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스퀘어 한대훈 PD

한대훈 PD는 '스매싱 더 배틀', '오버턴 VR', '메탈릭 차일드' 등 여러 게임을 선보인 개발자다. 현재 액션스퀘어에 합류, 스튜디오 HD에서 신작 '던전 스토커즈' 개발을 이끌고 있다.

IGC 2024에서 한대훈 PD는 '왜 이 게임의 PD는 이런 선택들을 했을까?'라는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한 PD는 '던전 스토커즈' 개발 초기 사례를 들며 제작 과정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했다.

본 강연에 앞서 한 PD는 "실제로 경험하면서 얻었던 것을 가감 없이 말하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발표이니 이를 감안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게임사마다 디렉터(Director)와 프로듀서(Producer)를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번 강연에선 둘의 중간쯤에서의 경험을 전하겠다고 소개했다.

Chapter 1. PD는 무슨 일을 하는가?
▲ 대표적인 게임 PD 겸, 한대훈 PD가 존경하는 PD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에서 PD는 프로젝트의 비전을 제시하고, 약속된 기간 안에 완성을 위한 로드맵을 구성한다. 또한 개발을 같이할 개발자를 모으는 것도 PD의 중요한 역할이다. 이어 프로젝트 방향에 대해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프로젝트 밸런스를 맞추는 과정에서 PD는 일정에 집중할지 팀의 멘탈을 관리할지를 선택한다. 또는 팀을 크게 관리(팀 매니징)할지, 세부적으로 살펴볼지(마이크로 매니징)를 판단한다. 업무의 프로세스를 더 중요하게 보거나 신속한 결과물을 중시할 수도 있다. 이처럼 PD는 게임 개발의 여러 과정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한다.

한대훈 PD는 "세상에 리스크(위험)가 없는 선택은 없으며, PD는 그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던전 스토커즈' 개발팀 규모는 44명, 개발기간은 1년 9개월 차다. 한 PD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위해 PD가 해야 했던 일부터 소개했다. 먼저 만들 게임의 콘셉트를 회사에 제안하고, 마일스톤에 맞춘 개발팀 규모를 예측해야 하는 일 등이다.

회사를 설득할 때는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던전 스토커즈'의 경우 "마녀의 저주가 벌어지는 던전에서 보물을 찾고, 플레이어들의 갑옷을 부수고 처치해서 파밍 하는 게임"이라 설명하기보다는 "판타지 던전 타르코프"라고 설명하는 식이다. 회사의 결정권자가 PD가 만들고 싶어 하는 게임의 재미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게임은 그만큼 회사를 설득하기 어렵다. 이에 한 PD는 "인디게임의 존재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인디게임은 남을 설득할 필요가 없으니까"라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초기 '던전 스토커즈'는 1년 안에 1차 테스트 버전을 제작하고, 총 16명이 개발하기로 결정됐다. 한 PD는 "원래는 20명을 원했는데 16명밖에 고용하지 못했다"며 "목표 기간이 1년인 이유는 장르의 붐에 맞추기 위해서였다"라고 설명했다.


Chapter 2. PD로서 해야 했던 수많은 선택

과거 '인생극장'이란 예능 프로그램이 있었다.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내용이다. 한 PD는 인생극장처럼 '던전 스토커즈' 개발 과정에서 해야 했던 수많은 선택을 소개했다.

한 PD의 첫 번째 선택의 기로는 '어느 시장을 타겟팅할 것인가?'였다. 북미는 먼저 나온 게임이 이슈를 가져갔지만, 반면 아시아에는 해당 장르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에선 배틀로얄 장르가 인기였다. 아시아 개발자가 섣불리 북미 스타일을 하다가 큰일 날 케이스는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한 PD는 아시아 시장을 타겟으로 결정했다. 이후엔 화풍을 결정해야 했다. 먼저 제시된 화풍은 카툰풍이었다. 그러나 서브컬쳐 아트워크에 대한 대중의 기준은 장르를 통틀어 가장 높단 인식이 있었다. 또한, 국내에서 카툰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모델러 수급이 쉽지 않았다.

한 PD의 결정은 반실사풍이었다. '파이널 판타지14'처럼 반실사풍으로 캐릭터성을 살린 사례가 많았기에, 고증보다는 멋에 집중하기로 했다.

