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부터 게임을 사랑해온 변호사입니다. 손은 굳고 눈도 흐려졌지만, 오늘도 normal 난이도로 게임을 클리어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입니다. 게임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E-mail : gerrardgogo@gmail.com
관련 기사
- 계약의 이해와 실무, 종합 '이병찬 칼럼' 모아보기
지금까지 계약서를 작성하고 검토하는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 계약 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 숙지해야 할 핵심 개념들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NDA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계약 전 체결하는 NDA란 무엇인가?
요즘에는 조건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다가 바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라, NDA, 텀시트 합의, 본 계약 체결이라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물론 모든 계약이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는 것은 아니며, 모든 계약이 반드시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NDA나 텀시트를 작성하거나 검토하는 데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에, 굳이 필요가 없다면 해당 단계를 생략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그렇다면, 일단 NDA가 어떤 목적으로 체결되는 것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체결하려는 계약의 내용이 NDA의 목적과 별다른 관계가 없다면 굳이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NDA는 “Non-Disclosure Agreement”의 약자로 “비밀 유지 계약서”를 의미합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NDA를 체결하는 목적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제공하는 정보를 비밀로 유지하도록 강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상대방과 계약 조건을 협상하는 단계에서 비밀로 관리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비밀정보를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NDA를 체결할 필요가 없습니다. 굳이 NDA를 체결할 필요가 없는데도 상대방이 회사 규정이나 일반적인 관례에 따라 NDA 체결을 요구하는 경우라면, 이를 검토하거나 수정하는데 쓸데 없이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말고, 빠르게 합의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반대로 협상 단계에서 상대방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반드시 NDA를 체결해야겠지요.

그런데, 왜 굳이 본 계약 전에 NDA를 체결하는 걸까요? 그냥 본 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서에 비밀 유지 조항을 삽입하면 안 되는 걸까요?
여러분이 소형 게임사의 대표이사인데, 투자사를 상대로 현재 개발 중인 게임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투자 유치를 위해서는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 BM 등 핵심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투자사 입장에서는 이런 것도 알지 못한 채로 묻지마 투자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프레젠테이션이 끝나고 협상이 진행되다가 결국 투자 계약이 결렬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투자사에서는 개발사로부터 게임에 대한 핵심적인 정보를 제공받았지만, 어떠한 계약도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투자사는 제공받은 정보를 임의로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정리하자면, 계약이 체결되기 전까지는 상대방이 비밀정보를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는 걸 방지할 안전장치가 없기 때문에 정보를 제공하기 전에 NDA를 체결하는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NDA에는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까?
참고로, NDA가 체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사용하거나 공개한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면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거나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할 수 있지만, ‘영업비밀’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이 매우 까다로울 뿐만 아니라, NDA를 체결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면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지 않아 영업비밀로 인정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영업비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비밀관리성’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이는 정보가 상당한 노력에 의해 비밀로 유지되었는지 여부를 의미합니다).

또한, 상대방이 무단으로 사용한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밖에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업을 위하여 무단으로 사용함으로써 타인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지만, 해당 조건을 입증하기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제공하는 정보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고 판단되어 NDA를 체결하게 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정보 제공의 목적’과 ‘목적 외 사용 금지’가 명확히 규정되어야 합니다. 만약, 정보 제공의 목적과 목적의 범위를 벗어나서 정보를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면, 정보의 수령자가 목적을 벗어나 이를 임의로 사용하거나 공개하더라도 책임을 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정보 제공의 목적을 ‘투자를 위한 검토’나 ‘영업 양수를 위한 실사’와 같은 방식으로 한정하고, 제공받은 정보를 이러한 목적의 범위를 벗어나서 사용하거나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비밀정보의 범위’와 ‘비밀의 표시 방법’이 명시되어야 합니다. 정보는 여러 가지 형식(서면, 이메일, 파일, 대화, 전화 통화, 물건, 장비 등)으로 제공될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면, 데이터, 공식, 프로그램, 가격표, 거래 명세서, 생산 단가, 아이디어 등)도 무척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구체적으로 한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형식과 내용을 불문하고 상대방에게 제공되는 일체의 정보를 비밀정보에 포함시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비밀정보의 범위가 너무 확대되면 정보 수령자의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기 때문에, 서면이나 이메일, 물품 등으로 비밀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비밀임을 알리는 문구를 명확히 표시하도록 하고, 구두나 영상 등으로 정보를 제공할 경우에는 해당 정보가 비밀정보에 속한다는 사실을 미리 고지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NDA를 위반한 경우의 책임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NDA를 위반하여 비밀정보를 유출한 경우, 당연히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비밀정보의 유출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출시 예정 게임의 아트 컨셉을 제공받은 상대방이 자신의 게임 개발에 이를 사용했다면 과연 얼마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봐야 할까요? 기획 중인 게임의 세계관이나 캐릭터가 관리 소홀로 인터넷에 무단으로 게시되었다면요?
이와 같은 경우 정보제공자가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는 명확하지만, 손해액을 산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처럼 손해액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위약벌을 정해두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데, ‘위약벌’이란 채무자가 계약을 위반했을 때 손해배상액과는 별도로, 채무 불이행에 대한 벌칙으로 채권자가 몰수할 수 있도록 약정한 금원을 의미합니다.
위약벌은 손해액의 크기와 관계없이 채무불이행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제재이므로, 손해액을 입증할 필요 없이 약정된 금액을 청구할 수 있으며, 손해배상액과 함께 청구될 수도 있습니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적당히 감액할 수 있지만, 고액의 손해배상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대방이 비밀정보를 신중하게 관리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전문가의 도움 없이 NDA를 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중소기업벤처부에서 제공하는 표준 비밀유지계약서를 상황에 맞게 수정해서 사용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핵심 내용 간단 정리
- NDA는 본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상대방에게 비밀정보를 제공해야만 하는 당사자에게 필요한 계약이다.
- NDA를 체결할 때는 비밀정보의 제공 목적과 목적 외 사용의 금지, 비밀정보의 범위, NDA를 위반한 경우의 손해배상에 대해서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지 확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