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부터 명품 무접점 키보드의 대명사를 이어오던 토프레 사의 '리얼포스' 키보드 신제품이 출시될 예정이다. 이번 R4 모델은 2021년 R3 모델을 선보인 이후 4년 만에 출시되는 제품이다.

▲ 일본 현지 기준 10월 15일 출시 예정인 '리얼포스 R4'

리얼포스는 2010년부터 국내 키보드 매니아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다가 R2 출시 직후 2010년 말부터 일반인들 사이에서까지 급속도로 인기를 끌었던 고가의 키보드다. 기계식 키보드가 주류였던 시장에서 무접점 방식이라는 독보적인 타건감과 타건음이 특징이었으며, 당시 20만 원 대의 키보드라는 비상식적인 가격 또한 돋보였다.

타건감이 정말 가벼운 30g, 어 약간 무겁네 싶은 타이밍에 항상 눌려 자판 치는 재미를 살린 45g, 파워 타건러도 오래 쓰면 무겁다고 느껴지는 55g까지. 여기에 손가락 자판 별로 입력압이 다른 차등 모델과 무엇보다 일반 모델, 무소음 모델까지 나누어져 있어 선택하는 재미 또한 있었다. 물론 원하는 색상까지 구하기 위해서는 해외 직구가 불가피해서 프리미엄에 배송비까지 고려하면 최종 가격이 거진 두 배 수준이었다.

나 또한 특정 모델에 꽂혀 집과 사무실에서 두 대를, 그리고 집에 고이 모셔둔 다른 모델이 또 하나까지 리얼포스 키보드만 3대가 있을 정도로 리얼포스를 좋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3는 그냥 이미지로만 보고 더 궁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일반 모델 없이 저소음 모델만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젠 리얼포스만의 독보적인 무언가를 얘기하기엔 특징이 흐려진 키보드 시장에서 웃돈을 줄 이유가 전혀 없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바야흐로, 아니 이제 한참 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커스텀 키보드 시장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 더 이상 붙일 과일 이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아진 이름 모를 스위치들, 합리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품질 좋은 키보드 하우징까지. 정말 욕심부릴 것이 아니라면 리얼포스 반값, 아니 특가를 잘 타면 1/3의 가격으로 내 취향에 딱 맞는 요소들만 쏙쏙 담긴 커스텀 키보드를 구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까.

고가의 키보드 시장은 또 어떤가. 빠른 응답속도를 필두로 한 매크로 기능은 물론, 숙련자의 인게임 테크닉을 손쉽게 구현해낼 수 있는 물리적인 환경을 제공하는 게이밍 키보드도 있다. 대표적으로 마그네틱 축을 기반으로 한 래피드 트리거 기능을 지원하는 게이밍 키보드들이 그렇다. 이것들은 제아무리 가격이 높다 한들, 이 기능 맛을 본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구입하게 된다.

▲ R3의 출시는 사실 키보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아닌 이상 잘 모를 것 같기도 하다

▲ R3와 동일하게 블랙과 화이트 색상으로 출시된

2010년 말부터 2020년까지, 리얼포스 R2의 특징은 뚜렷했다. 레트로한 디자인, 빌드나 퀄리티는 구리지만 재질 하나만으로 만족스러웠던 키캡, 기계식 키보드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아날로그적인 타건감과 타건음까지.

하지만 2025년은 조금 다르다. 내 입맛대로 고를 수 있는 커스텀 키보드 시장은 선택할 수 있는 요소들의 폭이 더욱 범위가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가격 또한 합리적으로 내려왔다. 게이밍 키보드 시장은 게임을 정말 잘 하고 싶은, 더 편하게 하고 싶은 게이머를 위한 기능들로 무장되어 그 편의성을 입증해 내고 있다. 리얼포스만이 2017년에도, 2021년에도 그리고 2025년에도 그 감성 값을 요구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짙다.

그래도 2025년답게 좀 독특한 기능이 추가됐는데, 글쎄. 키보드를 사용하지 않을 때 절전화하여 손이 가까워지면 자동으로 켜지는 에코인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한다. 또 하나, 키보드의 키 조작을 통해 마우스 커서의 이동이나 클릭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게 30만 원은 족히 넘는 키보드를 살 합당한 이유는 아니지 싶다.

너무 안 좋은 얘기만 해서 리얼포스 키보드 팬들에겐 미안하지만, 나 또한 과몰입 팬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어느 날 마음이 바뀌고 지갑 사정이 괜찮아져서 이번 R4는 한 대쯤 들여봐야겠다는 생각에 리뷰로 찾아올지도 모르지만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제품 소식에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씁쓸한 일인 것 같다.

리얼포스 R4는 10월 15일에 일본에서 출시될 예정이며, 가격은 약 35만 원~38만 원이 될 예정이다. 글로벌 출시 및 국내 출시는 미정인 상태이며, 2021년에 등장한 R3의 경우 10월 31일에 생산이 종료될 예정이라고 한다.

▲ 의외로 압도적인 제품 퀄리티로 무장했을 지도? 물론 토프레가 그럴 일은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