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프로토타입을 개발할 자금조차 없이 허덕이던 체코의 개발자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겨우 출시한 '킹덤 컴: 딜리버런스'가 바로 그런 게임이었다. 환상적인 요소는 철저히 배제한 채, 자신들의 땅에서 펼쳐졌던 진짜 이야기이기도 한 보헤미아 왕국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풀어냈다. 몇가지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국 이 게임은 누적 6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전 세계에 '체코의 게임'을 각인시켰다.
그리고 워호스 스튜디오는 또 다시, 자신들이 꿈꿔온 방향으로 후속작을 완성해 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 사실성, 자유도, 그리고 더욱 풍부해진 시네마틱 연출과 함께.

장르명: 오픈 월드 RPG
출시일: 2025. 2. 5.
리뷰판: 리뷰용 빌드개발사: Warhorse Studios
서비스: Deep Silver, Plaion
플랫폼: PC, PS5, Xbox
플레이: PC(Steam)
"당신은 영웅이 아니다"
사회 규범과 선택에 따른 결과가 쥐어주는 '자유도'의 의미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은 '킹덤 컴: 딜리버런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게임에서 선보이는 모든 자유도는 바로 이 점을 근간으로 그 가지를 뻗어나간다.
이 게임 속 세상, 1403년 보헤미아 왕국에서 플레이어는 정확히 말하면 '아무도 아니다'. 습격으로 폐허가 된 마을 대장장이의 아들이자, 알고 보니 영주의 사생아였을 뿐. 주인공 헨리에게는 세상을 구해야 할 막중한 임무도, 또 평범한 사람을 벗어난 특출한 능력도 없다(퍽을 얻기 전까지는).
아버지의 검을 되찾겠다는 사명으로 모험을 떠나기 전 그와 마찬가지로, 중세 시대 평민의 삶은 아주 단순하다. 현대와 비교해도 그리 다르지 않다. 사적인 공간에 모르는 누군가가 침입하는 것을 반기지 않으며, 특히 그 누군가의 행색이 초라할 경우에는 불쾌감을 대놓고 드러낸다. 영웅이 아닌 여러분은 아무 집이나 들어가 항아리를 깨부수며 아이템을 획득할 수 없다. 그랬다간 경비병에게 붙들려 광장 처형대에서 조리돌림을 당하고 말 테니까.

이렇게만 들으면 세상의 모든 규율에 속박된 삶을 살아야만 할 것 같지만, '킹덤 컴: 딜리버런스2'는 오히려 이러한 '규칙' 아래에서 오는 자유도를 굉장히 자연스럽게 쥐어주고 있다. 당신은 영웅이 아니고, 그렇기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것이 선행이든 악행이든 상관이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조차 자신의 선택이 된다. 어쨌든 해는 지고, 또 새로운 날은 시작된다.
사이드 퀘스트 진행에도 이런 '자유도'는 세심하게 녹아들어 있다. 한 가지 사례로 게임 초반에 가게 되는 마을의 여관에서 벌어지는 쿠만인 손님과의 갈등이다.
쿠만인은 보헤미아 왕국을 침략한 지기스문트 왕이 고용한 일종의 용병으로, 주인공 헨리의 고향을 초토화시킨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자연히 그들에 대한 보헤미안인들의 시선은 나쁠 수 밖에 없고, 결국 이들과 갈등이 번져 술집 난투극이 시작되는 게 사이드 퀘스트의 핵심이다.
헨리는 여관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쿠만인과 마을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할 수도 있으며, 또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다가 아니다. 헨리가 그 여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시간에 따라 퀘스트는 흘러간다는 것.
여관을 방문하지 않고 며칠을 보내다 보면, 어느 샌가 피떡이 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걸어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침내 가 보면 여관 주인이 “큰 싸움이 있었는데 어디서 뭘 했냐”고 따져 묻는다. 플레이어는 영웅도 아니고, 이처럼 때로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렇게 '킹덤 컴: 딜리버런스2'의 자유도는 당시 사회 규범에 따른 제약,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른 구체적인 결과가 함께 공존하는 형태로 구축됐다. 주어진 역할에 몰두해 메인 퀘스트만 끝내고 싶다면 그래도 되고, 그저 여관을 전전하며 술만 진탕 마셔도 상관 없다(알콜 중독자가 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겠지만). 아니면 옆 마을 대장장이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팔면 하나에 3그로셴 쯤 받을 수 있는 편자를 만들어다 용돈을 벌 수도 있고.
그리고,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자유는 게임 속에서 다시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특정 퀘스트의 결과가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플레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밤에 연금술을 하면 경험치를 더 얻을 수 있는 '흑마술사 퍽'을 배운다는 것은, 곧 언젠가 기독교리에 반하는 이들을 처형하고 다니는 이단 심판관 무리를 만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물론 오픈월드 RPG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게임들에서 만나볼 수 있는 요소이긴 하지만, '킹덤 컴: 딜리버런스2'가 주는 자유도의 균형감은 굉장히 안정적인 편이다. 그 기반에는 워호스 스튜디오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1403년 보헤미아 왕국의 세밀한 고증이 자리하고 있다.
용도, 엘프도 없는 '진짜 중세'
자칫 약점이 될 수 있었던 세밀한 고증, 오히려 재미의 발판이 되다

