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롤은 원래 북유럽 신화의 괴물에서 출발해 판타지 세계관의 대표적인 몬스터로 자리잡은 존재지만, 지금 게이머들에겐 다른 의미로 더 친숙하다. 욕설이나 비아냥을 계속하는 건 물론, 일부러 적에게 죽어주거나 태업을 하는 등 팀원을 일부러 방해하는 악성 행위를 저지르는 유저들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위를 지칭하는 '트롤링'이라는 단어가 먼저 언급되고, 몬스터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트롤러'라는 명칭이 더 굳어지고 있지만, 기존에 있던 단어 이상으로 연상이 될 만큼 이 문제는 게이머들 사이에선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트롤링이 최근 게임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반명예훼손연맹(ADL)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온라인 유저 중 68%의 유저가 괴롭힘을 당해봤으며, 이런 경험을 한 유저 중 28%가 자신이 플레이하던 게임을 떠났다. 이와 관련해 게임업계에서 여러 가지로 대응을 하는 가운데, 게임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던 학자들도 관심을 갖고 이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틴 쿡 타이베이 국립정치대 교수와 이상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는 트롤링의 역사와 행동 예측이라는 주제로 2025 게임 심포지엄에서 강연을 이어갔다.

크리스틴 쿡 교수는 자신의 박사 학위 논문을 '트롤링'과 관련해서 썼던 것과, 이를 작성하기 위해 참고했던 논문 세 편을 언급했다. 각각 2012년 영국 심리학자 대커와 그리피스가 발표한 논문, 버켈스가 2014년 발표한 논문 그리고 피치먼과 산필리포가 2014년에 발표한 논문으로, 각각 트롤링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대커와 그리피스는 '파괴적이고 기만적인 행동이자 혼란을 야기하기 위한, 뚜렷한 목적을 갖고 일어나는 행동'이라 해석한 반면 버켈스는 '정해진 목적 없이 발생하는 파괴적인 행위'라고 보았다. 또 피치먼과 산필리포는 '일탈적이고 반사회적, 공동체 규범을 넘어서는 도전적 행위'로 규정했다.
그 당시에는 '트롤링'이라는 개념이 일반 유저 사이에서는 일반화되고 있었고, 학계에는 막 연구가 진행되던 차였다. 그래서 쿡 교수는 레퍼런스로 쓸 만한 논문을 3편 정도밖에 찾지 못했는데, 여기서도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심지어 그 정의도 서구권 심리학 연구자가 서구권 유저만을 대상으로 한 만큼, 비서구권 사례나 개념 정의도 부족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는 트롤링 관련으로 2만 건의 문서가 나올 만큼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만큼 '트롤링'이 게임 업계 그리고 유저에게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학계에도 이를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가 연구자 중심의 정의에 의존하고 있었고, 쿡 교수는 이에 직접 트롤러들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시각에서 트롤링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인터뷰 결과 트롤러들 사이에서도 트롤링에 대한 정의가 제각각이었다. 아울러 연령대에 따라 트롤링 방식이 달라지는 세대 차이도 관찰됐다. 이를 통해 단순 충동적 행동이나 악의적 행동 등으로 정의됐던 트롤링 현상이 다층적이면서 문화적인 차원과 연관된 문제라는 단서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기존 학계에서는 트롤링을 사이버불링 즉 온라인 상에서 괴롭힘과 유사시하는 경향도 있었지만, 인터뷰한 결과는 다소 달랐다. 사이버불링은 일방적인 가해자-피해자 구도가 다수인 것에 반해, 트롤링은 피해자가 다음에 트롤링을 하는 가해자가 되는 순환 구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쿡 교수는 LoL 리포트 1만 건을 분석한 결과, 트롤러와 피해자 모두 상당히 유사한 정도로 욕설과 비난을 쓰고 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같은 대화, 게임 내에서 순식간에 역할이 뒤바뀌는 사례도 발견됐다. 이는 트롤링 사이클이 매우 빠르다는 것을 입증하는 지표였다.


