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크리에이티브의 신작,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가 지난 22일 출시됐습니다. 지난 7년 동안 2D 퀄리티로 정평이 난 '에픽세븐' 개발진이 야심차게 내놓은 신작인 만큼, 출시 전부터 관심이 지대했죠. 몇몇 아트 리소스의 미흡한 부분이나 스토리의 결이 '절망'을 키워드로 내세웠던 것과 좀 달랐다는 점 등 여러 이슈가 언급되긴 했지만, 이 역시도 사람들의 관심이 끌렸다는 증거로 볼 수 있었죠. 관심이 없다면, 아예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는 게 서브컬쳐 게임계이기 때문입니다.

어쨌거나 지난 CBT에서 게임플레이 하나만큼은 꽤나 기억에 남았고, 개발진이 어쨌든 대처를 하겠다는 영상이 전작에 비해서 빨리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정식 출시 때는 장점은 살리고 단점을 보완해서 '에픽세븐'에 이어 연타석으로 흥행을 이어갈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죠.


빠르고 간단하게 코어를 살린 덱빌딩식 플레이



아마 '카오스 제로 나이트메어'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슈를 먼저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그 부분은 좀 마음을 가다듬으면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성의 역린을 건드린 만큼 조심스럽게 풀어나가야 하니까요. 실드 치는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정반대입니다. 에픽세븐 1주년 유저 행사에 기자가 아닌 유저로서 초청될 무렵에 느꼈던 정도의 실망감이 '카제나'의 스토리 그리고 캐릭터 어필 방법을 보고 고스란히 느꼈거든요. 다만 그때 제출했던 글처럼 썼다간 지면에 나갈 수 없으니, 정제해야만 했죠.

그런 수고를 보이면서 아쉬움을 표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카제나'의 게임플레이는 상당히 잘 짜여있었으니까요. 이미 CBT 때에도 지금 언급되는 이슈들의 잔향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정식 출시 때는 좋아질 거라 희망회로를 돌린 게 '카제나'가 심플하게 다듬어낸 로그라이크 덱빌딩식 플레이 때문이었습니다.

'카제나'는 제목에 있듯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인 '카오스'를 탐사하는 요원들의 고군분투를 로그라이크 덱빌딩으로 그려낸 게임입니다. 여타 수집형 RPG처럼 고정된 스킬세트를 쿨타임에 맞춰 돌리는 게 아니라, 턴마다 주어지는 손패와 전황 그리고 캐릭터의 특성과 조합에 따라서 코스트에 맞춰 패를 내고 대처하는 것이 주된 플레이죠.

▲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혼돈인 카오스로 진입

▲ 때론 이런저런 물품을 상점에서도 구할 수 있지만

▲ 이런저런 과정을 겪으면서 얻은 아이템과 카드 그리고 각 캐릭터 덱의 특성을 살려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카제나'는 이미 시연으로 먼저 공개된 것처럼, 뭐가 나올지 모르는 말 그대로 혼돈 그 자체인 '카오스'를 탐사하는 요원들의 고군분투를 로그라이크 덱빌딩 형태로 그려낸 게임입니다. 고정된 스킬을 쿨타임에 맞춰서 돌리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전황과 손패 그리고 캐릭터의 특성과 조합에 따라서 패를 내는 식이죠. 그걸 단순히 주고 받는 형태가 아니라, 각종 카드의 효과를 파악하면서 캐릭터별로 빌드업을 한 뒤, 한 번에 쏟아내는 카타르시스가 이 장르의 핵심 재미 중 하나죠.

이런 코어를 '카제나'는 초반부터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아울러 초반 엔트리인 4성 캐릭터도 특유의 개성을 확보, 빌드를 깎아가는 재미를 어필했죠. 치료와 행동력 회복에 특화된 '미카', 고통 스택을 쌓아서 지속 피해를 입히거나 일정 스택 이상일 때 추가타로 폭딜을 넣는 '트리사'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단순 카드 운영만 해도 스택을 어느 정도 쌓거나,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리게 만들었거든요.

