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초를 장식하는 대형 게임이 펑펑 출시되는 2월, 비교적 시선이 드문 영역에 '어바우드(AVOWED)'가 놓여 있다. 킹덤컴2와 문명7, 몬스터 헌터 와일즈로 이어지는 황금 시즌에 조용히 출시 소식을 밝힌 어바우드. 하지만, 그 뒷배는 실로 만만치 않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설적인 작품들을 여럿 개발해온 인터플레이 산하 블랙 아일 스튜디오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옵시디언'의 신작. 세계관은 무려 '발더스 게이트3' 이전 클래식 RPG의 어벤져스가 모여 만들었던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와 공유한다. 게다가 장르는 3D 액션 RPG. 무엇 하나 가벼이 볼 수 없는 키워드들이다.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어바우드'는 훌륭한 게임이다. 웬만한 수영 선수급 어깨너비를 지닌 강력한 동기들 사이에서, 파묻히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게임명: 어바우드(AVOWED)
장르명: 액션 RPG
출시일: 2025. 2. 18
리뷰판: 사전 리뷰 빌드 버전
개발사: 옵시디언 엔터테인먼
서비스: XBOX
플랫폼: PC, Xbox
플레이: PC


진짜 RPG는 엉덩이 싸움
검증된 이야기꾼이 펼쳐놓은 RPG, 읽어야 제 맛

어바우드의 개발사인 '옵시디언'의 이름을 알린 게임은 '폴아웃: 뉴 베가스'다. 그 이후로는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시리즈가 있고, 최근 작품으로는 '아우터 월드'가 있다. 옵시디언이 되기 전,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블랙 아일 스튜디오' 시절로 돌아가면 더 쟁쟁한 작품들이 나온다.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부터 '아이스윈드 데일'까지. 저 작품들을 기억하는 올드 게이머들은 어바우드의 선배들이 어떤 공통된 특징을 보이는지 느낌이 올 거다. 어바우드는,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스토리 드리븐(Story-Driven) 게임이다.

게임 시작과 동시에 주인공은 아디어 제국의 사절로서 모종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리빙 랜드를 방문한다. 이후 방문한 첫 도시에서, 주인공에 대한 암살 시도가 벌어지고 여기서 가까스로 살아남게 되며 얽히고 섥힌 이야기를 하나씩 파헤쳐가게 된다.

▲ 본작의 무대인 '리빙 랜드'

스토리 자체에 대한 깊은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는다. 스포일러를 방지해야 함도 있지만, 서사라는 요소 자체가 평가하기엔 지나치게 주관적인 영역이니까. 단평만 남기자면, 이야기의 완성도는 개발사의 명성답게 훌륭했으나, 서사의 유연성은 다소 아쉬웠다는 정도로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아주 당연하게도 이 모든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텍스트가 펼쳐진다. 대화를 통한 게임 진행에 완전히 집중한 뭇 게임들처럼 모든 전투를 기름 묻힌 혓바닥으로 넘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바우드는 기본적으로 제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복잡하면서도 완성도 높은 세계관을 기반으로 하기에 수많은 대화를 치르며 설득과 타협을 해내야 한다.

문제는, 기존 IP 세계관을 활용하는 모든 게임이 그렇듯, 게이머가 알아야 할 양이 만만치 않다.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표현부터 수많은 고유명사에 이르기까지, 처음 마주하면 당황스러울 정도로 낯선 텍스트가 쏟아진다. 특별히 어바우드가 더 그렇다기보단, RPG 요소가 강한 게임들이 대부분 그렇고 옵시디언의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부분이다.

▲ 영 어 조 아

다만, 이에 대한 대응은 충분히 되어 있는데, 어바우드의 경우 대화가 진행되는 도중에도 고유 명사가 등장하면 곧바로 코덱스로 넘어가 해당 용어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마치 본문에 주석이 달린 책을 읽듯, 따로 찾아보지 않고 플레이 도중 실시간으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어바우드를 구성하는 여러 시스템 중에서도 꽤 훌륭하게 다가오는 부분인데, 스토리 드리븐 게임이라는 장르적 특성이 결국 아는 만큼 재미있어지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성장 요소나 롤 구분만 넣어둔 채 'RPG'라고 우기는 게임들과 달리, 정통파 RPG는 대부분 이렇게 엉덩이 싸움을 해야 한다.

진득하게 읽고 연출을 즐기며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살펴보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그 편이 훨씬 재미있다. 그리고, 어바우드는 이런 재미를 추구하는 유저들을 위한 충분한 편의를 갖춰 두었다. '공부할 맛'이 나는 게임이라는 뜻이다.

▲ 대화 중 고유명사는 실시간으로 사전을 열어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걸림돌이 되는 건 '언어'의 문제. 어바우드의 리뷰 과정은 동종 장르의 다른 게임들과 비교해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그 이유가 바로 연기된 한국어화로 인한 영어의 폭풍 때문이었다. 과장 없이 진짜 공부하면서 게임을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냥 액션 어드벤처 게임일 뿐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점은 3월 중 한국어 패치가 이뤄진다는 소식인데,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출시와 함께 적용되기로 했던 것이 연기되었다는 건 중대한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뜻이고, 이 말은 곧 퀄리티를 제대로 챙기는 형태의 한국어화를 진행 중이라는 뜻이니까. 사소한 단어 하나, 번역 하나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스토리 드리븐 게임의 특성 상 조금 늦어지긴 하겠지만 더 만족스러운 게임 플레이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이다.

