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초,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게임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두 명의 공동위원장과 다섯 명의 부위원장, 20명의 위원, 그리고 35명의 민간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제법 규모를 갖춘 위원회다. 이들이 내세운 4대 과제는 다음과 같다.
1.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저지
2. 지속 가능한 e스포츠 생태계 조성
3. 등급 분류 제도 혁신
4. 게임&e스포츠 컨트롤 타워 신설
네 가지 과제 모두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며, 언젠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들이다. 하지만 관심이 고르게 나뉘지는 않았다. 최근 크게 이슈가 된 등급 분류 문제는 먼저 주목을 받았고, 오랫동안 답보 상태였던 e스포츠 생태계 문제도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면 첫 번째 과제인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저지'는 어떨까?
아쉽게도 다른 과제들만큼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WHO가 ICD-11을 사전 공개하며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라는 용어를 등재한 것이 벌써 7년 전이다. 그로부터 1년 후, 만장일치로 통과되면서 '6C51'이라는 질병코드를 부여받았고, 도박중독(Gambling Disorder, 6C50) 바로 아래에 위치하게 됐다.
물론, ICD는 권고사항일 뿐이므로, 이를 우리나라 질병분류기준인 KCD에 등재할지 여부는 별도로 논의가 필요한 문제다. 하지만 이후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게임이용장애의 KCD 등재 여부에 대해 뚜렷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 이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으나,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상황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정말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게임특위 과제 중 하나로 넣어둘 만한' 수준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해, 게임특위 부위원장이자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 저지' 과제를 맡고 있는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소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독자 분들의 가독성 향상을 위해 해당 인터뷰는 통상적인 인터뷰와는 다른 형태로 편집되었습니다.
1. 무엇이 문제인가?
'게임이용장애'가 등재된 미래
현 상황부터 점검해보자. ICD-11의 사전 공개는 2018년 6월, 통과된 것은 2019년 5월 말이며, WHO는 이 기준을 2022년부터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실제로 ICD가 그대로 적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각국마다 생태 환경과 국민들의 건강 상태, 유전적 특성 등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ICD를 기반으로 수정한 각국 고유의 질병 분류 기준을 사용한다.
한국에서 쓰이는 질병 분류 기준인 KCD는 보통 '한의학적 접근'이 더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국가별 질병 분류 기준은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질병 기준이 되며, 진단부터 보험금 지급, 의료 과정을 포함한 다양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만약 ICD-11의 내용을 빠짐없이 수용해 KCD가 '게임이용장애'를 정식 등재했다고 가정하고, 그 미래를 그려보자.
가장 크게 다가오는 변화는 '인식'이다. '게임'이 포함되는 카테고리가 영화, 문학, 음악 등 문화 콘텐츠가 아닌 술, 담배, 마약과 같은 유해 콘텐츠로 바뀐다. 대단히 잘 만든 게임도 더 이상 '명작'이 아니라, '유병률을 끌어올리는 문제작'이 되며, '게이머'라는 집단은 '중독자'로 대체된다.
알코올이나 담배처럼 공익 광고가 생긴다. "게임, 삶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같은 표어가 등장하고, 학생들의 포스터 그리기 숙제에도 '게임 줄이기'가 주제로 등장한다. 광고 또한 엄청나게 제한된다. TV에서 담배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술 광고는 볼 수 있겠지만, 그것조차도 일반 상품 광고에 비하면 엄청난 규제를 받는다. 온라인 광고는 말할 것도 없이 사실상 근절된다.
온라인 광고가 무너지면 미디어들은 줄줄이 폐업할 것이고, 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저지르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 게임 스트리밍은 줄줄이 금지되고, 게임 구매나 이용 자체에 '건강증진료'라는 명목의 세금이 별도로 부과된다. 알코올이나 담배에 붙는 세금처럼, 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반박할 수 없다. 국민 유병률을 높이면서 물건을 판다면, 사회적 책임을 다하라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다.
지금의 게이머들이 보기엔 말도 안 되는 변화로 느껴질 수 있겠지만, 결코 급격히 이뤄지진 않는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진행된다. 30년 전만 해도 버스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식당이나 사무실에서도 흡연이 가능했다.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지난 30년 동안 흡연자에 대한 인식이 엄청나게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머들에 대한 인식은 과연 안전할까? 통계청 자료(KCD)에 명확히 '게임'이 질병 원인으로 표기된다면 말이다.
