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밍OO'으로 분류되는 제품 중 가장 찬밥 신세였던 건 키보드다. 게이밍기어, 게이밍 주변기기 등 관련 제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키마헤, 각각 키보드, 마우스, 헤드셋을 두고 봤을 때 과거엔 헤마키 순으로, 근 최근까지는 마헤키 순으로, 지금은 마키헤 정도 되는 것 같다.

이는 게이밍 키보드의 특장점을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격은 어지간한 커스텀 키보드만큼 되면서도 일반 기계식 키보드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이러한 밋밋함은 자석 축이라고도 불리는 '마그네틱 축'의 도입을 시작으로 시장이 크게 주목받게 되었으며, 마그네틱 축의 상징과도 같은 '래피드트리거'와 같이 정말 게임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능들을 하나둘씩 접목시키며 게이밍기어 내에서의 입지가 두터워졌다.

다만, 저렴한 마그네틱 축 키보드가 우후죽순 등장하며 브랜드 게이밍기어들은 한 번 더 한계를 뛰어넘어야 되는 시기가 왔다. 자사의 게이밍 키보드를 왜 사용해야 하는지, 뭐 때문에 비싼 지 소비자로 하여금 납득시켜야 된다는 것. 이러한 도전에 게이밍 키보드로 많은 선택을 받고 있는 레이저(RAZER)에서는 8K의 초저지연속도를 자랑하는 '레이저 헌츠맨 V3 Pro 8KHz(이하 헌츠맨 V3 Pro 8KHz)'로 대답했다.

▲ 레이저에서는 다양한 사용자와 콘셉트에 따라 키보드 라인업을 선보이고 있다

▲ 이번에 소개하는 제품은 퍼포먼스 라인업의 '레이저 헌츠맨 V3 Pro 8KHz' 게이밍 키보드다


제품 정보
프로게이머용 게이밍 키보드



RAZER Huntsman V3 Pro 8KHz
구분: 유선 게이밍 키보드
배열: 풀배열 / 텐키리스
색상: 블랙 / 화이트 / 레이저 에디션(형광 녹색)
스위치: 레이저 아날로그 옵티컬 스위치 Gen-2
폴링레이트: 8KHz
세팅 가능한 입력 지점: 0.1~4.0mm
디지털 다이얼 및 버튼: 다이얼 + 3개/2개 버튼 지원(풀배열 3개, 텐키리스 2개)
기능 지원: 래피드트리거 / 레이저 스냅 탭
구성품: 키보드 본체 / 탈착 가능한 USB C-A 케이블 / 팜레스트
무게 및 사이즈: 258g / 168.8 x 113.4 x 65.1(mm)
가격: 풀배열 - 369,000원 / 텐키리스 - 339,000원 (2025.10.29, 레이저 공식 스토어 기준)

마그네틱축의 혜성 같은 등장에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에서 마그네틱 축을 채택하는 가운데, 레이저는 예전부터 계속해서 연구해온 광축(옵티컬) 스위치로 그 기능들을 지원하고 있다. 해당 라인업은 헌츠맨 키보드(Huntsman)로 이어오고 있으며, 근 2년 만에 출시되는 이번 제품은 대부분의 사양은 기존 헌츠맨 V3 Pro와 비슷하지만 몇 가지 다른 점이 눈에 띈다.

가장 먼저 제품 이름에 위치하고 있는 헌츠맨 V3 Pro 8KHz의 8K. 이전 제품의 폴링레이트가 1,000Hz였던 점을 감안하면 수치적으로 8배나 빠른 초저지연속도를 자랑한다. 레이저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0.58ms의 지연율로 시중에 나와있는 키보드 대비 11% 빠른 초저지연속도를 지원한다.