보존, 소멸 등 각 키워드를 살피고 이리저리 상태창을 보며 전략을 짠 뒤, 그에 맞춰 카드를 내서 적을 딱 맞춰잡는 카드 게임 특유의 묘미가 덱이 미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도 느껴졌습니다. 그 이후에 캐릭터 풀이 좀 더 갖춰진 뒤에는 각자 핵심 키워드가 다 달라서, 그 키워드에 맞춰서 카드 운영을 하고 여기에 맞는 조합을 짜는 맛도 있었죠.

▲ 초반 엔트리 캐릭터인 트리사부터 고통 스택을 쌓은 뒤 특수 효과 발동, 폭딜을 넣는 콤보의 정석을 보여준다

이후에 본격적으로 로그라이크 덱빌딩으로 진입하는 '카오스 탐사'에서는 그런 묘미가 한층 더 확장됐습니다. 아무래도 장르 자체가 어느 정도 구간이 확보되어야 덱빌딩의 폭이 넓어지는데, 그만큼의 분량을 간소화해서 풀어낸 게 '카오스 탐사'였기 때문이죠.

여기에 긴장감을 주기 위한 포인트인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도 나름의 킥이었습니다. 한 캐릭터의 스트레스 수치가 극도로 쌓이면 트라우마가 발현, 붕괴 상태에 빠지고, HP도 그 캐릭터 분량만큼 차감되죠. 그래서 '스트레스'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트라우마' 상태가 되면 트라우마 카드가 핸드에 잡히는데, 그걸 재빠르게 처리하지 않으면 전투에 지장이 생기는 건 물론, 그 상태를 해소하지 않고 가면 이후에도 정신이상이 남아버리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정식 출시 버전에서는 트라우마 카드를 처리할 때에도 종종 랜덤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때로는 트라우마 카드 한 장만 처리했는데 갑자기 각성해 버리거나, 반대로 아군의 뒤통수를 치기도 하죠. 그렇게 살짝 변주한 것 외에도, 원래 트라우마 카드를 빠르게 처리하면 에고 스킬 코스트가 줄어들어서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만큼 카타르시스와 도파민 주입 부문은 나름 충실한 편입니다.

▲ 스트레스 과다로 인해 붕괴 발생 비상 비상

▲ 보통 트라우마 카드 여러 장을 내야만 풀리는데 낮은 확률로 한 방에 풀릴 때의 쾌감이란

여기에 에고 스킬 포인트는 에고 스킬 외에도 요원들이 장비한 파트너의 스킬에도 활용,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파트너 스킬은 대체로 에고 스킬보다 코스트가 낮고, 낮은 등급의 파트너 스킬은 범용성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부담 없이 사용하도록 디자인한 것도 인상 깊었죠.

이런 확정적인 요소 외에도 턴이 시작될 때 낮은 확률로 일부 카드에는 '번뜩임'이 부가됩니다. 그 번뜩이는 카드를 사용하면 특수 카드를 획득하거나 혹은 그 카드에 3개의 강화 효과 중 하나를 골라서 적용할 수 있죠. 그 효과는 스토리 혹은 로그라이크 콘텐츠인 '카오스'를 도는 동안 유지되고, 종료 후에는 그게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외에도 로그라이크 중간에 획득한 장비나 카드는 세이브 데이터로 남는 만큼, 더 좋은 세팅을 위해서 빙빙 돌면서 각 캐릭터마다 최적화 세팅을 고민하는 재미가 있었죠.

▲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 더 효율적인 세팅을 만들어가는 맛은 확실하다


검증된 루틴, 숙제 부담을 줄이는 구성



'로그라이크'라는 말이 모바일 게임에 나올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플레이타임입니다. 그도 그럴 게, 수집형 RPG에서 로그라이크가 붙은 콘텐츠들은 죄다 플레이타임이 길기 때문이죠. 장르 자체가 전투 - 종료 후 선택 - 경로 선택 - 진입의 시퀀스를 몇 차례나 거쳐야 하니, 이는 피해갈 수 없는 숙제이기도 합니다.

