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까지, 내 옷장 속의 상의는 대부분 흰색이었다. 좀 더 부끄러운 얘기까지 가보자면 어느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의 모건 프리먼 착장에 빠져, 비 오는 날 올백이 멋이라고 생각한 때도 잠깐 있었다. 실천했다고까진 얘기하지 않겠다.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 어느 날씨 좋은 봄날이었는데, 집에 오니 날벌레들이 내 옷에 몸통 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녹색의 무언가가 지워지지 않을 때부터였다.

물론 취향적인 것도 있겠지만, 나처럼 흰색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입고 외출했을 때의 그 불편함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어두운색을 선호하게 된 사람들도 제법 많을 것 같다. 옷뿐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흰색은 꿈도 못 꾸고 밝은색까지 포기하게 되는 분야가 의외로 잦다.

흰색 게이밍 의자가 잘 없는 이유도 비슷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게이머와 함께 동고동락하며,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 기후 상 변색과 외형의 변형은 어떻게 보면 자연적인 현상일 수밖에 없다. 어쩌다 한번 흰색 게이밍 의자를 발견하곤 하는데 "진짜 예쁘다" 싶다가도 전시해놓고 살게 아니라면 쓰기 힘들겠다는 생각뿐이더라.

▲ "난 안 될거야.."하면서도 자꾸 돌아보게 되는 'SECRETLAB Pure White TITAN Evo NanoGen'

그러던 중 하이엔드 게이밍 의자 브랜드, 시크릿랩에서 선보인 순백의 게이밍 의자에 눈길이 갔다. 정말 하얗고 예쁜데 금방 누렇게 되지 않을까, 라며 제품 설명을 좀 봤는데 뭔가 기대되는 키워드가 보였다. 일반 PU 가죽 대비 12배 내구성이 높음.

말 그대로 퓨어 화이트(Pure White)라는 이름이 붙은 'SECRETLAB Pure White TITAN Evo NanoGen'은 "가장 순수한 흰색의 가죽을 만들어보자"라는 시크릿랩의 간단하고도 명료한 목표 아래 제작됐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소재의 가죽을 연구하고 제품 마감 기법을 바꾸며 염료까지 다시 생각할 정도로 진지하게 임했다고 한다.

가장 집중한 것은 적당한 부드러움인 것 같다.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는 거칠고, 부드러운 인조 가죽은 마모가 빠르기 때문에 이 상반되는 특성을 잘 결합하여 초고밀도 나노섬유를 통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았다는 주장이다.

신소재를 개발했으니 검은색도 있긴 한데, 뭔가 흰색만큼의 아우라는 없는 것 같다. 암레스트 겉면이나 헤드 쿠션 등 곳곳에 회색이 있긴 하지만 내가 본 게이밍 의자 중 가장 하얗고 믿음직스럽게 생겼다. 문제는 딱 세 가지. 하나는 출시된 지 얼마 안 돼서 1년 정도 한국의 사계절을 겪어본 후기가 없다는 것. 두 번째는 국내 출시 유무는 아직 미정이라는 것. 마지막으로 가격이 100만 원을 넘는다.

▲ 뭔가 단어로 봤을 땐 "글쎄.." 싶다가도 움짤을 보면 뭔가 신뢰가 가는 마법

▲ 곳곳에 회색이 보이지만

▲ 그래도 내가 본 의자 중에 가장 하얗다. 누군가 사용하고 얘기하게 될 후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