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원작을 색다르게 재해석한 게임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일본 센고쿠시대와 중국 삼국지를 다크 판타지로 그려낸 인왕과 와룡, 동화 피노키오를 기반으로 한 P의 거짓, 서유기를 어둡게 재해석한 검은 신화: 오공 등이 대표적이죠.
이런 작품들은 익숙함과 새로움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많은 게이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반다이남코의 신작 '쉐도우 라비린스'도 바로 이런 게임입니다. 남코를 게임업계의 거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명작 팩맨을 다크 판타지 메트로배니아로 재탄생시킨 작품으로, 공개와 동시에 수많은 게이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화제성 면에서는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죠. 이제 남은 것은 게임 자체의 재미입니다. 과연 '쉐도우 라비린스'는 팩맨을 어떻게 다크 판타지와 메트로배니아로 재해석했을까요? 지난 9일 반다이남코 코리아 사옥에서 열린 체험회에서 직접 확인해봤습니다.
팩맨, 메트로배니아가 되다
아직은 옅은 팩맨의 정체성

메트로배니아라는 장르를 떠나서, '쉐도우 라비린스'의 핵심은 역시 팩맨이어야 합니다. 팩맨 IP를 사용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팩맨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했죠. 공개 영상에서도 팩맨이 쓰러진 보스를 잡아먹는 장면이 나왔고, 이런 요소들이 게임 전반에 자주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연 빌드에서는 그런 부분을 거의 체감할 수 없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팩맨(PUCK = PACMAN 이전의 원래 이름)은 보조 역할에 머물러 있고, 메인은 인간형 캐릭터입니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팩맨으로 메트로배니아를 만든다는 게 쉽게 상상이 안 가니까요.
문제는 팩맨이 활약하는 부분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시연 빌드라는 한계가 있지만, 체감상 팩맨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준 건 1%도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보통 이런 보조 캐릭터가 있는 게임에서는 메인 캐릭터가 못하는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니어 오토마타의 포드가 좋은 예죠. 2B가 근접 전투를 담당하면 포드는 원거리 공격이나 해킹을 맡는 식으로 말입니다. '쉐도우 라비린스'도 그런 식일 거라 예상했지만,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메트로배니아의 한 축을 차지하는 필드를 돌아다니는 부분에서도 팩맨은 거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팩맨이라고 하면 노란색 동전 같은 걸 먹는 걸 떠올리기 마련이기에 뭔가 공중에서 인간형 캐릭터로는 지나갈 수 없는 길을 팩맨으로 변신해서 동전을 먹으면서 지나간다든지 하는 식의 플레이를 예상했지만, 시연 빌드에서는 특정한 레일에서만 팩맨으로 변신해 이동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이동기도 볼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그 1%의 활용도마저 맵을 돌아다니다가 중간중간 나타나는 특정 레일을 타고 이동하는 정도여서, '굳이 팩맨 IP를 써야 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전투에서의 상황도 비슷했습니다. 최소한 원거리 공격을 도와준다든지, 날아가서 물어뜯는다든지 하는 전투 보조 역할은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전투에서는 존재감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스킬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드나 패링 같은 방어 스킬부터 검기를 날리는 공격 스킬까지 다양한 스킬들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인간형 캐릭터에게만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완전히 쓸모없다는 건 아닙니다. 프레젠테이션에서는 팩맨이 쓰러진 잡몹을 잡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었거든요. 다만 시연 빌드에서는 어떤 조건으로 잡아먹는 건지, 플레이어가 직접 조작해야 하는 건지 등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다크 팩맨이라는 컨셉으로 눈길을 끌기는 했지만, 시연을 하면 할수록 '굳이 왜 팩맨이어야 했을까?'라는 의문만 커졌습니다.

메트로배니아로서는 합격점
개성 넘치고 도전적인 보스전

하지만 팩맨이라는 정체성을 제쳐두고 보면, '쉐도우 라비린스'는 꽤 준수한 메트로배니아였습니다. 각기 다른 환경의 다양한 스테이지가 있었고, 탐험하는 재미도 나름의 깊이가 있었습니다. 메트로배니아의 특징인 '지금은 갈 수 없지만 나중에 새로운 능력을 얻으면 갈 수 있게 되는 장소'들도 확인할 수 있었죠. 적어도 기본기는 확실히 갖춘 모습이었습니다.
성장 요소도 마찬가지로 체력과 스태미나, 물약, 그 외 다양한 스킬까지 스테이지를 진행하면서 점점 강해질 수 있도록 잘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필드 탐험이 메트로배니아의 핵심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진짜 잘 만든 메트로배니아라면 탐험 요소와 함께 전투도 훌륭해야 하죠. 다행히 '쉐도우 라비린스'는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보스전은 그동안 익힌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야 하는 형태였습니다. 보스의 공격 타이밍에 맞춰 실드나 패링을 하거나, 회피로 피한 뒤 빈틈을 노리는 식이었죠.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신경 써야 할 요소가 많았습니다.
보스의 공격 패턴도 제법 복잡했죠. 정박과 엇박이 섞여 있고, 범위 공격이나 돌진기 등 다양한 패턴을 가지고 있어서 몇 번이고 죽으면서 패턴을 익혀야 했습니다. 특히 어려웠던 점은 스태미나 시스템이었습니다. 회피나 실드, 패링을 쓸 때마다 스태미나가 크게 줄어들고, 이게 다 떨어지면 100%로 찰 때까지 이런 행동들을 할 수 없거든요. 보스전에서는 이 부분을 계속 신경 쓰면서 싸워야 했습니다.

보스의 특별한 기믹도 흥미로웠습니다. 시연에서 만난 보스는 얼굴에 철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평타로 공격하다 보면 철가면에 공격이 튕겨 나가면서 딜로스가 생기고 전투 흐름이 꼬이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무작정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적당히 끊어서 치거나, 철가면에 튕기지 않도록 앉아서 공격하는 등의 전략이 필요했죠.
'쉐도우 라비린스'는 전반적으로 준수한 메트로배니아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양한 스테이지와 깊이 있는 탐험 요소, 다양한 적들과 도전적인 보스까지 메트로배니아가 갖춰야 할 요소들을 대부분 잘 구현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숙제가 남았습니다. 바로 '팩맨'이라는 정체성이죠. 시연을 하는 내내 '굳이 팩맨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습니다.
준수한 게임은 많지만,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준수한 게임들 사이에서 성공하려면 자신만의 특색을 가진 차별화 요소가 필요하죠. 어떤 게임은 뛰어난 비주얼이나 독특한 시스템이 그 열쇠가 되기도 하고, 어떤 게임은 강력한 IP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쉐도우 라비린스'에게는 팩맨 IP가 바로 그 핵심 차별화 요소입니다. 그런 만큼 정식 출시 때는 '왜 이 게임이 팩맨을 기반으로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보여주길 바랍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게이머들이 궁금해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