초반에 할 게 없을 때는 플레이타임이 긴 것만큼 반가운 게 없겠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뒤부터는 번거로움이 더 커집니다. 자연히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책이 필요해지죠. '카제나'는 이 로그라이크 덱빌딩의 기본기에, 모바일 수집형 RPG의 기본 루틴을 더하는 식으로 해소했습니다. 카오스 탐사로 얻어낸 덱을 세이브 데이터로 저장, 그걸 장비해서 턴제 웨이브식으로 플레이하는 전개를 채택했죠.

▲ 3장 이후부터는 카오스가 외곽과 중심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어 한 판당 타임이 꽤 길다

▲ 그래서 상황을 저장할 수 있는 웨이포인트도 마련됐다

일종의 일일 던전인 '시뮬레이션'은 각종 성장 재화나 파트너, 잠재력 등 수집형 RPG의 캐릭터 육성을 위한 기본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스킵은 없지만 행동력을 한 번에 여러 차례 중첩 사용해서 보상을 한꺼번에 받는 식으로 번거로움을 줄이는 식으로 구현했죠. 심지어 일일 퀘스트는 행동력을 쓰지 않고도 스토리만 한두 번 밀어서 몬스터를 처치하면 끝날 만큼 달성 조건이 널널한 편입니다.

그렇게 숙제를 최소화하면서 '카오스'를 돌며 파고들기 하는 것에 좀 더 주력했습니다. 클리어하지 못해도 달성도 점수를 주고, 그 점수가 일정 수치를 돌파할 때마다 새로운 조건이나 특혜 혹은 몬스터가 개방되면서 덱을 더 다양하게 세팅할 재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보상은 수령 횟수 제한이 있어도, 세이브 데이터나 달성도는 제약이 없어서 원하는 만큼 돌 수 있었죠.

정식 출시 때는 한층 더 보완된 모습이었습니다. 보상 수령 횟수가 다 끝나도 행동력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죠. 그리고 보스 클리어 후에 전설급 이상 장비를 확정적으로 드롭, 운이 안 좋아도 최소한의 덱은 갖출 수 있는 여건은 보장해 박탈감을 줄였습니다.


▲ 클리어 실패해도 탐사 기록 점수를 받아서 여러 요소를 해금할 수 있고

▲ 일일퀘는 달성 조건을 다양하게 분배, 부담을 낮췄다


초반의 강렬한 임팩트와 핀트가 엇갈리는 전개의 불균형



그렇게 게임플레이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카제나'는 준수한 편입니다. 로그라이크 덱빌딩 패키지 게임과 비교가 나오고 있긴 한데, 매일 접속해서 해야 할 가벼운 루틴까지 고려해봤을 때 '카제나'의 설계 자체는 하자가 크진 않죠. 행동력 소모에 비해 들어오는 재화가 적은 것은 나중에라도 뭔가를 추가해서 보완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카제나'가 서브컬쳐 게임이 피해가야 할 역린을 건드렸다는 겁니다. 잠깐 숨고르기 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 나온 6요소를 얘기해보죠. 창작 관련해서 공부했다면 누구나 한 번쯤은 짚고 보고 가는 교과서인데, 여기에는 플롯, 성격, 언어 표현, 사고력, 시각적 장치, 노래가 언급되어 있습니다. 2천 년도 훨씬 전에 나온 이론이라 현대 작품에 100% 완벽하게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도 쭉 배울 만큼 참고할 부분이 많다는 건 확실하죠.

그 이론을 살펴보면 서브컬쳐 게임에서도 맥이 와닿은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서브컬쳐 작품은 예쁜 일러스트만으로 끝나지 않거든요. 그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한 '스토리'에 접점이 되어주는 특성과 성격, 그리고 그것이 전개되는 '세계관'이 뒷받침이 되어야 합니다. '카제나'가 본격적으로 출시 준비를 할 당시에 기대를 모았던 것도 여기에 있습니다. 나름의 준수한 외형의 캐릭터에 유니크하게 딥다크한 세계관과 그 세계관에 걸맞는 이야기가 연상되는 키워드, 그에 맞춰 준비한 여러 리소스들에 힘입어 유저들이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죠.


