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서브컬처 게임이라고 불리는 아니메(Anime) 게임은 이제 글로벌 흥행의 키워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팬심을 자극하고, 그걸 또 오래 끌고 갈 수 있는지가 중요한 장르인 만큼 게임사들은 시대 흐름과 유행에 특히 많이 신경쓰고 있다. 그 결과가 오늘날 다양하게 전개되는 판타지, 혹은 SF와의 결합이다.

다만, 이런 흐름 속에서 비슷한 콘셉트를 가진 게임이라면 특출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눈에 한 번이라도 더 띌 수 있다. '실버 앤 블러드'는 그렇게 비슷함 속에서 차별을 그리는 길에서 벗어났다. 오히려 더 예전의 것을 꺼내, 괜히 한 번 더 생각나게 만드는 세계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뱀파이어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 공존하는 고딕풍 다크 판타지. 여기에 나름의 전략적 플레이까지 얹으며 성공적인 아니메 게임 대열에 올라서려는 실버 앤 블러드를 6월 26일 정식 출시 전 미리 살펴봤다.

* 이미지와 플레이 경험은 출시 전 테스트 빌드를 기준으로 합니다. 일부 번역 미적용 부분 및 출시 버전과 다른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뱀파이어, 늑대인간, 흑혈병
제대로 된 고딕풍 다크 판타지

실버 앤 블러드는 대륙력 1353년, 다크 블러드라는 병이 창궐한 세계를 그린다. 흑혈병이라고도 불리는 이 병에 걸리면 마치 좀비처럼 정신을 잃고,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교회에서는 이러한 병에 걸린자, 혹은 이교도 처단에 힘을 쓰고, 주인공 노아는 바토리 가문의 피로 부활해 함께 세계의 비밀을 파헤쳐나간다.

이야기의 큰 틀만 봐도 알 수 있듯 게임은 흑사병으로 시름하던 중세 유럽을 소재로 그려진다. 여기에 훗날 흡혈귀의 원형이 되는 바토리 가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뱀파이어를 비롯해 늑대인간, 여기에 흑혈병을 옮기는 쥐의 모습도 담긴다. 특히 이런 불안한 사회에서 불행의 원인을 돌려 종교적 권위를 살리려는 교회의 모습은 중세 배경 다크 판타지를 생각했을 때 그려지는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 복식이나 소재, 배경, 분위기 등 고딕풍 다크 판타지에 중심이 잡힌 게임

뱀파이어나 늑대인간이라는 소재가 워낙 오래된 만큼, 근래에는 뱀파이어 마스커레이드를 필두로 이를 현대라는 배경 안에 어반 판타지로 묶어내는 모습이 더 흔하게 그려진다. 그렇기에 오히려 전통적인 고딕 판타지로 이 주제를 풀어내는 실버 앤 블러드의 세계관이 되려 눈길이 가는 모양새가 됐다.

실제로도 개발진은 이 고딕풍 다크판타지를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했고, 그걸 게임 안에 담아냈다.

단순히 깜깜한 배경에 고딕풍 복식만 입혀놓고서는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정도로 끝내지 않는다. 시작부터 화형을 당하는 주인공에 친구나 가족의 죽음, 살점과 뼈가 그대로 드러나는 연출 등 음울한 이야기를 덤덤하게 그려낸다. 호들갑 떨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비참한 세계 모습을 그려내는 식이다.

▲ 화형 장면으로 시작하며 세계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는 도입부

또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만큼, 세계에서만 쓰이는 고유 명사들도 곳곳에 등장하는데, 중요한 표현은 게임에서 여러번 강조하거나, 또 일부러 감춰두고 복선으로 쓰는 모습을 보이며 눈에 익도록 만들었다. 그 외에는 게임 안에서 일종의 모드나 기존 표현을 대체하는 정도로 쓰여 몰입감을 높이는 용도로 활용했다.

다만, 마냥 어두운 요소를 강조하는 건 아닌데, 전형적인 츤데레의 모습을 보여주는 앰프사 바토리도 있고, 중간중간 가볍게 웃으면서 지나갈 수 있는 요소들을 중간중간 뿌려둠으로서 아니메 게임의 기본에도 충실하고자 함을 보여준다.