여기서 관건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게임이용장애'가 정말 실재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이 맞다면, 게이머로서 심정적으로 거부감이 들어도 반대할 수 없다.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미성년자에게까지 무분별하게 술을 판매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알코올이 인체에 끼치는 해악은 이미 검증된 것이고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게임을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은 무엇인가? 피해는 너무 크고 광범위하다. 위에서 조목조목 열거했듯, 게임 산업은 반쯤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큰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추진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명확하고 실질적인 사회적 이득이 있어야 할 것이다.

2. 필요한 건 쟁점의 조정
'게임이용장애'가 등재의 이득이 해악보다 큰가?
때문에 필요한 것이 '쟁점의 조정'이다. 그간 '게임이용장애'를 주제로 수많은 토론회가 열렸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온 적은 없다. 게임이용장애 등재에 찬성하는 측도, 반대하는 측도 무엇이 문제인지 명확히 짚어내지 못했고, 이를 뒷받침할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도 못했다.
'게임이용장애'를 논제로 삼아 토론을 하려면, 먼저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상위 주제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의사들이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짠 음식을 피하고 물을 많이 마셔라"이다. 이는 대부분의 건강 이상에 두루 적용되는 기본적인 처치법이자 건강 유지 수칙이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짠 음식의 기준이나 물의 섭취량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트륨 섭취를 몇 mg 이하로 조정하고, 물을 하루 몇 L 이상 마셔라"는 지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도 이런 지시가 통했을까? 나트륨 양을 가늠할 기준이 없고, '많이'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측정 도구가 중요한 이유다.
'게임'은 아직 이러한 측정 도구조차 없는 상황이다. '술'의 정의는 에탄올이 포함된 음료이고, '담배'의 정의는 연초를 기반으로 한 기호 식품이다. 그러나 '게임'의 정의는 '규칙을 정해놓고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너무나 광범위하고, 특정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게임이용장애'를 논하기에 앞서, '게임'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설령 '게임'을 정의했다고 해도, '게임이용장애'를 어떻게 판별할 것인지 또 구분해야 한다. 모든 질병에는 뚜렷한 증상이 있다. 게임이용장애를 어떻게 알아보고, 어떻게 진단할 것인가? 단순히 게임을 하는 시간으로 판별할 수 있을까? 하루에 몇 시간씩 게임을 하더라도 문제없이 자신의 삶과 책임을 다하는 이들도 있다. 반대로, 게임 시간을 적게 쓰더라도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사람도 있다.
그 전에 '게임 이용' 자체를 어떻게 정의할지도 문제다.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만을 게임 이용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게임하는 과정을 시청하는 것'까지 게임 이용에 포함할 것인가?
게임 업계 종사자들조차, 게임 산업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지켜본 전문가들조차, 섣불리 어떤 것이 맞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주제들이다. 명확한 특정이 불가능하니 데이터 역시 신뢰할 수 없고, 게임이용장애를 둘러싼 토론회들은 너무 쉽게 정치, 종교, 신념의 문제로 변질된다. 서로 자기주장만 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그 와중에 양측 모두 주장에 근거가 없어 생산적 논의 없이 힘만 빼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때문에, '게임이용장애'를 다룰 때는 무엇보다 먼저 기준을 세워야 한다. 어디까지를 '게임'으로, 무엇을 '게임 이용'으로 정의할 것인가를 먼저 확립해야 하며, 찬성 측은 게임이용장애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을지를 명확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야, 실질적인 '쟁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했을 때, 과연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막대한 사회적 손실만 본 채 실질적인 이득은 없을 것인가?
3. 게임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정녕 문제는 '게임'에 있을까?
쟁점을 세웠으니, 그 근본으로 들어가 보자. '게임이용장애'가 성립하려면, 게임의 과도한 이용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는 명제가 참이어야 한다. 학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아이들이 게임 하느라 공부(혹은 다른 일상)를 안 한다"는 것이다. 게임에 너무 과도하게 빠져 있어, 다른 것들을 등한시한다는 주장이다.
나(기자) 개인적으로도 게임 산업에 종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기에,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요청받을 때가 종종 있는데, 그 때마다 이렇게 답한다.