▲ 이렇게 임팩트를 줬던 만큼, 이후 전개가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작 '카제나'는 가면 갈수록 유저들이 기대한 문법과는 완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코스믹 호러가 아닌 부분은 이미 개발자 코멘터리를 통해 언급했으니 차치하더라도,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그간의 서브컬쳐 문법과 판이하게 다릅니다.

요즘 서브컬쳐 유저들은 현생 말고도 지휘관, 선생님, 여행자, 방랑자 등등 다양한 직업이 있다는 농담처럼, 대부분 서브컬쳐 게임들은 어느 캐릭터가 아닌 특정 직업의 아바타를 내세웁니다. 유저가 직접 캐릭터와 상호작용하면서 서로 호감을 쌓아가는 그 과정이 '서브컬쳐'에서 기대하는 경험이니까요. 그 아바타의 외형을 설정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세계에서 마주하게 될 캐릭터와 차근차근 연을 이어가면서 몰입하는 것이 최근 서브컬쳐 수집형 게임의 기본적인 공식입니다.

그러나 '카제나'에서 유저의 분신, '함장'은 그 기대에서 벗어나버렸습니다. 대신 그 스포트라이트를 또다른 캐릭터 '오웬'으로 쏠려버렸죠. 그러면서 주인공에 몰입해서 보는 그간의 독법이 깨져버립니다. 심지어 주인공에 대한 존중도 없죠. 형식상 함장이라고 불러주고 1장 말미에 레노아가 좀 걱정해주는 듯한 무브를 보여주긴 하는데, 4장에서 오웬이 고서에 조종당하는 바람에 그걸 막다가 배를 찔린 상황에서도 오웬을 더 걱정해주는 그런 식으로 끝이 나버립니다.




▲ 캐릭터들을 이끌어 갈 유저의 분신 '함장'이 없어도 이야기가 전개될 듯한 뉘앙스가 쭉 이어진다

아마 이거를 두고서 캐릭터에게 질투하는 거냐 생각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스토리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제각각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이 부분은 서브컬쳐 장르가 중시하는 감성과 어긋난 부분이라 논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전에, 왜 서브컬쳐 게임들이 초기에 그렇게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재를 채택했을지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저와 캐릭터가 각자 지휘를 하고 지휘를 받는 입장에서 사선을 같이 넘으면서 친분을 쌓는다는 라포르를 형성하기 가장 좋은 게 포스트 아포칼립스거든요. 그것이 애정으로 이어지면서 쭉 나아가는 것이 '서브컬쳐' 게임의 정석적인 방향이죠. 그리고 이것은 유저가 일방적으로 외모만 보고 애정을 주는 게 아니고, 캐릭터도 유저에 대한 호감을 표해야만 비로소 굳건하게 다져지는 것이죠.

실제로 함장은 레노아를 걱정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고 캐릭터들도 그런 함장의 결정에 동의하며 결의에 찬 모습을 보여주더니, 함장이 다친 순간에는 캐릭터들이 그만한 리턴도 없습니다. 일방적인 관계처럼 느낄 수밖에 없는 거죠. 그 스포트라이트는 또 오웬으로 가버리니, 오히려 더 소외감을 느껴서 라포르가 깨져버립니다. 함장과 캐릭터들의 유대감과 신뢰로 난관을 극복하는 그런 구도가 흔들리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메인스토리에서 먼저 풀어나갔어야 할 제국의 실험 떡밥 같은 것도 레노아가 주축인 캐릭터 스토리, 트라우마 코드로 풀었는데 이게 풀린 시점도 많이 애매합니다. 솔직히 2장에서 베릴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천방지축으로 설쳐서 유저들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2장 초반에 레노아가 복귀해서 치료를 받는 과정이라고 말하면서 레노아의 트라우마 코드로 먼저 풀었다면 그런 비판은 좀 피해갔을지도 모릅니다. 어째서 베릴이 나이트메어호와 엮였는지, 또 베릴이 그냥 단순히 천방지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긴 하거든요.