▲ 이왕이면 한국어 패치되면 하자...


높은 밀도와 질량을 지닌 세계
첫 플레이 시 '스카이림'이 생각났다

서사를 넘어 게임 플레이를 살펴보자. '어바우드'라는 게임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즈음, 내 머릿속에 가장 많이 떠오른 게임은 바로 '엘더스크롤5: 스카이림'이다. '폴아웃: 뉴베가스'를 개발했던 옵시디언인 만큼 3D 액션 RPG에도 조예가 있으리라 예상하긴 했지만, 실제 결과물은 그 예상보다 더 뛰어난 편이다.

먼저, 전투는 최근 액션 게임의 흐름을 상당 부분 따라간다. 전투 중간 일시정지를 통해 명령을 내리거나 스킬을 쓰는 나름 고전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지만, 전투 자체는 오픈월드 슈터에 소울라이크를 적절히 섞은 느낌이다. 방어와 회피, 상대방의 패턴 파악이 모두 중요한 기둥으로 남아 있으며, 근본인 'RPG' 요소도 전투에서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내 수준에 비해 너무 강한 적은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거나 훗날을 노리기도 해야 한다.

▲ 보스전은 꽤 맛있다

오픈월드 액션, 슈터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소양 또한 충실히 지니고 있는데, 덤불에 숨어 암습을 가한다거나, 방패 사이 빈 틈을 노려 헤드샷을 노리거나, 그냥 냅다 도망치면서 런앤건을 할 수도 있으며, 정석적인 막고 베기로 적들을 하나하나 베어넘길 수도 있다.

이는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인데, 어바우드의 게임 기반은 클래식 RPG와 비슷한 결로 짜여 있다. 세계 곳곳에 모험이 존재하며, 적대적 NPC와 중립적인 NPC들이 섞여 존재하며, 아슬아슬한 길과 함정으로 뒤덮인 던전과 숨은 보물들이 숨어 있다.

여기에 튼실한 액션, 슈터 기본기가 합쳐지며 어바우드의 플레이 감각은 정확히 이 고전 RPG를 조금 더 미시적 관점에서 플레이하는 느낌에 가까워진다. 조금 더 상상이 편하게 설명하자면, "1인칭, 혹은 3인칭으로 플레이하는 '발더스 게이트3'는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가상의 결과물에 무척 가깝다.

▲ 슈팅 감각도 좋다. 판타지 레인보우식스 하는 느낌

세계 또한 이런 플레이 감각에 맞춤형으로 짜여 있다. 던전같이 보이는 곳엔 던전이 있고, 동굴 안에는 반드시 숨어 있는 보물이나 함정이 있으며, 지도에 표시된 섬에는 현상수배된 범죄자나 보물이 묻혀 있고, '이 끝에 뭔가 있을 것 같다'싶은 이상할 정도로 높은 곳엔 또 분명 무언가가 있다. 화염이나 폭발형 주문, 혹은 도구를 써야만 개척 가능한 비밀 통로도 물론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구성이, 총 4개 지역으로 나뉜 전체 지도에 걸쳐 만들어져 있다. 지역 하나하나의 크기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밀도만큼은 내세울 만큼 훌륭하며, 무엇을 해도 만족스러운 모험을 할 수 있다. 길을 가다 무언가 있어 보이는 걸 발견하고, 이를 끝까지 파헤치다 보면 진짜로 뭔가가 나오는 것. 넓기만 하고 텅 빈 오픈월드가 아닌, 콘텐츠로 꽉꽉 들어차 있는 세계가 주는 설렘.

▲ 보물도 찾고

▲ 현상금 사냥도 하고

어바우드를 본격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스카이림'을 떠올린 이유가 그 때문이다. '어바우드'의 세계는 생각 이상으로 잘 만들어져 있고, 파헤칠 비밀로 가득하다. 메인 스토리만 달린다면 20~30시간 안에 엔딩으로 갈 수 있겠지만, 누구나 알다시피 그건 이 장르의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니니까. 마음 먹고 파먹기 시작하면 50시간 이상 꾸준히 먹을 수 있는 풍부한 밀도로 채워져 있다.

▲ 막힌 길도 뚫다 보면

▲ 아앗 유니크 장비


요상한 감정, 끄는 게 너무 쉽다
너무나 게임다워서 좋고, 너무 게임다워서 아쉬운

정리하면, 어바우드는 '아주 잘 만든 게임'이다. 오픈월드 액션이자 슈터로서, 그리고 RPG로서 필요한 모든 소양을 지니고 있으며, 옵시디언이라는 검증된 이야기꾼이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탄탄한 세계관과 설정을 씨실과 날실로 삼아 짜낸 완성도 높은 서사까지 더해졌다. 최고 옵션으로 돌려도 다소 자글자글한 느낌의 비주얼이 다소 눈에 밟히긴 하지만,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다.

