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5의 신작, '판타지 라이프 i: 빙글빙글 용과 시간을 훔치는 소녀'(이하 '판타지 라이프 i')는 2014년 닌텐도 3DS로 출시된 '판타지 라이프'의 후속작입니다. 원작으로부터 1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판타지 라이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이제 아주 소수만 남았고, 그만큼 개발사인 레벨5 또한 그간 변화하고 발전해 온 게임 시장에 발맞춰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들이 후속작을 출시하기 위해 어떤 고민의 과정을 거쳤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그 고민들은 개발진의 결과물인'판타지 라이프 i'의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게임명: 판타지 라이프 i
장르명: 슬로우 라이프 RPG
출시일: 2025. 5. 22
리뷰판: 1.2.1
개발사: 레벨파이브
서비스: 레벨파이브
플랫폼: PC, PS, Xbox, Switch
플레이: PC


시간 여행으로 깊이 더한 '슬로우 라이프 RPG'
세 개의 축을 가진, 탄탄한 게임플레이

▲ 귀여운 게임 좋아한다면, 일단 합격

'판타지 라이프 i'는 고고학자 에드워드의 조수인 플레이어가, 화석이 된 드래곤의 빛을 따라 지도에도 없는 섬에 도착하면서 시작됩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어둠의 드래곤과의 사투 끝에 신비로운 포탈에 떨어진 플레이어와 동료들은, 1,000년 전 왕국과 현재의 무인도, 그리고 '무지크지 대륙'(?)이라는 이름 그대로 무지 큰 오픈 월드 지역을 탐험하게 되죠.

1,000년 전에 이 땅에서 번성했던 왕도 미스테니아부터 이제는 그 흔적밖에 남지 않은 무인도(섬의 이름도 직접 지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지크지 대륙에 이르기까지. 이 일련의 여정은 게임의 튜토리얼격인 초반부에 녹아 있습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 여정을 함께 하며 '판타지 라이프 i'의 특징을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습니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라이프(직업)'을 바꾸는 방법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을 습득하게 되는 셈입니다.

▲ 스토리는 판타지로서 다소 평이한 편

'시간 여행'이라는 이번 작품의 테마는 스토리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게임플레이 요소들을 단계별로 구분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분량의 콘텐츠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무지 큰 대륙이라는 세 개의 공간으로 정리해 두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왕도 미스테니아(과거)에 도착한 플레이어는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거나, 라이프(직업)를 배우며 여러 퀘스트를 진행하게 됩니다. 시리즈 특유의 길드를 통해 라이프를 변경하면서, 각 라이프의 마스터들에게 자신의 탐사 성과를 보고하는 과정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과거 파트는 좀 더 정통적인 RPG와 닮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시점, 그러니까 플레이어가 에드워드와 탐험하러 온 이 땅은 아무도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과거 찬란했던 문명의 유산은 모두 폐허로 변했고, 그저 "시간의 톱니바퀴를 부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환영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 하지만 '시간 여행' 테마는 게임 메커니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물론, 현재는 땅 속으로 뚫려 있는 거대한 공동의 존재를 통해 메인 스토리가 전개되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하지만, 게임 플레이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자신만의 마을을 가꾸는 생활 시뮬레이션이 일어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여러 시간 차월을 모험하며 자원과 동료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무인도를 자신만의 섬으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됩니다.

'무지크지 대륙'은 무지 큽니다. 시간의 톱니바퀴를 파괴하는 서사에 따라 여러 지역을 탐험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륙 속에 숨겨진 여러 장소에서 시련을 겪게 되기도 하고요. 1,000년 전 왕도에서 배우고, 모험을 통해 갈고 닦은 실력이 빛을 발휘하는 '모험의 땅'이라는 이미지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판타지 라이프 i'는 자칫 방대할 수 있는 콘텐츠의 분량을 '시간 여행'이라는 콘셉트로 차곡차곡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세 개의 시공간은 서로 맡은 역할이 다르지만, 꽤나 유기적인 흐름을 가지고 있죠. 전체 지도를 열면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대로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은, 아무런 걱정이나 부담 없이 원하는 플레이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슬로우 라이프 RPG'를 완성하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전투도, 생활도 내 마음대로 알아서
...라는 말은 곧 '내가 다 해야 한다'는 것

▲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물론, '자유도'는 원작 시절부터 내려오는 '판타지 라이프'의 유구한 매력이기도 합니다. 여러 개의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어딘지 많은 사람이 모여 즐기는 MMORPG의 캐치프레이즈와도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서(친구가 없다면...) 즐겨야 하는 만큼 콘텐츠의 양이 상당한 편입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는 게임에는 언제나 크게 두 부류의 플레이어가 존재합니다. 특정 직업의 극의를 노리는 일명 '스페셜리스트', 아니면 모든 직업을 웬만큼 즐기는 소위 '제너럴리스트' 유형이죠. 얼핏 '판타지 라이프 i'는 이 두 유형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게임이 제공하는 모든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워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특히, 혼자서는 말이죠.

▲ 생활-전투-탐험으로 이어지는 루프가 자연스럽습니다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인 MMORPG는 특정 직업만 깊이 있게 파는 편이 모든 직업을 다 키우는 것보다 '고점'이 높다는 것이 통상적인 인식입니다. 그리고 하나의 직업만 플레이하는 편이 아무래도 더 직관적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판타지 라이프 i'에서는 단 하나의 직업만으로 플레이하기엔 제약 사항이 아주 많은 편입니다.

