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격투하면 떠오르는 그 게임, '스트리트 파이터'가 6로 돌아왔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지만, 이미 2022년 2월 첫 공개 당시부터 여러 파격을 보여준 만큼 여러 모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누구나 다 아는 '류'가 갑자기 수염을 기르고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 주인공 '류'와 그 라이벌 '켄'의 구도가 아닌 '루크' 그리고 신규 캐릭터 '제이미'를 앞세우고 클래식과는 거리가 먼 힙한 스타일의 이펙트까지. 그런 변화에 팬들은 반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시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캡콤이 선택한 변화는 놀랍도록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대전 액션 게임이 이전과 달리 주류에서 상당히 밀려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3일만에 유저 수 100만 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거뒀고, 매체와 유저 사이에서도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혹자는 대전 액션 게임 특성상 하는 사람만 평가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가질 수 있겠다. 그러나 '스트리트 파이터6'는 그 대전 액션 게임의 오랜 고민을 풀기 위한 여러 파격적인 시도와 정통 격투 게임으로서의 완성도 모두 다 경지에 다다른, 요즘 다시 궤도에 오른 캡콤의 내공을 다시 한 번 증명해준 작품이었다.

게임명: 스트리트 파이터6
장르명: 대전 액션
출시일: 2023.6.2
리뷰판: 1.0001
개발사: 캡콤
서비스: 캡콤
플랫폼: PC, PS, Xbox
플레이: PC


테마와 스타일까지 살린 진일보한 그래픽과 연출


2D 대전 액션 게임이 3D로 옮기면서 혹평을 받은 사례들이 종종 있지만,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이미 전작을 통해서 검증한 만큼 그 부분은 우려가 되지 않았다. 이미 처음 공개될 때부터 잘 다듬어진 캐릭터 모델링에 박진감 있는 연출, 그래피티를 연상케하는 독특하고 화려한 이펙트까지 유저의 눈길을 사로잡을 요소들을 짧은 시간에 바로 선보이지 않았던가. 그게 과연 실제 게임플레이에서 어떤 느낌일지, 또 캐릭터 디자인도 이래저래 많이 바뀐 모습을 보여서 출시 전에 평가가 갈렸는데 이를 어떻게 묘사해냈는지가 더 궁금했을 것이다.

캐릭터의 디자인 변화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하자면, 작중 시간이 꽤 지났다는 묘사뿐만 아니라 뒤에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할 '월드 투어' 모드까지도 고려한 선택으로 보인다. 월드 투어 모드는 유저가 직접 커스터마이징한 신진 격투가가 스트리트 파이터 세계를 누비면서 겪게 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때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들이 주인공에게 기술을 알려주는 스승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작보다 대체로 원숙한 모습으로 디자인 된 느낌이 강하다고 할까.


월드 투어 모드 외의 본편의 구성 자체는 드라마틱하게 바뀌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스트리트 파이터 세계의 거리를 누비는 모드가 추가된 만큼 이번 작품은 아예 그 테마에 맞춰진 모양새였다. 처음 게임에 들어갈 때부터 모드 선택창까지 이어지는 강렬한 비트에 그래피티 같은 배경 디자인과 모드 로고까지. 흔히 '길거리 싸움'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자연히 연상되는 구도로 가득했다.

이는 모드 선택창 같은 부수적은 부분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최초 공개 당시부터 이미 인게임에서 그런 연출이 있을 것이라 예고되지 않았던가. 마치 그래피티를 그리듯 강렬하게 흩뿌려지는 색채 이펙트와 함께 뼈를 울리는 타격음이 터져나오는 '드라이브 임팩트' 시스템이 그 좋은 예였다. 그냥 강하게 치는 느낌을 주는 것뿐이라면 이미 클로즈업할 때 보이는 디테일한 표정의 변화와 묵직한 타격음, 슈퍼 아츠의 박력 있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드라이브 임팩트를 발동할 때 나오는 그 강렬한 원색의 컬러는 타격하기도 전에 그 위력과 효과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렬했다. 원색하면 보통 촌스럽다거나 부담스럽다는 이미지가 있기 마련인데, 마치 그래피티처럼 여러 색을 절묘하게 배색해서 화려한 스타일과 강렬한 인상 모두를 살려냈다. 그 이펙트에 타격 모션과 피격 모션을 대강 가려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타격을 당했을 때 얼굴 표정은 물론 맞은 부위가 패이듯이 울리는 디테일까지 살리면서 딱 봐도 아파보이는 그림을 연출해냈다. 여기에 패리에서는 캐릭터 공격에 따라 자세가 바뀌는 등, 실제로 격투하는 듯한 디테일을 살린 것도 몰입감을 높인 포인트였다.


