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

최근 몇 년간, 출시 전부터 부정적인 이슈로 도마에 오른 게임은 많았지만, 이 정도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게임은 드물다.

심지어 게임 본편보다 관련 논란을 다룬 위키 문서의 내용이 두 배는 더 풍부할 정도다. 일국의 총리와 기 싸움을 벌인 게임이자, 수십 년간 게임을 서비스해온 대형 게임사의 운명이 걸린 작품. 게임 산업 역사상 전례 없는 망언까지 얽혀 있는 게임. 이쯤 되면, 그 자체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배경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약 50시간 정도 플레이했다. 오랜 시리즈를 개발하며 쌓아온 노하우가 드러나는 건지, 분량 자체가 방대해 100% 완전 분석은 어려웠지만, 나름의 확고한 인상을 가질 만큼은 충분히 경험했다.

이번 리뷰에서는 논란에서 한발 물러나 게임 본연에 집중해 분석하되, 그렇다고 논란을 완전히 외면하지는 않았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을 어떻게 풀어냈는지, 또 전반적으로 게이머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도록 연출했는지를 함께 다뤘다.

그리고 미리 앞서 결론을 요약하자면, 이 게임은 '생각보다 좋은 게임'이다.

※ 본 리뷰에는 심각하지 않은 수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게임명: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
장르명: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쳐
출시일: 2025. 3. 20
리뷰판: 출시 빌드
개발사: 유비소프트
서비스: 유비소프트
플랫폼: PC, PS5, XSX|S
플레이: PC


논란의 '야스케'
마님은 왜 야스케에게 서예를 가르쳤을까?

많은 이들이 가장 궁금해할, 그리고 가장 뜨거운 이슈부터 짚고 넘어가 보자.

출시 전 논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부분은, 두 주인공 중 한 명이자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야스케'의 연출일 것이다. 야스케는 분명 사서에 기록된 실존 인물이자, 세계 반대편에서 건너와 일본 전국시대의 인물로 이름을 올린 매우 흥미로운 배경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그의 구체적인 행적이 상세히 남아 있진 않기에, 재해석과 2차 창작이 매우 용이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논란이 된 두 가지는, 야스케가 일종의 특권층이자 준 귀족이라 할 수 있는 ‘사무라이’로 묘사된 점,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의 여동생이자 역사적으로 상징적인 인물인 ‘오이치’와 러브라인으로 엮인다는 점이다.

▲ 이래도 되나 싶은 러브라인

사실, 오이치와의 러브라인은 분명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요소지만, 야스케가 사무라이로 그려졌다는 부분이 과연 그 정도로 문제가 될 만한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다. 분명 사서에는 야스케가 사무라이였다는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지만, 이미 다양한 매체에서 야스케는 흑인 사무라이로 자주 등장해왔다. 소설, 드라마, 게임 등에서도 그는 하나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잡은 바 있다.

물론, 그런 그가 사무라이로 등장하는 것 자체보다, 너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앞서 언급한 오이치와의 러브라인은 다소 무리한 설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시바 히데요시(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아케치 미츠히데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장면이나, 오다 노부나가의 카이샤쿠닌(할복 시 참수 역할)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이건 좀 지나치지 않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오이치와의 러브라인 역시 현실감이 떨어지고 어색하게 다가온다.

▲ 화면만 보면 그냥 태닝 심하게 된 해변가 다이묘같다

하지만 진정한 위화감은 야스케라는 인물의 입지 자체보다는, 이 야스케를 둘러싼 연출과 게임 속 센고쿠 시대 일본의 묘사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에서 비롯된다.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가 그려낸 일본은, 무법에 가까운 전횡과 나름의 질서가 공존하는 혼란기의 모습을 보여준다. 율령국에 따라 비교적 평화로운 지역도 있고,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역도 존재하지만, 교토나 오사카와 같은 도시는 그나마 질서가 잡혀 있는 모습이다. 해안선 곳곳에는 포르투갈의 캐러밸이 드문드문 정박해 있어, 전반적인 배경 묘사는 제법 그럴듯하게 구현돼 있다.

