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게임즈 박용현 대표, 빅 게임본부장

  • 주제: 우리가 빅 게임을 만드는 이유
  • 강연자 : 박용현 - 넥슨게임즈 / NEXON GAMES
  • 발표자 소개 : 넥슨 빅 게임본부를 총괄하며 넥슨 컴퍼니 내 다양한 장르의 대형 게임 개발을 이끌고 있다.
  • 권장 대상 : 전체


  • [🚨 강연 주제] 빠르게 변화하는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 완성도 높은 대형 게임 개발의 전략적 중요성을 짚어보고, 국내 게임사들이 갖춰야 할 핵심 전략과 '빅 게임'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박용현 넥슨게임즈 대표는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 2025(NDC 2025)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빠르게 변화하는 전 세계 게임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빅 플레이어만이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빅 게임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만들어 온 대작을 초월하는, 규모와 퀄리티 양쪽 모두에서 글로벌 강자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타이틀이 바로 빅 게임"이라고 정의했다.


    ■ "PC·모바일 정체, 패키지는 개발비 폭증"


    박용현 대표는 과거 한국 게임 시장을 '개척과 확장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초창기 게임 시장은 미개척지였고, 그 자리에 로컬 기업들이 각자 자기의 전문 분야를 가지고 저마다의 시장을 차지했던 시대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에는 문화적, 제도적 장벽으로 인해 해외 진출이 드물었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으며, 이 시기에 성공한 기업들이 현재 시장의 주도 플레이어가 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현재 시장 상황에 대해서는 '정체'라는 비관적인 진단을 내렸다. 박 대표는 "PC 라이브 서비스, 모바일 패키지 시장 모두 정체에 빠졌거나 위기를 맞고 있다"며 "PC 라이브 시장이 얼마나 정체에 빠져 있는지는 한국 PC방 랭킹 순위나 스팀 상위 게임들의 출시 연도에 잘 드러난다"고 제시했다. 2020년 이후에 나온 게임은 별로 없고 출시한 지 10년 넘은 게임들 위주다. 글로벌 라이브 시장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정체의 조짐이 보인다. 작년 기준으로 스팀 랭킹에 새로 올라온 게임은 겨우 2개였고, 절반 이상은 5에서 10여 년 묵은 게임들이었다.


    모바일 시장의 위기는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신규 타이틀의 차트 진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향을 보일 뿐만 아니라, 게임 시장 외부의 경쟁자들에게 시장 자체를 잠식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실제로는 모바일 앱 시장에서 게임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틱톡이나 유튜브의 매출이 게임 앱들을 앞지르고 있다"며 "모바일 게임에게 틱톡이나 유튜브 같은 앱들이 경쟁 게임보다 더 큰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유저들이 틱톡을 보는 만큼 게임을 덜 한다"고 전했다.

    패키지 게임 시장 역시 안심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다른 게임과 무관하게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개발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폭증하며 리스크가 극대화되었다.



    '마블 스파이더맨 2' 같은 경우에는 5년 사이에 개발비가 1500억 원에서 4500억 원정도로 3배 늘었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더 비싸서 1조 2천억 원 정도다. 이 개발비를 회수하려면 마케팅비를 포함해 2천만 장 이상을 팔아야 겨우 본전을 맞추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개발비가 치솟고 있으니 기존의 강자들도 한두 개의 게임만 흥행에 실패하면 크게 휘청거리는 상황이 왔다고 박 대표는 분석했다.



    ■ 왜 빅 게임인가



    박 대표는 포화 상태가 된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방어만으로는 부족하며, 과감하게 밖으로 치고 나가는 공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형 게임사들은 "빅 플레이어만이 할 수 있고 빅 플레이어가 잘 할 수 있는 빅 게임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빅 게임'은 국내 기준의 '대작'을 넘어선 개념이다. "규모와 퀄리티 양쪽 모두 글로벌 시장의 기존 강자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타이틀"이자 "우리가 만들어오던 게임을 초월하는 것"이 바로 빅 게임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중국과 동유럽이 이미 빅 게임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어 우리가 늦게 출발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게 기회가 남아있다고 보았다. 개발비가 미국 실리콘 밸리처럼 비싸지 않고, 서구권에 비해 라이브 서비스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다. 또한, K-컬처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며 빅 게임 제작에 필요한 경험이 과거에 비해 많이 쌓여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장점들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에게 시장을 뚫을 기회로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수년뿐"이라고 경고했다.

