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이 찐찐막' 단계까지 플레이를 유도하는 건, 영리한 게임 디자인이 있기에 가능했다. 턴이라는 선택 기간은 마치 쪼개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한 턴, 또 한 턴의 행동이 모여 거대한 결과로 이어진다. 사실상 턴은 거대한 게임 플레이 흐름에서 잠깐의 휴식 정도다. 그리고 '문명' 시리즈에서는 그 거대한 흐름이 인류의 역사와 맞닿아 인류사를 새롭게 그려낸다.
게임에서는 잠깐 잠깐 쉬면서 플레이하지만, 플레이어는 사실 수천 년의 문명과 인류 역사의 진화를 함께하고 있다. 아니, 그 변화가 다음 턴에 어떻게 바뀔 지 모르는데, 어떻게 지금 여기서 게임을 멈출 수 있겠나.

'문명7'의 변화 예고는 그래서 꽤 충격적이었다. 시작부터 엔딩까지 하나로 길게 이어지는 게임의 흐름은 이제 고대-대항해-근대 시대로 강제로 나뉜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문명의 이야기는 시대마다 다른 문명으로 변경해야 한다. 사실상 지금까지의 '문명'에서 핵심이라고 불리는 틀을 깨는 변경이다. 방대한 역사는 쪼개지고, 선택한 문명의 몰입은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출시 전 있었던 3시간의 사전 프리뷰 플레이에서도 그 부분이 우려됐다. 적응도 쉽지 않아보였고.
그런 여러 걱정 속에 진행한 리뷰 빌드 플레이 수십 시간.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분명한 건, '문명7'은 '여전히 문명'이더라.

장르명: 4X, 시뮬레이션
출시일: 2025.02.11.
리뷰판: 출시 빌드개발사: 파이락시스 게임즈
서비스: 2K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간편하게
건설자 없애고 마을 만들고
'문명'에서 플레이어의 이야기는 길게는 반 만년 이상, 수 천년의 시간을 달려간다. 정말 긴 플레이 구간을 성장하고, 확장해나간다. 그리고 정착지 하나에서 시작한 문명의 영토는 대륙을 덮고, 신대륙으로 확장해, 끝내는 전 세계 곳곳으로 퍼진다. 문화든, 과학이든, 영토 확장 전쟁이든, 문명의 성장은 내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는 기쁨을 준다.
문제는 그 기쁨만큼이나 방대해진 제국은 직접 관리해야 할 수많은 불편함과 맞닿게 된다는 점이다. 모든 도시의 건설을 관리하고, 철도를 놓고, 지역 곳곳에 건설자를 보내 도심 외곽의 건물을 건설해야 한다.
'문명6'에서는 서로 인접 보너스를 가지는 특수지구의 존재까지 더해졌다. 게임 후반의 특수지구 선택과 좋은 정착지의 중요성까지 생각하면 게임 초반 단계부터 이걸 고려해야 했다. 초반에는 재미있지만, 게임 후반으로 가면 엄청난 반복과 귀찮음으로 작용한다는 걸 문명 플레이어라면 이미 잘 안다.

'문명7'의 변화는 게임 곳곳에 뿌리내린 복잡함을 적출하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도시 개념의 변화와 건설자의 삭제는 그런 간편함을 가장 상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다.
이제 정착지 영토 확장은 도시의 성장과 비례한다. 처음 정착지를 건설하면 정착지를 중심으로 6개의 타일이 기본 영토로 주어진다. 이후 식량에 따라 인구가 1명 늘어날 때마다 1개의 타일을 선택하면 해당 타일을 발전시키고, 주변 타일이 추가로 내 영토로 들어오게 된다.
즉, 인구 성장, 타일의 발전, 영토 확장을 식량 증가만으로 달성할 수 있다. 당장 '문명6'만 해도 식량으로 도시의 인구를 성장시켰지만, 타일 확장은 문화가 담당했다. 이번에는 식량은 성장, 문화는 사회제도 연구와 이어진다. 자원 쓰임새가 직관적으로 변경된 셈이다.

