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인디 게임씬을 뒤흔든 단어로 '로그라이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매번 무작위로 바뀌는 스테이지와 장비 세팅으로 도전하는 이 장르는 몇 가지 코어를 기반으로 랜덤하게 조합, 일반적인 게임과는 다른 무궁무진한 경우의 수가 생기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히 비용이나 개발 시간 문제에 시달리던 인디 개발자들에겐 무안단물 같을 수밖에 없다. 유저들 또한 저렴한 비용으로 매번 색다른 도전을 해볼 수 있으니, 그런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맞물려서 폭발적으로 그런 작품이 늘어났다.

그것이 너무 과한 나머지 지금은 조금 시들해지긴 했지만, 종종 생각이 나는 장르임은 분명하다. 특히 로그라이크에 플랫포머, 슈팅까지 섞은 게임은 직관적이고 클래식한 맛을 매번 다르게 배합해주면서 잊을만 하면 떠오르는 그런 매력이 있다. 그런 장르가 고프던 찰나에 만난 '프로젝트 타키온'은 상당히 정갈하고 깔끔하게, 한 판 땡겨보고 싶은 그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작품이었다.

※ 본 리뷰에는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명: 프로젝트 타키온
장르명: 로그라이크 플랫폼 슈팅
출시일: 2025. 2. 14
리뷰판: 1.0.4버전
개발사: 스튜디오 엔나인
서비스: 하이크
플랫폼: PC
플레이: PC


리트하는 이유? 이거면 충분하지
클리셰지만 논리있게 제시하는 다회차 플레이


통상 '로그라이크'하면 매번 도전할 때마다 무작위로 스테이지가 전개되는 양상이 떠오른다. 그런 '무작위성'이 기본인 만큼, 자연히 스토리적인 요소가 약하거나 이 부분에 힘을 싣지 않은 작품들이 꽤 있다. 물론 스토리도 맛깔나게 잘 풀어낸 작품이 있긴 하지만, 게임을 즐길 때 비중이 다소 낮은 장르라고 할까.

그런 만큼 '프로젝트 타키온'을 처음 접하면 조금 낯선 느낌이다. '로그라이크'라는 소재를 설득력 있게 전하기 위해 스토리 그리고 설정에도 상당히 힘을 실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당장에 '프로젝트 타키온'이라는 제목부터 그렇다. 주인공 '시그마'가 죽을 때마다 매번 시간을 되돌려서 다시 본부로 복귀하는 프로젝트 타키온의 실험체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이유 자체는 사람에 따라 크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고, 어찌 보면 클리셰대로 흘러갈 수 있다. 초고도로 발달한 AI가 반란을 일으킨 먼 미래, 이를 제압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특수대원이라는 구도는 게이머라면 익숙할 것이다. 여기에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찾고자 계속 무언가를 반복하는 구도도 이젠 여러 대중매체에서 노출된 소재다.

▲ AI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핵무기를 쓰기 일보 직전인 상황

▲ 이를 막기 위해 죽을 때마다 매번 시간 역행을 하는 프로젝트 타키온을 재개

▲ 여러 차례 죽음을 반복하면서 오메가프라임을 처치하러 가야 하는 험난한 임무가 시작된다

그 익숙한 맛은 왜 유저들이 반복해서 도전해야 하는지 알기 쉽게 제시해주는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저 프로젝트 타키온이라는 걸 무언가 그럴싸하게 보이기 위해 여러 복잡한 용어들이 첨부되어있긴 하지만, 이런 것도 그저 호기심 생기면 읽고 넘어가는 코덱스 정도로 치부했다. 당장 주인공부터가 기억을 잃은 상태다 보니, 이 세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유저에 빙의해서 '그런 건 됐어'라고 넘어간다. 그저 한 가지 확실한 건, 온갖 고난을 뚫고 실패를 반복하면서 정보를 가져온 뒤, 그걸 토대로 중추를 장악한 '오메가프라임'을 잡으면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프로젝트 타키온'의 분량은 상당히 짧아 보이지만, 진엔딩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이미 출시된지 좀 지났으니 잠깐 스포일러를 하자면, 한 번 오메가프라임을 처치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그 직후에도 뭔가 일이 터져서 결국 주인공은 계속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아마 그 구간까지 가면서 여러 가지 떡밥이 던져졌기 때문에 중간에 눈치는 챌 수 있긴 하다. 그리고 반복할 때마다 점차, 주인공과 세상의 진실에 대해 점점 더 접근해가는 것이 '프로젝트 타키온'의 구조다.