스테이지 디테일도 한층 올라가고 슈퍼 아츠도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 박진감 있는 연출을 보여주면서 사용하는 맛을 살렸지만, UI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메뉴창은 가시성은 좋지만 밋밋하다는 평이 있었는데, 반대로 처음 게임에 들어가서 월드 투어, 배틀 허브, 파이팅 허브로 들어가는 구간에서는 스타일은 살아있지만 어떤 모드인지 바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선보인 월드 투어 모드는 패드를 기반으로 설계가 되어있어 키보드 유저는 월드맵이나 여러 메뉴를 사용하기가 다소 까다로웠고, 메뉴에 대한 설명이 잘 안 되어있어서 처음에는 헤맬 여지가 있었다. 게임플레이를 해칠 정도는 아니지만, 고득점 싸움에서 사소한 실수 하나가 당락을 결정할 수 있으니 그런 점에서 다소 아쉽다고 할까.


놀랄 만큼 정확하게 초보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보완 시스템


여러 차례 나오는 말이지만, 대전 액션 게임은 입문이 정말 어려운 장르다. 그 화끈한 타격감에 혹해서 발을 들여보긴 하지만, 아예 접해보지 않은 사람에겐 '커맨드'라는 개념조차도 낯설다. 심지어 어렸을 적에 친구 중 한 명을 집에 초대해서 대전 액션 게임을 가르쳐준 적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방향키를 누르면 기술이 나가는 거임?" 이렇게 물어봤을 때 할 말이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다른 장르 대다수는 버튼을 여러 개 같이 누르거나, 혹은 그 버튼을 누르면 그에 할당된 기능만 이행되지 않던가. 그런데 대전 액션은 방향키를 어떻게 누르면서 다른 버튼을 누르고, 혹은 버튼 누르는 순서나 타이밍까지 재야 한다. 각 게임마다 차별화를 위해 여러 시스템을 발전시키다보니 그것도 제각각 익혀야 한다.

물론 흔히 '승룡권 커맨드', '파동권 커맨드', '프레임' 이런 기본 개념은 공유하다보니 어느 정도 몸에 익으면 장르를 '찍먹'할 수는 있긴 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찍먹이 가능하다는 거지, 잘 안착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각 게임마다 묘하게 다른 타이밍이나 판정, 그리고 각 캐릭터별 기본기는 물론이요 국민 콤보를 파악하는 것부터가 '입문'으로 치는 동네니까.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가 대전 액션이라는 장르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킨 장본인에 앞서 말한 커맨드를 확립한 시리즈고, 또 게이머면 누구나 한 번은 들어보았을 텐데도 그런 말을 꺼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사실 대전 액션 게임을 전혀 모른다는 걸 가정하고 보면, '스트리트 파이터'는 찍먹에서 흔히 말하는 '입문'으로 넘어가기 힘든 시리즈 중 하나다.

▲ 칼 같이 집어넣기 힘든 기술도 많아 어지간히 숙련되지 않고는 쓰기 힘들었던 장기에프도


▲ 기본 콤보나 리버설 스크류 파일드라이버 정도까지는 쉽게 가능하다

이 말을 들으면 아도겐 아도겐 쇼류켄 쇼류켄 이게 무엇이 어렵냐는 말이 나오겠지만, 그 다음에 콤보나 이런저런 시스템으로 넘어갈 때는 생각보다 잘 안 된다는 말이 나온다. 승룡권이나 파동권은 몰라도 초보가 손대기엔 어려운 차지 커맨드가 메인인 캐릭터 비중도 좀 있고, 흔히 말하는 '스크류 파일드라이버 커맨드'도 있지 않던가. 거기에 대전 액션의 후발주자들은 미리 입력해두면 그래도 기술이 뒤이어 바로 나가주는 '선입력' 시스템을 채택했는데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는 그 옛날 그대로고, 커맨드 입력이 삐끗해도 대충 나가주는 후발주자들과 달리 이 부분에서도 칼 같다. 그래서 그 타이밍과 정확한 커맨드 입력을 몸으로 익히기 전까지는 콤보 연결도 어렵고, 결국 막 눌러도 뭐가 나가는 타 시리즈로 이탈해버리다가 결국 거기서도 두드려맞고 이탈하는 케이스를 많이 봤다. 안 그래도 없는 초보풀에서 같이 중수한테 얻어맞으면서 우리끼리 한 판 더 할 동지이자 희생양(?)을 좀 더 늘리려고 전파했다가 "이거 할 바에 다른 거 한다"라고 탈주해버린 친구들을 여럿 겪어본 경험담이다.

