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을 보면 용사들이 던전에 들어가서 시련을 겪는 장면은 항상 등장합니다. 레벨업을 위해서든, 장비를 찾기 위해서든, 아니면 마왕이나 보스를 잡기 위해서든 말이죠. 이를 다르게 말하자면, '던전'은 용사를 키우기 위한 중간 과정이자 그 검증 절차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2025 플레이엑스포 경기 게임 오디션 부스에 출전한 스튜디오 백브로스의 '웰컴 투 더 던전'은 이러한 컨셉을 2D 레트로 픽셀 그래픽으로 담아낸 게임입니다. 유저는 던전 각 방에 진입할 때마다 용사가 죽지 않고 끝까지 시련을 버틸 수 있게끔 오브젝트와 몬스터를 적절히 배치해야 하죠. 배치가 완료가 된 후에는 용사가 알아서 정해진 경로를 따라 이동하면서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중간중간 놓인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캐릭터의 진로를 오브젝트로 바꿔버리는 게임들은 대부분 위험을 피해가는 걸 목적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웰컴 투 더 던전'은 조금 다릅니다. 몬스터를 우회해서 가게끔 설계할 수 있지만, 종종 어떻게 해도 피해갈 수 없는 위험한 몬스터들이 자리잡고 있죠. 그 수문장들을 잡기 위해서는 이전에 시련을 거쳐서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용사가 죽지 않고 버틸 정도의 시련을 절묘하게 주는 것이 유저가 할 일입니다. 마치 프리드리히 니체가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죠.

▲ 앞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던전, 적절한 시련과 보상을 배치해두고

▲ 그 진로대로 용사가 탐사를 하면서 레벨업, 시련을 이겨낼 수 있게끔 해야 한다

현 시연 버전에서는 방어력을 올려주거나 체력을 회복하는 신상, 체력 회복 물약, 함정, 진로를 막는 나무 상자, 아이템 3종 중 하나를 무작위로 주는 자판기까지 총 다섯 개의 오브젝트가 마련이 되어있습니다. 처음에 얼핏 봐서는 진로를 막는 장애물이나 함정이 왜 필요한지 선뜻 이해가 가진 않았습니다. 그나마 장애물 같은 경우에는 한 번에 너무 많은 몬스터를 상대하지 않도록 동선을 관리하는 요소로 해석할 순 있는데, 함정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주어진 오브젝트를 다 배치해야만 용사를 전진시킬 수 있는 룰에, 함정도 경험치를 주는 식으로 보정하면서 '웰컴 투 더 던전'은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함정에 일부러 빠지는 것까지도 고려해서 진로를 설계해야 몬스터에 닿기 전에 딱 레벨업으로 체력을 회복,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여기에 랜덤 요소도 가미해서 조마조마하게 주사위 굴리는 맛도 살렸습니다. 우선 전투에서도 랜덤하게 회피가 발동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용사가 예상보다 피해를 덜 입어서 그 다음 단계에서 좀 더 과감한 수를 시도해볼 수도 있었죠. 상자에서도 보상이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는데, 이번 시연에서는 죄다 안 나와서 액땜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용사가 은근 개복치 같아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경험치 동선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3번째 방이나 4번째 방에서 거의 확정으로 죽게 설계가 됐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시련을 사전에 다 겪어서 경험치를 채워놓고 적절한 시점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동선을 계속 생각해봐야 했습니다.

▲ 자판기에서 템은 그 판에 따라 용사가 알아서 랜덤하게 고른다

▲ 삐끗해서 한 번 죽어도 하트가 있으면 다시 도전 가능하다. 그런데 상자에서 뭐라도 나왔다면 살았을지도?

▲ 으아닛 개발자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상자가 두 번이나 연속 비다니...

▲ 좀 더 빠르게 넘어가려면 3배속을 켜면 된다. 이번 시작부터 회피가 잘 뜨다니, 저 상자가 액땜을 한 거라 치자

아직 시연 빌드 단계였던 만큼, 이외에도 조금 아쉬웠던 부분들이 있긴 합니다. 우선 방에 배치해야 할 오브젝트의 수가 많아지면 하단의 보관창이 덩달아 커져서 오브젝트를 갖고 올 때 매우 불편해졌습니다. 오브젝트를 다시 보관창에 돌려놓으려면 맵밖에다가 둬야 하는데, 그게 하단 보관창 쪽과 겹치면 종종 안 먹혀서 번거로웠죠.

이런 아쉬운 점들이 있지만, '웰컴 투 더 던전'은 퍼즐과 전략 RPG를 섞은 아이디어를 상당히 짜임새 있게 구현한 게임이었습니다. 아직 오브젝트나 맵, 몬스터 종류가 많지 않아서 15분 안에 끝날 분량이었지만, 좀 더 리소스가 갖춰지고 경우의 수가 많아지면 훨씬 더 깊이 있는 묘수풀이와 설계의 맛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웰컴 투 더 던전'은 2025 플레이엑스포 C14 경기게임오디션관 부스에서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