'인구 성장이 곧 확장과 건설'로 이어지니 자연스럽게 건설자는 필요가 없게 됐다. 특수한 건물도 도심의 노동력을 활용해 타일 위에 직접 건설한다. 그렇다고 특수 지구처럼 건물 여러개를 쌓아 짓는 방식은 아니고 한 타일에 최대 두 개까지 건물을 짓는다.
건설자는 주도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유닛이었다. 이게 게임 초반 이런 저런 건물을 지으며 소위 조작의 요소였는데 사라지니 '문명7'의 초반은 참 심심해졌다. 정찰 유닛 돌아다니는 게 전부가 되었다.
하지만 후반을 생각하면 다르다. '문명' 시리즈의 후반은 귀찮을 정도로 할 게 너무 많다. 수많은 영토 관리의 굴레에서 건설 횟수 제한 있는 건설자 만들 필요 없고, 이동 안 시키는 것만으로도 게임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건설자의 삭제는 사실상 게임에 불필요한 플레이어의 노동 삭제와도 같다.

제국 관리의 편리함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도시'와 '마을'의 분리로 이어진다.
처음 건설하는 정착지인 수도를 빼면 모든 정착지는 기본적으로 마을이다. 이게 역할부터 다르다. 도시는 건설과 생산이 가능하지만, 마을은 자원만을 획득한다. 인구 증가에 따라 똑같이 확장하지만, 식량은 도시로 보내고 생산력은 금으로 바뀐다. 건물과 유닛은 금화로 구매만 가능하다.
생산이 빠진 마을의 역할은 도시의 지원이다. 건설 대기 비었다고 턴을 넘길 때마다 빈 마을로 강제 전환해 시간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그저 마을이 식량, 생산력, 확장 등 어떤 역할에 집중할지만 선택해두면 된다.
도시에서만 지을 수 있는 건물도 있으니 성장 잘 된 마을이나 전진기지 위치의 마을은 도시로 금화 내고 바꿀 수 있다. 매 턴마다 집중할 도시 몇 개만 관리하면 되는 구조다.

직관적인 자원 사용, 내정의 간편함은 게임의 간단함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이게 '문명7'의 첫 번째 핵심이다. 그리고 이 방향으로의 변화는 전투도 비슷하다.
이제 유닛은 따로 경험치를 먹지 않는다. 대신 장군의 역할을 하는 군단장(바다에서는 전단장)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투 질이 달라진다.
전투력이 없는 군단장은 주변 유닛을 통솔하는 장군에 가깝다. 주변에서 펼쳐진 전투의 경험치는 몰아먹고, 이걸로 레벨을 올려 스킬을 찍어줄 수 있다. 스킬 종류도 전투 집중, 유닛 이동, 지역 성장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해 전략적으로 고민해볼 만하게 설정됐다.
여기에 최대 6개의 유닛을 실을 수 있는데, 특성 잘 찍으면 지형 무시하고 더 빠르게 유닛들을 수송한다. 꼭 전투 유닛이 아니어도 실을 수 있어 빠르게 전장으로 유닛을 보내기도, 개척자 같은 비전투 유닛을 호송할 수 있다.


관리할 유닛의 수를 줄일 수 있으니 턴 넘기기 전에 쓸 데 없이 유닛 대기 시키느라 화면 전환하는 게 확실히 줄었다. 물론 게임 후반부에는 유닛이 늘고, 도시가 많아지면 여전히 귀찮을 정도로 턴 넘기기를 눌러야 하지만.
평등, 혹은 치열하게
시대 변화가 만든 전략적 선택
세 번의 시대 변화는 '문명7'의 핵심이다. 팬들에게는 문명 변화가 더 주목(같은 걱정)을 받았지만, 사실 파이락시스 게임즈가 강조했던 부분은 이쪽이었다. 시대 변화는 사각 타일에서 육각 타일로의 변화만큼 중요한 것으로 강조됐고, 게임에서도 이 시대 변화가 게임의 플레이의 방향성을 뒤집었다.
처음 고대 시대로 게임을 시작하면 대항해시대, 이후 근대 시대로 두 번의 시대 변화를 겪는다. 이 시대 변화는 일종의 소프트 리셋에 가깝다.
시대별로 과학과 사회 제도도 나뉘어있고, 새 시대가 되면 그 시대에 맞는 기술을 다시 처음부터 개발해야 한다. 전투 유닛도 일부만 남기고 사라지며, 일부 건물은 시대가 지난 것으로 간주되어 보너스가 제거된다.

