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페르메디오 프레스토’를 아시나요?


언뜻 듣기에 생소하기도 하거니와 무슨 뜻인지도 금방 감이 오지 않는 이 이름은 최근 오프닝 영상과 플레이 영상 등을 공개하며 조용히 화제가 되고 있는 동인 비주얼 노블 입니다.


독일어로 ‘1’을 뜻하는 아인스라는 이름를 가진 제작 스튜디오는 그 이름처럼 직원이 달랑 한 명. 제작자 정귀욱씨는 많은 게임 키드들이 그렇듯 게임을 직접 만들고 싶어서 게임계에 투신했다가,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 회사를 뛰쳐나와 외로운 1인 제작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3년. 아인스 스튜디오의 1인 개발자 정귀욱씨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작품을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 인테르메디오 프레스토 오프닝 무비. 먼저 감상해보세요.



사실 동인게임 패키지를 만들어 판매한다는 것은 열정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일입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자금 문제입니다. 누가 투자해주는 사람도 없고 많이 팔리는 것도 아닙니다. 보통 5천원에서 만원 사이의 가격으로 CD가 판매되는데, 500장 정도를 팔면 꽤 괜찮은 실적을 거둔 축에 속합니다.


이 정도의 수익은 개발과 패키지에 들어간 제작비를 제하고 나면 사실 ‘수익’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팀 단위로 동인게임 제작을 하는 곳은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에는 게임을 만드는 생활을 하며 게임 제작을 이어가기도 합니다.


그나마 가장 좋은 케이스라면, 동인 게임을 만들며 쌓은 노하우와 포트폴리오로 기성 게임사에 취업하는 경우, 아니면 타르타로스의 경우처럼 아예 온라인 게임을 제작해 본격적인 게임사업을 벌이는 경우겠지요.


동인게임을 만들어서, 함께 즐기고, 그렇게 얻은 작은 수익으로 다음 동인게임을 만드는 데 몰두 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바탕이 우리나라엔 아직 없습니다.



▲ CLUB B.S라는 동인게임제작팀에서 출발해 타르타로스 온라인을 개발한 인티즌은 좋은 케이스로 꼽을 수 있다



정귀욱씨가 3년 동안의 게임 개발을 해올 수 있었던 것도, 모아왔던 적금을 깨고서야 가능했던 일. 그리고 지금 그는 본인이 만들고 싶었던 퀄리티의 그 무언가를 막 만들어 내는 참입니다. 왜 그 스스로 ‘이번 작품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고 했는지는, 그래서 쉽게 짐작이 갑니다.


마지막 패키지 제작 작업을 체크하기 위해 서울에 잠시 들른 정귀욱씨를 만나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인게임을, 그것도 혼자서 만들고 있는 흔치 않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 ‘게임을 만들어야겠다’ 이런 마음은 언제 먹은 건가요.


거슬러 올라가면 중학교 때 파이널판타지7를 했을 때겠네요. 스퀘어에닉스를 좋아하는데 그 때 파이널판타지7을 하고, 이런 게임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개발자라는 장래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게임 회사에 들어가기는 원화가로 들어갔어요. 그나마 자신 있는 게 원화라서요. 하지만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니라 게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운드나 기획, 시나리오 쪽 보강작업에 참여한다거나, 프로그램 스크립트도 해보는 식으로요. 3D 모델링도 하고.

그렇게 한 걸 이번에 써먹은 거죠. 그 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셨단 말이죠. 회사를 나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군대를 가게 되었어요. 원래는 막연하게 30살 되기 전에 뭔가를 해봐야겠다 정도였거든요. 보통 군대 갔다 오면 시간이 빨리 간다고 그러잖아요. 저도 그런 기분이 들면서 더 늦기 전에 해야 할 것만 같더라고요.

군대에 있을 때도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뭔가를 만들어야 될 텐데. 이대로 회사원으로 끝날 수는 없다. 그래서 계속 뭘 만들 건지 구상하면서 군생활을 보냈어요. 그래서 전역하고 바로 기획서를 만들었죠. 당시 사장님께 기획서를 보여드리고 이러 저러한 걸 해보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잘 해보라고 격려해주셨어요. 회사가 좋아서 만약에 군대가 아니었으면 계속 더 다녔을 것 같아요.



= 혼자서 만들어보자. 이런 생각으로 시작하신 건가요.


그렇진 않아요. 팀을 구하려고 했지만 못 구한 거죠. 최근에는 동인팀 자체가 몇 되지 않으니까 함께 할 분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할 수 없이 혼자 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공개툴의 제작자와 연락해서 엔진을 개량해가면서 쓰고. 그렇게 한 거죠.