게임 엔딩 이후 등장하는 스텝롤에서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역사 조언’에 도움을 준 이들이다. 라틴어, 헝가리어, 이탈리아어 전문가부터 시작해 신학 전문가, 박사 학위 취득자까지. 워호스 스튜디오가 사료도 얼마 남아있지 않은 15세기 중세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들였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게임 중반부부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시 쿠텐버그(체코어로 쿠트나 호라)를 묘사하기 위해 실제 쿠트나 호라 시 정부와도 긴밀한 협업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산타 바라라 교회가 1403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알고 싶다면 이 게임을 해 보면 된다. 아쉽게도 이 당시엔 아직 한창 건설 중이었지만.


중세 서양사를 접할 기회가 비교적 적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시대, 그리고 장소이기 때문에, 게임에서 접하는 것들 대부분은 아주 신기한 경험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바지 한 장만 입은 채 시작하는 헨리의 시선과 동일한 시선으로, 보헤미아 왕국에 대한 지식을 조금씩 쌓아가게 된다.
전작에서 글을 읽은 법을 배우게 된 헨리는 당시 대다수 사람들보다 월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인물이며, 게임에 등장하는 기술서의 존재는 이를 강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책을 읽어 각종 스킬 경험치를 획득할 수도 있고, 까막눈 NPC들이 가진 보물 지도가 가짜라고 거짓말하고 이를 빼앗는 것도 가능할 정도.
게임을 플레이하며 당시의 종교, 계급 체계, 경제 시스템 등을 하나둘씩 배우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게임이 제공하는 '자유도'를 어떻게 더 잘 활용할지 고민하게 된다. 예를 들어 늦은 밤에 횃불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면 수상한 사람이라는 의심을 살 수 있고, 이 때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아이템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다면 범죄자로 지목될 수 있다. 웬걸, 중세라고 해서 완전히 무법 천지인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RPG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사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시대상 토끼와 늑대 정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야생 동물은 명목상 '왕의 소유'였다. 허가받지 않고 뛰어다니는 노루를 사냥하는 것은 밀렵이고, 걸릴 경우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죄다. 게임 또한 이를 반영해 야생 동물을 잡아 얻는 가죽은 장물 취급을 받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철저한 고증이 이루어진 중세 시대상은 자칫 약점으로 작용할 여지가 다분했다. 엘프도, 용도, 마법도 등장하지 않는 세상에 횃불 하나 안 들었다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다니. 그러나 워호스는 아주 섬세한 방법으로 이 중세 시대상을 자신만의 강점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대장장이의 아들, 영주의 사생아, 귀족 자제의 종자라는 주인공 헨리의 특성(?)이 바로 '킥'이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거의 모든 계급 구조에 위치한 인물과 어느 정도 상호작용이 가능하며, 얼마나 잘 꾸미고, 또 얼마나 잘 씻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매력'' 점수는 이 요소를 게임플레이 특징으로도 녹여내고 있다.
게임 메뉴 속 ‘코덱스’를 확인하면, 당시 유럽 중세에 대해 개발진이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흔적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어떤 약초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이런 모자는 어떤 계층이 주로 쓰던 것이었는지, 길 가다 발견한 독특한 구조물의 원래 용도가 무엇있는지 등을 탐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1400년대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게 할 정도다.
게다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킹덤 컴: 딜리버런스2'는 대단히 많은 지역과 대단히 많은 활동을 메인 스토리 진행에도 거침없이 녹여두었다. 도둑질, 전쟁, 연애, 무술대회는 기본이다. 수도원 지하 묘지를 도굴하고 때로는 마을을 불태우며, 말도 안되는 이탈리아어 몇 마디만 배우고는 스파이 활동을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 모든 활동은 전작 대비 확연히 풍부해진 시네마틱 컷신이 더해지며 이야기를 질적, 양적으로 강화한다.

