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EWC가 프로게이머의 목표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크래프톤 "앞으로 IP 홀더들이 EWC를 자신들의 연간 중요 대회에 설정할 것"
ATU 파트너스 "e스포츠 종주국, 주도국 논쟁보다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문체부 "EWC 실리적 접근에 동감, 적극 대응하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EWC(e스포츠 월드컵)는 2024년 글로벌 e스포츠 산업에서 가장 이목을 끈 이슈 중 하나였다. 무엇보다 관심을 끈 것은 6천만 달러(약 836억 원) 이상인 총상금 규모였다. 오일머니의 힘으로 글로벌 e스포츠 산업 주도권이 기존 동아시아에서 중동으로 넘어갈 거란 해석도 나왔다.
27일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이 주최하고 국회 e스포츠 포럼이 주관한 토크 콘서트가 '사우디 e스포츠 월드컵의 모든 것'을 주제로 열렸다. 토크 콘서트에 김철학 한국e스포츠협회 사무처장, 박정무 ATU 파트너스 대표, 이영민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콘텐츠산업과장, 이민호 크래프톤 e스포츠 총괄, 이정훈 LCK 사무총장, 채정원 광동 프릭스 대표가 참여했다.
박정하 의원은 "사우디의 공격적인 e스포츠 투자가 세계시장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e스포츠 종주국인 우리나라는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준비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며 "여‧야가 협력하여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강유정 의원은 "우리나라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스포츠 강국, 그러나 꽃이 가장 화려하게 피었을 때가 곧 꽃이 시들기 직전"이라며 "우리 e스포츠도 마찬가지, 자본과 규모에서 사우디, 중국 같은 강자들에게 중과부적"이라 우려했다. 이어 "이럴 때일수록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길이 원칙이 필요하다"며 "e스포츠가 더 이상 아이들의 것이 아닌 성인들의 스포츠라는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기한 e스포츠 포럼장(서울대학교 교수)은 "사우디가 천문학적인 국부펀드 투자를 통해 전에 없던 e스포츠 국제대회를 출범, 올해 첫 대회를 치렀다"며 "사우디 등 중동 국가가 막대한 투자를 이어 나가는 국제적인 흐름에서 우리나라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우디는 왜 EWC에 집중했나
사우디 등 중동 국가가 e스포츠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에 대해 ATU 파트너스 대표이자 DRX 박정무 대표는 "실질적으로 그 나라들이 게임을 좋아한다"며 만수르 왕세자가 축구를 좋아해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한 사례를 들었다. 맨시티 사례에서도 나타나지만 중동의 왕족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나감으로서 산업적인 성과도 거둬들였다.
박 대표는 "사우디 자체가 젊고, 정책결정권자가 게임을 좋아하고, 오일머니 다음을 생각해 게임과 e스포츠에 투자한다고 생각한다"며 "오일머니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넥스트 스포츠' 개념으로 e스포츠에 될 수 있는 한 과감한 투자를 진행하는 거 같다"고 분석했다.
이민호 총괄은 "우리나라 평균연령이 45세인데 반해 사우디는 29세일 만큼 젊은 국가, 게임과 e스포츠에 맞는 환경을 갖추고 있다"며 "사우디 등 중동 국가들이 석유산업 이후에 필요한 인프라나 시스템을 갖추고 싶어하는데, 단순 포퓰리즘을 넘어 관련 신도시 구축, 글로벌 게임사 유치 등 청사진을 가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김철학 처장은 "이슬람 국가다 보니까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즐길 거리가 상당히 부족했는데, 그래서 게임과 e스포츠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며 "미래를 위한 청사진으로 적극적인 투자를 전개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지훈 젠지 단장은 "선수끼리는 옛날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e스포츠 오일머니가 들어오면 어떨까?'하는 말들을 했었는데, 현실이 됐다"며 "젠지는 EWC 전부터 사우디에 아카데미 사업을 하는 등 크게 투자를 했다. 게임과 e스포츠에 투자하는 사우디 왕족들이 자기네 나라에 재투자가 들어오는 선순환을 보며 만족하는 거 같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국내 한정 e스포츠 산업에서 글로벌적으로 큰 기회가 열리는 거 같은데, 게임단 입장에서 두 팔 벌려 환영한다"고 말했다.
