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 hope you have a great experience"
SGF 취재를 위해 방문한 LA에서, 현장 스태프가 건넨 시연 전 마지막 인사였다. 딱히 생소하진 않았다. 게임 플레이를 '경험'으로 치환해 표현하는 건, 요 몇 년 사이 스며들듯 게임 산업에 일어난 변화 중 하나였으니까.
게임 플레이 '경험', 오픈 월드 '경험', 건플레이 '경험', 전투 '경험'에 이르기까지,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게임 산업의 필드에서 '경험'이라는 단어는, 시나브로 게임 플레이를 대체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인지하지 못했다면 느낄 수 없지만, 인지하고 나서는 언제 이렇게 많아졌나 싶을 정도다.
현장에서 만난 외신 기자들과 가볍게 맥주잔을 기울이며 시작한 대화에서도, 이 화두는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경험'이라는 글자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기에, 왜 '플레이'라는 단어 대신 사용하게 된 걸까? 서너명의 기자들이 모여 시작된 대화는, 구성원을 바꿔가며 한 시간이 넘도록 이어졌고, 나름의 합의점을 찾아냈다.
'게임 경험'이 '게임 플레이'보다 분명 더 큰 범주의 개념이라는 것. 그리고 이 안에는 기획된 게임의 재미를 느끼는 과정 외에도, 다양한 공감각적 자극들을 비롯해, 비즈니스 모델이나 서비스의 품질, 개발사의 소통 방식이나 업데이트 주기 등 게임 외적인 환경들까지 함께 포함된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개발자들의 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전에는 하나의 세일즈 포인트만 가지고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게임이 너무 많아지고, 게이머의 눈높이도 높아지면서 단순히 '좋은 비주얼', '좋은 액션', '넓은 오픈월드' 등 하나의 강조점을 내세워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와버렸다. 그렇기에 다른 게임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독보적이면서도 최고의 경험을 줄 수 있는 게임이 아닌 한 차라리 모든 면을 기본 이상으로 다듬어 '불쾌함을 소거'하는게 생존에는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개발사마다 사정이 다르니 이 말이 정론은 아니겠지만, 게이머로서는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이제 더 이상, 어떤 특정한 재미를 위해 다른 여러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반갑지 않다. 고 퀄리티 비주얼을 감상하기 위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조작을 견디는 것도, 서사가 대단하다는 이유로 다른 게임보다 훨씬 비싼 작품을 구매하는 것도 좋은 경험은 아니다. 나름 즐거웠지만, 아쉬웠던 기억 정도일까.
3일 간, 현장에서 겪은 모든 시연의 끝에도, 항상 이런 질문이 뒤따랐다. "게임 중 불편했던 점은 없나요?" 시연 전에는 자신들의 장점을 설명했지만, 시연이 마무리되고 나서는 그 부분에 대한 감상을 묻기보다 부족한 부분을 물었다. 무엇을 보완하면 좋겠냐며 말이다.
'경험'이라는 단어는 퍽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게임 산업에서 이는 현 시점의 개발 트렌드를 요약하는 단어일 것이다. 게임에서 겪게 되는 모든 인지적, 감각적, 정서적, 사회적, 행동적 경험들에서 불쾌함을 없애고, 이를 하나의 거대한 복합적 경험으로 섞어내는 것. 이를 통해 기억에 남는 '순간'이나 '인상'을 만들어내는 과정 말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의 인사 정책 중 유명한 구절이 있다. '유재시거(唯才是擧)'. 능력이 있으면, 인성이나 도덕성이 다소 떨어져도 천거해 쓰겠다는 거다. 이렇듯 대체 불가능한 장점은 언제든 큰 무기였지만, 게임 산업에서는 더 이상 아니다. 이제 게임은 너무나 많으니까. 잘 만든 부분보다 아쉬운 부분을 살피고, 게이머의 마음에 걸림돌이 될 만한 부분들을 연마해 깎아내는 것이 이 '경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이들이 'SGF 2025'에서 보여주는 글로벌 기준의 개발 트렌드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밟아가는 이들이 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