앞선 과정은 회사를 설득하기 위해 결정한 일들이다. 이제 팀원들을 설득하는 일이 남았다. 한 PD는 "팀원이 우리 게임은 뭐가 특별해요라고 물을 때, 딱히 없다고 하면 큰일 난다"며 "이제부터는 사기의 문제, 멘탈 관리에 관한 문제"라고 소개했다. 비슷한 작품이 나오더라도 우리 게임만의 특별함이 있기에 개발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 남겨야 할 것, 혁신할 것, 새로운 것으로 나눠 고민을 이어갔다(클릭 시 확대)

다음 선택의 기로는 하드코어와 캐쥬얼이었다. 해당 장르는 하드코어해야 재밌다는 의견과 너무 어렵기에 조금 캐쥬얼하게 만들자는 의견으로 갈렸다. 이 기로에서 결정은 한 PD 개인의 지론으로 갈렸다. '하드코어한 게임은 약간의 캐쥬얼함이 더해지면서, 대중에게 퍼진다'라는 것이다.

한대훈 PD는 "캐쥬얼하게 만들어도 중요한 것은 장르의 본질을 버리면 안 된다"라며 "쉽게 만든다고 해서 장르의 본질을 버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


방향성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어느 순간 PD가 없어도 개발이 가능해지는 순간이 온다. PD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다. 한 PD는 "PD가 없다고 해서 방향성이 이상하게 간다면, 기존에 전파가 잘 안 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때부터 PD는 뭐하냐는 질문에 한대훈 PD는 "더 큰 그림을 본다"고 답했다. 지인으로부터 애니메이터 수급을 의뢰하거나, 게임을 계속해 다듬는 것이다.

한 PD는 자신의 결정 중에 가장 잘한 것으로 "개발 초기부터 스팀(Steam)에 게임을 올려두어 팀원 누구나 플레이해 볼 수 있도록 준비한 일"을 꼽았다. 이는 폴리싱 과정에 큰 도움이 됐다. 폴리싱, 게임을 다듬는 일은 중간중간 계속하거나 후반에 몰아서 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한 PD는 마일스톤 단위를 3개월로 나누고, 마지막 2~3주는 폴리싱만 하는 구간으로 잡았다.

게임을 계속 올려뒀기에 폴리싱이 원활했다고 한 PD는 전했다. 팀원들이 자주 플레이를 해 퀄리티 체크가 가능했다. 한 PD는 "그 대신, 계속 게임이 돌아가는 상태로 만들어야 해서 프로그래머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며 "이 자리를 빌려 고생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중요한 선택 중 하나는 PC와 모바일 동시 개발이었다. 원래 '던전 스토커즈'는 PC와 모바일을 동시에 개발하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재미를 보여주기 위해 PC에만 집중하잔 의견과 고민 당시 경쟁작이 없는 모바일 버전을 제작하잔 의견으로 갈렸다.

한 PD는 당시 팀이 원하던 방향, 좀 더 제대로 된 장르의 재미를 제공, 모바일 시장의 홍보 비용에 대한 걱정, 스스로에게 더 친숙한 플랫폼 등을 고려하여 PC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 그 외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PD 앞에 놓여져 있다


Chapter 3. PD가 해야 할 마지막 설득

한대훈 PD는 마지막 설득으로 '게이머들을 설득하기'를 꼽았다. 지금까지 했던 선택이 게이머를 납득시키냐의 문제다. 게이머들의 피드백은 PD에게 어려운 문제로 다가온다. 대표적으로 '원거리 캐릭터가 너무 유리하다'라는 의견과 '근접 캐릭터가 너무 강하다'라는 의견의 충돌이다. 또는 라이트 유저를 위해 PVE 모드를 강화할지, 전투 시 호응도가 좋기에 PVP 발생 빈도를 증가시킬지 등이다.

후자의 경우 한 PD는 PVE 강화, PVP 강화 모두 선택하지 않았다. 오히려 MMR을 도입해 초보자와 숙력자가 각자 모이도록 했다. 그는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유저들은 '같은 수준의 장비'를 입은 사람들끼리 '공평'하고 '재밌는' 전투를 하길 원하는 거 같았다"라며 "그 결과 PVE와 PVP 모두 반응이 좋아지는 흐름으로 개선됐다"라고 소개했다.

