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무기 뽑기 없음"


히어로게임즈(Hero Games)에서 서비스하고 판 스튜디오(Pan Studio)에서 개발한 서브컬처 게임 '듀엣 나이트 어비스(Duet Night Abyss)'가 내세운 셀링 포인트입니다. 단언컨대 최근 출시된 모든 게임 중 가장 파격적인 행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이죠.

평소 "이러면 개발사는 뭐가 남나요?"라는 식의 오지랖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번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경우는 내심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 게임이 대형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들과 비슷한 구조의 콘텐츠를 내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정작 핵심 BM은 빠진 채로 말입니다.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을 어느 정도 즐겨본 유저라면 알겠지만, 이 장르 게임들의 구조가 유사한 포맷으로 획일화된 지는 꽤 오래됐습니다. 비상식적일 정도로 빠른 콘텐츠 업데이트와 신규 캐릭터 추가를 기반으로, 이를 조명하는 고퀄리티 PV 영상이나 개발자 특별방송, 음악회나 애니메이션 등 게임 외적인 콘텐츠가 풍부하게 더해지는 구조입니다. 비슷한 기조의 게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최소 5개 이상은 언급할 수 있을 정도죠.

그리고 이런 포맷을 지닌 게임들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고가의 BM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도 너무 비싸다고는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입장은 아닙니다. 비싼 것은 맞지만 이들이 타 게임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요. 또 그렇게 나온 결과물은 팬 입장에서 대개 만족스러운 수준입니다. 다음 트럭 결제를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하죠.


▲ 듀엣 나이트 어비스, 레베카 PV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방향성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고퀄리티의 신규 캐릭터 PV 영상이 우후죽순 올라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공식 OST와 뮤직비디오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공한 대형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의 기조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죠.

그래서 내심 궁금해졌습니다.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캐릭터, 무기 뽑기 대신 어떤 방식을 채택했는지, 또 그것이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그만큼의 수익을 포기하고도 경쟁 게임들과 유사한 기조를 유지할 수 있는 이 게임만의 '킥'이 있는지, 본질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은 어떨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렇게 퍼주면 뭐가 남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발사가 강조한 '캐릭터, 무기 뽑기 없음'이라는 문구에는 어떠한 말장난이나 눈속임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모든 캐릭터와 무기를 인게임 플레이만으로 획득할 수 있었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캐릭터의 등급(ex. 4성, 5성)도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같은 캐릭터, 무기를 중첩해 올릴 수 있는 돌파 등급이 전부입니다.

캐릭터, 무기 획득 방식은 간단합니다. 활동을 통해 특정 재화를 획득하고, 그 재화를 이용해 내가 원하는 캐릭터 혹은 무기 등을 파밍 하는 방식이죠. "이 재화가 핵심 과금 요소가 아닐까?"라는 발칙한 생각도 잠깐 해 봤습니다만, 해당 재화는 일일 임무를 포함한 다수의 콘텐츠에서 충분히 제공되기 때문에 이 역시도 과금 유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 딸깍 한 번에 캐릭터 획득이라니.. 감동입니다

▲ 캐릭터의 등급도 구분이 없습니다. 내 마음에 들면 5성입니다.

캐릭터의 경우 획득에 30개의 조각이 필요하고, 임무 진행 시 10% 확률로 조각 10개를 제공하니 이론상 평균 30번의 파밍만으로 캐릭터 한 명을 획득할 수 있는 셈입니다. 물론 운이 좋다면 단 3번 만에도 가능하겠죠. 콘텐츠 소모 속도를 제한하는 이른바 '피로도'와 같은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재화와 시간만 충분하다면 무제한으로 파밍이 가능합니다.

무기는 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무료로 획득 가능한 건 캐릭터와 마찬가지지만, 무기는 캐릭터와 다르게 조각이 아닌 '설계도'가 제공됩니다. 설계도는 단 한 번만 획득하면 되지만 그에 맞는 재료를 별도로 파밍해야 하죠. 하나의 무기가 꽤 다양한 재료들을 요구하기에 처음에는 각 재료를 파밍 할 수 있는 위치를 파악하는 시간도 꽤 소요됩니다. 또한 무기 및 일부 재료는 '획득'이나 '교환'이 아닌 '제작'한다는 개념이기에 제작에 걸리는 시간도 염두해야 합니다.

▲ 의뢰 편지가 파밍 던전의 입장권 역할을 합니다

▲ 10% 확률로 캐릭터 획득에 필요한 조각 10개를 입수할 수 있죠

▲ 무기는 캐릭터에 비해 획득 조건이 더 까다로운 편 입니다

핵심 과금 요소는 크게 시간 절약형 상품과 코스튬 2가지로 분류됩니다.

시간 절약형 상품의 경우 앞서 설명한 캐릭터의 조각, 혹은 무기를 유료 재화로 대체 구매하는 방식입니다. 캐릭터를 오로지 파밍만으로 획득한다 하더라도 소요되는 시간이 합리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과금 유도로 느껴지는 장치는 아닙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유저들에게 대안으로 마련된 정도죠.