4시간 정도만 플레이했던 프리뷰 단계에서는 이런 변화가 사실 하드 리셋에 가깝게 느껴졌다. 이전 시대에 쌓아 놓은 것을 마치 빼앗아 가듯 없애버린다? 그렇다면 고대, 대항해시대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동기가 무엇인가? 어차피 다 없어지면 근대만 플레이해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 게임을 여러 번 플레이할수록, 오히려 더 전략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스템이라는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저 앞뒤 가리지 않고 얼마나 잘 키우느냐뿐만 아니라, '얼마나 잘 남기느냐'까지 고민해야 하는 게임이 된 것이다.
중요하게 볼 건 시대 초월이다. 시대 초월은 말 그대로 시대를 초월하는 것들로 다음 시대로 넘어가도 그 효과가 유지된다. 건물은 그 보너스가 그대로 유지되고, 특별한 효과를 지닌 불가사의도 시대 초월 특성을 가졌다. 문명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사회 제도 특성인 전통도 유지된다.

당장 유닛을 잔뜩 뽑아 군사력으로 도시를 밀어도 되지만, 그 사이에도 시간은 흘러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유닛이다. 그보다는 다음 시대에도 역할을 다하는, 시대 초월 건물을 하나 더 짓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거다. 그러면 시대가 바뀌고, 많은 것이 초기화되더라도 다른 문명보다 앞서 성장할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렇다면 시대가 바뀌면 효과를 잃는 건물은 지을 필요가 없을까?
몇 번 게임을 해보면, 해당 시대에 맞는 건물을 적절히 건설해야 한다는 점이 보인다. 한 시대 내에서는 시대 초월 건물보다 훨씬 효과적인 건물도 있으며, 시대 초월 특성이 도시 성장 방향에 따라 크게 필요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 변화와 고민의 단계에서 개발진은 자연스레 골드의 가치를 높였다. 마을은 생산이 불가능하지만, 대신 생산력을 골드로 바꾼다. 그리고 골드는 건물과 유닛을 사고, 마을의 생산력을 더 높이는 데 사용된다.
시대가 바뀌어도 정착지는 남으니 많은 마을을 보유하면 골드를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 이걸로 성장을 하든, 유닛을 뽑든, 더 높은 자유도를 가진다. 그렇다고 또 전작들처럼 무한 확장을 장려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착지의 한도가 있기 때문이다.
정착지는 한도를 초과하여 건설하거나 점령할 수 있다. 대신 한도를 넘으면 행복도가 떨어진다. 게임 후반에야 행복도 높일 방법이 많지만, 대항해시대까지만 해도 행복도 신경 못 쓰면 마을 생산력이 떨어진다. 또 행복도가 쌓이면 축제가 열리는 데 축제마다 정책 슬롯을 하나씩 열어준다.
효율적으로 사용한 정책은 마을 한두 개 이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선택의 영역이지만, 정착지 한도 내에서 착실하게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고, 무한 확장을 통해 골드를 확보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다.