풍부한 컷씬, 연출로 완성된 헨리의 이야기
스토리의 규모도, 등장인물의 깊이도 전편과 크게 달라졌다

전작에서 결국 아버지의 검도 되찾지 못하고, 부모의 원수를 복수하는 데도 성공하지 못한 주인공 헨리의 여정은 이번에도 결코 쉽지 않다. 그저 편지 한장만 배달하면 되는 줄 알았던 임무는 탈선에 탈선을 거듭하며 헨리를 보헤미아 왕국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
'킹덤 컴'' 시리즈의 배경이 되는 1403년 보헤미아 왕국은 역사적으로도 굉장한 매력을 가졌다. 대놓고 ’태만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무능력한 왕 벤체슬라스 4세와 이를 대신해 왕위를 가져가겠다며 침략해 온 그의 이복 형제 ‘지기스문트’. 그 사이에서 어느 쪽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귀족들의 모습은 전작보다도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지며 플레이어를 몰입하게 한다.
전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귀족들의 암투에 휘말리게 되면서 변화하는 헨리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원동력으로 움직이던 그는 이제 자신의 목표, 그리고 동기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한 높은 퀄리티의 컷씬은 이를 충실히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헨리가 새롭게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매력도 이야기에 힘을 더한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연은 '얀 지슈카'로, 단 한번도 패전한 적이 없다고 알려진 체코의 이순신과 같은 실존 인물이다. 2005년 체코 공영 방송사가 선정한 위대한 체코인 100명 중 5위에 등장하기도 한 실존 인물을 워호스 스튜디오는 거리낌 없이 게임에 등장시켰다.
역사적으로 영웅적인 인물을 출연시킬 경우 상당한 리스크가 따른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킹덤 컴: 딜리버런스2’는 얀 지슈카를 과하게 미화하거나, 또는 그의 영웅적인 면모만 부각하지 않았다. 때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정한 전략가 같은 면모를 보여주며, 한 편으로 웃음을 짓게 하는 연출을 함께 해 매우 입체적인 캐릭터로 완성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고증'은 주로 해당 시대의 사회 분위기나 계층 구조, 의복, 식생활 등에 대한 것이며, 스토리 자체가 체코의 역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역사 속 실존 인물의 이름을 하고 있으나, 모티브에 그친다고 알아두는 편이 전반적인 스토리를 이해하기 용이하다.
그런 맥락에서, 게임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역사 속 실존 인물들은 즐거움과 함께 게임의 깊이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역사 속에서는 감금된 벤체슬라스 왕을 탈출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알려진 리히텐슈타인의 존이라든지, 그동안은 말로만 들었던 헝가리의 붉은 여우, ‘지기스문트’ 왕의 모습 또한 마침내 확인할 수 있다.

탄탄한 기반, 그 위에 우뚝 선 게임플레이
발전한 전투 시스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성장 요소까지

각고의 노력을 들여 완성한 탄탄한 세계, 당시 사회의 통념과 선택에 따른 결과로 매력을 갖춘 자유도, 수준 높은 시네마틱 컷씬들로 빚어낸 이야기. 이미 화려하게 그려진 용의 그림에 점을 찍는 것은 더욱 깊어진 전투 시스템일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요소들을 녹여낸 게임플레이야말로 ‘킹덤 컴: 딜리버런스2’가 올해를 빛낼 게임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예전부터 개발진이 이야기한 점이기도 했지만, 한 명의 애니메이터가 모든 전투를 담당했던 전작과 달리 본편은 그 전투의 깊이가 한층 더 깊어졌다. 더 많은 종류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무기 별 콤보마다 디테일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이러한 기술들은 각각 레벨과 특성을 갖추고 있으며, 플레이어가 어떤 기술을 많이 수행하느냐에 따라 그 경험치가 따로 오르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검을 많이 쓴다면 검의 달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책을 많이 읽으면 교육 레벨이 올라간다. 말로써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역할을 해 왔다면 화술이 오르는 식이다.