로그라이크 하드코어 유저라면 다회차로 빌드 연구하는 재미로 할 테니 이런 게 불필요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유저들도 어떤 진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직접 확인해보게끔, 딱 목표를 명확히 지정해주고 아는 맛으로 잘 풀어간 '프로젝트 타키온'의 수법은 정직하고 확실했다. 여기에 풀더빙까지 얹어서 몰입감을 높인 터라, 뭔가 알 것 같은 맛을 직접 한 번 더 확인하러 가보자는 욕구가 생긴다고 할까.

▲ 감전+플라즈마+방탄+근접 특화 올인으로 썰어주마

▲ ??? 아니 분명 잡았는데 왜 또 여기에?

▲ 그러면서 점차 밝혀지는 과거,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러 진엔딩까지 ㄱㄱ


초보부터 고수까지 고려한 난이도
자동조준부터 갖가지 제약 플레이까지 골라골라


한때 로그라이크가 폭발적으로 흥행했다가 조금 주춤한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 중 '어렵다'는 인식도 최근에 다소 시들해진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도 그렇긴 하지만, 최근에는 어려운 게임들을 직접 하며 고통받기보다는 스트리머들이 그걸 하면서 고통 받는 걸 보고 대리만족(?)하는 구도가 잡혀있다. 안 그래도 세상이 흉흉하고 어지러운데, 알짜배기가 아닌 한 그렇게까지 심혈을 기울이며 직접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너무 지치면 아무 것도 손에 안 잡히는 것이 사람의 심리이기 때문이다. 특히 막판까지 잘 갔다가 한 번 삐끗해서 다시 처음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더욱 손을 대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요즘 로그라이크는 점차 쉽게 즐길 수 있는 보완장치나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추세고, 그런 트렌드를 '프로젝트 타키온'은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물론 이 말이 처음부터 쉽다는 말은 아니다. 최근 로그라이크가 죽을 때마다 조금씩 업그레이드가 누적되어서 나중에 조금씩 쉬워지는 그런 양상이지 않던가. 이는 '프로젝트 타키온'도 동일하다. 일반급 무기에 아무 특성도 없이 전장에 나서면 수도 없이 몰려드는 변이체와 기계들의 러시에 정신 없이 달리면서 쏘다가 어느새 본부로 귀환하기 일쑤다.

▲ 재장전 속도가 업그레이드 전엔 다소 느려서 정확한 타이밍에 키를 누르는 신속 재장전은 필히 익혀야 한다

특히 '프로젝트 타키온'은 탄창을 꾸준히 재장전해야 하는데, 타이밍에 맞춰 신속 재장전을 하지 않으면 그 공백이 상당히 길다. 이 공백을 만회하기 위해 근접공격도 있고, 이를 적극 활용한 빌드까지 있지만 통상의 런앤건 슈팅을 생각한 유저라면 다소 낯설 수밖에 없다. 보통은 재장전 시간이 프로젝트 타키온만큼 길지 않기 때문이다. 마우스 커서 아니면 왼쪽 아날로그 스틱으로 사격 방향을 조준하면서 총을 쏘는 액션도 이런 유형의 게임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낯설 여지가 있다.

또한 '무작위'라는 말처럼, 좋은 것을 얻었다고 꼭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일종의 패시브인 강화 유전자를 획득하면 일정 확률로 악성 유전자를 얻기 때문이다. 이 악성 유전자는 다행스럽게도 특정 조건을 완수하거나 쉼터의 제거 장치로 없앨 수 있지만, 스테이지 구성에 따라 그 조건을 완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혹은 악성 유전자의 등급이 너무 높으면 쉼터 관련 테크를 미리 해금하지 않는 한 제거도 안 된다.

▲ 큭 혈전 끝에 괜찮은 유전자 얻었나 했더니 악성 유전자까지 같이 붙을 줄은 ㅂㄷㅂㄷ

▲ 악성 유전자는 발현하기 전에 미리 해제 조건을 충족해서 풀거나

▲ 쉼터의 유전자 제거 장치에서 에너지를 소모해서 제거할 수 있다

이런 부담감을 덜기 위해 프로젝트 타키온은 일종의 이지 모드인 '어시스트 모드'를 추가했다. 적의 체력과 공격력을 줄이면서 런앤건 슈팅의 호쾌함도 살리고, 여러 랜덤한 선택지 중 최선의 빌드를 찾아서 구축하는 '손맛'도 느끼게 한 것이다. 그리고 조준이 어려운 유저를 위한 자동 조준 기능도 추가했다. 그렇게 해서 바이트골드나 네더리움 같은 재화를 모아 업그레이드를 진행, 다음 단계까지 나아갈 추진력을 제공했다.

