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가 주최한 공모전 홍보물에 '인터넷 게임'이 알코올,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표기돼 게임업계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성남시만의 문제가 아니며, 명확한 근거 없이 게임을 중독물질로 규정해 온 지난 10여 년간의 구조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건은 성남시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가 지난 5일 게시한 '2025 AI공모전 : AI를 활용한 중독예방 콘텐츠 제작 공모전' 웹 홍보물에서 시작됐다.


정석희 전 한국게임개발자협회장은 지난 14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해당 홍보물 내용을 지적하며 문제를 공론화했다.

이후 남궁훈 아이즈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게임사들이 밀집한 판교 성남시에서 게임을 4대 중독이라고 표현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는 공무원들이 있다"며 "세금을 좀먹고 있으니 국가 재정이 부족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게임인재단 역시 14일 공식 입장문을 내고 "게임이 알코올, 약물, 도박과 함께 '4대 중독'으로 분류된 표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4대 중독'에 게임을 포함하는 것은 근거가 불충분함에도 일부 공공홍보물에서 사용되며 게임을 중독물질과 동일선상에 두는 인식을 고착화시킨다"며 "게임은 중독이 아닌 문화"라고 강조했다.

▲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심리학 박사)은 이번 논란이 해묵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이 소장은 "2014년 4대중독법 시도가 무산됐음에도, 보건복지부 산하 '중독통합관리센터'는 여전히 '인터넷게임'을 중독 대상으로 특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정보가 반복적으로 제시되면 이를 진실로 믿게 되는 '착각진실효과'가 나타난다"며 "지난 10여 년간 국가기관에서 게임을 중독으로 반복 언급하면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처럼 굳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남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자치단체 중독통합관리센터 홈페이지를 보면 '인터넷', '스마트폰', '인터넷게임' 등 중독 대상 명칭과 기준이 제각각"이라며 "성남시는 심지어 마약보다 앞서 인터넷게임을 중독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러한 정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고, 지난 10년간 관성적으로 이어져 왔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소장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반대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정책적 모순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문체부는 게임의 질병코드화에 대응하기 위해 민관 협의체를 운영하고 관련 포럼을 개최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왔다.

하지만 정작 문체부 산하 기관인 게임문화재단을 통해 전국 8개 권역(서울, 경기, 강원, 충청, 호남, 대구경북, 부산, 허브센터)에서 '게임과몰입 힐링센터'를 운영 중인 점이 문제로 꼽힌다. 해당 센터의 공식 사업 내용은 '상담 및 진단, 치료 실시'와 '진단 프로그램 개발'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을 대상으로는 검사, 진료, 치료 및 입원비까지 지원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소장은 "의료법상 '진단'은 명백한 의료행위"라며 "이는 문체부 스스로 게임 과몰입을 질병이자 치료가 필요한 의료 대상으로 자인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22년 게임을 정식 문화예술 분야로 인정한 문체부가 유독 게임에만 의료적 잣대인 '진단'과 '치료'를 적용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며 정부 부처의 엇박자 정책과 자기모순을 강하게 질타했다.

이장주 소장은 "착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정정 정보를 반복적이고 꾸준하게 제기해야 한다"며 "이번 성남시 공모전 논란이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온 믿음의 근거를 다시 점검하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