= 최근에는 애플 앱스토어도 있고 개인 제작자가 나름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통로들이 있는데,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나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패키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내가 만든 작품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질 수도 있는 어떤 형태로 나오는 거니까요. 게임잡지 만들던 기자들이 출간된 다음 날 책으로 나온 걸 보면 굉장히 만족감이 든다고 그러거든요. 패키지의 로망이 그런 것이죠.



▲ 인페르디오 프레스토의 한 장면



= 비주얼 노블 장르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좋아하는 게임은 바하무트 라군이나 성검전설3 같은 게임이에요. 게임이 재미있는 게, 욕을 하면서도 게임을 하게 만드는 힘이 있잖아요. 버그가 엄청 많은데도 너무 재밌는거예요. 성검전설3는 지금도 이만한 퀄리티의 액션RPG가 없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젤다의 전설도 있지만요. 2D형식의 그래픽을 좋아하는데 최고봉이 성검전설3가 아닐까.

그래서 제일 만들고 싶었던 건 액션RPG였죠.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요. 제가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했던 거죠. 비주얼 노블이 그나마 가장 만들기 쉬운 장르니까요.



= 첫 작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처음에 7개월 만든 걸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그러더군요. ‘이건 천 원 주고도 안 살 것 같다.’ 그 때 상당히 충격을 받았어요. 포기할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완전히 엎고 다시 7개월 정도 걸려서 새로 만든 게 라르기시모예요. 글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도 하고, 글에 어울리는 그림도 더 그려보고 하면서요. 혹평을 했던 그 친구에게 보여줬는데, ‘이건 사 볼만 한 정도는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프레스토도 1년 반 정도 걸렸네요.



= 동인 게임은 출시하고 얻은 수익이 다음 게임의 제작비로 보통 다 들어가죠. 첫 작품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 때는 상당히 어려울 때였어요. 아무리 아껴도 한 달에 나가는 고정비가 있으니까요. 벌어놨던 돈이 다 떨어져 갈 때 즘 겨우 게임이 나왔어요.

한 장에 만원인데 1,200장 정도가 나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인게임으로 이 정도 나간 건 굉장히 많이 나간 거라고 하더라고요. 반응이 괜찮았어요. 저도 아무 기대 없이 나갔는데, ‘어, 이 정도가 나가네?’ 하고 의외였어요. 이 정도라면 한 번 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시에는 전에 있던 회사 사장님이 편의를 봐주어서 김포공항 근처에 사무실을 빌려주셨거든요. 그 분도 패키지에 대한 로망이 있는 분이라. 그래도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으니까요. 부산에 멀티미디어센터라는 곳이 있다고 해서 게임을 보여드리니 당장 내려오라 하시더라고요. 입주 심사를 받고 부산에서 다음 작품을 개발하게 되었죠.



▲ 인테르메디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라르기시모



= 동인게임은 유저들의 피드백도 활발하다고 들었습니다. 라르기시모를 해 본 분들은 어떤 평가를 해줬나요?


다른 것 보다 이야기가 ‘투 비 컨티뉴’ 식으로 끝난다고. 이번에는 절대 그렇지 않고 이야기가 깔끔하게 결론 납니다.

문장이 번역투라는 지적도 있었어요.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같은 해외 작가들을 좋아해요. 이런 소설을 원서로 읽다 보니 그런 게 나타나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이외수 선생님 소설이라던가 하는 식으로 국내 소설을 읽으면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문장작법도 공부를 따로 했고요. 연출도 연화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이번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퀄리티를 뽑아내보자고 한 것인데, 내가 할 만큼은 했다는 기분입니다. 퀄리티는 전작에 비해 2배 이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노래는 외주 작업으로 진행했잖아요. 시드사운드와는 어떻게 연락이 되었나요?


예전에 게임 잡지가 나오던 시절에 한국 동인밴드 기사를 본 적이 있거든요. 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더듬어서 연락을 드렸더니 팀장님께서 흔쾌히 수락해주셨어요. 알고 보니 굉장히 유명한 곳이더라고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유명한 줄 몰랐어요. 그 쪽이랑은 협력관계에요. 저도 도와드릴게 있으면 도와드리고요.



▲ 꾸준한 앨범활동과 외주제작이 진행중인 인디그룹, 시드사운드



= 이번 작품은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인상적이었어요.


원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림에도 욕심이 많았으니까요. 전작과 지금은 캐릭터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번에는 그래픽 전부가 셀이에요.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서요. 게임 내에 애니메이션이 계속 나와서 단조로운 느낌을 줄이고 싶어서요.



= 일부에서는 사운드도 외주고 프로그램도 외주인데 1인 개발이라고 할 수 있냐는 이야기도 있더라고요.