▲ 헌츠맨 V3 Pro 8KHz의 주요 기능

모양은 뭔가 그대로지만, 스위치도 살짝 개선됐다. 정밀도를 더욱 고도화했다. 이에 대한 근거자료로 0.1mm로 입력 지점 조절이 가능한 경쟁사의 키보드들과의 비교표를 제시했는데, 이게 참 재밌었다. 제공 정보와 다르게 0.1mm에 동작하지 않는 제품도 있었고, 일정한 구간을 잡지 못하고 입력 지점이 계속 튀는 제품들도 있었다. 레이저 측에서는 헌츠맨 V3 Pro 8KHz의 정밀도가 2.5배 더 좋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는 부연 설명을 덧댔다.

스위치의 기존 촉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유지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좀 더 고도화를 했다는 설명이다. 스위치 내부 핵심 부분에 추가 윤활을 적용했고, 무엇보다 사용자 입장에서 체감됐던 점은 하단 섀시에 두꺼운 폼을 추가하여 보다 안정적인 타건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레이저 측에 따르면 흡음재를 추가하면서 오작동을 유발하는 빛 반사 등을 방지할 수 있어 정밀도 측면에서도 개선됐다는 설명이다.

▲ 레이저 아날로그 옵티컬 스위치 Gen-2의 정보. 사양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지만 사용자 기준 개선됐다고 한다

소프트웨어적으로 개선된 점도 있다. 입력 지점과 리셋 지점을 동일하게 하여 손에 정말 살짝만 힘을 빼도 입력이 멈추는 래피드트리거를 비롯하여 레이저 헌츠맨에서는 '레이저 스냅 탭'이라는 기능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기능을 요약하면 두 개의 방향 키 중에 마지막 입력에 우선순위를 주는 기능이다. 대충 보면 무슨 얘긴지 모르겠지만, 좀 쉽게 풀어 설명하면 FPS 등의 게임에서 좌우 이동을 위해서 DA를 연타하기만 해도 알아서 브레이킹이 걸린다는 얘기다. 이전 헌츠맨 시리즈에서는 이렇게 유용한 레이저 스냅 탭을 한 쌍, 즉 DA에 배정하고 나면 다른 키에는 배정할 수 없었는데 이번 헌츠맨 V3 Pro 8KHz에서는 4쌍까지 지원한다.

그 외 알루미늄 탑 케이스, 거친 환경에서 따라오는 낡은 느낌이나 손자국을 최소화하고자 개선한 이중사출 PBT 키캡, 아주 살짝 두께감을 올리고 재질을 개선한 팜레스트까지. 담백하게 제품 DB로만 봤을 땐 8KHz 빼고는 큰 차이가 없었는데 하나씩 살펴보고, 무엇보다 직접 사용해 봤을 때 V4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시도와 노력이 돋보이는 제품이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포커 배열(60%)의 부재다. 레이저 측에 따르면 곧 출시할 것이 아니다의 수준이 아닌, 아직 계획이 없다는 부분. 개인적으로 포커 배열 키보드는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만,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글로벌 통계상 그렇게 많은 인기를 누리진 못하는 모양이다.

▲ 좌우 이동 키를 연타하는 것만으로도 FPS의 고급 기술, '브레이킹'을 할 수 있고 4개의 설정까지 저장 가능하다

▲ 제품명이 궁금해질 정도로 평균치가 좋지 못한 경쟁 제품들

▲ 윤활을 더욱 강화했으며, 흡음재를 보강했다고 한다


제품 사진
역시 키보드는 헌츠맨이지~


▲ 이젠 키보드 폴링레이트도 8KHz 초지연속도의 시대? '레이저 헌츠맨 V3 Pro 8KHz'

▲ 제품 박스 뒷면에서는 주요 기능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 헌츠맨 키보드... 정말 많이 사고팔았지. 너무 익숙한 언박싱

▲ 키보드와 팜레스트, 연결 케이블과 설명서, 스티커와 기능을 좀 더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설명서까지

▲ 헌츠맨의 매력은 언제나 제품을 사용하면서 느낄 수 있다


▲ 그냥 보면 조금은 평범한 게이밍 키보드

▲ 키보드의 전면

▲ USB 단자가 매립형으로 설계되어 보다 안정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 키보드의 뒷면. 모서리에 미끄럼 방지 패드가 꼼꼼하게 배치되어 있다

