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가에 주름이 슬슬 잡히는, 혹은 정수리가 점점 가벼워지는 게이머들에게는 다들 하나쯤 있다.
"아 그때 그 게임 진짜 재밌게 했는데"
안다. 없을 리가 없지. 클래식은 영원하듯, 추억도 영원한 법이다. 기술은 물론이요, 재미로 쳐도 당연히 지금 게임이 훨씬 뛰어나겠지만, 그 시절에는 그 시절만의 재미가 있었다. 부족한 기술과 열악한 환경이 짬뽕되어 만들어지는, 올드 게임의 바이브 말이다.
그리고, 그 '옛날 게임'들이 다 모여 있는 장소. 날이면 날 마다 오지 않는 바로 그 곳. 킨텍스에서 진행 중인 PlayX4 전시장의 구석탱이에 넓게 자리잡은 '레트로 마켓'이다. 진짜 날마다 오는 게 아니다. 5월 25일이면 끝. 내일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 어린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온 게임이면 완전 구릴 거 아냐?"
너무 섣부른 생각이다. 그 시대의 게임들은 그 시대만의 멋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 한 번 둘러보자. "아빠는 옛날에 뭐 하고 놀았어?" 라고 물었을 때, 아빠들이 말하는 "어 그런 거 있어"에서 '그런 거'들이 바로 이런 거다. 지금부터, '레트로 게임'을 보여주마.

먼저 보이는 패미콤부터 보자. 유명세에 비해 국내에서는 당시에도 굉장히 보기 드문 기체였는데, 현대전자에서 동일한 사양의 기체를 라이선싱해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기 때문이다. 패미콤의 첫 출시가 83년이었고, 현대 컴보이는 89년부터 생산되었기에, 패미콤을 가지고 있는 집은 83년부터 89년 사이 수입판을 직구했거나 사서 들어온, 엄청나게 희귀한 케이스였다. 반면, 이 후속 기체는 굉장히 많은 수가 가정에 보급되었는데, 그 이름하야...

옆으로 세가의 5세대 콘솔인 '드림캐스트'와 슈퍼패미컴 주니어, 반쯤 가린 PS1이 보인다.
이 슈퍼 패미컴 역시 현대전자에서 라이선스를 취득해 '슈퍼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92년부터 판매했는데, 별다른 차이점은 없었다. 지금 세대 게이머들이 '첫 번째 콘솔'로 가장 많이 기억할 만한 기체 중 하나. 나 또한 굉장히 오랫동안 슈퍼 패미컴을 갖고 놀았다. 아버지가 박살내기 전 까지.

팩은 이런 형태로 비디오 테이프(비디오 테이프도 모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곽 같은 곳에 담겨 나왔는데, 대부분은 저렇게 케이스까지 갖고 있지 않고 그냥 안에 들어 있는 팩만 가지고 있었다. 이를 '알팩(최상단 사진에 나열되어 있는 게 알팩들이다)'이라 하는데, DVD나 CD에 비해 팩 자체가 견고했기 때문에 중고 게임샵에서는 케이스 없이 교환하거나 거래하는게 일반적이었다. 때문에, 패미컴을 오래 즐긴 게이머 중에서도 게임 팩 케이스를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게임샵에서 중고 게임팩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기자는 고어에 대한 거부감이 제로다)


90년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때 쯤 짚고 넘어갈 게이머들의 역사. 폭풍의 90년대 말을 장식한 '게임 잡지'다.

바야흐로 90년대 후반, Y2K 바이러스가 세계를 암흑에 빠트릴 것이라든지, 노스트라다무스가 말한 멸망이 내일 모레니 하는 낭설이 정설마냥 돌아다니고, TV에서는 이정현씨가 모든걸 다 바꿀 기세로 격렬한 춤을 추던 시기, 자라나는 꿈나무 게이머들은 돈이 없었다.
세뱃돈 싯가가 만 원, 좀 서먹한 어르신은 5천원으로 대충 입막음하던 시절. 게임 잡지는 한 부에 보통 7000~8000원 선에 살 수 있었는데, 무려 정품 게임을 번들로 줬다. 당시 게임 정가가 대략 3만 원에서 4만 원 사이였는데, 그 5분의 1 가격에 게임을 주는 거다. 물론 내가 원하는 게임은 아니었지만.
당시는 '내가 원하는 게임'을 하는 건 게임 잡지 번들에 내가 원하는 게임이 들어 있을 때나 성립되는 경우였고, 애초에 정보가 제한적이던 시절이라 그냥 게임이면 다 재미있는 줄 알았다. 오늘의 올드 게이머 중 굉장히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남다른 인사이트를 가진 이들은 아마 이 시절에 게임 잡지를 꽤 모았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그냥 적당한 옛날 게임을 갖다 준 것도 아니었다. 어떨 때는 출시와 동시에 번들로 뿌릴 때도 있었고, 게임을 5개씩 넣어 물량으로 승부하기도 했다. 기자가 받은 마지막 번들은 '퀘이크3: 아레나' 였는데, 출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받았던 거로 기억한다. 여튼, 저 출혈 경쟁의 과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는지, 게임 잡지들은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줄줄이 사라졌고, '게이머즈' 정도만 겨우 살아남아 명맥을 이어갔다. 굵고 짧게 활약하면서 오늘날의 골수 게이머층을 키워준 게임 시장의 영웅들이 아닐 수 없다.
이후, 몇 년이 흐르면서 6세대 콘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PS2와 XBOX, 엄청난 명작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온 그야말로 콘솔의 황금기. 이 시절 게이머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방구석에서 콘솔을 파다 아버지의 빳다를 경험하는 부류가 하나, 그리고 치킨게임을 시작하면서 시간당 100원 까지 떨어진 PC방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 부류가 두 번째였다. 물론 나는 둘 다 했다.

물론, 게임이 대다수를 이루긴 하지만 '레트로 마켓'이 본질인 만큼, 게임이 아닌 다른 형태의 그 시절 놀잇감들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들 말이다.






요기서 한 가지 팁을 주자면, 레트로 마켓은 발품을 파는 만큼 좋은 물건을 저렴하게 건질 수 있다는 것. 컨셉부터가 벼룩시장에 가깝다 보니 같은 물건을 여러 곳에서 파는 경우가 많고, 가격대도 다르다. 또한, 중고 물건이 많은 만큼 같은 기종에서도 가격 차이가 꽤 나는 편인데, 잘못하면 고장난 물건을 사거나, 시세에 비해 너무 비싸게 사는 경우도 있으니 구경도 할 겸 여러 매장을 돌아보는게 좋다. 레트로 콘솔을 살 계획이면 판매자의 허락을 받고 한 번만 흔들어 보자. 가끔 안에서 덜그럭 거리면서 부품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릴 수 있다.

자. 이제 하루 남았다. 누군가에겐 '그때 그 물건'. 또 누군가에겐 '아빠가 가지고 놀던 물건'을 볼 수 있고, 직접 살 수도 있는 기회. PlayX4 '레트로 마켓'은 5월 25일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