물론 이건 개인 경험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 어쨌거나 가뜩이나 허들이 높은 대전 액션 게임 장르에서 이런 소식들이 계속 더해지는 건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안 그래도 계속 풀이 좁아져서 하는 사람만 하는 장르로 남고 있는데, 더 유저가 증발해버리면 더더욱 풀이 고이다못해 장르 자체가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이를 막기 위해 최근 대전 액션 게임은 커맨드를 간소화하고 콤보를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초보 친화적인 모드를 도입하고 있고, 스트리트 파이터 또한 이번에는 '모던 모드'로 그 흐름을 받아들였다. 펀치와 킥 구분에 약중강 총 6개 버튼을 활용하는 스트리트 파이터의 키 배치를 약중강 공격에 필살기 버튼과 어시스트 버튼으로 교체해서 좀 더 간단하게 콤보를 날릴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서 캡콤은 한 발 더 나아갔다. 단순히 입문에서 중수로 넘어가는 단계, 혹은 중수들이 고심하는 부분을 간소화시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초보자들의 심리까지 면밀히 분석, 시스템 자체를 아예 그에 맞춰서 뜯어고치는 노력을 보인 것이다.

▲ 필살기 게이지는 초필살기 외엔 사용하고 싶지 않은 초보자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 시스템을 구축했다

사실 크게 보면 이 역시도 엄청 뜯어 고친 건 아니긴 하다. 최근 대전 액션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패리나 쉬운 반격 시스템, 슈퍼캔슬 등 개념을 스트리트 파이터에 맞춰서 적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통 이런 시스템들은 초보들이 흔히 말하는 '필살기' 게이지를 사용해온 경우가 다수였다. 대전 액션 게임이 그간 큰 거 한 방보다는 콤보를 이어가는 테크닉과 그 시도를 읽고 대처하는 심리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만큼, 그 흐름에서 보았을 땐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흐름을 타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돌아오거나, 혹은 새로 접근하는 유저 입장에서는 또다른 심리적 장벽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초필살기의 화려한 연출이나 위력은 어필해두고, 정작 나오는 건 프레임 단위까지 칼 같이 계산하지 않고서야 들어가지도 않는 콤보 싸움 위주에 오히려 초필살기로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은 꾹꾹 눌러담아야만 하는 역설이라니.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한 유저들이 이탈해도 이상할 건 없다. 어차피 질 거라면 화끈하게 초필살기 한 방 시원하게 먹이고 싶은데, 그마저도 어려운 데다가 게이지마저도 다른 곳에 쓰다보면 정작 쓸 타이밍에 게이지가 없어 분패하기 일쑤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캡콤의 이번 선택은, 초보자들의 패턴에 대한 심층 분석이 정말 제대로 이루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웠다. 하단의 슈퍼 아츠 게이지는 속칭 '필살기 쓸 때 사용하는 게이지'로만 인식하고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초보자들의 심리를 캐치, 말 그대로 초필살기 '슈퍼 아츠'에만 쓰게 한 것이다. 대신 가드, 드라이브 임팩트, EX, 드라이브 러시 등 초보 이상이 사용하게 될 영역은 '드라이브 게이지'로 몰아넣으면서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한 플레이를 유도해냈다.


필살기 게이지, 즉 슈퍼 아츠 게이지는 자동으로 충전되지 않기 때문에 막 질러대기엔 심리적 부담이 크다. 그렇지만 타 게임의 가드 게이지에 위치한 '드라이브 게이지'는 한 번 쓴 다음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충전되기 때문에 부담도 적다. 그래서 상대의 시동기를 드라이브 임팩트로 패리해서 카운터 - 슈퍼 아츠 게이지에 따라 중공격 혹은 강공격 어시스트 콤보로 딜넣기라는 기초적인 연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시동기를 파훼하기 위해서 필살기 게이지를 깎아내고 반격하는 건 초필살기 한 방 먹이고 싶은 충동을 꾹꾹 눌러야만 가능한데, 그게 초보 입장에선 쉽지 않다.