일본에 방가드 프린세스라는 게임이 있는데, 제작자가 캡콤 출신의 엘리트에요. 그 분도 툴은 외부엔진 쓰고 사운드도 외주를 주고 해서 쓰는데 1인 개발자로 굉장히 유명하거든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했냐 안 했냐 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중요한 건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물건을 만들어 냈느냐 하는 걸 테니까요.



▲ 일본에서 1인 제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방가드 프린세스. 쯔꾸르 엔진에 외주 사운드로 제작되었다.



= 개발과정에서 힘들었던 점을 꼽아본다면.


전작인 라르기시모 때 일인데, 패키지를 포장하고 배송하는 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예약이 250건 들어왔는데 우체국에서 택배용 박스를 그만큼 사왔거든요. 예전에는 등기로 보내는 걸 몰라서, 책이랑 CD, 엽서를 일일이 다 넣고 포장했어요.

또 부산에는 지스타 처럼 중요한 IT엑스포라는 행사가 있거든요. 9월 달에 열리는 건데 작년에 내려갔을 때가 그 때였어요. 멀티미디어센터에 입주하고 있으면 거기에 출품을 해야 되는데, 홍보도 그렇고 준비도 저 혼자 다 해야 하니까 그럴 때는, ‘아 이게 혼자서는 힘들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죠.



▲ 그가 블로그에 올린 당시 사무실 사진. 이제는 우편등기로 보내서 이럴 일이 없다고.



= 만약에 나도 혼자서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다른 분들을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까.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있어요. ‘나도 한 번 혼자 해볼까?’ 그러면 말려요. 힘드니까요. 개발을 할 때 프로그램 지식이 부족해서 어렵고 이런 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이 힘들어요.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하잖아요. 옆에 사람도 없으니까 외롭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뒤를 봐주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단군신화에 호랑이랑 곰이 동굴에 있는데 호랑이가 뛰쳐나갔잖아요. 그 작은 동굴에 갇혀서 나가지도 못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호랑이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니까요. 능력이나 기술, 지능, 사업적인 문제를 떠나서 정신적인 문제가 가장 큰 것 같아요.

하지만 이렇게만 말하면 안되겠죠? 그래도 꿈이 있다면 한 번 도전해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사람이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아야죠.



= 한국에서 동인게임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작년에 일본 동인행사에 갔었는데 그 때 느낀 게 뭐냐면, 일본에는 정말 상품이 많구나. 우리나라 코믹월드에는 책이 대부분이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만화, 게임, 피규어, 상품 등 다양해요. 메인이 책이긴 한데 게임도 1/3정도 되더라고요.

작년 지스타에 출품했을 때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한 게임사 이사님이 흥미를 가지고 보았어요. 명함을 교환하고 2시간 정도 면담을 했거든요. 우리나라 컨텐츠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니까 신암행어사 이런 것도 알더라고요. 일본에 동인샵이 많다는데 후쿠오카는 작은 지역인데도 있냐니까 두 군데가 있다는 거예요.

코믹월드도 3~40대 참가자들이 굉장히 많은 일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문화 자체의 규모가 작죠. 그만큼 동인게임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하기도 힘들고요.

지금은 동인게임 만든다는 곳도 몇 군데 없잖아요. 큰 게임사에 들어가기 위한 포트폴리오 정도로 활용되니까요.



▲ 지스타 2009에 오프닝 영상을 출품하기도 했다.




= 지금 예약 중인데 반응은 어떤지.


관심은 많이 가져주고 계세요. 그런데 가격적인 부담이 조금 있으실 것 같아요. 들어가는 게 많긴 하지만요. 그래도 사실 적자가 나요. 이번은 사실 일종의 도박입니다. 예전처럼 만원, 2만원에 팔아서는 제작활동을 계속해나갈 수가 없으니까요. 만약에 이번에 그만큼 안 팔리면 깔끔하게 접어야죠.

지금까지는 반응이 썩 나쁘지는 않아요. 제가 만든 게임이라니까 이유 없이 예약해주시는 분들도 있고. 그런 반응을 보면 첫 번째 작품이 아주 황은 아니었구나 싶기도 하고요.



= 만약에 반응이 좋아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 된다면, 뭘 만들고 싶으세요.


슈팅게임을 만들고 싶어요. 횡스크롤로 캐릭터들이 중인공이 되는 애니메이션 형태의 슈팅게임을 구상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선은 인테르메디오 3부를 만들겠죠?



▲ 인테르메디오 프레스토, 한정판 패키지 구성물



※ 스튜디오 아인스 홈페이지

※ 인테르메디오 프레스토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