특히, 새롭게 추가된 쇠뇌와 화포는 전작과는 다른 게임플레이 접근법을 가능하게 한다. 두 무기 모두 어마어마한 장전 시간을 가졌지만, 일격에 적을 주님 곁으로 보낼 수 있는 대단한 파괴력을 자랑한다. 여러 적을 상대할 경우 먼저 몇 사람을 눕혀놓고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는 등의 전략적인 플레이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구체적인 스킬 트리는 플레이어의 성격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의 헨리를 육성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대장간에서 칼 만드는 걸 좋아하다 보면 마스터 등급의, 더 없이 훌륭한 검을 벼려낼 수 있게 되고, 연금술을 연마하면 약재상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좋은 효율을 가진 물약을 만들어낼 수 있다. 범법 행위와 관련된 퍽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것도 가능한 셈.
물론 자유도 대비 초반 시작이 너무 애처로워 어려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이 때는 게임이 역사적으로 고증이 철저한(?) 점을 활용하면 의외로 쉽게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다. 무기와 갑옷이 없다면 밤중에 도적 소굴을 털어 마련한다거나, 보다 정직한 방법으로는 궁술 대회를 꾸준히 참가해 상금을 모으는 방법도 존재한다.

다만, 전투 측면은 게임 후반부로 갈수록 단조로워지는 아쉬운 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장비가 다 갖추지 못한 초중반부에는 길 가다 만난 도적과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지만, 풀 플레이트 아머를 모두 장만하고 나서는 웬만한 공격에는 체력에 흠집도 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이 또한 다소 철저한 고증에 따르며, 개방된 얼굴 맞으면 훅 간다).
결국 모든 검술과 달인의 일격을 통달한 최후반 헨리와 자웅을 겨룰 수 있는 적들은 얼마 없게 된다. 그마저도 두 명 이상이 한 번에 덤비지 않는 이상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 적어져 전투의 난이도가 대폭 감소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충분히 올해를 빛낼, 중세 RPG의 정점
연초부터 GOTY 허들을 이렇게 올려놓다니, 그저 즐거울 따름

약 100여 시간, 이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해 보고 내린 결론은 지난해 처음으로 시연을 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킹덤 컴: 딜리버런스2'는 전작에 비해 모든 측면에서 발전을 이뤘을 뿐 아니라, 게임이 보여주는 몰입감과 스토리텔링, 사이드퀘스트 등은 그간 명성을 쌓아 올린 명작 RPG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토록 깊이 있게 1400년대 유럽의 모습을 담아낸 게임은 당분간 '킹덤 컴'시리즈가 유일하지 않을까.
물론 전작이 그러했듯 이번 작품 또한 모두를 위한 게임은 아니다. 특히 모든 순간에서 1인칭 시점을 유지하는 특징은 개인에 따라 멀미를 유발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나, 열린 문을 닫거나 사과를 줍거나, 기도소에 들러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는 헨리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연출한 1인칭 시점은 몰입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템포가 빠른 게임플레이에 익숙해진 게이머에게도 잘 맞지 않을 수 있다. 배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고, 밤이 늦으면 NPC와 대화할 수 없고, 옷이 더러워지면 빨래와 목욕도 해야 한다. 칼이 무뎌지면 직접 숫돌에 갈아야 하고, 새로 만들려면 직접 쇠를 달구고 담금질을 해야 한다. 옷차림새나 평판에 따라 행인들에게 면박을 받을 수도 있고, 저장 물약을 안마시고 돌아다니다 도적이 휘두른 메이스에 길가에 쓰러진 채 세이브 데이터를 모두 날릴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플레이는 필연적으로 피로감과 연결될 여지가 다분하지만, 대부분에게 그 경험이 불쾌하게 다가오진 않으리라 생각한다. 귀찮고 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경험 하나하나가 굉장히 재미있으니까.
일반적인 RPG 팬들에게도, '진짜' 중세 시대의 삶이 궁금했던 게이머들에게도 '킹덤 컴: 딜리버런스2'는 분명 즐거운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메인퀘스트를 서둘러 끝내고 나면, 이후 세상에서는 대규모 전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최근 발표한 1년 간의 업데이트 로드맵이 헨리와 플레이어의 배고픔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