DRX '무릎' 배재민 선수는 "국내는 메이저 게임 위주로 하고, 마이너 게임은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다"며 "EWC에 많은 종목과 상금이 걸려있으니, 마이너 게임에 있던 선수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발판이 생긴 거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은 마이너 게임 대회가 크지 않지만, 사우디에 가보니 오일머니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시설들을 보며 EWC가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어떻게 보면 EWC는 선수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기회, 앞으로 EWC가 프로게이머의 목표 중 하나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내다봤다.
여러 시각에서 본 e스포츠 월드컵
투자자 관점에서 박정무 대표는 "다양한 종목에 도전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캐쉬 플로우가 아주 뛰어나진 않았다"며 "EWC의 상금이 1등에 집중되어 있고, 클럽이 다양한 종목에서 포인트를 모으는 방식이어서 실질적인 이득은 없었다"라고 전했다.
DRX는 EWC에서 확보한 상금은 3.5억 원 정도다. 상금을 팀과 선수가 나누고, 그동안 준비했던 비용을 고려하면 구단이 흑자를 기록하는 데 기여한 정도는 미미하다. 박 대표는 "그래도 EWC에서 느낀 점이 많아 앞으로 DRX를 어떻게 운영할지 전략적으로 깊게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숲(SOOP)은 EWC에 팀으로서도 출전하고, 중계권을 확보해 관련 사업을 전개했다. 채정원 대표는 "국가대표가 아니라 여러 종목을 운영하는 클럽 단위로 순위를 정하는 방식이 특이하고 신선했다"며 "이는 클럽이 여러 게임 종목 팀을 창단하게 만드는 동기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EWC를 노린다면 앞으로 클럽이 게임단 운영을 위해 여러 종목을 창단하고 좋은 성과를 내려 하는 방향으로 운영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망했다.
중계권 사업에 대해 채 대표는 "e스포츠 팬이 다양한 종목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라 평가하면서도 "이전까지 비슷한 시도가 여럿 있었어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번 EWC는 단 1회 만에 브랜드를 각인시킨 거 같다"며 성공적이라 평가했다.
크래프톤의 이민호 e스포츠 총괄은 종목사로서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이 총괄은 "배틀그라운드 대회는 '로드 투 PGC'라는 연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EWC를 하나의 큰 대회로 편입해 성공적으로 운영했다"며 "이 과정에서 사우디 측과 큰 구상에 대해 얘기를 나눠왔다"고 운을 뗐다.
이 총괄은 "사우디 측은 이전에 '게이머스8'이란 대회를 운영했는데, EWC는 올해 처음이지만 이전 대회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 노력했다"며 "사우디 측은 굉장히 어려웠을 여러 IP 홀더(배틀그라운드의 크래프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라이엇게임즈 등)와 조율을 성공적으로 해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프로팀과 협업하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이 총괄은 "이것은 단순히 자본과 열정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라며 "글로벌 e스포츠 산업 상황 자체가 빙하기로 접어들 무렵에 적극 투자함으로써 사우디가 의지를 보여준 거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앞으로 IP 홀더들이 EWC를 자신들의 연간 중요 대회에 설정하지 않을까"라고 전망했다.
이민호 총괄은 EWC의 존재가 게임사의 부담을 나눠준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e스포츠는 게임사의 적극적인 투자로 이뤄지는 만큼, 그만큼 부담도 심하다. 이 총괄은 "e스포츠가 자체 생존력을 갖추는 게 숙제인데, 이러한 부담을 나눠주는 주체가 있고 생태계를 고민하는 파트너가 생겼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우디가 e스포츠에 투자하는 것을 지켜보면 '이 정도까지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적극적이다"라며 "단순히 왕족이 인기를 위해서 일회성으로 하는 게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이정훈 LCK 사무총장은 "리그 오브 레전드는 전 세계 다섯 개 지역이 촘촘한 일 년 계획을 실행 중이기에, 앞으로 EWC의 일정을 어떻게 조율할지 현재 확답하기 어려우나 협의를 통해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최근 게임단이 시장에 한계를 겪고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많은 투자가 들어와 숨통이 트인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e스포츠협회 김철학 사무처장은 "꼭 EWC가 아니더라도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생각하면 지금이 e스포츠 산업의 변곡점이라 생각된다"며 "우리가 e스포츠 종주국이나, 종주국에 취해있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며 주도국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민 문체부 게임과장은 "정부는 한중일 e스포츠 대회 등 여러 국제 경기를 지원하지만, 종목사에서 IP를 갖고, 예산상으로도 한계가 있어 EWC와 같은 대회로 대규모 확대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라며 "현재 문체부는 우리나라가 e스포츠 종주국으로서 입지가 흔들리는 건 아닌지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앞으로 좋은 종목이 우리나라 게임사에서 나오고 우수한 선수가 배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편으론 사우디 측과 협력관계를 공고히 해서 우리나라 게임과 선수가 국제대회에 진출하는 데 있어 좋은 외교적 환경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EWC 같은 대회 마련보다,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국가 단위에서 e스포츠 헤게모니 확보는 인력과 자본이 몰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을 위해 박정무 대표는 "이제는 종주국이나 주도국이란 단어의 의미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며 "사우디가 EWC에 쓴 금액이 2억 불(약 2,786억 원) 정도라 알려져있다. 