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개로 진행된 지난달 24일 게임업계 간담회에서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주 52시간 근로제 유연화, 제작비 세액공제, 게임 질병코드 문제 등 핵심 현안과 무너지고 있는 중소·인디게임 생태계 복원에 대한 업계의 건의를 청취했다.
최휘영 장관 "게임은 21세기 문화 핵심…잘못된 프레임 막겠다"
주춤해진 성장세 속, 현실적 위기 공감하며 정부의 숙제 강조

최 장관은 간담회에서 "과거에는 내년에도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지만, 다시 돌아와 보니 그동안 이뤄낸 성취들이 엄청나게 많아 큰 자부심과 뿌듯함을 느낀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 장관은 최근 게임업계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최근 주춤해진 성장세와 과거 우리가 가르쳐주던 중국이 이제 위협이 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이 된다"며 "특히 AI 전환이라는 거대한 기회를 앞두고 정부가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빨리 점검하고 해야 할 일을 찾는 것이 저의 숙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 장관은 게임 산업의 체계적인 지원을 위한 두 개의 핵심 소통 창구를 공개했다. 그는 "대통령 직속으로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저와 가수 박진영 씨가 공동 위원장을 맡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위원회 안에 핵심 분과로 게임 분과가 있으며, 글로벌 시장 확장을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서 다른 나라와 교섭하는 등 서포트하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10월 중 구성될 문체부 내 '문화예술정책자문위원회'에도 게임 분과를 만들어 산업 진흥 차원의 고민을 하겠다"며 "글로벌 진출과 산업 진흥이라는 두 개의 축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원활하게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 질병코드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최 장관은 "장관이 된 지 얼마 안 돼 상임위원회에서 질병코드 관련 질문을 받았을 때, '기본적으로 20세기에 영화가 있었다면 21세기는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답했다"며 "여기에 질병이니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시각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못 박았다.
그는 "대통령님 역시 게임 산업이 더 크게 성장해야 한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며 "이상한 논리나 프레임이 우리 쪽으로 씌워지려 하면 제가 잘 막을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최 장관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근로 형태 문제나 마케팅 자금 문제 등 요소요소의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극복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에 의해 고꾸라지는 일은 이제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는 추격자가 아닌 게임 강국을 지향하는 리더"라며 "지금 K-컬처의 핵심인 게임 산업이 다시 그 위용을 되찾고 멋진 모습으로 나아가는 데 저와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겠다. 오늘을 시작으로 같이 뛰어보자"고 당부하며 발언을 마쳤다.
"中은 996인데 韓은 규제 묶여"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뒤처지는 '개발 속도전'

주요 게임사 대표들은 중국의 무서운 성장 속도와 불공정한 경쟁 환경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대표는 "중국 개발사는 '오전 9시 출근, 오후 9시 퇴근, 주 6일 근무'를 뜻하는 '996' 문화로 1년 반 걸릴 모바일 게임 이식 작업을 4개월 만에 끝낸다고 한다"며 "사실상 경쟁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토로했다.
김병규 넷마블 대표는 "중국 개발사는 우리보다 낮은 임금으로 한 달에 1인당 100시간을 더 투입한다"며 "이미 중국 게임사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30% 중반까지 상승했으며, 50% 밑으로 떨어지는 순간 업계 전반의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과거 한한령으로 중국 내자판호 발급이 막히자 중국 기업들은 오히려 강제로 해외 수출에 나서며 글로벌 경쟁력을 키웠다"며 "그 사이 우리는 내수 시장에 머물며 경쟁력을 잃었다"고 진단했다.
규제 역차별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박병무 대표는 "중국은 판호로 시장을 보호하는데 우리는 아무런 장벽이 없고, 확률형 아이템 등 국내사는 강한 규제를 받지만 중국 게임은 사각지대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그는 해외 게임사의 국내 진입 시 자본금이나 예치금 요건을 강화하는 '국내 대리인 제도' 개선을 통해 공정한 경쟁 환경(레벨 플레잉 필드)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성준호 스마일게이트 대표 역시 "국내 기업은 등급분류, 청소년 보호 등 모든 법을 준수하지만 해외 플랫폼은 등급표시, 청소년 보호조치,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 등을 지키지 않고 서비스를 하고 있어 역차별이 발생하고 있다" 며 "이용자 보호 장치가 실효성 있게 작동하도록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의성 저해하는 경직된 노동 환경"
성과 기반 동기부여 위한 '주 52시간제' 유연화 촉구