문제는,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태도다. 겉보기에는 혼란기 일본의 모습을 충실히 담아낸 듯 보이지만, 구성원들은 시대적 배경을 초월하고 그 누구보다도 '깨어 있는' 모습을 보인다. 흑인 사무라이가 거리를 누비고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귀신이나 요괴 취급은커녕 별다른 시선조차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같은 일본인을 대하듯 존중과 평등을 보여준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텃세나 따돌림은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다른 나라가 아니라, 단지 다른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0년 전 일본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더 열린 태도를 가진 듯한 이 설정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강한 위화감과 괴리감을 불러일으킨다.

▲ 너무 쉽게 특권을 얻는 야스케

이쯤에서 떠오르는 건, 이 모든 논란의 시작이자 개인적으로는 게임 산업 역사상 손에 꼽힐 만한 망언 중 하나로 느껴졌던 디렉터 조나단 뒤몽의 인터뷰다. 그는 “왜 야스케를 주인공으로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에, “일본인이 아닌, 우리의 눈이 되어줄 캐릭터를 찾았다”고 답했다. 시대적 배경을 초월해 아무런 차별도 받지 않고, 오히려 특별 대우를 받으며 몇 개월 만에 준 귀족의 위치까지 올라가는 인물. 너무 전형적인 '이고깽'식 전개 아닌가?

이런 위화감은, 야스케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내내 기저에 깔려 있다. 결국, 게임을 잘 즐기려면 나와의 다짐이 필요한데, '그냥 게임 설정이 그런 거다'라는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앞으로 서술할 게임 플레이에 대한 내용 역시 이렇게 최면을 건 상태로 플레이한 결과다.

▲ 이렇게 잘 싸우니 총애받나 싶기도


진 주인공 '나오에'
바로 그 때, 닌자가 나타나서 다 죽이기 시작했다

반면, 또 다른 주인공인 '나오에'의 파트에서는 앞서 언급한 위화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가 시노비의 일원으로 등장하는 나오에의 플레이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닌자'의 이미지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그 연출과 묘사는 기대 이상으로 뛰어나다. 나아가,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지향해온 게임의 방향성과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 사실상 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나오에'

우선, 게임 플레이나 캐릭터로 들어가기 전에, 그래픽 비주얼부터 눈에 띈다. 캐릭터의 외형은 이전 시리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배경과 환경 묘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뛰어나다. 과거 유비소프트는 '와치독' 트레일러 영상과 실제 게임 그래픽 간의 큰 차이로 비판을 받은 바 있었지만, 이번 작품의 환경 묘사는 오히려 당시의 트레일러를 능가할 정도다. 물론, '와치독'은 출시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작품이기에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이번 타이틀은 그만큼 '보는 맛'이 확실하게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광원’의 활용이다. 이는 나오에의 플레이 스타일, 특히 ‘스텔스’ 요소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번 작의 은신 판정은 단순히 풀숲이나 엄폐물뿐 아니라, ‘그림자’의 존재 여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적과의 사이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더라도,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 속에 숨어 있다면 쉽게 들키지 않는다. 이런 그림자의 활용은 단순히 시각적 효과를 넘어서, 실제 게임 플레이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결코 가볍게 설계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그래픽과 플레이 양면에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 비주얼이나 연출은 흠잡을 데가 없다

▲ 광원을 무척 잘 썼다는게 영상과 플레이 전반에서 보인다.

나오에의 애니메이션, 액션, 그리고 무기 구성 역시 대중이 상상하는 ‘닌자 판타지’에 매우 적절하게 부합한다. 마법을 인술이라 포장하거나, 분신술과 둔갑을 사용하는 슈퍼닌자가 아닌, 현실적인 경계 안에서 표현된 시노비로서의 모습이다. 카타나, 사슬낫, 단검 등은 단순한 무기를 넘어 암살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되며, 파쿠르 모션 또한 기존 주인공들과는 다른 차별점을 갖고 있다.

만월 아래, 담장을 질주해 천수각을 향해 도약하는 나오에의 모습은 그 자체로 게임의 대표적인 셀링 포인트라 할 만하다. 물론, 역사적 배경을 따져보면 사무라이도 아닌 평민이 칼을 차고 다니는 설정 자체가 다소 현실과 어긋나긴 하지만, 앞서 야스케를 설명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 게임은 일정 부분 ‘자체 필터’를 켜고 플레이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위화감을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다면, 전반적으로 큰 불편함 없이 몰입해 즐길 수 있다.