예를 들면, 게임이 제공하는 14개의 직업 중 소위 '채집'에 특화된 직업들의 경우는 게임에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큰 편입니다. 광부든, 나무꾼이든, 낚시꾼이든, 직업을 배워놓지 않으면 필드의 채집물을 건드릴 수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험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이런 종류의 직업 퀘스트는 모두 클리어한 뒤 본격적으로 게임을 진행하는 편이 더 수월했습니다.

사실, 같은 의미에서 제작과 관련된 직업들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투 직업군의 더 좋은 무기를 만들고 싶어도, 모험에 필요한 회복약을 제작하고 싶어도, 하다못해 무인도에 예쁜 의자 하나를 놓고 싶을 때도 필수니까요.

▲ 동료가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모든 일을 도맡아야 하더라고요

▲ 모든 직업의 스킬 트리까지 생각하면, 할 게 너무너무너무 많은 편

이렇다 보니, 사실상 '판타지 라이프 i'를 혼자서 온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한 직업의 달인이 되는 '스페셜리스트'의 꿈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편입니다. 물론 여러 작업을 대신해주는 동료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이들의 성장이나 장비 또한 직접 챙겨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해야 할 일이 더 늘어난 셈이죠. 게다가 직업 별 성장에 따른 결과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 걸려도 원하는 방향으로 골고루 키우는 편이 전반적인 게임플레이를 경험하는 데 더 수월했습니다.

빙의체(동료)를 모아가는 여정, 방대한 탐험 요소들도 콘텐츠에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판타지 라이프 i'의 핵심은 14종에 달하는 라이프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 도전 과제나, 퀘스트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전체 플레이 타임 또한 만만치 않은 편에 속하죠.

따라서, 일부 플레이어에게는 이처럼 거대해 보이는 콘텐츠의 양이 다소 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특히, 게임의 아기자기한 외형만 보고 게임을 시작한 초심자의 경우 더 그렇죠. 하지만, 그리 큰 문제는 아닙니다. '슬로우 라이프 RPG'를 표방하는 만큼 시간에 쫒기며 플레이할 필요가 없고, 때때로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즐기는 데 더 집중할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대성과 멀티플레이
언제 어디서든, 친구와 함께 할 따뜻한 게임을 찾는다면

▲ 버스도 탈 수 있다(?), 이것이 진짜 '판타지 라이프'

멀티플레이 요소 또한 '판타지 라이프 i'의 매력을 한 층 끌어올려주는 요소입니다. 직접 함께 모험을 떠나고, 전투를 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플레이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매칭 외에도 두 개의 컨트롤러를 활용하는 로컬 협동 플레이도 지원합니다. 이 때 두 번째 플레이어는 NPC인 새 '트립'을 조작해 함께 자유로운 모험을 하게 되죠.

이미 많은 게이머들이 비교하고 있는 '동물의 숲' 시리즈처럼 다른 플레이어가 꾸민 섬에 들어가 구경하는 요소를 넘어, 제한된 시간이지만 함께 전투나, 모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상당히 긍정적인 요소입니다. 때때로 높은 레벨을 가진 플레이어에게 도움을 받아 폭발적인 경험치를 보수로 얻는, 일명 '버스'를 타는 것도 가능하고요. 이는 일부 이용자에게 게임의 난도를 낮추는 단점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있지만, 먼저 게임을 오래 플레이한 이용자가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요소로도 활용될 여지가 엿보입니다.


한편, '판타지 라이프 i'는 닌텐도 스위치나 스팀덱을 이용해 게임을 즐기는 휴대용 게임으로도 손색이 없는 모습입니다. 탑뷰 시점으로 컨트롤러에 최적화된 게임플레이 자체가 휴대용 플랫폼과 잘 맞는 데다, 자원 채집이나 제작같은 비교적 단순한 활동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많은 플레이어들에게 어필할 요소입니다.

물론, 온라인 멀티플레이로는 스토리 대신 던전 탐험, 챌린지 등만 진행할 수 있다는 점, 싱글 플레이에서도 환영 용병들을 고용해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멀티플레이에 대한 존재 의의를 퇴색시키기는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게임이 혼자서도, 또 여럿이서도 즐길 수 있다는 의미이며, 이 또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즐기는 '슬로우 라이프' 슬로건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괜찮아요
사실, 시간을 훔치는 건 소녀가 아니라...

▲ 똥손인 제게는 힘든 일이지만,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도 게임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결론적으로, '판타지 라이프 i'는 아기자기한 게임플레이에 특화된 레벨5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시간 여행이라는 콘셉트를 통해 깊이를 더한 게임플레이는 허울뿐인 아닌 진정한 느낌의 '자유도'를 전달하고 있으며, 초반부에 쌓은 경험을 토대로 광활한 모험을 선사하는 '무지크지 대륙'은 여러 종류의 빙의체와 모험, 미니게임으로 가득합니다.

물론 일부 성인 게이머에게는 전반적인 내용이나 지명(무지크지..대륙?), 대사들이 자칫 유치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모든 연령층에 RPG의 재미를 전할 수 있다는 매력은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처음 들어본 게임 이름과 길고 긴 부제목, 아동용 게임이라고 오해를 살만한 귀엽고 아기자기한 디자인이 처음에는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접 게임을 손에 쥔다면 어린 시절 상상해 왔던, (거의)모든 것이 가능한 판타지 RPG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잠시 느긋한 시간이 필요한 게이머나, 새롭게 게임이라는 취미를 시작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판타지 라이프 i'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것입니다.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시간을 훔치는 건 소녀가 아니라 이 게임일지도 모르겠네요.

▲ 특유의 유머(?)는 일부 게이머에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