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소설가가 서로 다른 장르를 넘나드는 여정을 떠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플레이어가 대부분의 시간을 분할된 화면으로 보낸다는 측면에서 '스플릿 픽션'이라는 제목은 대단히 직관적이다.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제목만큼 뚜렷하고, 복잡하지 않다. 자칫 클리셰처럼 다가올 수 있는 서사 구조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장르명: 협동 어드벤처
출시일: 2025. 3. 7.
리뷰판: 출시 빌드개발사: Hazelight Studios
서비스: EA
플랫폼: PC, PS5, Xbox
플레이: PC(EA App)
*장르 특성 상, 리뷰에 스포일러 요소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공상과학(Sci-Fi), 그리고 중세 판타지
취향도, 성격도 다른 둘의 만남
'스플릿 픽션'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매력적이다. 모든 것은 가상의 최첨단 출판 회사(?), '레이더 퍼블리싱'이라는 곳에서 시작되는데, 이들은 작가의 상상력을 그대로 가상 현실로 구현해주는 꿈의 장치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주인공, 미오 허드슨과 조이 포스터는 모두 제대로 된 출판 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작가다. 레이더 퍼블리싱은 이런 아마추어 작가들을 골라 회사로 초청해, 출판 계약을 조건으로 이들의 상상을 가상 현실로 구현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사실 이들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바로 장치에 연결된 작가들의 상상력을 모두 추출해 내는 것. (게임 극초반에 밝혀지는 사실로, 스포일러라 부르기 애매하다)
주인공 미오와 조이는 각자 집필하고 있는 소설의 장르만큼이나 성격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사이버 닌자의 복수극 이야기를 쓰는 미오는 매사에 신중하고 시니컬한 반면, 검과 마법, 용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 작가인 조이는 낙천적이기 이를 데 없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열려 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작가들이 기계 장치에 연결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은 미오였고, 그는 이런 데 동의한 적 없다며 회사 건물을 나가려 한다. 그러나 한 번 시작한 단계를 멈출 수는 없다는 사장과의 몸싸움 끝에, 사고가 발생한다. 원래라면 한 명 당 하나씩 들어가야 할 가상 공간. 두 명의 작가는 서로의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공간을 마주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단 한 번도 두 명이 같이 들어갔던 사례가 없던 기계는 오류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현실 세계에 있는 기업인들의 검은 속내를 엿듣게 된다. 이제 게임의 목표는 간단하다. 더 많은 오류를 일으켜 장치를 멈추고, 아이디어를 탈취하는 블랙 기업의 마수로부터 자신의 상상력을 지키는 것이다.
'스플릿 픽션'의 게임플레이 스테이지는 주인공 미오와 조이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먼저 미오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공상과학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고 나면, 그 뒤에는 조이의 소설 속 판타지 세상이 이어진다. 이 두 개의 서로 다른 세상은 장르만큼이나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세 차례나 화면 분할 협동 게임을 만들어 온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는 자신들의 노하우를 마음껏 발휘했다.
게임플레이 -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운 연출 전환
분할 화면이라는 특징을 살리면서, 지루할 틈이 없게
전반적인 게임플레이는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가 그간 보여준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챕터별로 플랫포머와 퍼즐이 혼합된 길을 나아게 되고, 널찍한 공간에 들어서면 으레 그랬듯이 보스가 두 플레이어를 반겨준다. 차이가 있다면, 두 장르(공상 과학과 판타지)를 넘나드는 비주얼, 그리고 곳곳에서 돋보이는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일 것이다.
'작가의 상상력을 모조리 추출하는 기계'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설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게임 입장에선 상상의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한다. 공상 과학, 그리고 판타지, 그 하위로 분류되는 다채로운 특징들은 게임에서 이야기하는 장르적 특성으로 표현되며 끊임 없이 신선한 즐길 거리를 선사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이렇게 다양한 장르적 융합을 선보이면서도 그 전환이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데 있다. 스토리상 매끄러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게임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카메라 활용, 분할된 화면을 하나로 합치고, 다시 나누며 서로 다른 장르 경험을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일부 특징은 전작인 '잇 테이크 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요소지만, '스플릿 픽션'에서는 전혀 다른 비주얼을 가진 두 개의 세계관이 그 특징을 더욱 부각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레이더 퍼블리싱의 상상력 추출 기계가 악독한 점은, 참여하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제출하지 않았던 원고마저도 가상 현실로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게임은 이런 특징을 활용해 두 명의 주인공이 작업한 단편 소설들을 '사이드 미션' 형태로 집어넣었다.
'사이드 미션'은 위에서 언급한 각 장르의 하위 장르적 특성을 지닌다.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챕터가 판타지 장르라면, 여기서 만나게 되는 사이드 미션은 그 반대 장르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공상과학 소설 장르의 사이드 미션으로는 죽어가는 태양의 폭발로부터 살아남기, 파괴된 우주정거장에서 살아남아 셔틀 타기 같은 것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단편 소설 속 특정 장면만을 구현한 모습이며 메인 스토리와 연관도 없다. 그렇지만, 그 연출과 플레이 메커니즘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발견한다면 놓치지 말고 플레이하는 것을 추천한다.