    박 대표는 빅 게임 개발 과정에서 마주한 낯선 도전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가장 먼저, 게임을 판매하고 마케팅하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먼저 우리나라 경우를 소개하며 "사전 등록, 이름 선정, 론칭 세 이벤트를 축으로, 출시 두 달 전부터 마케팅을 시작해 기대감을 끌어올려 터뜨리는 방식에 익숙하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 두 달 전까지 개발 중인 게임을 거의 공개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글로벌 시장에서는 출시 수년 전, 개발 착수 시점부터 게임 플레이 트레일러를 공개하며 장기적인 브랜딩을 한다. 이는 대형 블록버스터뿐만 아니라, 30~80명 규모로 개발되는 중소규모 게임들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러한 방식은 개발팀에 큰 부담이 된다. 개발 일정이 늘어나고, 게임이 바뀔 수 있는 위험이 있으며, 개발 초기 단계라 볼품없는 게임을 예쁘게 꾸며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단언했다.




    "미국이나 유럽은 우리와 상황이 매우 다릅니다. 땅도 넓어서 사람들이 골고루 흩어져 있습니다. 이런 시장에선 돈으로 인지도를 사기에는 가성비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규 IP라면 유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될 매력적인 트레일러를 꾸준히 뿌려야 합니다. 저 시장은 저렇게 트레일러로 몇 년에 걸쳐 기대감을 높여놓지 않으면 아예 팔리지가 않는 시장입니다. 이건 개발력을 좀 아끼다 망할래, 아니면 목숨 걸고 해내서 살아남을래, 이런 답이 정해진 양자택일인 겁니다"

    넥슨은 개발 본연의 과정에서도 새로운 도전이 많았다. 그래픽, 게임 플레이 등 전반적인 퀄리티를 글로벌 트리플A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두 가지 핵심 이유를 꼽았다.


    "첫째는 플레이어로서 퀄리티 기준을 아는 것과 만드는 입장에서 퀄리티 기준을 아는 것은 다르다, 훨씬 더 꼼꼼하게 봐야 했다. 둘째는 우리가 기존 게임을 만들면서 쌓아온 경험이 빅 게임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는 도리어 방해가 됐다."

    그는 '가성비'에 익숙한 기존의 개발 방식이 무의식에 박혀, 글로벌 기준의 섬세하고 사치스러운 연출을 이해하고 재현하는 데 악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이를 '비빔밥을 만들 줄 아는 요리사가 밥만 면으로 바꿔 비빔냉면을 만드는' 것에 비유했다.



    ■ 넥슨도 느꼈던 벽: 거대 조직 운영의 난관


    수백 명, 수천 명 단위의 대규모 인력을 운영하는 것 역시 거대한 난관이었다. 150명 남짓까지는 기존 방식으로 어떻게든 운영했지만, 수백 명이 되자 효율 저하를 넘어 비전과 퀄리티 기준을 공유하는 것부터 문제가 되었다.

    박 대표는 해외의 다른 조직 운영 방식을 소개했다. 게임을 덩어리로 쪼개 여러 지사에 위임하거나, 700명이 넘는 개발자를 10~20명의 다직군 소규모 조직으로 쪼개는 방식이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방법이 잘 통하지 않더라, 새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만들어 본 적 없는 게임을 만드는 상황에서 조직의 비전을 통일시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책 중 하나가 바로 앞서 언급한 '초기 트레일러'라고 밝혔다.

    "우리가 만들 게임이 어떤 게임인지, 목표로 하는 퀄리티가 어떤 수준인지 영상으로 바로 보여줄 수 있으니 비전을 통일하기가 쉽습니다. 또 사람 뽑을 때에도 이런 게임 만든다고 영상을 보여주면 실제로 할 줄 알거나 최소한 좋아하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퀄리티를 높이기에도 유리합니다."

    박 대표는 지금까지 언급한 문제들을 '알려진 미지(Known Unknowns)', 즉 문제는 알지만 아직 해답은 모르는 것들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미지의 미지(Unknown Unknowns)'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경험자들이 우리 앞에서 그 난관을 통과해서 그들의 빅 게임을 완성시켰다"며, "답이 있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용현 대표는 "안 되니까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혼자서 해결하려고 할 때보다는 여럿일 때 뭘 바꿔야 할지 빨리 알고 많이 고칠 수 있다"며, NDC와 같은 행사를 통해 업계 전체가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함께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