▲ 키보드 높이 조절은 2단까지 가능하다


▲ 기존 헌츠맨 V3 Pro 팜레스트 대비 아주 살짝 높아졌고 제품 소재를 변경했다고 한다



▲ 팜레스트는 마그네틱 형식으로 깔끔하게 부착된다


▲ 다이얼과 버튼 그리고 간단한 디스플레이 화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레이저 아날로그 옵티컬 스위치 Gen-2의 모습

▲ 스위치 모두 스태빌라이저를 탑재하고 있어, 각개로도 안정적인 타건감을 느낄 수 있다


▲ 제품을 켜면 LED가 반겨준다. 레이저 키보드 LED는 유독 더 눈에 잘 들어오고 화사한 느낌

▲ 다이얼에도 멋지게 LED가 들어오는 모습. 디스플레이에서도 현재 적용 중인 프로파일 설정을 확인할 수 있다



▲ 키보드 스위치를 누르는 거리가 화면에 나온다 (좌측부터 얕게, 중간, 깊게)

▲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는 만큼, 전용 소프트웨어인 '레이저 시냅스 4'를 이용하는 게 좋다

▲ 초기 세팅 값도 제법 세분화되어 있다. 초기 세팅 / FPS 래피드트리거 / WASD 특화 / 레이싱 / 높은 민감도

▲ 8KHz 폴링레이트를 설정할 수 있다

▲ 작동 지점과 함께 스냅 탭과 래피드트리거를 세팅할 수 있는 설정

▲ 게임에 따라 각기 다른 습관과 취향 등을 고려하여 원하는 대로 세팅할 수 있다

▲ LED의 패턴과 밝기를 설정할 수 있는 탭

▲ 세팅이 단색으로 되어 있어 무지개가 보고 싶어졌다

▲ 어느 날은 단색이, 또 어느 날은 형형색색이 좋을 때가 있다



마치며
8K를 느낄 만큼 금손은 아니지만 V3 Pro 대비 전체적인 사용감이 향상된 부분은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어느 게임에서 상위 랭커인 게 아니다 보니, 8KHz의 초저지연율에서 오는 이 키보드만의 메리트를 느낄 수는 없었다. 근데 또 그게 그리 중요한가. 뒷동산에 올라가도 히말라야 등반에 필요한 패딩을 입을 수 있는 것처럼 최첨단 게이밍기어가 필요한 그 누구에게는 어필될 수도, 혹은 정말로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는 거니까.

내가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은 기존 헌츠맨 V3 Pro 대비 만족스러워진 제품 퀄리티다. 개인적으로 레이저 키보드 라인업 중에 헌츠맨 시리즈를 정말 좋아하는데, V2를 사용하다가 약간은 속빈 느낌의 타건감으로 인해 금방 방출했던 기억이 있다. V3 Pro 또한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되어 빠르게 이별했다.

하지만 이번 헌츠맨 V3 Pro 8KHz는 정말 개선이 된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잘 눌리는듯하면서도 적당히 반발력도 있는, 특히 입력지점 세팅이 가능한 많은 키보드들을 만나왔는데 다른 제품들은 0.1mm과 2.0mm, 4.0mm 세팅 정도 해보고 "음, 다르군"이 느껴졌다면, 헌츠맨 V3 Pro 8KHz 만큼은 0.1mm 단위로 무언가가 다르게 느껴져서 새로웠다.

헌츠맨 V3 Pro 8KHz는 꼭 e스포츠 프로를 지향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헌츠맨 시리즈를 좋아했거나 여전히 이용하고 있는 팬에게 추천하고 싶은 제품이다. 또, '게임에 특화된 키보드'가 궁금한 게이머에게도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다. 조심스러운 이유는 역시 가격. 헌츠맨 가격이야 원래 좀 비싼 편이기도 하니까 팬들 입장에서는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게이밍 키보드 치고도 꽤 높은 가격임을 부정할 순 없기 때문이다.

▲ 조금은 공격적(?)으로 보이는 레이저 에디션 색상. 보다 보면 매력은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