경직된 주 52시간 근로제는 중국과의 '속도전'에서 뒤처지는 핵심 원인으로 꼽혔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대표는 "제도를 완전히 배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개발 막바지 집중이 필요한 3~4개월만이라도 예외를 적용하는 등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핵심은 노동시간 연장이 아닌 '노동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과'에 동기를 부여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며 "현재 제도는 창의성이 중요한 콘텐츠 IT 업계의 특성과 맞지 않다"고 말했다.
김병규 넷마블 대표는 "근로를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바라보는 전통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더 큰 보상을 위해 스스로 몰입하는 행위를 강제 노동으로 보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조영기 한국게임산업협회 회장은 구체적인 대안으로 방송 PD에게 적용되는 '재량근로제'를 게임 업계로 확대하고, '탄력근로제'의 단위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도체처럼 국가 전략 산업으로 키워야"
투자 절벽·인력난 해소 위한 전방위 지원책 호소

업계는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게임을 국가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준호 스마일게이트 대표는 "반도체처럼 대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고 그 성과가 중소·인디게임사로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며 "콘텐츠, 특히 게임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투자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VC 투자가 급감했는데 영화와 달리 게임은 전용 모태펀드 계정조차 없다"며 게임 특화 펀드 조성을 촉구했다. 조영기 회장 역시 "코로나 이후 어려워진 중소·인디 생태계의 선순환을 위해 펀드 조성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제작비 세액공제도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김창한 대표는 "영화 제작은 세제 혜택이 있지만 게임 제작은 없다"고 지적했고, 조영기 회장은 "최근 국회에서도 관련 논의가 시작된 만큼 주무 부처인 문체부가 적극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핵심 인력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조영기 회장은 "AI 인력에 대한 병역특례 논의가 활발한데, 수년간 AI에 투자해온 게임 업계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병무 엔씨소프트 대표는 AI 개발의 핵심인 GPU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정부의 인프라 지원 확대를 건의했다.
"수출 효자인데 K-컬처엔 게임이 없다"
질병코드 등 부정적 프레임 벗고 위상 제고해야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하고 K-컬처의 핵심 축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도 당부했다.
김정욱 넥슨 대표는 "수출의 상당 부분을 게임이 차지함에도 K-컬처 하면 K팝, 드라마만 떠올린다"며 "이제 한국 게임도 질적으로 성장한 만큼, 문체부가 게임을 K-컬처의 중심에 세우는 작업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성공한 대기업뿐 아니라 아이디어가 좋은 작은 회사들의 해외 진출을 위한 방안이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과거 총리실 산하 민관 협의체에서 게임 과몰입 문제를 논의했던 경험을 언급하며, 당시 문체부 관계자들이 게임사보다 더 적극적으로 업계를 변호해준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김창한 크래프톤 대표는 e스포츠를 긍정적 인식 확산의 도구로 제시하며 "페이커 같은 스타 선수는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다"며 "정부가 태권도처럼 e스포츠 종목 육성과 선수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병규 넷마블 대표는 '게임이용장애(질병코드)' 명칭에 대해 "병의 원인이 게임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비판하며 "과몰입 현상의 원인에 대한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휘영 장관은 마무리 발언에서 "오늘 나온 이야기들을 모두 정책 과제로 분리해 추진 방안을 정리하겠다"며 "신설되는 게임 분과를 통해 속도감 있게 처리해 답답함이 쌓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