했던 팀이었는데, 3위라는 성적은 만족스럽지 않잖아요. 그리고 형제 팀에게 항상 져서 결승전에서 응원하는 입장이었다 보니 팀원들과의 갈등도 컸고, 무언가 잘 안 풀리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그런데 롤드컵을 가면서 드라마처럼 모든 게 잘 풀려서 팀 내부 분위기도 좋아지고, 팀원들과 더 끈끈해진 기억이 있어요.


Q. 2014년 삼성 화이트가 우승할 때 보여준 포스가 엄청나서 팀원들과 갈등이 있었다는 게 잘 믿기지 않네요.

삼성 갤럭시 블루에게 졌던 게 컸어요. 스크림에서는 항상 저희가 7대3? 혹은 그 이상으로 많이 이겼거든요. 그런데 항상 대회에서 4강에서 만났고, 그때마다 졌어요. 형제 팀에게 졌다는 거, 그리고 스크림에서 늘 이겼던 상대에게 지니까 충격이 컸고, 멘탈적으로도 많이 안 좋았어요.


Q. 팀원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했는데, 갈등의 가운데 계신 편이었나요? 아니면 옆에서 지켜보는 편이었을까요?

성격이 저보다 더 조용한 선수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당시에는 저와 그리고 ‘마타’가 거의 갈등의 중심에 있었던 거 같아요.


Q. 굉장히 의외네요. 제가 알기로는 삼성 화이트식 탈수기 운영은 정글러와 서포터의 호흡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둘이 굉장히 잘 맞는 걸로 알고 있었어요.

둘이 잘 맞았던 건 맞아요. 그러니까 대회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건, 저희가 스크림에서 서로 의견 충돌을 많이 하고 그만큼 조율도 많이 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 탈수기 운영의 중심이었던 '댄디' 최인규와 '마타' 조세형

Q. 의견 충돌이 많았던 건, 두 선수 모두가 게임적인 면에서 고집이 있었던 걸까요?

그렇죠. 서로가 자기주장이 강했어요.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마타’와 제일 친했지만, 게임 안에서는 서로가 게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려고 했고, 자기 위주로 해달라는 내용이 많았어요.


Q. 그럼 의견은 서로 어떻게 조율했을까요?

게임 시간대마다 달랐어요. 초반에는 제가 주도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팀 내부에서도 저를 위해 라이너들이 희생하는 편이었어요. 후반에는 이제 ‘마타’가 게임을 넓게 잘 보는 게 그때 당시에도 너무 느껴졌어요.


Q. 삼성 화이트의 탈수기 운영은 ‘댄디’와 ‘마타’의 합작품이라고 하면 맞는 말일까요?

당시에 주목받은 건 정글러와 서포터였지만, 그만큼 라이너들이 받쳐줘서 가능했던 거라서 다 같이 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보다는‘마타’의 지분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당시에 저 같은 정글러는 그래도 몇 명 더 있었어요. 하지만 ‘마타’라는 서포터는 유일했거든요. ‘마타’는 서포터라는 포지션의 새로운 길을 열었던 선수잖아요.


Q.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지도 시간이 많이 지났고, 이제 감독으로서 선수를 보게 되잖아요. 최인규 감독의 입장에서 선수 ‘댄디’를 돌아본다면 어떤 선수였던 것 같나요?

감독의 입장이라면…좀 까다로운 선수였을 것 같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저는 코치진의 말을 잘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제가 무조건 맞다는 그런 고집이 있었어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게임을 이끌어 가는 게, 아무런 의견 없이 끌려다니는 것보다는 더 좋고, 고쳐나갈 가능성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Q. 고집이라는 건 어떤 확신에서 나오는 거잖아요. 당시에 ‘댄디’라는 선수는 게임을 이기는 방법에 대한 확신이 있었나요?

답을 안다는 느낌 보다는 그냥 ‘내가 상대 정글러보다 더 잘한다’라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었던 거 같아요. 내가 선수이고, 게임을 더 잘 안다. 그래서 코치진의 피드백에 대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Q. 만약 지금의 최인규 감독이 당시의 ‘댄디’ 선수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어떤 조언을 해줬을까요?

음… 경기에서 졌을 때 선수를 그 감정에서 분리하고 선수가 차분한 상태가 됐을 때, 조언이나 피드백을 해줬을 것 같아요.


Q. 2014년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하고 그다음 해에 삼성 갤럭시가 공중분해가 됐잖아요. 거의 모든 선수가 중국으로 갔던 걸로 기억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어쩔 수 없는 필연적인 결과였을까요? 아니면 ‘한국에서도 뛸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하시나요?

다시 돌아간다 해도 한국에서 뛸 가능성이 작았을 것 같아요. 조건적인 부분에서 중국과 한국이 격차가 너무 심했어요. 길게 본다면 한국에 남는 게 손해일만큼 금전적인 문제가 다른 모든 것들을 상쇄할 정도로 격차가 컸어요. 한국에는 그 부분을 저희와 이견을 조율해 줄 팀이 없었어요. 반면에 중국에서는 거의 모든 팀이 한국인 용병을 쓰고 싶어 할 만큼 경쟁이 치열했어요.


Q. 결론적으로 중국에 갔던 건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때 당시에는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바꿀 수 없는 것 같네요. 프로게이머의 수명이 10년을 바라보고 계획할 만큼 길지 않잖아요. 당장 내년, 내후년을 예상하기도 어려워요. 그런 상황에서 당시에 제시받았던 정도의 금액을 들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팀원 다섯 명이 다 같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 모두가 성적만을 보고 가자고 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요?


Q. 선수 생활을 정리해보면, 자기 선수 커리어는 몇 점을 줄 수 있을까요?

저는 제 커리어에 만족하지 못해서… 10점 만점이라고 치면 5.5점 정도를 줄 것 같아요.