"아이가 과연 게임을 안 하면, 공부를 할까요?"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이 질문 앞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봐도 알 수 있다. 이건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공부가 하기 싫은 것이다. 재미없는 것과 재미있는 것 중에서 재미있는 것을 찾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재미있는 것이 사라진다고 해서 재미없는 것을 일부러 찾지는 않는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뿐이다.
이장주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과다와 과소는 결코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보자. 오랜 기간 담배를 피운 사람에게 우리는 흔히 농담처럼 말한다. "그 담배 필 돈 다 모았으면 페라리를 끌고 다녔겠다"고. 하지만 이 농담이 사실이라면, 비흡연자는 전부 페라리를 몰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게임과 일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게임이 과다해지고 일상이 과소해진 상태에서, 단순히 게임을 줄인다고 일상이 회복되지는 않는다. 과다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소를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과다의 억제에만 초점을 맞추니,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게임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회복하는 것인데 논점이 빗나가 버린 것이다.
그에 앞서, '게임이용장애'의 실재성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게임 과몰입이 실재한다면, 게임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야 정상인데, 많은 게이머들은 오히려 어느 순간 게임에 흥미를 잃는 '게임 불감증'을 겪고,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게임 이용 시간이 줄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한때 게임에 깊이 빠져들었던 이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게임이 좋아서라기보다는, 현실이 너무 막막하고 힘들었기에, 삶의 의지를 이어가기 위해 기대었던 것이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일상이 회복되면, 게임에 대한 의존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어, 단순한 취미로 전환된다. 결국 게임에 대한 탐닉이나 과몰입은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는 것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게임은 과연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
이 부분은 논의가 필요하다. 게임만을 탓하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세대 갈등부터가 그렇다. 500년 전, 100년 전만 해도 부모와 자식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회 변화 속도가 느렸기에, 세대 간 갈등이 존재하더라도 지금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세대 간 갈등은 갈수록 심해지고, 골은 깊어졌으며, 자식이나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지 못한 부모는 감정을 쏟아낼 대상을 찾게 마련이다. 급변하는 사회, 경제적 불안, 정치적 혼란, 그리고 자식이 몰두하는 '게임'까지 말이다.
이장주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게임이 병이냐 아니냐만 따지다 보면 놓치는 게 너무 많다."
정작 중요한 문제에서 멀어진다는 것이다. 게임을 마녀로 몰기 전에, 아이들의 일상이 망가지는 원인, 성인이 되어서도 일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방 안에 틀어박히는 이유, 이 사회에 어떤 것이 부족한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인은 굳이 게임에서 찾지 않아도 차고 넘친다. 그런데도 게임에 대한 프레임 씌우기는 계속되고 있다. 그 이유가 책임 회피인지, 정신과 의료계의 입지 강화와 연구비 확보를 위함인지,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게임이 문제'라는 구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장주 소장은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등재 외에도 세대간 갈등 압력을 줄이고, 일상 회복을 돕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통념적으로 '게임 때문에' 벌어진다 생각되는 문제들을 완화할 수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반대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게임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가?'라는 주제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양쪽의 주장에 신뢰할 만한 근거가 없으니 토론은 쉽게 싸움으로 변질되고, 신념과 믿음에 기반한 주장으로 상대를 공격한다. 이장주 소장이 바라는 것은 이 구도에서 벗어나 논리적인 과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제대로 된 연구와 데이터의 확보, 그리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이장주 소장은 이에 더해 게임이용장애의 등재 여부를 떠나 게임이용 관련 분쟁, 혹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냥 주변 아는 지인, 게임 좀 아는 사람을 떠나 실효성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상담기관이자, 정보 창구가 필요하다고 말이다. 게임이 사회를 병들게 하느냐는 논의가 필요한 지점이지만, 사회의 병폐를 해결해야 하는 건 분명 중요한 일이다.
4. 지금은 유보해야 할 때
결론에 앞서 연구와 데이터 확보가 필요하다
"심정적으로는 반대하지만, 일단 유보하는 게 맞다."
