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에서 오래된 시리즈가 그간의 익숙한 틀을 벗어던지고자 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매너리즘을 환기하기 위해서, 혹은 시리즈의 새로운 팬을 영입하기 위한 한 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틀리에' 시리즈는 그간 여러 차례 새로운 시도를 거치면서 일신을 거듭해 지금까지 여러 JRPG와 나란히 생존해온 시리즈이기도 하다. 그랬던 경험 때문인지 다소 삐걱이는 점은 있어도, 확실하게 '코어'는 잡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장르명: RPG
출시일: 2025. 3. 21
리뷰판: 1.00c개발사: 거스트
서비스: 코에이테크모
플랫폼: PC, PS, SWITCH
플레이: PC
더 말이 필요없는 아름다움
라이자의 뒤를 이을 유미아, 내실도 충실

아틀리에 시리즈하면 가장 먼저 그 이야기를 끌고 가는 매력적인 주인공이 떠오른다. 전작의 주인공 '라이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시골소녀스러운 순박하고 밝은 인상에 특유의 허벅지 등 매력 포인트를 잘 살린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잘 조형된 캐릭터 중 하나로 손꼽혔고, 애니메이션화까지 이끌어간 원동력이었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 '유미아 리스펠트'도 그에 못지 않은 매력을 보여준 캐릭터다. 개인적으로 처음에 볼 때부터 단정한 단발머리에 눈물점, 살짝 내려온 눈꼬리와 삐죽 나온 바보털이라는 반대 속성의 매칭에 시선이 끌렸다. 전작과 달리 21세 성인이라는 점과, 활발한 소녀라는 특성을 절묘하게 섞은 디자인이라고 할까. 그리고 라이자 못지 않게 포인트를 잘 살려 조형된 신체 모델링도 그 특유의 매력을 한껏 살렸다.
그런 외형적인 요소로 시선을 끈 뒤, 스토리를 차근차근 전개하면서 유미아의 여러 매력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거스트의 내공도 돋보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연금술이 금지된 세계를 무대로 하고 있다. 자연히 연금술사인 '유미아'는 조사단 내에서도 겉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의기소침하고 조심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빅토르와 아일라 그리고 다른 조사단 멤버들이 합류하면서 점차 활발하게 바뀐다.



그렇게 바뀌는 모습도 갑자기 바뀌는 게 아니었다. 그 전에 여러 차례 전투에서 역동적인 모션이나 중간중간 자신의 실력을 뽐내는 대사를 통해 유미아의 내면에 활발하고 장난기 있는 모습이 있다는 게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그러다가도 실수해서 허둥지둥하는 대사도 자주 등장하고, 동료들과 티키타카가 이어지면서 아틀리에 시리즈 특유의 밝고 쾌활한 매력을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여기에 이동의 자유도를 상당히 챙긴 오픈월드도 더해지면서 모험의 매력도 더 올라갔다. 최근 대세가 된 오픈월드 게임처럼 벽타기나 활강이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어찌저찌 벽을 박차고 다단 점프를 해서 극복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를 고려해서 횡은 물론이고 종으로도 필드가 넓어진 만큼 패스트 트래블 포인트와 거점을 중간중간 마련해 불편함을 줄였다. 그래서 수풀부터 암석지대, 폐허, 기묘한 침식지대 등 다양한 구역을 자유롭게 탐사하는 모험의 미학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 못지 않게 중간중간 유비식 오픈월드처럼 물음표 표시도 많으니, 겸사겸사 이를 수행하면서 지워나가는 재미도 자연스럽게 연계됐다.



