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것이 세계에서 정말 통할 수 있을까?'

게임이라는 콘텐츠 산업의 한 면을 다루며 늘 궁금했던 이 답을 이토록 절절하게 느낄 줄 누가 알았을까. SNS와 커뮤니티를 뒤덮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몽경(夢境)'에 대한 찬사는 외국에서, 다른 하나는 우리 안에서 나와 한국적 정서에 필요했던 기술적 완성도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그게 바라 마지않던 게임이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와 댄스 경연 프로그램 퍼포먼스였지만 말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그간 넷플릭스 대표 흥행작들이 걷는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는 96%에 넷플릭스 시청 순위는 전 세계 평균 1.9위, 이마저도 입소문을 타며 글로벌 시청자들의 관심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여타 인기작들과 달리 마땅한 IP 타이틀도 아니고, 흥행 파워를 가진 배우의 연기력으로 밀어붙이는 타이틀도 아니다. 오히려 비교적 너른 연령층을 타깃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유치할 수 있는 연출에 케이팝 아이돌, 무교(무속)신앙, 악귀와 민간 설화 등 얼핏 다양함을 넘어 일관성 없어 보이는 한국적 요소가 중심이 된다.

그런데 작품의 호평 요소는 여기서 나온다. 작품에는 감독 중 한 명인 매기 강을 비롯해 한국계 인물이 여럿 참여했지만, 해외 제작사에서 다루는 한국적인 콘텐츠는 기대보다는 우려가 컸다. 그간 아시아 문화를 다루는 서양권의 시선은 한국과 일본, 중국에 대한 마땅한 구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개된 영화는 한국적인 모습을 작품에 얼마나 담아낼지 세심하게 고민했음이 드러난다. 남산타워나 낙산공원 성곽길 등 화면만 봐도 장소가 떠오를 정도로 서울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여기에 아플 땐 한약을 짓고, 국밥 먹을 때 젓가락 밑엔 티슈를 깔고, 주차금지 문구 위로 차가 서있고, 대중 목욕탕이 등장하기도 한다. 저승사자, 도깨비, 작호도의 호랑이는 작품에 어울리게 가다듬어져 맛을 더하고, 한국 무교의 정화와 경계는 혼문이라는 형태로 해석되었다.

노래부르는 퇴마사 아이돌과 한국적 이야기는 깊이 있는 고증과 독자적인 해석으로 이 영화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로써 호평받는다. 그런데 이게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완성하는 요소는 아니다. 작품을 재미있고, 몰입감 있도록 느껴지도록 만드는 기술적 성취가 있었기에 우리는 그걸 정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



매기 강 감독은 이번 작품이 첫 장편 데뷔지만, 이미 레고 닌자고 무비에서 대본 시각화를 담당하는 스토리 아티스트 헤드를 비롯해 굵직한 타이틀에 참여한 인물이다. 크리스 아펠한스 공동 감독이나 아미 톰슨 디렉터, 밍주 헬렌 첸 프로덕션 디자이너도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미 많은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를 통해 기술적인 부분에서의 창의성을 맘껏 발현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기술적으로 완성된 작품으로 끌어올렸다.

케이팝과 한국적 정서와 문화가 담긴 소재들은 그것들이 시끄럽게 존재를 떠들지 않는다. '이게 한국에서는 말이지...'라며 설명하려들지도 않는다. 기술적 완성도, 서구적 스토리텔링 위에 움직이는 한국의 감수성은 작품에서 튀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됐다. 젓가락 밑에 깔린 티슈가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봐도, 케이팝에 열광하는 이들이 음악 하나만 보고 즐겨도 문제 없는 작품이 된 셈이다.


엠넷 월드 오브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에 출연한 팀 코리아 범접의 '몽경' 역시 한국에서 만든 한국적인 것이면서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처럼 '완성도'라는 근간을 깔았다.

꿈의 경계라는 뜻의 몽경은 소녀의 꿈 속 여정을 춤으로 풀어내 글로벌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일주일이 지난 25일 전체 조회수는 1,300만 회를 돌파했는데 이는 스우파 시리즈 중에서도 최고 조회수다. 특히 허니제이의 아이솔레이션을 통해 기괴한 저승사자 연출로 시작한 퍼포먼스는 바다의 등장과 함께 마치 굿판을 벌인 듯한 립제이의 왁킹, 풍물놀이패의 상무를 돌리는 듯한 리정의 모습까지 여러 상징을 깨알같이 박았다.

특히 갓을 이용한 하이 앵글 연출은 검은 바깥과 흰 안쪽을 반복해서 뒤집으며 무채색 배경에 검고 흰 갓만으로 무대 전체를 압도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범접은 연출 의도로 한국 고유의 음양 사상과 이중적 정체성을 강조했는데 이건 중국에서 넘어온 음양 사상의 한국적 해석을 더한 부분이다. 음양을 단순히 대립적 개념을 넘어 보완과 조화로 받아들이면서도, 내가 보는 주체와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화된, 불완전한 존재라는 이질성과 동질성으로 의미를 삼았다. 이건 한국의 공동체 의식으로 살이 더해진 한국 음양 철학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꿈에 경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갇힌 소녀는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불완전성을 지닌 존재, 우리 자신을 뜻한다.

이토록 연출 하나하나에 한국적 색체를 잔뜩 담아낸 '몽경' 역시 이 한국적 의미를 고급적인 춤과 카메라 연출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다잡았다. 3분 남짓한 영상 안에, 깊게 들여다보면 담긴 수많은 은유와 해석이 가능하지만, 그저 퍼포먼스 하나로도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작품의 공포적 분위기와 연결성을 중시했다. 시리즈 내내 해외 크루들에 비해 아쉬운 평가를 받았던 팀 코리아 범접은 강점인 코레오그래피(여러 동작을 조합해 음악에 맞는 안무를 창작해 내는 것) 실력을 드러내며 세계적으로도 밀리지 않을 기술적 완성도를 빼놓지 않았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몽경' 모두 서로 다른 장르에서 한국의 감수성을 숨기지 않지만, 그 한국적인 것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글로벌에서 통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깊이 있는 고증을 통해 잘 다룬 한국의 것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색다를 주제다. 그리고 이 한국의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쌓아올린 기술적 완성도 안에서 연결된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충분히 통한 만듦새를 갖추었다는 의미며, 필요했던 좋고 특별한 이야기가 되는 게 한국의 정체성 부분이 된다.

마치 서유기가 그렇고, 삼국지나 닌자가 그렇듯, 한류와 그 하위의 문화요소들 역시 국가적 특징을 넘어 하나의 콘텐츠 제작 DNA로서의 가치가 생긴 셈. 한국인이 만들든, 한국 자본 한장 없는 해외 제작사가 만들든, 이제 'K-' 라벨 없이도 한국과 한류가 쓰이는 시대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한국을 담은 게임 개발에 여럿 목소리를 내왔고, 또 그걸 바라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한국적인 것이 한국발(發)이든 그렇지 않든, 완성도 있는 기술을 만났을 때 글로벌에서 성공할 수 있는 '힙'한 소재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어쩌면 글로벌 시장에서 흥행하는 한국 배경 게임은 해외에서 먼저 만나지는 않을까? 나아가 그게 한국적인 무언가를 더 잘 다룰 수 있는, 한국 게임 시장의 성장을 이끌지도 모른다. 그저 K-게임이라는 표현으로 묶어두지 않아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