특히,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이런 연출은 더욱 빛을 발한다. 중반 이후까지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고 있던 두 사람의 장르는 최종장에서 그 경계가 무너지고 마는데, 분할 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연출이 설득력을 더한다.
기계의 오류는 더욱 극단으로 치닫고, 미오와 조이는 각자의 소설 속 세계에 있지만 또 함께 존재하는(?), 말로는 설명이 어려운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두 개의 세계 모두를 신경쓰며 막힌 길을 뚫어야 한다. 미오의 공상과학 세상에서 판타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물건을 찾거나, 또 그 반대로 하게 된다. 슬라이드 시퀀스에서는 왼쪽에서 전투기였던 것이 오른쪽에서는 용이 되어 불을 뿜지 않나, 플레이어는 이를 모두 염두에 두며 앞으로 나아간다. 게임플레이 측면에서도 꽤나 신선한 경험을 전달한다.


전반적인 퍼즐의 난이도는 전작과 비교해 좀 더 쉬워진 느낌을 준다. 몇몇 부분에서 잠시 멈춰서 골똘이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벽에 막힌 듯한 느낌을 주는 구간은 없었다. 아주 잠깐만 생각해도 손쉽게 풀 수 있는 퍼즐 위주로 구성된 만큼, 빠른 템포의 액션을 선호하는 친구들과 플레이하기 안성맞춤이다.
과도한 피지컬을 요구하는 부분도 다소 줄었지만, 아예 없지는 않다. 함께 하는 친구와 손발이 정확하게 맞는치 테스트하는 부분이 한 두 군데 정도 기억나는데, 전반적으로 실패에 대한 패널티가 거의 없다시피 하는 게임 특성상 꾸준함만이 앞으로 나아가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야기는 머리로, 또 마음으로 쓰는 것
생성형 AI 시대, '휴먼 터치'가 주목받는 이유

온갖 장르가 눈앞에 펼쳐지는, 종합선물세트같은 게임플레이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스플릿 픽션'. 반대로 전체적인 스토리는 상대적으로 평이하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대두로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최근 세태가 겹치며 묘한 울림을 준다.
무명 작가들의 아이디어를 통째로 추출하는 레이더 퍼블리싱의 야망은 불을 보듯 뻔하고, 서로 다른 배경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두 주인공의 배경 이야기는 이야기가 갖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아주 교훈적으로 알려준다. 비록 그 깊이가 다소 얇아 동화책을 읽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는 방향으로 설명하면, 미오와 조이는 모두 각자 처한 상황을 위로하고, 또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려갔다. 잔혹한 현실에 맞서 복수를 꿈꾸는 사이버 닌자의 이야기도, 현실과 달리 아름다운 일만 일어나는 환상의 나라도 그 이면에는 작가의 고민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장치는 그 반대다. 그 아이디어의 출처, 배경은 관심이 없으며, 콘텐츠를 오로지 돈벌이 수단으로 바라보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한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먼 옛날 대학교 글쓰기 교양 수업을 들었을 때, 당시 교수는 학생들에게 "소설가란 자신의 삶을 파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이 수필이든 소설이든 장르는 중요하지 않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요점은 독자(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사회적인 움직임이 '스플릿 픽션'이 담아내고자 한 메시지와 맞물려 있다는 것도 놀랍지 않다. AI 의존증의 시대에서 점차 '인간의 노력'이 부각되고 있는 것. AI가 아닌, 사람이 직접 관여하는 콘텐츠를 활용하는 '휴먼 터치(Human Touch) 마케팅'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게임이 전달하는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연타석 홈런, 헤이즈라이트의 명품 협동 게임
친구가 없다면, 납치(?)를 해서라도...

상상력 샘솟는 스테이지, 완화된 난이도, 개성 넘치는 협동 기믹 등은 '스플릿 픽션'을 꼭 해볼만한 협동 게임 반열에 올려놓기 충분하다. 대략 12시간 정도 되는 플레이타임이 누군가에겐 길고, 또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있지만, 게임을 하고 있는 동안 만큼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몰입감을 갖추고 있다.
다소 평이한 스토리가 불만일 수는 있다. 개인적으로도 최종 보스 씬(누구인지 거의 처음부터 알 수 있는)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질질 끈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게임플레이 메커니즘이 반복되서 그렇다기보다는 보스 캐릭터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드는 느낌이었다. 카리스마도 별로 없고, 그저 끈질기게 추격만 해온다는 느낌을 일부러 전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헤이즈라이트 스튜디오는 거기서조차 일말의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런 사소한 부분만 감안할 수 있다면, '스플릿 픽션'이 올해 최고의 분할 화면 협동 게임이라는 데 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마지막 챕터의 화면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연출은 근래 어떤 게임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창의적이었다.
온라인 매칭도 지원하지 않는, '친구 없으면 할 수 없는 명작'이라는 칭호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래도 한 사람만 구매하면 친구는 공짜로 할 수 있으니, 게임 출시를 핑계로 평소 관심 있었던 사람에게 먼저 손을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