▲ 전형적인 닌자 액션

이렇듯, 두 주인공의 입장은 꽤 다르게 놓여 있지만 다행인 점은 몇몇 서사가 엮인 미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게임 콘텐츠를 원하는 주인공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나오에는 초반 파트가 크게 배정되어 있어 억지로 회피할 수 없지만, 야스케의 경우 정말 어쩔 수 없는 부분만 플레이하면 전체 플레이의 95% 정도는 나오에로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상기했던 '자체 필터'도 사실 그리 큰 각오가 필요하진 않았다. 거슬린다 느낀다면 거슬리겠지만, 그냥 게임이자 창작물로 받아들이면 수용 가능한 선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재미있냐?
전형적이지만, 훌륭한 오픈월드 게임

게임의 전체적인 시스템과 흐름은 이전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어쌔신 크리드’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신화 3부작’이라 불리는 시리즈와 가장 유사한 구조를 띠며, 이 시리즈의 특징인 ‘무지막지하게 넓은 맵’, ‘다양한 수집 요소’,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암살 대상’ 등을 고스란히 공유한다.

이번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의 맵 규모는 전작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큰 편으로, 일본 관서(칸사이) 지방 전역을 폭넓게 아우른다. 절대적인 맵 크기만 보면 ‘발할라’나 ‘오디세이’보다는 작지만, 험준한 산악 지형과 복잡한 구조 덕분에 체감상 작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경우에 따라서는 더 크고 복잡하게 느껴질 정도다.

▲ 봄, 가을, 그리고 겨울

이와 함께 주목할 만한 요소 중 하나는 이번 작에 새롭게 도입된 ‘계절 변화’ 시스템이다. 유비소프트의 오픈월드 게임들은 보통 화산부터 설원까지 다양한 환경을 넣는 방식을 채택해 왔는데, 관서 지방은 기본적으로 비슷한 식생을 유지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이러한 다양성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도입한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완성도가 높다. 예를 들어, 겨울에는 개울이 얼어 미끄러워지고, 고드름이 생겨 전투에 활용되며, 봄부터 가을까지는 식생의 색감이 뚜렷하게 변화해 플레이에 신선함을 더한다.

이처럼 방대한 맵은 곧장 게임의 콘텐츠 볼륨으로 이어진다. 메인 빌런인 ‘햣키슈’를 비롯해, 부패한 관리, 배신자, 상인, 해적,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사들까지… 이번 작품에는 역대 가장 많은 수의 비밀 결사가 등장한다. 이들이 너무 다양하게 흩어져 있다 보니, 다른 임무를 수행하다가 우연히 죽인 적이 알고 보니 어떤 결사의 일원이었다는 식의 상황도 자주 벌어지며, 선택에 따라 이 결사의 일원을 살려주거나 동료로 받을 수도 있다.

▲ 무슨 비밀 결사가 계속 나온다

사이드 콘텐츠도 알차게 구성돼 있다.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성과 요새 공략은 당연히 존재하고, 당시 일본의 정신적 기반이었던 신토와 불교를 함께 다루고 있으며, 야스케로 진행하는 ‘카타’ 수련, 나오에의 명상 ‘쿠지키리’, 기마궁술 행사인 ‘야부사메’, 고분 탐험까지 다양한 미니 게임이 준비되어 있다. 다만, 토리이의 배치나 일본 내에서도 조심스럽게 다뤄지는 다이센 고분을 탐험하는 장면 등을 보면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게임적 측면에서는 제법 그럴듯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센고쿠 시대의 MZ 암살단이라 할 수 있는 ‘카토슈’를 성장시키는 과정, 은신처의 확장, 각 단원들의 개별 서사까지 포함되어 있어 DLC 없이도 콘텐츠가 풍부하다는 인상을 준다.