시대 전환은 한 문명이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일종의 과속 방지턱 역할을 한다. 격차를 벌리고 싶어도 시대가 바뀌면 어느 정도 비슷해지고, 시대에서의 플레이 특징도 달라진다.
강제적인 초기화와 시대별 역할의 변화. 이는 4X 게임이라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느슨한 후반부 경쟁을 최대한 늦추도록 설계된 요소다. 그러면서도 강화 요소를 다양하게 제공해 경쟁 우위를 전략적으로 고민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시대 구분을 세 개로 나눠놓으며 시대를 초월한 재미는 사라져버렸다. 바다로 항해해 새로운 대륙으로 나아가는 요소는 대항해시대부터 가능해진다. 신앙, 종교 전파도 이때만 가능하다. 철도, 폭격기, 인공 위성 발사 등의 활용은 근대 시대에 도달한 후 과학 발전 후 쓸 수 있다.
핵폭탄을 중세 유닛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시대 초월 전쟁은 더는 없다. 물론 이러한 모습은 전략성, 시대 통일성이라는 현실성과는 분명 동떨어진 부분이다. 하지만 '문명'의 특징으로 자리 잡은 요소기도 하다. 전략성 강화에는 어울리지 못해 떨어져 버린 모양새다.
나아가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긴 하지만, 결국 시대 전환은 강제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다. 진행 중이던 전쟁, 과학 발전, 불가사의 등의 요소가 시대의 종료와 함께 모두 사라지는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시대 말미에는 추가적으로 강제적인 재난 상황이 발생한다. 재난은 이걸 우선 해결하기 위한 강제적 소강 상태마저 초래한다.

운보다 실력으로
랜덤함의 재정의
시대 구분처럼 전략적인 플레이를 위한 기반을 여럿 새롭게 변경했다. 기존의 랜덤한 플레이 요소를 그대로 유지했다면, 이러한 전략적 계획이 어그러졌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문명7'의 변화는 랜덤성의 축소 역시 함께 그렸다.
자원의 역할을 바꾸며 초기 정착지의 자원 타일 효과는 줄었다. 문명의 자원은 정착지에 직접 배치해 생산 증가나 행복도 추가처럼 직접 효과를 준다. 대신 어디에 정착지를 짓든, 식량이나 생산력 등의 자원 차이는 크지 않다. 몇몇 특수 문명을 제외하면 소위 '운빨'을 덜 받게 됐다.

자원이 없는 정착지와 있는 자원의 차이가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특히 부족 마을이 주는 효과도 랜덤한 자원이나 기술을 지급하는 방식에서, 플레이어가 선택하여 합리적인 자원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물론 부족 마을 효과는 정찰자 안 돌리고 가만히 있는 것보다 훨씬 나은, 충분한 자원을 주긴 한다. 하지만 이제 누구는 유물 하나를 공짜로 주고, 누구는 경험치를 주는 식의 차이가 생기진 않는다.
좋은 효과를 가진 불가사의를 짓기 위해 생산력을 집중하는 전략도, 불가사의 효과를 조정하는 방향에 조금은 달라졌다. 이제 자연스럽게 좋은 위치에, 좋은 효과의 불가사의를 지어 빠르게 달려나가는 상황이 전보다 줄어들었다.
시대 구분으로 게임 중반 벌어진 성장 차를 압축해 경쟁을 치열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애초에 운 좋은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성장이 크게 벌어지는 상황 역시 막는 식이다.

운 요소를 줄인 비슷한 성장. 이걸 시대 구분은 전략적인 플레이 방법으로 해결한다면, 유산의 길은 치열한 경쟁에 따른 보상으로 문명간 차이를 벌리도록 한다.
유산의 길은 일종의 퀘스트다. 문화, 군사, 과학, 경제 등 네 개로 나뉘고 서로 다른 목표를 가진다.
초반에는 일종의 가이드처럼 느껴질 요소다. 불가사의 건설, 정착지 확장 등 게임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혹은 따로 챙겨가며 하나하나 달성하면 다음 목표가 주어지는 식이다. 이렇게 임무를 달성하면 유산 점수를 획득하며, 이는 새 시대로 넘어갈 때 특별한 효과를 제공한다.
간단한 문명 효과를 제공하는 스킬과 유사한 속성 포인트로 변환되기도 하고, 때로는 시대 초반 성장에 큰 역할을 하는 유산 선택지를 제공한다. 특히 한 부류의 유산의 길 끝에 도달하면 황금기를 맞이하며 보다 강력한 보너스가 주어진다.
유산의 길은 고대-대항해 시대에서는 필수는 아니다. 하지만 새 시대에 특별한 능력을 주는 만큼 분명 신경써야 할 요소다. 여러모로 다양한 방법으로 평균적인 게임 플레이 격차를 조정하고, 문명 간 차이를 벌릴 시스템을 구축한 셈이다.
여기에 마지막 시대에서는 이 유산의 길 최종 목표가 인공 위성 프로젝트처럼 게임 승리와도 직접 연결된다.