그렇게 익숙한 맛으로 이어지던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점차 톤이 달라진다. 알라디스 제국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에 다가가면서, 점차 밝고 유쾌하게만 나아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알라디스 제국은 '연금술'을 패도적으로 사용했던 국가다. 비유하자면 강철의 연금술사의 아메스트리스를 떠올리면 되겠다. 그리고 이곳의 '연금술'은 의외의 부작용이 있었고, 그런 것들이 얽히면서 '유미아'는 고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이를 극복하는 방식이 지극히 정통파적인 JRPG라 예상이 가능한 맛이었지만, 원래 아는 맛이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오히려 그렇게 왕도적이기 때문에 부담 없이 멋진 동료들과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며 연금술을 연구하는 여정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대에 발맞춘 시리즈의 도전
부족한 최적화와 버그, 엇갈린 템포의 아쉬움

앞서 유미아의 역동적인 전투 동작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작품은 여타 아틀리에 시리즈보다 역동적이다. 우선 전투가 턴제가 아닌, 인카운터식이긴 하지만 실시간으로 변경됐다. 그래서 전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스킬 키를 바쁘게 누르면서 콤보를 먹이기에 바쁘다.
일반 공격이 따로 있지 않고 스킬을 매번 써야 하는 만큼, 스킬이 쿨타임이 되면 다른 스킬을 쓰거나 근/원거리 스탠스로 변경한 뒤 계속 몰아치는 콤보의 맛은 꽤나 손맛이 괜찮았다. 여기에 적의 실시간 공격에 맞서는 여러 시스템까지 더해지면서 이전과는 색다른 재미가 느껴졌다. 적이 공격하기 전에 그 범위에서 좌우 이동이나 회피로 피신하는 건 물론, 저스트 회피 후에 다른 캐릭터와 교체하면서 카운터를 날리는 '저스트 카운터'까지 실시간 전투에 맞춘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여기에 '브레이크'와 '프렌드 액션' 등 상황을 전략적으로 살펴보며 전투하는 요소도 눈에 띄었다. '유미아의 아틀리에' 시리즈는 제각각 약점인 무기 타입과 속성 타입이 있는데, 무기 타입의 약점을 공략하면 행동 불능이 되는 '브레이크' 상태에 걸리게 된다. 이 상태에 빠진 적은 추가 피해를 입게 되고, 추가로 그 적의 약점 속성에 맞춘 아이템을 쓰면 동료와 협공하는 '프렌드 액션'도 발동된다.


빠르게 전황을 파악하면서 전투를 이어가는 만큼, 그에 못지 않게 모험과 연금술의 템포도 빨라졌다. 시리즈의 핵심인 '연금술'로 모험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데, 이전에는 자잘한 것도 매번 아틀리에로 가서 연성해야만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퀵메뉴에서 약식 조합을 선택, 붕대나 수리도구 같은 간단한 소모품은 바로 필드에서 제작할 수 있었다. 실시간으로 여러 적들과 다각도로 전투하는 과정에서 점차 부상을 입는 빈도가 높아지는데, 그럴 때마다 매번 아틀리에로 갈 필요 없이 빠르게 치료하고 모험을 쭉 이어갈 수 있게 된 셈이다.
아울러 초보에게 다소 어려운 연금술의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자동 조합도 여러 옵션을 추가, 일정 수준 이상의 효과를 내기 위해 일일이 수동으로 조합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다. 연금술을 연구하는 것이 아틀리에 시리즈의 핵심 요소인 만큼 유저가 직접 극한까지 연구한 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위 '딸깍'으로 어느 정도 성능을 간편히 뽑아낼 수 있는 자동 공식을 연구하는 맛도 더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면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시리즈를 한 단계 진화시킨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화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완성되는 것처럼,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아직 과도기의 느낌이 들었다. 그래픽은 확실히 진일보했지만, 그 발전된 정도에 비해서 최적화가 뒤따라오지 못했다. 권장사양이 GTX 2060 이상이라고 하는데, 그 사양에서 프레임이 드랍되는 현상이 자주 보고되곤 했다.
실제로 9070XT로 바꾸기 전, 계속 프레임이 30대로 떨어졌던 걸 체험했다. 그래서 여러 차례 테스트한 결과, 수풀 밀도와 그림자 품질을 최소로 낮추고 볼류메트릭 포그 옵션을 끄는 등 세팅을 하니까 좀 나아졌다. 물론 그만큼 필드가 좀 허전해지는 것이나 캐릭터 그림자가 다소 뭉개지는 현상은 감당할 수밖에 없었고, 중간중간 프레임이 끊기는 현상 자체를 방지하지는 못했다.