우리나라로선 엄청난 금액이지만 사우디 정부가 운용하는 새비게이밍이 배정된 게 50억 원 정도, 1%만 써도 5천억 원이니 이자만으로도 EWC를 커버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박 대표는 정부 차원에서 e스포츠 산업, e스포츠 대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림픽, 월드컵, 엑스포 유치처럼 e스포츠 산업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관점에서 보면 2억 불로 헤게모니를 아주 잘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우리나라가 EWC와 같은 규모의 대회를 지금 만들기란 어렵다. 박 대표는 "투자자 관점에서 보면 종주국, 주도국를 고민하기보다 실질적으로 EWC 측과 빠르게 협업할 고민을 해야 한다고 본다"며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대하듯 우리나라가 유치할 것은 유치하면서 전폭적으로 협업하는 게 지금으로선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본다"고 의견을 냈다.
채정원 대표는 "민간이 투자한다고 해서 대규모 대회를 운영하긴 힘들다. 그렇지만 정부 차원에서 보면 큰 금액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그런 자금이 투입되어 e스포츠 생태계가 순환되길 희망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다만, e스포츠 산업 종사자가 모두 바라보는 곳이 다를 수밖에 없기에 이들을 하나로 묶을 기관이나 의사결정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영민 게임과장은 "우선 문체부는 사우디 정부나 IOC 등 국제기구와 협업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며 "e스포츠 대회가 점점 글로벌 메가 이벤트화되어 가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이 계속된다면 정부 차원에서도 유치에 관심을 갖고 검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박정무 대표는 정부 모태펀드 투자 대상에 e스포츠 산업을 추가하고, e스포츠 아카데미가 수출될 수 있도록 도와주길 희망했다. 현재 e스포츠 구단의 고민은 자금이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박 대표는 모태펀드 자금이 e스포츠 산업에 들어온다면 구단도 새로운 투자를 진행할 수 있을 거라 전했다. e스포츠 아카데미는 우리나라가 선진 시스템을 갖고 있다. 박 대표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우리 e스포츠 아카데미 시스템이 중동에서 협업할 수 있길 바랐다.
김철학 처장은 고민을 털어놨다. e스포츠가 하나의 산업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게임사의 마케팅 활동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다. 김 처장은 "우리 스스로가 e스포츠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보고 있지 않나, 그래서 e스포츠 산업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는 틀에 갇힌 거 같다"며 "e스포츠에 대한 혜택이 다소 부족한데, PC방이 e스포츠 시설로 인정받거나, 게임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도 매력적인 혜택이 부족하다. 정부에서 e스포츠에 대한 권리와 혜택을 부여하고 의무를 다하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정훈 사무총장은 "확실히 e스포츠를 독립된 산업으로 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서 e스포츠 산업을 진흥시키려고 해도, 왜 외산게임을 진흥시키려 하냐는 비판이 나오면 한계가 있다"고 의견을 냈다. 예로 프로게이머가 하는 e스포츠 LCK와 일반 유저가 즐기는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e스포츠 산업과 게임산업으로 구분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EWC를 보면 주최 국가인 사우디의 게임이 하나도 없다"며 "EWC의 목표는 그런 게 아니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이민호 총괄은 "사우디 국부펀드가 언제까지나 e스포츠에 투자할 거라고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가 종주국이란 키워드에 매몰되기보다, 실리적으로 접근한다면 제 위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이어 "전 세계 e스포츠 판에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불편한 게 없을 정도로 리스펙(존중)받는 게 우리나라, 이것을 중요한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민 과장은 "지난해 롤드컵을 본 유인촌 장관이 매년 이 대회를 우리나라에서 했으면 좋겠단 말을 했다"며 "e스포츠에 실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에 동감하며, 문체부가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