▲ 캐릭터의 과거 이야기를 다룬 '트라우마 코드'가 좀 더 일찍 풀렸다면 그나마 떡밥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을지도

그외에도 여러 의문이 풀릴 실마리도 나오는데, 그게 제시되는 시점이 너무 늦어버린 탓에 온갖 떡밥에 묻혀버립니다. 스토리 구조가 이미 제3의 인물에 의해서 구원받는 레퍼토리가 겹쳐져서 주인공 일행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꺾인 뒤에 이 모든 설정들이 풀려버리거든요. 사실 이 트라우마 코드도 마지막 히든 엔딩에 가서 또다시 오웬과 일행이 등장하는 식으로 끝나버리니 그런 평가도 퇴색되겠지만, 적어도 좀 더 빨리 나왔다면 이야기가 훨씬 더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히지 않을까 아쉬움이 남습니다.



▲ 선택에 따라 다양한 엔딩을 접할 수 있는 시도는 좋았지만, 내러티브 방식과 시점이 엉켜버렸다


갖출 건 다 있지만 접근성이 낮아진 신뢰도 콘텐츠



스토리에 대한 평가는 개인차가 있기도 하니, 그 절대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불문율을 깼다면, 이를 엎어버릴 수 있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게임플레이든, 일러스트든, '파격'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먼저 유저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포인트가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애석하게도 '카제나'의 게임플레이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물론 스토리를 그냥 넘어가고 게임플레이에만 집중해서 하자면 나쁠 건 없겠지만, 그 길로 가는 것마저도 막아둔 게 또 하나의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3배속만 지원하고 스킵은 없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스킵이 없는 건 아닌데, 처음 스토리를 볼 때 스킵이 비활성화 되어있으니 없는 거나 다름없죠. 아마도 멀티엔딩인 '트라우마 코드'를 감안해서 그렇게 설계한 것 같은데, 정작 트라우마 코드는 선택지로 바로 가는 '이어가기'가 진입하기 전에 미리 있어서 애매해졌죠.

창작자 입장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걸 그냥 지나치지 말고 봐주길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 그래서 스킵이 꼭 필요한지 아닌지는 창작자의 재량이고 게임 평가의 절대적인 영역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부록 같은 거죠. 다만 CBT 당시에도 스토리에 대한 평이 좋지 못했는데 피드백 없이 넘어갈 거였다면 빠르게 지나갈 수 있게끔 임시조치라도 하는 게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걸로 본질적인 처방은 안 되지만, 한동안의 에픽세븐처럼 그냥 플레이에만 좀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카제나'가 그렇다고 서브컬쳐 게임의 구색을 안 갖춘 건 아닙니다. 외출, 선물하기로 신뢰도 올리기 등 기본적인 사양은 갖췄으니까요. 그렇지만 대부분이 주인공이 부재해도 대체되지 않을까? 그런 의심이 들어버린 순간 의미를 잃어버린다는 게 치명적입니다.



▲ 선물하기, 외출 등 콘텐츠는 갖췄지만 해금 조건이나 선물 구하기가 비교적 까다롭고

▲ 캐릭터의 과거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트라우마 코드'도 극히 제한된 재화로만 해금할 수 있다

당장 외출 같은 부분은 유저들과 캐릭터가 1:1로 대면하는 건데, 메인스토리에서 유저의 비중이 낮아진 상황에서 그게 몰입감이 생기기 어렵죠. 심지어 외출 티켓은 3회밖에 없고, 각 캐릭터 신뢰도 스토리는 레벨 10까지 열려야만 하는데 선물을 구하는 것도 굉장히 힘듭니다. 방주 들어가서 정책 짤 때마다 얻는 노노상점 티켓 등 극히 제한된 수단으로만 살 수 있으니까요. 그나마 붕괴 상태였던 캐릭터의 트라우마를 푸는 상담은 조금 신선하긴 하지만, 이마저도 외출 티켓 혹은 재화로 풀어야 하다 보니 유저들의 스트레스와 부담을 가증시키는 형태입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쭉 공을 들여가면서 신뢰도를 쌓으려면 기대치가 있어야 하는데, 그 기대치를 현재로서 과연 카제나가 제대로 충족시켜주는지 유저들이 현재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캐릭터와 상호작용할 여러 콘텐츠를 예고하기는 했는데, 이미 유저들이 반감이 생긴 상태에서 어떤 조치도 없이 넣으면 정말 파격적으로 좋은 퀄리티나 혹은 기발한 양식을 보여주지 않는 한 평가를 뒤집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잠재력은 입증한 '카제나', 빠른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그간 여러 다양한 게임을 리뷰했지만, '카제나'만큼 어려운 게임은 없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위치인 만큼 주관적인 감정은 최대한 절제해야 하니까요. 실제로 '카제나'가 서브컬쳐를 표방하지 않았다면, 말마따나 스토리 부분은 콘텐츠 제시 순서가 이상하고 유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방식으로 썼다고 짤막하게 언급하는 게 다였을 겁니다. 로그라이크 덱빌딩 게임 중 스토리를 전면적으로 어필한 게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게임도 있고 하니 그런 관점에서 평가했겠죠.