물론 그걸 무지성으로 쓰는 양상이 되지 않도록 여러 페널티를 적용하긴 했다. 드라이브 게이지를 다 소모한 상태에서 드라이브 임팩트를 당하면 바로 스턴이 걸린다던가, 드라이브 임팩트가 20프레임이 넘어가다보니 그냥 날리면 어지간해서는 잡기나 여러 대응책으로 카운터가 된다는 점 등. 그렇지만 그런 페널티는 초보 입장에선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다. 어차피 고수한테는 뭘 해도 얻어맞고 가드도 안 되는데, 럭키 펀치 한 번 잘 날려서 맞췄을 때 어쨌거나 한 방 제대로 먹일 수단은 확실히 챙긴 셈이다. 그리고 초보가 생각하기에 별로 부담이 안 되는 걸 리스크 요소로 선정해서 대전 액션 특유의 리스크 관리와 심리 싸움의 묘는 유지하면서 진입장벽은 낮춘 관록까지 치밀하게 짜인 설계가 돋보였다. 이런 치밀함이 아마 접속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한 비결이지 않을까.


격투 게임 몰라도 재미있는 길거리 싸움, '월드 투어'


대전 액션 게임에서 '초보친화'라는 말이 나오면 으레 냉소적인 반응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어차피 유저끼리 서로 경쟁하는 게 주가 되는 만큼, 초보들이 접하기 쉬워졌다는 건 반대로 고수들도 그만큼 더 쉽게 실수 없이 칼처럼 콤보를 꽂아넣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또 초보들이 고수를 한 방 먹일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건 역으로 초보들이 뭘 내지를 때 아예 봉쇄해버릴 여지가 더 많아졌다는 말이기도 하고. 다만 아예 손을 놓고 당하지는 않게 숨통만 틔워주는, 그런 정도만이라도 어떻게 성공적으로 구현하긴 했다.

결국 그런 유저들이 계속 플레이하게 하려면, '맞으면서 배우는' 것이나 트레이닝 모드뿐만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즐길 거리가 필요하다. 그 부분에서 그간 대전 액션 게임은 일회성으로 끝나는 스토리 모드나 계속 적을 쓰러뜨리면서 나아가는 서바이벌 모드 외에도 여러 시도를 해왔다. 개중에 RPG나 벨트스크롤 액션 등 타 장르의 요소를 더하면서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본편의 시스템과는 맞물리지 않은 미니 게임 정도로 여겨질 만큼 비중이 작아서 금세 흥미가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 일반적인 모드가 모인 파이팅 그라운드에 들어가면 크게 다를 게 없어보이지만

▲ 메인 화면에 별도로 마련해둔 월드 투어 모드가 싱글플레이 콘텐츠의 핵심 중 하나다

'월드 투어'는 그와 달리 캡콤에서 아예 스트리트 파이터6의 핵심 콘텐츠 중 하나로 손꼽은 콘텐츠였다.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를 유랑하면서 자신의 캐릭터를 최강의 파이터로 성장시키는 과정을 그려낸 콘텐츠로, 각지에 있는 강적들과 맞붙거나 원작의 캐릭터에게 가르침을 받는 등 다양한 즐길거리를 선보일 거라 예고된 바 있었다.

그간 대전 액션 게임에서 선보인 퀘스트류 콘텐츠는 대부분 정해진 틀 안에서 제한적인 이야기만 즐길 수 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이에 관해서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대전 액션 게임 자체가 극도로 제한된 공간만 활용하는 콘텐츠고, 그에 맞춰서 모든 것이 설계된 만큼 그 세계를 돌아다니는 느낌을 줄 정도로 콘텐츠를 구현하려면 게임을 하나 더 만드는 수고를 들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수고를 들여서 만든 '월드 투어'는 최근에 즐긴 어떤 대전 액션 게임의 싱글플레이 콘텐츠보다도 신선한 재미가 느껴졌다. 물론 그 퀄리티가 넘사벽이라거나, 혹은 완전히 독창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알기 쉽게 빗대어 말하자면 '월드 투어'는 스트리트 파이터 안에 극히 제한된 심 방식의 필드에 인카운터 방식을 가미한 모드다. 처음 시작하자마자 PMC 버클러에 신입으로 들어갔던 주인공이 루크를 비롯해 여러 강자들을 만나면서 수련을 쌓고, 대회에 출전해서 강함을 증명함과 동시에 '메트로 시티'에 드리운 음모를 파헤쳐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극히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낸 셈이다.