이상적인 선택의 사례로 닌텐도 미야모토 시게루 PD의 말이 나왔다. "아이디어란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이란 격언이다. 눈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3의 선택을 결정하는 식이다. 한 PD는 "미야모토 시게루 PD 정도는 되어야 저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선택지까지 고민해야 하는 거 같다"고 전했다.

한대훈 PD는 "수많은 선택을 하고 후회하고 있을 모든 개발자에게 같이 힘내자 말하고 싶다"라고 마쳤다.


현장 질의응답

Q. 작은 개발사 입장에서 유저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노하우가 궁금하다.

한대훈 PD = 현재 '던전 스토커즈'의 경우 퍼블리셔가 있어서, 유저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도움을 받고 있다. 이전에 1인 개발자로서 활동했을 때에는, 나 역시 게이머이기에 게이머 입장에서 그들이 무엇을 원할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예전부터 SNS도 많이 하고 디스코드도 많이 활용했다. 지금도 가끔 글을 남기며 디스코드에서 게이머들과 별생각 없이 놀고 있다. 가끔 유저가 테스트 시작일을 물으면, "허허 그런 거 물어보시면 안 됩니다"라고 답하는 식이다. 말 그대로 정말 커뮤니티에서 놀듯이 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문제가 터지면 이게 다 돌아온다.

어쨌든 뭔가 선택을 한다면, 뭐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커뮤니티를 하지 않고 나를 숨기고 있는 것보단, 어떻게든 드러내서 유저들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두게 하는 게 좋다고 본다. 홍보라는 게 쌓이다 보면 어느새 닿는 거 같다. 유튜브에서 갑자기 알고리즘을 타듯이, 게임을 홍보하는 것도 비슷한 거 같다. 아, 모바일은 제외다. 모바일은 너무 돈의 논리로 돌아가는 거 같다.

인디게임이나 그런 게임들은 어느 한순간에 폭발하는 지점이 있는 거 같다. 천장을 치듯 유저들에게 퍼지려면 자잘한 거라도 좋으니까 뭐라도 하는 게 좋은 거 같다. 하다못해 개발팀끼리 밥 먹는다고 올리거나. 그러면 쌓인 것들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나올 거 같다.


Q. 테스트의 경우 테스터를 모집하는 게 중요한데, 어떻게 모집하셨는지 궁금하다.

한대훈 PD = 작은 규모에서는 사실 쉽지 않다. 저희 게임 같은 경우 스팀에서 하는 넥스트 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운이 좋아서 뭐지 탑텐에 들게 됐다. 한 1,300개 게임 중에 탑텐에 들게 돼서 그때 조금 이슈가 됐었다. 그런 스팀이라든가 플랫폼이 하는 행사 같은 데를 조금 잘 이용하면 좋다.

그쪽에 있는 유저들은 흔히 말하는 진성 유저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에 잘하던 게임을 버리고 데모를 하러 와주시는 분들은 보통은 일반 유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진성 유저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런 유저들을 우선 잘 잡아가서 그런 유저들을 좀 이야기를 좀 많이 나눈다면, "너 평소에 어떤 게임을 하는데 내 게임 하러 왔어"라고 하던가. 그런 식으로 좀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다.

사실 게임 유저들이 생각보다 착하다. 물론 무서울 때도 있는데 그냥 친근하게 얘기하면 잘 대답해 준다. 그런 것들을 힌트 삼아서 조금씩 조금씩 다가가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


Q. 설득할 때 주관적인 경험이나 객관적인 데이터 중 어떤 것을 더 활용하는지 궁금하다.

한대훈 PD = 슬프게도 내가 중요한 게 아닌 것 같다. 그런 대화를 할 때는 주관적인 대화를 원하는 사람, 객관적인 데이터를 원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갈린다. 나의 언어보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가 훨씬 더 중요한 거 같다.

경우에 따라 섞기도 한다. 주관적인 대화 두 방울에 객관적인 데이터 여덟 방울을 섞어서 나의 주관이 마치 객관적인 거처럼 말한다거나. 이 사람에게는 나의 소신이 먹히겠구나, 아니면 데이터가 먹히겠구나에 따라서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