시대 변화에 따른 문명의 변화 역시 이러한 방향성을 고려하면, 도입 의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문명7'의 고정된 지도자와 문명 변화 시스템은 자칫 '문명' 시리즈의 핵심 요소를 흔드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역사 속 실존 인물인 지도자가, 출신인 특정 문명을 대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게임플레이 부분에서만 보면 이러한 문명 변화는 다채로운 플레이를 만들어내고 있다.
시대 초월인 문명의 특수 사회 제도 전통, 불가사의, 특수 건물 등은 새로운 문명을 선택하며 시대마다 얻을 수 있다. 나아가 문명의 특색도 다음 시대 플레이의 방향성에 맞춰 변경할 수 있는 요소로 그려진다.
예를 들어 내 문명이 강가 주변에 정착지를 다수 뿌렸다면 다음 문명에서는 강 효과를 지닌 문명으로 보너스 효과를 더 볼 수 있다. 이전 시대에 공격 당한 복수를 위해 활용도가 높은 전투 특수 유닛을 지닌 문명으로의 교체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시대 전환 시점 이전부터 계획하면, 하나의 시대를 일종의 빌드업 구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시대, 변화하는 문명이 게임 플레이의 다양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지도자에 따라 선택 가능한 다양한 문명이 있으니 빌드 자체는 이전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문명의 변화는 우려했던 것과 달리, 플레이하는 지도자에 따라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어쨌든 다양한 문명 조합을 전략적인 빌드의 다양성으로 접근하면서 이런 저런 시도를 계속 하기 때문이다. 내가 플레이하면서 왜 어떤 문명을 선택했고, 또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조합이 완성됐는지 다 겪고 이해한 나의 이야기기도 하고 말이다.
'미국 문명의 공자' 같은 조합은 초반 몇 시간 동안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이걸 깎아나간 빌드의 하나로 접근해나가기 시작하면, 시각이 달라진다. 물론 이게 게임을 수차례 반복하며 문명 변화와 플레이의 어색함이 덜어진 이유도 있을 것이지만.
변화와 정체성
문명7은 문명인가
내 문명의 변화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다지만, 외교로 만나는 문명과 지도자의 조합은 여전히 어색하다. 시대별로 모든 지도자에 딱 맞는 문명이 존재할 수는 없으니 결국 여러 시대를 플레이하면서 수많은 지도자와 문명의 이색 조합이 눈에 들어온다.
게임에서는 문명의 이름을 덜 강조하고, 외교 창에서도 지도자를 중심으로 소개하여 이러한 조합의 어색함을 완화하려 했다.

사실 문명의 변화보다는 플레이 내에서 느껴지는 변화가 더 크게 와닿는다. 앞서 설명했듯, 시대의 변화는 전략성을 강화하고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반대로 극적인 재미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문명7'의 전략적인 플레이는 조금씩 남들보다 앞서 나갈 길을 찾는 데 있다. 더 효율적인 빌드, 내 지형에 맞는 문명과 특성. 여기에 쉽게 쉽게 플레이하려면 별로 눈에 띄지 않지만, 제대로 접근하면 이전 작품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게 고민해야 하는 인접 보너스 정도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전 문명 시리즈는 성장의 격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오는 '압도의 재미'가 있었다. 이번에는 그 최대치를 낮춰, 긴 게임의 끝 무렵에야 그 차이를 체감하도록 설계했다. 후반에도 차이를 느끼기보단 끝까지 승리 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먼저 달려가야하는 경쟁이 이어지기도 하고.
뭐가 더 재미있는지는 개개인의 차이지만, 분명 재미의 접근도 게임만큼 일부 달라지게 됐다.