그렇지만 '카제나'는 서브컬쳐 게임인 만큼, 게임 전반이 '덕심'을 공략하기 위해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카제나'는 엇나가는 게 굉장히 많았습니다. 특히나 BM 같은 경우도 최근 대형 게임에서 나온 BM을 채택한 만큼, 그만한 경험을 기대할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죠. 이 부분도 주관적이긴 하겠지만, 객관적인 부분을 따져도 '카제나'에서는 좀 의문이 듭니다. 게임플레이 코어 자체는 좋지만 캐릭터와 호감도 및 꽁냥거릴 콘텐츠 자체가 적고, 그마저도 접근을 굉장히 제한해버렸으니까요. 소위 캐릭터 자체에 대한 '매몰'이 발생하기 어렵고 성능 위주로만 보게 되는 그런 구도로 흘러가고 있는 게 '카제나'의 현재 모습입니다.

심지어 게임플레이마저도 피로도가 상당히 높은데 자잘하게 불편한 것도 꽤 있어서, 나중에는 그마저도 지치게 될 확률이 꽤 큽니다. 로그라이크 전체 지도를 보고 그 창에서 바로 가지 못하는 것은 그렇다쳐도 카드의 각종 키워드나 효과의 세부 내용을 보기 어렵게 했다거나, 세이브 데이터 오염 수치에 따라서 카드가 없어지거나 삭제했던 카드가 돌아올 수 있다는 내용도 언급이 안 됐다거나 하는 등등 유저가 직접 체감하면서 부딪혀야 아는 부분도 많거든요.


▲ 세이브한 내용이 일부 없어지거나 오염될 수 있다는 설명이 없는데

▲ 세이브 가치가 낮은 구역에서는 일부 카드가 사라지기도 하는 기믹은 넣어놨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익숙해지면 괜찮다고 하지만, '카제나'는 그렇게 익숙해지기도 전에 여러 이슈들 때문에 불편함이 중첩되고 있는 상황이죠. 게다가 첫날부터 터진 서버 불안정 사태에 일부 계정 초기화 문제, 각종 텍스트 오표기 문제를 뒤늦게 공지하는 등 운영에서도 불만이 퍼지고 있기도 하죠.

사실 이런 발언은 객관적으로 리뷰를 써야 하는 입장에선 지양해야 할 문제지만, '카제나'만큼은 리뷰를 쓰면서 '덕심'에 응하기 위해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를 계속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그간 여러 서브컬쳐 게임을 접하고, 지금도 계속 여러 세계를 구하고 있는 입장에서 계속 기다려오던 게임이 허망하게 망하기를 바라진 않거든요.

'카제나'가 아마 잠재력이 정말 없는 게임이었다면, 지금 이렇게까지 불타진 않았을 겁니다. 그냥 그런 게임이었다면 이미 사그라들어서 묻혔을 테니까요. 오히려 지금 이 사태는, '카제나'가 그만큼 높은 잠재력을 지녔다는 반증 아닐까 싶습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느 타이밍에 비전을 제시하느냐에 따라, '카제나'의 잠재력이 온전히 발휘될지 아닐지가 결정되겠죠. 아직 출시 초인 만큼, 이 부분을 빠르게 수습해서 유저들이 안심하고 플레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