▲ 간단한 튜토리얼을 마친 이후



▲ 스트리트 파이터의 월드에서 여러 파이터들과 교류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메트로 시티'라는 말에서 짐작이 가듯, '월드 투어'는 캡콤의 또다른 명작 '파이널 파이트'를 비롯해 자사 게임에 대한 오마주와 존중, 그리고 그 스타일까지 물씬 담아낸 또다른 진국이었다. 전직, 현직 시장부터가 파이널 파이트의 마이크 해거와 코디 트래버스인 데다가 적이 한가득 모여있는 지하철 열차칸을 소탕하는 과정에서 난무하는 나이프 던지기와 화염병 던지기 등등. 익숙하지만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틀 안에 새롭게 담기면서 또다른 맛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렇다고 단순히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시비 거는 갱과 붙고 레벨 올리기에만 급급한 방식은 아니었다. 이야기의 주역은 유저가 직접 커마한 주인공이지만, 스트리트 파이터의 캐릭터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들과 교류하는 구도를 통해서 그간 스테이지 방식으로만 제한적으로 언급된 캐릭터 스토리를 더욱 깊이 있게 묘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떤 캐릭터의 스타일을 메인으로 고수하더라도, 기본기가 아닌 필살기나 슈퍼 아츠는 그간 배운 다른 캐릭터의 기술 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조합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재미도 있었다.

▲ 밤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시비 걸리기 십상이니 이럴 땐 선수필승!

▲ 지하철은 그야말로 마굴...근데 회계사가 대낮부터 싸움하러 나올 줄은 ㄷㄷ

▲ 어느 한 캐릭터의 스타일을 배우고 나서 메인으로 활용하되

▲ 필요하면 다른 캐릭터의 스킬도 커맨드 리스트에 넣어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조합할 수도 있다

여기에 대전 액션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금기인 대전 중에 아이템을 쓰는 치사함(?)에 커스터마이징과 스킬 업그레이드로 성장하는 요소, 여기에 소소한 재미가 있는 서브 퀘스트의 방대한 양까지 치밀한 설계가 돋보였다. 이것만 보더라도 '월드 투어'는 스트리트 파이터6의 모드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손색 없을 정도였으니까.

▲ 라이벌이라는 녀석은 처음부터 시비를 걸더니

▲ 무슨 짓을 한 건지 갱들이 추격하기 시작하고

▲ 주리한테까지 쫓길 줄이야...시련에 시련의 연속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스트리트 파이터6의 모드로 계획된 만큼, 기준을 만일 스탠드얼론 게임에 맞춰서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만한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대전 모드에 들어갔을 때 스트리트 파이터6의 그래픽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지만, 그걸 오픈필드에서 구현하기 어려웠는지 돌아다니다보면 다소 어색한 부분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배경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갑자기 모자 사이로 머리카락이 튀어나오기 일쑤에 옷이 팔락거리는 장면이 종종 뻣뻣하게 보이는 등, 본편 모드만 보고 왔다면 상상도 못하는 장면들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양아치들은 물론이고 난폭한 인턴과 회계사들까지 갑자기 분노 바이러스나 T 바이러스라도 맞은 것마냥 막 돌진해오는 걸 때려눕히는 재미도 한두 번이지, 나중에는 그만 엉겨붙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 뜬금 없이 고레벨 파이터와 만났을 때도 당황할 필요 없다. 우리에겐 아이템이 있다

그렇게 몰려오는 선공 몹들을 보면 자연스레 레벨업 노가다가 떠오르겠지만, '월드 투어'는 스트리트 파이터6의 또다른 모드인 만큼 그런 게 꼭 필요하진 않다. 레벨이 높으면 좀 더 수월할 뿐, 결국 '실력'으로 적을 때려눕혀야 하는 대전 액션 게임의 근본은 어디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그걸 어려워하는 유저들을 위해서 레벨과 장비라는 걸 마련해두었고, 그걸 단순히 노가다로 끝내지 않고 맵 곳곳에 있는 서브 퀘스트를 클리어하면서 숨은 요소를 발견하면서 또다른 재미를 느끼도록 유도했다.