▲ 초가삼간을 대궐집으로 바꿔가는 여정(우리네 인생 같다)

물론, 이러한 구조를 두고 ‘전형적인 유비소프트식 오픈월드’라 평하는 이들도 있다. 수많은 마커와 할 일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형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은 문제다. 일반적으로 오픈월드 게임들의 구조는 유사한 경우가 많으며, 유비소프트의 디자인이 특별히 뒤처진다기보다는, 전체적으로 게임의 ‘핵심 플레이’가 얼마나 재미있느냐에 따라 피로도에 큰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이 넓은 세계를 탐험하는 과정이 재미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는 특히 ‘나오에’에 한정해서는 굉장히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시노비와 닌자에 대한 묘사 역시 역사적 고증보다는 미디어적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차용해 훌륭히 구현해냈고, 그 결과 이 방대한 오픈월드가 단조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 전형적인 '어쌔신 크리드'식 맵이지만 플레이가 즐거우니 됐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게임은 재미있다. 출시 전 논란이 컸던 만큼, 처음에는 “얼마나 엉망일지 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게임 자체의 완성도가 높다는 인식이 들면서 ‘문제는 게임이 아니라 디렉터의 실언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기대 이상으로 견고하고, 몰입감 있는 게임 플레이를 제공한다.

▲ 기존 시리즈는 십자가도 기어올라갔지만 토리이는 못 올라간다



분리된 캐릭터성과 박살난 개연성
왜 계속 캐릭터를 바꿔가면서 해야 하는 걸까...

이제, 어설픈 자기최면으로는 그냥 넘기기 어려운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해 짚어보려 한다. 게임 기자들 사이에서 자주 쓰이는 관용어 중 하나인 ‘유비스코어’는 메타크리틱 기준 75~85점 사이에 위치한 게임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 표현은 유비소프트 게임들의 본질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데, 그들은 게임을 ‘적당히 잘’ 만들지만, 결코 완벽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그냥 ‘안 하는 쪽’에 가깝다고 느껴진다.

당연히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 역시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그중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앞서 여러 차례 언급된 주연의 더블 캐스팅 구조다. 이는 기존에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운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의 어떤 작품과도 결이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신디케이트’에서는 제이콥과 이비가 각자 다른 무기를 사용하긴 하지만, 전투 능력이나 기본적인 플레이 스타일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오디세이’의 알렉시오스와 카산드라 또한 서사가 반대 방향으로 흐를 뿐, 실제 플레이 성능은 동일하다. 요컨대, 어쌔신 크리드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사’와 ‘암살자’라는 두 가지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블랙 플래그'의 에드워드나 '발할라'의 에이보르처럼 설정상 암살이 익숙하지 않은 인물들도 실제 플레이에서는 암살과 잠입을 훌륭히 수행한다.

그러나 ‘섀도우즈’의 두 주인공은, 마치 이 두 정체성을 억지로 쪼개 놓은 것처럼 극명하게 나뉘어 있다.

▲ 암살이냐 전투냐, 골라야 한다

‘나오에’는 은신, 암살, 침투에 매우 능숙한 캐릭터지만, 정면 승부에서는 야스케에 비해 현저히 불리하다. 물론 컨트롤에 자신 있는 유저라면 나오에로도 전투를 이겨낼 수는 있지만, 본작의 카메라 워크는 다대일 전투에 불리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 특히 초반의 나오에는 체력이 약해, 적의 공격을 두어 번만 맞아도 바로 비동기화되어버린다.

반면, 야스케는 혼자서도 십수 명의 적을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높은 체력과 방어력은 물론, 적을 처치할 때마다 체력이 회복되는 특성, 다수 적을 상대하기에 적합한 기술들 덕분에 위기에 몰릴 일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은신과 파쿠르에 있어서는 처참할 정도다. 고지대 접근은 사실상 포기해야 할 수준이며, 암살은 마치 그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어설프다.

▲ 야스케식 암살법, 실제 플레이도 크게 안 다르다...

결국, 두 캐릭터의 강약이 너무 뚜렷하게 구분되다 보니, 게임 내 다양한 상황에서 캐릭터를 수시로 바꿔가며 플레이해야 한다. 나오에는 힘이 부족해 폭탄 통조차 들 수 없기 때문에, 막힌 벽이 있으면 야스케로 바꾸고 로딩을 거쳐야 하고, 야스케는 고지대의 암살 대상에게 접근할 수 없어 나오에로 바꿔야 하는 식이다.