'게임이용장애'의 KCD 등재에 대한 이장주 소장의 의견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게임이용장애'가 실재하며 이를 등재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다양한 논거를 기반으로 이뤄지고 있다. 반대 입장을 보이는 그룹이 가장 자주 하는 주장은 "관련 산업 전체가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찬성 측은 "알코올이나 담배 업계가 그래서 망했느냐"고 반박한다.
이런 주장도 있다. 게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사행성 콘텐츠가 곧 도박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과거 1970년대에 제기되었던 '관문 이론(Gateway theory)'의 변형이다. 관문 이론은 마리화나 같은 '소프트 드러그'가 곧 헤로인이나 코카인 같은 '하드 드러그'로 이어진다는 주장으로, 현실성이 없어 이미 폐기된 이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 관문 이론을 그대로 적용한 '게임-도박 전환' 논문이 2020년에 발표되었다. 관련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반 게이머의 상식으로 읽어봐도 큰 관련이 없음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게임은 마약, 알코올, 담배와는 본질적으로 다르기에, 쉽게 일반화할 수 없지만, 일단 주장들은 존재한다. 문제는, 저런 어설픈 주장에 대응하려면 반대 측도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아니, 그 이전에, 게이머와 게임 산업을 누가 대변하고 있는지조차 명확히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는 대변자들이 알려지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아예 관심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2019년 ICD-11이 정식 통과된 직후, 논란이 커지자 정부는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민간 협의체를 구성했다. 게임이용장애의 적합성을 판단하고 이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이 협의체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연구 용역 3~4건을 진행한 것으로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통계청은 ICD-11을 참고해 KCD 개정안을 마련할 때 이 협의체의 결정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협의체는 자신들이 결정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명확한 의견을 내지 않았다.
그렇게 논의는 제대로 진척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져 왔고, 대다수는 이런 일들이 있었는지조차 잘 모른다. 산업의 존폐가 걸린 문제임에도, 정작 게임업계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의료계는 맹렬히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업계 스스로 협의체를 구성하고, 체계적인 연구와 데이터 구축을 통해 '게임이용장애'가 실재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도 부족할 상황인데, 아무런 위기감조차 없다.
이장주 소장이 '반대'를 쉽게 외칠 수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연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게이머로서의 경험, 산업의 흐름, 게임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문화적 특성 등을 통해 '게임이용장애' 등재가 옳지 않다는 것을 직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리되지 않은 이론과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로 무언가를 주장하고 관철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론적으로, 지금 게임 산업이 취해야 할 입장은 '유보'다.
어디까지를 '게임'으로 규정할 것인가, '게임 이용'의 범위는 어떻게 정할 것인가, '게임이용장애'의 정의는 무엇인가. 게임을 하지 않음에도 비슷한 현상을 겪는 사례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게임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들의 주장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반대는 이 모든 과정을 최소한 갖춘 뒤, 논리적 근거를 마련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한다. 찬성 측도 나름의 근거와 데이터를 확보해 주장할 테지만, 우리가 믿는 대로 '게임이용장애'가 실재하지 않는다면, 결코 등재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체계적인 연구도, 근거도 부족한 상태에서 감정과 신념에 기대어 반대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하지만 시간은 부족하다. 2021년 통계청이 발표한 'ICD-11 이행시 고려사항 및 국내 이행 일정'에 따르면, ICD-11을 반영한 KCD-10 고시는 2027년에 이루어질 예정이고, 이듬해 시범 적용을 거쳐 2031년부터는 공식 시행된다. 변경 가능성은 있지만, 최소 2년, 최대 5년 안에는 검증을 끝내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럼에도 지난 6년간, 이 사안은 거의 진전 없이 부유하고 있었다. 제대로 된 연구와 논문 발표에 연 단위 시간이 필요한 만큼, 결코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개인적 정치 성향은 잠시 접어두고, 게임업계가 '게임특위'를 주시하고, 제대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할 이유다.
"친구 이마에 붙은 파리를 쫓으려 도끼를 휘두르지 마라"
옛 중국 속담 중 하나다. 휘두르려는 이도, 맞게 될 이도 실감하지 못하고 있지만, 게임이용장애 등재는 분명 심각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날 선 도끼다. 파리를 제대로 쫓아낼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피해를 만들 수 있는 도끼. 필요하다면 휘둘러야겠지만, 정말로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힘으로, 어느 곳을 향해 휘두를지를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사회가 한 걸음이라도 더 성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