거의 10년 만에 출시되는 게임인 만큼, ‘문명7’의 그래픽과 사운드에 대한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 문명을 변경할 때마다 서로 다른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며, 이전에는 없던, 보는 재미를 만든다. 또 연휴 기간 스팀덱을 들고 다니며 플레이했는데도 메모리 문제로 게임이 터지는 이전 작품의 경험은 없었다.
PC 성능은 권장 사양을 크게 웃돌아 직접 확인하기 어려웠지만, 스팀덱에서 원활하게 플레이되는 것을 보면 최적화에 대한 걱정은 덜어도 될 듯하다.
하지만 스팀덱에서의 UI는 아쉬운 수준이다. PC에서도 많은 정보를 담아내고 있기에 이 작은 화면에 모든 정보를 담아내는 게 어렵긴 했을 테지만, 그럼에도 여러 메뉴가 다른 메뉴를 덮어버리는 건 아쉽지 않다 할 수 없다. 따로 데스크톱, 콘솔, 휴대용 화면 옵션을 만들어 놓은 걸 보면 이에 대해 신경을 쓰긴 썼는데 그게 만족스럽지가 않다.

정보 제공도 부족하다. 건설이나 실행 불가 상황에서 왜 안 되는지 직관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게 너무나도 많다. 정확한 수치도 마찬가지. 4X 역시 경영과 관리의 영역이 포함되기에 명확한 정보의 부재로 대충 처리할 수밖에 없는 진행이 많다.
문명도 수 자체는 넉넉할지 모르지만, 시대별로 문명이 나뉘어 있어 숫자가 많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지도자 선택도 그렇고 이전의 문명 시리즈처럼 DLC나 확장팩이 나와야 더 재미있게 즐길 게임처럼 느껴진다. 특히 근대 시대가 폭격기, 인공위성 발사 즈음에서 끝나버리니 '문명6'와 비교하면 급하게 게임이 끝난다는 느낌도 종종 받게 된다. 추후 그 뒷 시대가 추가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대형 이상의 맵크기도 없고.
이런 부분은 굳이 문명스러움을 따르지 않아도 됐을 텐데.

아마 저 자리가 DLC와 확장팩으로 채워지겠지?
어쨌든 그럼에도 '문명7'은 분명한 문명이다. '문명5', '문명6'에서 각각 좋은 평가를 받았던 부분은 남기고, 어렵거나 불편한 부분은 단순화했다. 기본적인 UI 역시 시리즈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스템 부분에서 큰 변화가 가해졌지만, 기본 플레이에서는 이질감 적게 게임을 도전해볼 수 있는 셈이다. 그렇게 실패하고,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며 적응할 수 있도록 했다.
근간은 유지하고, 핵심은 바꾸며, 특징은 살렸다. 이건 좋은 후속작의 법칙이다. 물론 '바꾼 핵심'이 취향에, 혹은 감정적으로나 플레이 내적으로 순응하기 어려울 수 있는 것도 분명하지만.

재밌는 건 이 어색함 속에서도 내 문명의 발전과 미래를 그리며 한 턴 더 플레이한다.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제목에서 '잠깐 플레이했는데 93시간을 해버렸다'는 낡은 밈을 쓰긴 했지만, 이건 유머가 아니라 실제 경험이다. 엔딩 보고 부랴부랴 리뷰 쓸 시간도 부족한 게 보통인데 이렇게 많이 플레이했는 줄은 사진을 정리하면서 알았다.
그렇기에 '문명7'은 더없이 '문명'이다. 그리고 아직은 더 발전할 거리가 남은, '넘버링 초기의 문명'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