오픈월드 탐험을 주된 구조로 삼는 게임인 만큼, 이동과 잠입에서 훨씬 쾌적한 나오에 쪽으로 점점 기울게 되며,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레 야스케는 덜 쓰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처음엔 미숙했더라도, 카토슈에 합류한 이후엔 뭔가 배우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필요할 때 다른 동료 단원처럼 불러서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기능이라도 있었으면 훨씬 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 다른건 다 배우는데 왜 파쿠르는 안 배울까...

또 하나 근본적인 문제로 느껴지는 건 바로 서사의 개연성이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언급할 수는 없지만, 야스케가 나오에와 인연을 맺게 되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고, 나오에가 '카토슈'라는 조직의 존재를 알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조직 이름을 그렇게 명명하는 부분도 납득이 어렵다. 무고한 사람을 잘못 죽여 놓고도 "얘도 악당이야"라고 합리화하거나, 가족을 잃는 아픔을 말하면서 그냥 일꾼들까지 전부 죽이는 나오에의 모습도 요상하게만 비춰진다.

이렇듯, 게임을 하다 보면 “어라? 왜 갑자기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지?” 하는 순간이 꽤 자주 찾아온다. 네네 부인과 노부츠나 선생에게 검술과 서예를 배우며 사무라이가 되었으나 결국 복수의 길을 걷게 되는 야스케의 서사, 복수를 다짐하며 일어섰다가 결국 대의를 선택하는 나오에의 서사가 마치 십자가처럼 엇갈리는 구조는 충분히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 멋진 서사를 이어가는 과정은 다소 허술하게 구성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 복수로 시작해 대의를 바라보는 나오에와

▲ 검과 예를 배웠으나 복수의 길을 걷는 야스케의 서사 엇갈림은 멋지지만...


'유비스코어'의 정점
그러나 딱 거기까지

리뷰를 정리하자면,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는 상당히 잘 만든 게임이며, 충분히 시간을 들여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출시 전부터 불거진 게임 외적인 논란이 너무나 거세서, 자연스럽게 “게임 자체도 엉망이 아닐까?”라는 우려가 따랐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본 결과 그 정도로 엉망은 아니었다.

물론, 이러한 인식은 내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선일지도 모른다. 만약 본작의 배경이 한국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면, 일본에서 왜 이 게임에 대해 범국가적인 불쾌감을 표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것이 ‘선을 넘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건 매우 어려운 문제다.

다만, 이 논란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단순히 하나의 게임으로만 이 작품을 바라보면, 다소 거칠고 어설픈 부분이 있긴 해도 세계를 구성하고 채우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고 고민했다는 인상은 분명히 받게 된다. 색감의 사용, 아트 스타일, 연출 기법, 그리고 각종 소품에 이르기까지 단순히 ‘유비소프트는 동양권을 멸시한다’는 명제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성과 세심함이 곳곳에 담겨 있다.

▲ 잘 묘사해보려고 노력한 건 보이지만, 그 시절 스모 선수들은 슬림하다는것까진 몰랐나 보다

▲ 보면 볼 수록 왜 인기가 많은지 이해되는 전국시대 슈퍼스타(멋있다)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다양성의 교조화'에 대해서도 이 악물고 야스케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일본은 어색하고 위화감이 느껴지지만, '베일가드'정도로 게이머에게 뭔가를 가르치려는 부분도 없다. 바로 이 점들이, 이번 논란이 유비소프트 전체의 문제가 아닌, 일부 인물의 몰이해와 경솔한 언행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하게 만든다.

시스템적인 측면에서는 유비소프트가 오랜 시간 쌓아온 오픈월드 디자인 노하우가 촘촘히 녹아 있으며, 비주얼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러나 ‘완벽하다’고 보기엔 부족한 부분도 적지 않다. 플레이 도중 답답하게 느껴지는 구간들, 조금만 더 고민했으면 쉽게 개선됐을 법한 설계의 빈틈들, 그리고 자주 끊어지는 서사의 연결 고리는 이 작품이 여전히 불완전한 모습을 지녔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유비소프트가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 중에서는 분명 ‘고점’에 해당하는 게임이지만, 그들이 가진 구조적 한계를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 작품이다. 취향에 잘 맞는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겠지만, 최고가 되기엔 한 걸음 모자란 게임. ‘어쌔신 크리드 섀도우즈’는 그런 게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