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잘 모르는 게이머가 더 많을 거다. 출시 시기가 무려 94년이다. 어느 정도로 오래 전인지 감이 잘 안 잡히는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본 기자가 그 해애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다.
하지만, 그냥 오래 되었을 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국내 게임 역사에도 큰 획을 남긴 대단한 작품이다. 3년 후 출시된,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포가튼 사가'가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워낙 큰 파장을 몰고 왔기에 비교적 덜 알려졌을 뿐, 어스토니시아 스토리는 불모지나 다를 바 없던 당시 국내 게임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유래없는 업적을 달성한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가, 다시 부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 작년 PlayX4. 정확히 1년 전이다. 당시 여론은 다소 미묘했다. 아직 출시까지 한참이나 남은 초기 빌드였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 몇 개월 앞서 출시된 어떤 과거 명작의 리메이크 버전이 온갖 혹평 속에 험한 꼴을 봤기에 '고전의 재탄생' 자체를 반기지 않는 시장 분위기가 한 몫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 12월 출시를 앞두고 완성 버전에 한껏 가까워진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을 다시 PlayX4 현장에서 시연해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은 캐릭터의 일러스트. 지난 해 플레이 빌드는 전투 파트 위주로 선보여졌기에 탐험이나 대화, 서사 부분은 살펴보기 어려웠는데, 이번 시연 빌드는 그냥 통짜 빌드를 처음부터 플레이 할 수 있게 마련해 두었다. 도입부는 여관에서 눈을 뜨는 주인공 로이드. 이전에는 없던 아름다운 얼굴이 생겼다.
여관 밖으로 나가며 볼 수 있는 월드 구성은 아트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상당히 깔끔하게 잘 뽑아냈다. 화면 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스타일만 도트 아트로 만들어졌을 뿐, 실시간 라이팅이나 대비, 그림자 효과 등 현시대 기술이 다수 녹아들어 있는데, 이 융합 과정이 불안정해 무언가가 도드라지거나, 튀어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원작과 달리 하나로 통합된 마을 또한 동선 낭비를 최소화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월드는 오버월드(큰 지도를 캐릭터가 움직이는 형태로 지역을 이동하는 형태)로 구성되었던 원작과 달리, 몇 개의 존으로 구성된 던전형 구조를 띄고 있다.
또한, 이 월드를 돌아다니며 겪게 되는 몬스터와의 전투는 게이머가 선택할 수 있는 부분, 랜덤 인카운터 시스템이 아니라 몬스터 무리가 맵 상에 돌아다니고 있으며, 마주할 경우 전투가 전개되는 방식인데, 맵 상에서 짧은 시간 동안 이동속도를 크게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원치 않은 전투는 피하면서 진행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전투 파트는 모르고 보면 원작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플레이해보면 가장 큰 차이가 느껴지는 파트. 먼저, 단순 턴제가 아닌 '페이즈' 시스템으로 바뀐 점이 큰 변경점인데, 각 턴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다음 턴의 순서가 달라질 수 있다. 엄청나게 강력한 기술을 시전했다면, 다음 턴이 평소보다 더 늦게 올 수 있는 식이다.
여기에, '공격 방향' 시스템이 더해졌다. 정면에서 공격하는 것 보다는 측면이, 측면보다는 후면에서 타격할 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며, 특정 조건이 성립하면 적을 즉사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시연 시간이 길지 않아 클래스 시너지나 상성, 거대 보스의 약점 시스템까진 경험하기 어려웠지만, 공격 방향의 추가만으로도 충분히 원작에 비해 지루함이 덜하다는 느낌을 준다.


시연에 허락된 시간이 길지 않아 더 많은 것들을 플레이하진 못했지만,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이 표방하는 게임성을 알아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전체적인 느낌을 요약하면 탄탄하면서도, 서두르지 않아야 참맛이 우러나는 곰탕 같은 게임.
스토리 스킵이 당연한 일이 되고, 이에 따라 텍스트가 아닌 형태로의 서사 전달이 개발사의 숙제가 되어 버린 요즘의 흐름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원작을 다시 만든 게임인 만큼, 그리고 그 원작이 굉장히 오래 전, 많은 게이머들에게 사랑받았던 작품인 만큼, 비교적 여유로운 게임 템포는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리파인이 반드시 가져가야 할 핵심 중 하나일 것이다.
인스턴트로 즐길 수는 없는 게임. 조금씩 짬 날때 플레이하기에도 좋지 않은 게임. 하지만, 쉬는 날 편한 자세로 누워 진득하게 패드를 쥐고 싶을 때, 다른 모든 일상을 잊고 느긋하게 깊은 이야기를 즐기고 싶을 때는 이만한 게임이 있을까 싶다. 바로 그런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들이 존재하기에, 지금도 고전의 재해석은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일 테니 말이다.

별개로, 손노리 게임 하면 늘 등장하는 그 캐릭터도 등장한다. 아직도 비밀번호 요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