챕터 구성과 3D-2D 오가는 이야기
다양한 연출 차이로 전달하는 몰입감

이러한 고딕 풍 세계의 큰 틀은 뱀파이어와 피를 통한 주인공의 부활을 시작으로 뱀파이어, 늑대인간, 교회 이야기까지 점점 확대되어 나간다. 넓게 보면 여러 개의 챕터가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 구조지만, 짧게 보면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는, 일종의 시즌제 드라마와 같은 느낌을 내도록 구성되어 있다.

챕터 단위로 보면 어느 정도 완결성을 가지는 구조이면서, 또 크게 보면 그 챕터 들의 내용이 후반부 이야기를 보조하는 식이다.

▲ 기본적으로는 스테이지형 구조지만

▲ 이쪽은 1회성 클리어로 온전히 스토리 진행이 중심이 된다

이런 구성은 분명 세계에 플레이어를 더 깊이 있게 몰입하게 하고, 캐릭터에 매력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든다. 이건 아니메 게임에서 분명한 강점이지만, 반대로 큰 줄기에 여러 서브퀘스트가 달라 붙는 왕도적 스토리와 비교하면 점점 복잡해진다는 단점도 존재한다. 특히 조금만 복잡해져도 스킵을 누르는 플레이어라면 캐릭터의 매력도, 이야기의 구조도 모두 놓쳐버릴 수 있다.

실버 앤 블러드는 이러한 스토리 몰입감을 위해 중간중간 2D 애니메이션 연출을 추가했다. 후반에서는 그 수가 적은 듯 하지만, 초반에는 애니메이션이 3D 연출과 5:5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되어 있어 몰입이 중요한 초반 집중력을 높이고 있다.

이렇게 챕터 단위로 종결되는 이야기 안에서 달의 이면과 달의 씨앗, 귀향의 길, 기원에 관한 이야기를 꾸준히 복선으로 뿌린다. 이야기의 완결성과 연속성을 동시에 후반 이야기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식이다. 자칫 어둡고,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길게 끌고갈 힘을 심어 놓은 셈이다.

▲ 기본 스토리는 3D 캐릭터 연출로 기본을 잡고

▲ 중간중간 2D 애니메이션 연출로 몰입감을 높이고자 했다

이렇게 복합적으로 얽히고, 다크 판타지에 걸맞은 수위의 이야기는 성인이나 그에 가까운 고등 청소년 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걸 덧붙이는 게 캐릭터 외형이다.

스토리와 전투에서 그려지는 캐릭터는 3D로 데포르메보다는 8등신에 가까운 실제 인간 비율로 담아내고자 했다. 여기에 대화 창에 덧붙는 캐릭터 일러스트는 깔끔한 선으로 실사 비율을 따르면서도 만화에 가까운 디자인으로 다양한 표정을 대사화 함께 볼 수 있도록 한다. 각각의 캐릭터 성장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연출은 선을 더 흐리고 색을 흩트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한층 강조한다. 여기에 신체 부위를 한층 강조하는 묘사로 실사풍 캐릭터에 대한 성인 게이머의 만족감을 높이고자 하고 있다.

▲ 페이스칩 활용으로 만화적인 연출이 강화된 디자인과 보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강조된 일러스트가 함께 준비되어 있다


스토리는 스토리만, 성장은 다양하게
병렬 콘텐츠 구성으로 더 다양한 이야기를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각 스토리 페이지는 스테이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걸 반복 클리어하는 구조는 벗어났다. 스토리는 온전히 스토리 클리어에 집중하고 클리어 이후에는 해당 스테이지는 스테이지를 다시 보는 역할 정도에 그친다.

스테이지 클리어는 한 번. 곧, 주어지는 첫 보상만으로는 초반부만 넘겨도 온전한 성장을 달성할 수 없다는 의미다. 꽤 이른 시기 스테이지 클리어 장벽에 막히고 만다.