Q. 그래도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한 경력도 있는데, 점수가 너무 낮은 건 아닐까요?

저는 한 시즌 임팩트로만 항상 이야기가 거론되고 기억에 남는 선수잖아요. 저의 커리어를 ‘스코어’, ‘앰비션’, ‘벵기’ 같은 레전드 선수들과 비교하면, 비비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Q. 커리어를 길게 유지하지 못한 게 많이 아쉬우신 것 같아요. 어떤 부분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생각하나요?

롤드컵을 우승한 후에 목적의식을 많이 잃어버린 점이 있고… 중국에 가면서 ‘마타’와 같이 가려다 보니 선택지가 많이 좁아졌어요. 어떻게 보면 원하는 팀이 아니라 둘이서 갈 수 있는 팀을 갔던 거 같아요. 제가 더 잘했다면 성적이 더 좋았을 텐데,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Q. 은퇴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 한 건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길을 가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VG를 떠나면서 더는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LoL이라는 게임도 손에 안 잡히고… 그때는 정말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3개월 정도 쉬었더니 다시 또 그리워지더라고요.

프로를 떠나서 다른 생활을 하다 보니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롤이었구나’라는 생각하게 됐어요. 승리했을 때 느꼈던 성취감 같은 것들을 결국 몸이 그리워하는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런데 나이도 차고 선수를 할 수 없으니, 그렇다면 코치를 하면 선수들과 같이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했어요.


Q. 지금은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경기를 치르고 있잖아요. 가장 크게 다르다고 느끼는 점은 무엇일까요?

선수일 때는 경기를 할 때, 외부적으로 걱정해야 할 것들이 잘 없었어요. 오히려 자신감 같은 것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이제 감독이 되고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들을 직접 준비하다 보니 이제는 걱정해야 할 것들에 생각이 막히는 경우가 많아요. 경기를 준비할 때, 이렇게 저렇게 고려하게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어요.

선수 때는 당장 앞의 한 경기만을 바라봤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감독이 된 후에는 당장 앞 경기만을 바라볼 순 없어요.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고, 팀의 부족한 점들을 어떻게 바꿀지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네요.

그리고 선수일 때는 제 입장을 내세울 때가 더 많았어요. 하지만 감독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해서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망설이게 되는 것들이 많아지고, 선수일 때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말들이 감독으로서는 더욱 조심하게 돼요. 내 말을 선수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고민하게 되고.


Q. 감독 최인규는 어떤 철학을 가지고 팀을 이끌고 있나요?

머릿속으로 어떤 팀을 생각할 때, 팀원 다섯 명 모두가 떠오르는 팀. 특정한 한 명이 잘하는 팀이 아니라 다섯 명 모두가 완벽한 팀을 만들고 싶어요.

조금 모호할 수 있는 답변이긴 해요. 어느 시대이든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하거나 강팀을 생각하면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는 만큼 잘 드러나지 않은 선수들이 있거든요. 그래도 어느 순간에는 어느 라인이 돋보이고, 어떤 때에는 또 다른 라인이 드러나고… 그런 느낌이라면 굉장히 만족스러울 것 같아요.


Q. 감독으로서 한화생명e스포츠에서 스프링 시즌을 보냈잖아요. 스프링 시즌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감독으로서 첫 시즌이라서 저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감독이라는 직책이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서머 시즌을 더 잘하기 위해 좋은 동기 부여가 됐다고 생각해요.

저 혼자 생각하는 것보다 다 같이 느끼고 생각한 점을 공유하고 합의점을 찾는 게 훨씬 더 빨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다고 느끼고, 선수들이 대회에서 느끼는 감정을 잘 알고 있으니까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려고 노력하고, 이상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00%를 바라기보다는 80%, 70%를 먼저 이야기해주고, 나머지는 공감하고 채워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Q. 감독으로서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들을 보면 ‘댄디’라는 선수와 비슷하다고 느끼는 선수가 있나요?

‘댄디’라는 선수는 라이너들과 의견 다툼도 수시로 하고, 멘탈도 자주 나가는 편이었어요. 코치님들이 그걸 풀어주기 위해 애도 많이 먹으셨었어요.

반면에 저희 팀 선수들은 아주 온화한 편이고, 그리고 단단해요. 작년에 DRX에 있었던 ‘제카’나 ‘킹겐’은 다전제를 많이 겪어서 흔들림이 없고, 다들 경력이 오래된 선수들이라 각자가 극복하는 방법이나 노하우를 알아요.

저희가 지난 스프링 시즌에는 초반 운영 단계에서 조금 많이 삐끗하면서 불리하게 가다가 중, 후반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중, 후반은 다른 팀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는 팀이고, 그렇다고 초반을 못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아직은 그런 부분에서 합의점을 잘 못 찾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초반 단계에서의 결함만 잘 해결한다면 저희는 너무 잘할 수 있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Q. 서머 스플릿에는 한화생명e스포츠를 어떤 팀으로 만들고 싶으세요?

개인적으로는 스프링 시작할 때만 해도 모든 팀을 상대로 할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상대에게 패배할 때마다 허탈감과 분노가 끓어올라요. 서머 때는 모든 팀을 상대로 이기고 싶지만, 1패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나라고 생각해요.

스프링 스플릿을 통해 서머 스플릿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한 동기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선수들에게도 스프링 시즌에 겪었던 갈등이나 어려움은 잊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많은 분이 저희 한화생명e스포츠를 응원하셨을 텐데, 스프링은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죠. 서머 스플릿에는 선수와 코치진 모두 이를 갈고 열심히 해서 꼭 원하는 성적으로 보답해드리고 싶어요. 희망을 가지고 끝까지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