그렇게 해서 한 차례 클리어한 뒤, '프로젝트 타키온'의 진짜 플레이가 시작된다. 최근 여러 게임에서 채택한 로그라이크 콘텐츠처럼, 다양한 조건을 붙여서 난도를 높이고 보상을 더 받는 프로그램이 해금되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진엔딩을 보기 위해 다회차는 필수이니, 이왕 하는 김에 더 높은 레벨을 해금하기 위해 꾸준히 도전해보도록 자극하는 정통파적인 구성을 취한 셈이다.

▲ 적응되기 전엔 다소 쉬운 난이도로 화끈하게 다 터뜨리는 런앤건식 재미를 즐길 수도 있고

▲ 플레이를 반복하면서 보안 레벨을 강화, 더 높은 난이도로 도전해볼 수 있다


로그라이크 슈팅 입문자라면 주목
준수한 손맛과 다회차 기본기 갖춘 '프로젝트 타키온'

▲ 집탄률 디버프가 별 거 아니라 생각했는데 샷건이 이런 식으로 나갈 줄은 ㄷㄷㄷ 미리 예방하는 게 상책이다

'프로젝트 타키온'은 전체적인 구성이 잘 짜인 만큼 게임플레이도 기본 틀이 잘 잡혀있었다. 각 무기마다 주 공격과 보조 공격이 특색 있게 잘 구성되어 있고, 다소 불합리한 탄막은 근접 공격으로 막아내거나 튕겨내면서 어찌저찌 돌파할 수 있도록 절묘하게 디자인했다. 빌드업 도중 발생하는 악성 유전자도 발동 전에 제거 조건을 이행하면 미리 해제하게끔 해서 다양한 플레이를 시도하는 또다른 조미료로 작용했다.

계속 질주하고 피하고 점프하면서 베고 쏘는 이른바 '런앤건' 스타일에 최적화된 빠른 템포도 컨트롤러 혹은 키보드와 마우스를 쭉 잡게 만들 만큼 상쾌했다. 아직 업그레이드가 완벽하게 적용되지 않았는데 빌드를 잘 짜면 보스전도 어느 시점부터 화끈하게 맞불을 두는 식으로 클리어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종종 플레이하면서 아쉬운 점들이 눈에 밟혔다. 우선 주인공의 모션이 뻣뻣하고 엉성한 게 눈에 띈다. 처음에는 이리저리 탄막을 피하느라 잘 안 보이지만, 적응이 되고 나면 주인공이 어지간히 코어와 하체 근육이 좋지 않고선 저러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링 피트 어드벤처나 별도의 트레이닝을 하는 상태가 아니고서는 무릎을 저렇게 높이 치켜들고 걷진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런 모션 같은 것을 보다 보면, 종종 보스들의 패턴도 애매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사전 동작 없이 갑자기 내지르거나, 아니면 꼼수가 너무 확실해서 김이 새는 패턴들이 은근히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화 보유량이나 아이템, 유전자 획득 상황을 체크하기 조금 번거롭게 되어있는 것도 옥의 티였다.

▲ 저 자세로 탄을 튕겨낼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지면 지는 거...라고 하기엔 좀 엉성하다

▲ 구석에서 주기적으로 점프하면서 쏴대면 피해 없이 클리어. 미니보스가 날로 먹는 보너스 스테이지 느낌이다

빌드의 다양성도 어느 순간부터 다소 지지부진해지는 것도 아쉬웠다. 이는 업그레이드를 계속 하게끔 해서 플레이를 이어가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설계는 무기의 밸런스가 어긋나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화염방사기나 샷것처럼 사거리가 짧거나 레이저드릴처럼 예열이 긴 무기는 그만한 리턴이 있어야 하지만 업그레이드가 뒷받침되기 전까지는 그렇지 못했다. 자연히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매번 쓰던 무기만 쓰게 되고, 그러면서 조금씩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이 있었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프로젝트 타키온'은 로그라이크 플랫폼 슈팅을 오랜만에 즐기고 싶다거나 혹은 입문하고 싶은 유저에겐 적극 추천할 만한 작품이었다. 로그라이크를 꺼리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다소 불합리하게 억지로 여러 차례 플레이하게 강조하는 구성인데, 이 부분에 대해선 확실히 조치를 취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타키온'은 완벽하진 않지만 난이도도 적절하게 맞췄고, 왜 이런 시도를 반복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적절히 제공해주고 있다. 사람에 따라 좀 짧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가끔 생각날 때 가볍게 한 판 해볼 만큼 손맛이나 스테이지 길이도 적절하다. 익숙해지면 어느 시점까지는 또 매너리즘이 올지 모르지만, 그 전까지 충분히 달릴 만한 작품인 만큼 로그라이크 플랫폼 슈팅이 구미가 당기는 유저라면 '프로젝트 타키온'을 한 번 봐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 종착지까지 목표 제시도 확실하니, 그 끝에 뭐가 있을지 난관을 뚫고 직접 확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