스테이지 클리어를 위한 성장 필요 구간을 두고, 병렬적 컨텐츠 구조로 이걸 해결하도록 유도한다. 밀려오는 적들을 막는 호드 모드 개념의 시계탑부터 기간 한정 콘텐츠로 프리미엄 재화를 얻고 캐릭터 획득을 노리게 한다. 또 시간이 지날 때마다 조금씩 보상이 쌓이고, 이걸 한 번에 받는 영월 공물은 캐릭터 성장을 위한 자원이 제공된다.

▲ 1회 클리어 스토리 보상으로는 성장 재화를 모두 얻기는 어렵기에

▲ 시간에 따라 자동으로 얻는 영월 공물 등의 다른 콘텐츠 보상을 노리게 되는 구조

스테이지 공략이 막히면, 다른 콘텐츠를 돌며 캐릭터도 얻고, 성장도 시켜 스테이지 클리어 문턱을 넘어설 수 있는 시간을 들이도록 했다. 성장 자체가 지나치게 빠른 게임이 일찍 손을 놓게되는 시간 도달 시기도 늦추고, 이런 저런 콘텐츠로 여러 플레이로 유도하는 데 이게 잘 먹혀들었다.

캐릭터인 권속 뽑기는 결국 프리미엄 재화가 필요하지만, 성장이나 장비는 시간을 들이면 얻을 수 있는 구조기에 방치 보상을 통해 성장을 추구하거나, 재화를 써서 그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병렬적 콘텐츠의 또 다른 축은 이벤트다. 이쪽은 별도의 도전 제한이 없는 스테이지 콘텐츠와 달리 일일 1회, 5회 등 도전 횟수가 제한적으로 충전되고, 이를 활용해 플레이하게 된다. 여기서 얻은 이벤트 자원은 캐릭터 뽑기권이나, 성장 재화로 바꿀 수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스테이지에서 여전히 구멍으로 남아있는, 이야기를 채워주는 역할도 한다.

▲ 다양한 방법으로 성장과 스쿼드 확장을 노리도록 구성하고

▲ 이야기의 궁금증을 다양한 부가 스토리 콘텐츠로 채워나간다


전술, 배치, 실행, 고민과 전략
생각할 게 많은 전투의 구현

여러 콘텐츠가 플레이의 균형을 잡아준다면 실제 전투에서는 전략적 플레이가 게임의 속도를 잡아준다.

전투에서 플레이어가 할 일은 전투 시작 전 참여할 5명의 캐릭터를 9개의 칸에 배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전투에서 캐릭터는 적을 찾자, 적은 자신의 공격 패턴에 따라 특정 아군을 먼저 공격한다. 기본적으로는 가까운 적을 공격하는 형태니 앞에는 탱커를, 뒤에는 원거리 딜러나 힐러를 배치하는 전술적 배치가 기본으로 깔린다.

▲ 5명의 캐릭터를 배치하면 알아서 전투에 나서는 방식

여기까지가 기본이라면 이제부터는 좀더 심화적인 전술 고려가 필요하다. 우선 적들의 공격 배치. 가까운 적을 공격하는 게 '기본적'이라고 표현한 만큼, 일부 특수 적은 돌격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게임 시작과 함께 아군 진영의 뒤를 파고들기도 한다. 이렇게 아군 딜러진을 향하는 적 이동을 막기 위해서는 공격 길목에 다른 캐릭터를 배치해야 한다. 몇몇 캐릭터는 아예 투명화 후 진영 한 가운데 떨어져 공격을 하기도 한다.

중간 중간 웨이브 형태로 추가되는 적의 공격 루트도 파악해야 한다. 한창 탱커가 전방에서 공격을 받아내고 있는 와중에 딜러진 옆에서 오는 증원이 있다면 캐릭터 보호에 애를 꽤 쓰게 될 터다.

여기까지가 캐릭터 포진에 관한 전략이다. 즉, 하나 더 고려할 게 있는데 캐릭터를 어디에 둘 것인지 이전에 어떤 캐릭터를 선택할지에 대한 문제다.