최적화 외에도 종종 버그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요소였다. 퀘스트가 끝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낙하하더니 최초 시작 지역으로 이동하는 일도 잦았다. 전투에서도 종종 적들이 바위 위에서 내려오지 못해 움찔움찔하는데 공격은 공격대로 들어오는 버그도 있었다. 자기가 조종하는 캐릭터와 적을 다소 먼 백뷰에 가까운 시점으로 카메라가 잡혀있어 위에 있는 적을 올려다보면 바닥을 보기 어려운데, 그렇게 움찔움찔하면 모션으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맞을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전투는 빠르게 끝나지만 이후에 일일이 승리 모션을 잡고 필드로 넘어가면서 어그러지는 템포도 좀 거슬렸다. 획득한 아이템의 수 같은 걸 결산해주는 것도 아니고 모션만 보여주는데, 그런 걸 위해 재료 수급과 레벨업을 위한 반복 과정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나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실시간 전투 템포는 굉장히 빠른데, 그 이후 처리가 그렇지 못하다보니 언밸런스함까지 느껴졌다.


진화의 문턱에 선 '아틀리에'
괜찮았던 오픈월드 첫시도, 다음은 더 발전하길
이번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아틀리에 시리즈 개발진 입장에서는 크나큰 모험이었다. 그간의 어느 한 지역을 거점으로 두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이 아닌, 방대한 오픈월드에서 '탐사'와 '모험'이라는 새로운 테마를 현 트렌드에 맞춰 풀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시도는 목표를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만족스럽게 달성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그간 개발진이 쌓은 캐릭터 디자인 노하우가 반영된 '유미아'가 꽤 크게 작용하긴 했다. 처음엔 의기소침하고 조심스럽다가도 엣헴거리며 으쓱거리거나 당황할 때 귀여운 모습, 그리고 침울해진 모습까지 다각도로 보면서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순간에 매력을 느끼게 하는, 덕심을 제대로 저격한 캐릭터 디자인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그런 매력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 활약을 담아낼 스토리와 모험이 전개되는 세계의 디자인도 잘 갖춰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만 디테일에서는 아쉬웠다. 그간 이 정도로 종횡이 거대한 심리스 월드를 제작하지 않았던 만큼, 최적화 노하우가 상당히 부족해 여간해서는 이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웠다.
메인스토리는 왕도적으로 확실히 끌고 가면서 맛을 살렸지만, 서브퀘스트는 상당히 들쭉날쭉했다. 그 넓어진 필드를 꽉 채우기 위해 강박적으로 서브퀘스트나 여러 가지 요소를 넣었는데, 다수가 비슷하게 특정 몬스터 사냥이나 제작 등을 반복하는 양상이라 조금 지루했다. 그마저도 육성과 콘텐츠 해금을 위해서 어느 정도 수행해야 하다 보니, 하기 싫지만 어거지로 해야 해서 꺼려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 부분에서는 종종 '연금술'이라는 소재에 맞춰 좀 더 퍼즐이나 연금술을 적극 활용한 탐사로 다각화하는 게 어떨까 싶을 때도 있었다. 채집과 사냥, 그리고 별로 쓸 곳도 없는 아이템을 어거지로 제작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다. 특히 '연금술'은 자동 조합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결국 최고 효율을 내기 위해서는 직접 할 필요가 있는 콘텐츠다. 연금술이 금기가 된 설정이라 DIY로 이리저리 시도하는 맛이 있긴 하지만, 초심자에게 가이드라인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있었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있었지만, '유미아의 아틀리에'는 아틀리에 시리즈의 다음 단계를 기대하게 만든 게임이었다. 매력적인 캐릭터와 연금술이라는 소재를 모험, 오픈월드라는 과제에 적절하게 녹여내면서 시너지를 발휘한 단초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음 번에 최적화를 비롯해 이번에 다소 아쉬웠던 부분을 개선한다면, '아틀리에 시리즈'는 앞으로 현세대 오픈월드 RPG에 못지 않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해줄 가능성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직은 조금 이른 이야기겠지만, 그게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진해나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