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9년 5월, WHO 총회에서 게임이용장애가 ICD-11에 질병 코드로 등재됐다. 그 직후인 2020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가운데, 게임이 새로운 미디어이자 엔터테인먼트로 부각되면서 WHO가 게임을 권장하는 플레이어파트투게더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혼선이 있었다. 엔데믹 이후 안정화된 지금은 게임이용장애 이슈는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오늘(18일) 게임과학연구원과 국제디지털게임연구학회 한국지회(이하 "DiGRA한국학회")가 공동 주최하는 2025 게임 과학심포지엄에서 이와 관련한 강연이 진행됐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벨리-마띠 카훌라티 핀란드 유베스클라 대학 연구교수와 진예원 이화여대 교수는 게임이용장애 관련 이슈를 측정 도구의 혼란과 해외 현황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짚었다.

카훌라티 교수는 먼저 '게임이용장애'라는 용어와 이를 측정하는 기준부터 모호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1970년대에는 '놀이 중독', 1990년대에는 '인터넷 중독', 2000년대 이후에는 '게임 중독', '인터넷 게임 장애', '게임이용장애'까지 게임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행동에 대한 명칭은 계속 바뀌어왔다.
아울러 정신의학계에서 주요 지침으로 사용하고 있는 DSM-5와 ICD-11도 서로 다른 진단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참고하고 있는 진단 지침들도 일관되지 않다. 예를 들어 DSM-5는 9개 기준, ICD-11은 3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전 세계에 사용되고 있는 진단 지침의 기준을 살펴보면 둘 중 하나만 충족하거나 둘 다 명확히 반영하지 않았다.
실제로 핀란드에서 지난 2020년 진행된 8천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같은 사람을 진단했을 때도 DSM-5 기준과 ICD-11 각 기준에 부합하는 비율이 달랐다. ICD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 중 절반 이상이 DSM 기준에는 해당되지 않았으며, 자가보고로는 문제에 해당한다고 했던 사람들이 두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등 예외 사례도 상당히 많았다.


한편, 과거 도박 중독 척도를 기반으로 변형해서 적용한 '게임중독 척도'로 체크했을 때에도 예외 문제가 상당히 많이 발생했다. 해당 지침은 행동 중독과 연관해 매우 넓은 집단을 포괄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ICD 기준으로 조건을 충족한 대상자의 절반 가량이 기존 척도에 부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카흘라티 교수가 핀란드 게임클리닉 방문자를 1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DSM 기준으로는 42%만 게임이용장애 조건을 충족했다며 "게임이용장애 진단 및 측정 기준이 혼란스럽다"고 언급했다.
또한 용어도 다소 혼란스럽다는 점도 지적했다. 핀란드에서 게임이용장애라고 한 만 명을 조사한 결과 치료를 원하는 사람은 44명이었으며, 연구에 지원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7명, 그리고 그 7명 중 6명은 도박중독의 유형이었다. 그리고 인용 지수가 높은 논문 500편을 재검토하고 저자들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요구한 결과, 문헌 대다수가 '도박'과 관련된 데이터가 있어 중독성이 있다는 가설을 내세웠다는 점을 확인했다. 개중에는 '게이밍'이라는 단어가 '도박'과 연관성이 일부 있어 그와 엮은 반면, 중국은 아예 단어가 달라서 이를 혼용하지 않고 연구하는 등 언어 및 문화권의 차이도 있었다.
카훌라티 교수는 영어권과 슬로바키아권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도박은 게임에 포함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드게임, 테이블 RPG 등도 비디오 게임과 혼동되어 보고되는 사례도 있으며, 이 비중도 언어 및 문화권마다 다르게 나오는 등 정확한 분리 없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렇듯 현재 게임이용장애 연구는 대부분 개념적 혼란과 언어적 모호성으로 인해 신뢰할 수 있는 진단과 비교 연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며, 이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개념 정의를 더 명확히 하고 문화 및 언어적 차이까지 고려한 방법론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진혜원 교수는 WHO의 2019년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록 이후 주요 게임 산업국 10개국, 신흥 게임국 6개국, 문화적 다양성 고려 4개국을 선정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해당 설문조사에서는 대만, 독일, 말레이시아,미국, 스페인, 슬로바키아, 인도, 일본, 중국, 프랑스, 핀란드, 호주까지 최종 12개국이 응했다.
이 12개는 말레이시아, 인도를 제외하고는 ICD를 참고해 자국 고유의 질병 분류 체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WHO가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등재했음에도 자국 질병 분류 체계에 게임이용장애를 등록한 국가는 한 곳도 없었다. ICD-11에 게임이용장애를 등록한 것에 대해 대만, 미국, 스페인, 슬로바키아, 프랑스, 호주 6개국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독일, 중국, 핀란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인도는 긍정적이었다. 말레이시아, 일본은 확실치 않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해당 조치에 대해 조사자 공통적으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아울러 게임이용장애의 기준이 모호하고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오용 및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호주에서는 아예 게임이용장애 개념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설문조사에 응한 프랑스 임상심리학자는 "지난 10년 동안 지켜본 환자들은 게임이용장애가 아닌 괴롭힘, ADHD, 자폐 스펙트럼, 불안 장애, 우울증, 사회공포증, 경계선 장애, 양극성 장애를 겪고 있었다"며 "게임이용장애는 실제 확인 가능한 기저질환보다 '게임'이라는 표면적 증상에 맞춰 부적절한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진단 기준 및 치료 방식의 적절성을 측정하기 위한 연구는 진행되고 있으나, 국가적 차원이 아닌 개별적 연구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도 의학적 타당성과 임상적 효용성 부족을 이유로 DSM에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진단에서 제외했으며, 일각에서는 WHO의 결정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 스텟슨 대학의 크리스 퍼거슨 교수는 "특정 행동을 지나치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염려한다면, 왜 쇼핑, 음식 중독 등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포괄적인 '행동 중독 장애'를 만들지 않는 건가"라며 "WHO 역시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이 질환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언급했다.


또한 경제적 비용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등재되면, 이를 치료 및 관리하기 위한 보건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험체계도 반영하는 등 재정적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용에 대한 지출 및 필요성, 그리고 효과에 대한 평가까지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말레이시아, 슬로바키아, 인도, 일본, 프랑스 측에서 제기됐다.
아울러 질병 등재로 낙인이 생기고 오해가 심화되는 등, 사회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한 게임을 즐기지 않은 세대와 즐기던 세대와의 갈등을 비롯해 가정 내 불화, 개인 건강에 미칠 부작용 등도 불안 요소로 언급됐다. 이처럼 게임이 단순히 이제는 기술과 문화, 여가, 사회 구조까지 밀접하게 엮인 요소인 만큼 과학적인 근거와 다양한 측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한 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혜원 교수는 더 나아가 지금 자신의 연구도 조사 대상 국가 수가 제한적이고 전문가 개인 의견에 기반한 탐색 조사였다는 한계를 언급하면서 더욱 다양한 국가와 전문가 유형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기존 게임이용장애 연구가 게임을 단순한 문제적 행동과 개인의 정신 건강 문제에 한정지었는데, 이제는 국가별 게임 문화, 가족, 여가, 교육 등 사회 경제 구조까지 다양한 분야를 고려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게임이용장애는 '암' 같은 생물학적 보편 질병이 아니고, 게임 또한 문제 유발 요인이 아닌 문화, 기술, 정체성의 매개체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