게임 속에서 모든 캐릭터는 자동으로 쓰는 전투 스킬, 저마다 다른 효과를 가진 기본 공격, 패시브 개념의 특성, 그리고 플레이어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궁극기가 있다. 궁극기는 전체 회복처럼 클릭 한 번으로 효과를 내는 경우도 있지만, 공격 방향을 직접 설정하는 스킬도 많다. 이런 스킬은 범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따라 1명, 혹은 너댓 명 이상의 적에게도 히트시킬 수 있다.

▲ 단순히 스킬 클릭을 넘어 스킬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지로 플레이어 개입 여지도 남겨놓았다

그리고 이런 궁극기의 효능은 게임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로 강력하다. 여러 적에게 도발을 걸어 후방을 보호해줄 수도 있고, 원거리에서 특정 적을 타깃해 큰 피해를 줄 수도 있다. 이걸 얼마나 전략적으로 사용하는지가 전투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이런 궁극기는 단순히 시간에 따라 회복되지 않고, 혈혼을 소모해 쓰는 식인데 이 혈혼이 캐릭터 전체가 공유하는 자원이다. 여기에 궁극기마다 혈혼의 소모량도 다르다. 효과적인 궁극기 활용을 위해 궁극기 혈혼 소모량이 높은 캐릭터만으로 팀을 꾸리긴 어렵다는 의미다.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한 반 더 나아가보자. 캐릭터는 각각 신월, 잔월, 만월이라는 달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 신월과 잔월, 만월 캐릭터의 궁극기를 한 번씩 모두 쓰면 잠시 동안 혈월이라는 효과를 얻게 되고, 이 시간 동안 피해량 25% 증가와 함께 모든 혈혼 요구량이 1 감소한다. 궁극기를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동시에, 공격까지 더 강하게 먹이는 시스템이다.

결국 궁극기의 종류와 활용을 고민하면서 소모량도 신경쓰고, 달의 위상 종류까지 챙겨야 한다.

▲ 캐릭터 옆 달의 모양, 달의 위상을 세 개 모두 채웠을 때 큰 추가 효과가 생긴다
하지만 스킬 쓸 수 있는 캐릭터가 셋으로 제한되어 더 전략적인 스킬 순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가 더 있다. 궁극기 스킬이 유용한 캐릭터의 조합이라도 회복처럼 어느 정도 게임을 플레이한 이후에 쓸 스킬이 있고, 또 일부 스킬은 초반 빠르게 쓰는 게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게임에서 궁극기를 활성화할 수 있는 캐릭터는 셋 뿐이다. 셋 중 궁극기를 쓴 캐릭터는 자리가 빠지고, 나머지 두 캐릭터 중 하나가 스킬 창에 올라온다. 강력한 궁극기만 연속으로 사용하지 않게 만드는 동시에, 상황에 따라 어떤 궁극기를 써야 할지 실시간으로 전략적 선택을 하도록 했다.

더불어 작은 궁극기 효과를 내는 다양한 고정 스킬, 특성의 조합, 그리고 유독 효율이 좋아 빠르게 처치하지 않으면 잡졸 하나도 보스급 체력으로 만드는 적 힐러의 제압 등 고려할 부분이 많다.

▲ 공격 루트를 틀어 뒤를 잡아 진영을 흩트리는 적도 종종 등장

이러한 전투에서의 고민은 게임을 어렵게 만들고, 고민할 게 많은 게임을 만드는 동시에 저등급 캐릭터의 활용, 전략적 재미를 찾아내게 한다.



확고한 소재와 디자인을 바탕으로 한 고딕풍 다크 판타지. 실버 앤 블러드는 이 틀 안에서 어떻게 그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을지 여러모로 고민한 모습을 보여줬다. 단순히 스토리나 디자인뿐만 아니라 이런 콘텐츠를 소비할 유저층에 맞춘 전략적 플레이, 이야기 구조, 그리고 그걸 풀어 나가는 방식이 다른 게임과의 다름을 그려낸다.

그리 길지 않았던 테스트 버전에서도 그 다름은 여럿 모습을 드러냈다. 첫인상은 분명 확실했던 게임이랄까. 그런 만큼 장기적인 서비스를 그리는 아니메 게임들, 비슷한 타깃의 동종 게임들 사이에서도 그 매력을 얼마나 오래 유지할지가 실버 앤 블러드의 장기적 흥행을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