던전이 있을 곳에 던전이 있고, 모험이 있을 곳에 모험이 있으며, 전투가 있어야 할 곳에 전투가 있다. 모든 요소가 크게 부족한 점 없이 있어야 할 곳에 합당히 있다는 점에서, 어바우드는 분명 잘 만든 게임이다.

▲ 세계를 탐험하는건 분명 재밌는데

때문에, 지금부터 서술할 '아쉬움'은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일 수도 있다.

어바우드는 플레이하는 동안 꽤 즐겁다. 말했다시피 게임 자체의 짜임새도 좋고, 이야기도 훌륭하니까. 하지만, 전혀 의외의 부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게임 끄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라는 점이다.

스스로 행동을 제어하는 성인이라면 게임을 하다가도 꺼야 할 땐 끄는게 옳지만, 마음에 드는 게임을 하다 보면 약간의 주저함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턴만 더 할까?', 혹은 '이 퀘스트까지만 할까?'와 같은 유혹이 있다. 그게 너무 심한 게임은 다들 말하는 시간탐험대 게임이 되는 거고 말이다. 하지만, 어바우드는 그런 '진한 몰입'이 없다.

▲ 뭔가 '끄기 싫다'라는 마음이 들지 않는 요상함

이를 인지한 후부터 어째서 어바우드의 몰입이 약한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는데, 원인은 이 잘 만든 세계 구성에 있었다.

'어바우드의 세계는 너무나 게임답다'

게임 속 세계로서 기능하기 위해 디자인되어 있고, 게이머의 편의를 위한 모든 것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게임 디자인도, 불편함을 최대한 배제하는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맵 곳곳에 빠른 이동 포인트가 존재하고, '무게' 게이지가 있어 들 수 있는 짐의 무게를 제한했지만 언제 어디서든 원 버튼으로 창고로 보내버릴 수 있기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낮/밤의 개념은 캠프를 차릴때만 바뀌기 때문에 사실상 밤이 없는 세계이며, 상인은 언제나 제 자리에 있으며, 락픽으로 자물쇠를 따는 개념은 있지만 미니 게임 없이 그냥 락픽 수만 맞으면 꾹 눌러서 자동으로 따버린다. 이 모든 것들이 게임을 보다 편하게 만들고, 게이머가 쉽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부분인 것은 맞지만, 너무 거침이 없다 보니 내 두뇌가 어바우드라는 게임을 너무 명확하게 인지해버렸다.

▲ 캠프를 차릴 때만 밤이 된다

정리하면, '좋은 게임'이지만, '좋은 게임 이상'의 감상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레드 데드 리뎀션2'처럼 아서 모건의 감정에 이입하거나, '킹덤컴2'처럼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퀘스트를 실패하거나, '스카이림'처럼 돌발적인 변수로 게임이 꼬이는 일이 없다. 스킬을 배울 때도 연습이나 과정 없이 그냥 포인트 투자로 끝나며, NPC의 물건을 훔치거나, 야음을 틈타 문제를 우회 해결하는 방법도 없다.

이런 의외성, 그리고 몰입할 수 있는 감정적인 순간이 현저히 적다 보니 게임에 좀처럼 몰입하기가 어렵다. 각종 미디어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른바 '동기화'의 레벨이 낮은 선에 머무는 느낌. 게임으로서 콘텐츠를 즐기는 감각은 있지만 내가 주인공으로서 모험을 즐긴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요즘 게임들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인 '이머시브'가 거의 배제되어 있다는 뜻이다.

▲ 업그레이드도 그냥 재료 모아 클릭 한 번. 모든 것이 지나치게 도식화된 느낌이 있다.

▲ 동료 기술도 그냥 수치 보고 찍게 된다

물론, 이러한 점을 '단점'이라고 말하는 건 다소 억지에 가까울 거다. 게임이 너무 게임 다워서 별로라는 건 사실상 말이 안 되는 표현이니까. 하지만, 리뷰어로서 어바우드에 느낀 아쉬움은 이렇게 밖에 표현하기 어렵다. 상인과 시민들이 존재하고 모험과 적도 존재하지만, 그 모든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때문에 게임은 언제나 내가 예측한 대로, 예상 가능한 영역 안에서 진행되며 탄성이 터질만한 의외의 순간, 흔히 '와우 모먼트'라고 할 만한 부분이 없다.

물론, 이 점이 어바우드라는 게임 자체의 완성도를 해치거나, 게임의 결정적인 단점이 된다는 건 아니지만 아쉬운 건 어쩔수 없다. 모든 능력치가 A급이지만, S급 능력치는 없는 애매한 인권캐릭을 보는 느낌. 조금만 더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더해진다면 올해의 게임도 노려볼 수 있을 만한 잠재력이 보이지만 그게 없는 게임. 그럼에도 기본기가 워낙 출중하기에 돈 값은 충분히 하는 좋은 게임.

'어바우드'에 대한 감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