쿡 교수는 또한 트롤링의 문화 간의 차이를 실험하기 위해 대만, 파키스탄, 네덜란드 유저의 반응을 비교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쿡 교수는 당시 대만에 있었고, 대만에서 여러 연구를 한 결과 비교군 가운데에 심리적으로 가장 안정적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달랐다. 대만 유저들이 트롤링에 가장 공격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결과를 본 쿡 교수는 홍콩시립대와 서울대와 협력해 아시아 지역의 트롤링 특성을 조사 중이며, 현재 한국과 홍콩의 자료 수집은 완료된 상황이다. 쿡 교수는 "서버와 문화에 따라 트롤링은 다르게 나타난다"며 더 많은 연구 자료를 획득하기 위해 각계 특히 e스포츠 연구자들에게 협업을 제안했다.

뒤이어 이상혁 교수는 '트롤링'을 데이터 기반으로 예측하고 분석하기 위한 시도를 소개했다. 발표에 앞서 그는 '트롤링'이라는 용어가 그때그때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가 예전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 MMORPG를 했을 무렵에는 '트롤링'이라는 단어는 흔하지 않았다. 욕설이나 다툼이 없던 건 아니지만, 트롤링이라 불릴 만큼 심한 행동을 하는 유저들은 사사게에 박제되어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그 오브 레전드는 서로 욕을 하거나 신고를 하는 일은 있어도 트롤링이 커뮤니티가 불탈 정도로 커지는 경우는 그에 비해 빈도가 줄었다.
심지어 그는 '트롤링'을 전략적으로 수용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반에 판이 말렸을 때 빨리 서렌하자는 이유로 아이템을 팔거나 일부러 AFK하는 그런 행동들을 합리화하고, 이에 동조하기도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 양상은 기존의 '트롤링'과는 달랐다. 보통 트롤링은 앞서 쿡 교수가 정의한 것처럼 상대를 괴롭히면서 자신이 즐기기 위해, 혹은 상대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기 위해, 혹은 충동적으로 파괴적인 행동이 돌출되거나 한다. 그렇지만 그 트롤링을 하는 유저들은 의식적으로, 즐겁지 않은 행위를 수행하며 다음 판을 기대하는 다른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전략적 트롤링'으로 정의한 그는 크게 AFK와 아이템 티어 드롭, 즉 기존 템을 팔고 낮은 등급의 템을 구매하는 두 가지 양식으로 설정했다. 그 두 행동이 발생하는 맥락이 다를 것이라는 가설 아래에 예측 모델을 개발,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에 사용된 데이터는 2025년 1월 1일부터 약 3일간 수집된 LoL 경기 약 290만 건이었다. 이상혁 교수는 LoL이 이벤트 단위의 로그 데이터를 시간별로 공개하기 때문에 타임라인 분석이 가능해서 관련 분야 연구에서 자주 활용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수는 KDA, 골드 차이, 맞라이너와 팀의 전황 등이었으며, 시간대별 행동 변화를 반영해서 디시전 트리 모델을 구축했다.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분석을 반복한 결과, 두 행동이 불거지는 상황은 달랐다. AFK는 대체로 ‘나도 지고 있고 팀도 지는 상황’에서 나타났고, 반대로 아이템 티어드롭은 ‘나도 이기고 있고 팀도 이기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를 두고 AFK는 의욕 저하, 게임 몰입의 붕괴 등 패배감과 연관된 ‘탈출형’ 트롤링인 반면, 아이템 티어 드롭은 의식적 판단이 개입된 ‘표현형’ 트롤링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했다. 또한 시간대별로도 다르게 나타났다. AFK는 10~20분 구간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으며, 아이템 티어 드롭은 20분 이후부터 나왔다.
이러한 결과는 트롤링을 단순히 하나의 동기와 맥락에서 발생하는 행동으로 규정했던 고전 연구와는 다소 다른 방향이었으며, 최근 서로 다른 동기와 맥락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논의와 일치하는 방향이었다. 아울러 기존의 연구자 중심 혹은 인터뷰 중심의 연구와는 다른, 게임 내 로그데이터를 활용한 연구라는 점도 강조했다. 일부 샘플이 아닌 전체 유저의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인 만큼, 잘 분석하면 게임 내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연구가 더욱 적극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