여기에 때로는 본편 튜토리얼에서도 소개가 미진했던 드라이브 러시 시스템 같은 팁들도 퀘스트 곳곳에 배치, 유저 자신의 컨트롤과 게임 지식도 자연스럽게 늘도록 설계하는 디테일도 엿보였다. 단순히 문서화되거나 예제로 보는 튜토리얼 혹은 계속 똑같이 허수아비만 치면서 암기하는 대전 액션 게임의 트레이닝과는 달리 길거리 실전에서 배우는 느낌을 살린 것이었다. 100% 완벽하다고 하기엔 아직 엉성한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최근 대전 액션 게임이 멀티플레이 위주로 언급이 되는 나머지 이 장르를 기피했던 유저들에게 이번 시도는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시리즈에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거점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 이전의 세팅과 비교해서 수정할 수 있는 옵션까지 제공된 디테일한 커마부터


▲ 컨트롤뿐만 아니라 레벨과 스킬을 올리면서 강해지는 느낌도 살리고


▲ 각종 업적작과 도전까지 고루 갖추면서 싱글플레이 위주의 유저에게도 즐길거리가 풍성하게 마련됐다





스트리트 파이터6는 OBT 단계에서도 이미 이건 놀라운 작품이라는 예감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그리고 정식 출시 단계에서 그 위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캐릭터 디자인에 호불호는 갈릴지 모르겠지만 '길거리 싸움'이라는 테마를 정말 놀랄 만큼 멋지게 담아낸 그래픽과 스타일, 연출의 삼박자는 플레이하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1:1 싸움의 박력을 고스란히 느끼게 하는 대전 액션 게임의 매력과 박진감을 시각과 청각 모두에서 느끼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 옛날 오락실의 추억을 갖고 이 게임을 접한 유저에겐 "왜 이렇게 바뀌었어?" 낯선 느낌이 들 수는 있겠다. 시대가 너무도 달라졌고, 길거리의 풍경도 달라지지 않았던가. 또 스토리나 캐릭터를 담아내는 방식도 달라졌다. 비밀스런 조직이 음모를 꾸미기 위해 격투 대회를 연다는 이야기가 한때 음모론과 뒷이야기를 파헤치던 감성으로 어필하던 때가 있었지만, 이젠 그 레퍼토리가 너무 자주 나와서 흥이 식기도 했고 너무 길게 끌다보니 대전 액션 게임에서 스토리는 뻔한 맛의 양념, 혹은 계륵 정도 위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아케이드 모드에서 스토리 깨다가 갑자기 난입한 고수한테 두들겨맞고 허망하게 사라진 동전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술을 눈대중으로 보며 익히던 그 시절의 장면도 이제는 보기가 어려워졌다.


그런 시대의 흐름을 캐치한 캡콤의 행보는 놀랄 만큼 세련되고 치밀했다. 그래픽이나 스타일, 시스템에서 현대의 감성을 담으면서도 그 시절 팬들이 추억할 요소들까지 꽉꽉 눌러담는 센스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초보자의 심리를 꿰뚫고 개편한 시스템과 모드는 감탄이 나왔다. 늘 대전 액션 게임에 흥미 없던 친구를 츄라이츄라이 영입하려고 했다가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느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준 느낌이라 이제는 영입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이 다시 소록소록 돋아났으니까. 물론 초보들이 대응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각을 잡아서 한 대 세게 먹일 방법은 확실하니 말이다.

여기에 스트리트 파이터의 세계는 물론이고 그 시절 또다른 자사의 고전 게임에 대한 헌사와 존중까지 빛난 '월드 투어'까지 더해지면서 풍부한 콘텐츠와 감성까지 살려냈다. 최근 대전 액션 게임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부실한 싱글플레이 콘텐츠 문제를 케어해줄 코어로 자리잡았고, 여기에 원작 캐릭터에 대한 예우와 현대의 다양한 스타일의 조화가 이렇게까지 잘 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간 서구권에서 여러 차례 파격을 강조한 나머지 시리즈 전작이나 IP에 대한 훼손 논란이 빚어졌던 걸 생각해보면, '스트리트 파이터6'는 단순히 대전 액션 게임의 금자탑에 그치지 않고 고전 시리즈를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할지 모범 답안을 보여줬다고 평해도 무방할 듯하다. 다양한 스타일을 담아내면서도 서로 배척하지 않고 잘 융합하면서, 게임으로서의 기본기와 고전과 현대에 대한 존중 그 모든 것을 이루어낸 걸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