코스튬은 생각했던 것보다 다양한 옵션을 제공합니다. 광채(뽑기)를 통해 획득할 수 있는 특정 캐릭터의 기간 한정 코스튬부터, 무기, 등 장식, 얼굴 장식 등의 개별 파츠로 구분되어 있어 서브컬처 게임 중에는 커스터마이징 자유도가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합니다. 별도의 능력치가 제공되지도 않기 때문에 순수하게 애정의 영역이기도 하고요. 오픈 초기이다 보니 아직 많은 코스튬 아이템이 준비되어있지는 않지만 핵심 BM으로 자리 잡기에 충분한 잠재력이 느껴졌습니다.

▲ 부족한 캐릭터 조각을 구매하거나

▲ 무기를 완제품으로 구매하거나

▲ 의뢰(파밍) 보상을 늘려주는 '시간 절약형 상품' 위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코스튬도 귀엽습니다..

▲ 부위별로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게임은 흔치 않죠

▲ 한 의상을 여러 캐릭터가 공유할수도 있다는 사실

▲ 뽑기로만 획득할 수 있는 상품은 캐릭터 전용 코스튬(능력치 없음)만 존재합니다


이렇게 어두워도 되나 몰라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이야기는 주인공 '월석 사냥꾼'과 '꿈속의 인물' 두 명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메인 스토리의 초반은 월석 사냥꾼으로 진행하게 되고, 이야기가 진행되며 자연스럽게 꿈속의 인물의 시점으로 전환되죠. 제가 체험해 본 구간은 게임의 초반부라 월석 사냥꾼의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잠깐 등장한 꿈속의 인물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충분히 흥미롭습니다.

이 게임의 서사는 어둡습니다. 여타 서브컬처 게임들이 지향하는 밝고 명랑함과는 거리가 멀죠. 제가 최근 즐겨봤던 게임, PC 패키지 게임을 포함해서도 가장 어두운 축에 속합니다. 기득권층인 종족 '솔라'와 핍박과 차별을 받는 '카론', 그리고 그 갈등의 원인이 되는 '침식'등을 전면에 내세우며, 시작부터 암울하기 그지없는 도시 '아이스레이크 시티'의 모습을 조명합니다. 이는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만한 요소지만, 개인적으로는 '피폐물'에 가까운 자극적인 이야기가 취향인지라 퍽 만족스러웠습니다.

▲ 월석 사냥꾼과 꿈 속의 인물은 무슨 관계일까요?

▲ 시작부터 고난의 행군인 월석 사냥꾼의 여정

▲ 저는 주인공이라고요!!!

▲ 스포일러라 말할 순 없지만, 갈등의 중심에 있는 '프시케'의 이야기도 매력적입니다

메인 스토리 외에 서브 퀘스트 스토리나, NPC와의 대화 하나하나도 개발자들의 깊은 고민과 정성이 느껴지는 파트입니다. 단순히 아이템 몇 개 구해오면 보상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메인 퀘스트 보다 더 몰입감 있고, 심금을 울리는 서브 퀘스트들도 다수 있었죠. 그들만의 서사가 확실하게 부여되어 단순한 NPC가 아닌 한 명의 마을 구성원으로 다가오는 느낌입니다.

'성향 시스템'은 듀엣 나이트 어비스만의 특별한 장치였습니다. 대화 선택지에 따라 캐릭터의 성향 수치가 변화하며, 이에 따라 새로운 경험을 이어나갈 수 있죠. 캐릭터의 서사가 변화하거나, 다른 분기로 진입하거나 하는 등의 극적인 변화는 아직까지는 겪지 못했지만 선택지에 따라 변화하는 NPC의 반응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성향치에 따라 구매할 수 있는 아이템이 생기기도 하는 등 하나의 콘텐츠로서 제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 아.. 이건 치트키잖아요.. (서브 퀘스트 中)

▲ 일부 선택지는 플레이어의 성향치에 영향을 줍니다

▲ 이렇게 보여도 할머니

▲ 혼돈 특 = 재밌음


아쉬운 캐릭터 연계 플레이, 타격감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총 3명의 캐릭터를 한 파티로 구성해 운용하게 됩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1인 주인공 중심의 액션에 가깝죠. 나머지 2명의 캐릭터는 서포터의 역할로 자동 전투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한 캐릭터에만 집중해서 조작하게 됩니다.

이 구조는 장단점이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복잡한 파티 관리 없이도 화려한 액션을 즐길 수 있다는 점, 애정하는 한 캐릭터를 깊이 있게 파고들며 플레이하는 재미가 있다는 점은 명확하지만, 이에 반해 심도 있는 연계 플레이를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단점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출전 캐릭터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의 캐릭터는 자동으로 공격하고, 스킬도 알아서 사용하기 때문에 파티원과의 연계 플레이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죠.

▲ 알아서 잘 하는 파티 구성원들

게임은 근접 무기와 총기, 두 가지 전투 방식을 제공합니다. 자유로운 무기 전환이 가능한 핵앤슬래시 장르를 내세우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근접 무기의 밸류가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총은 특정 몬스터의 약점을 격파할 때나 쓰는 정도고, 대부분의 전투는 근접 무기로 해결하게 되죠. 총기 전투의 완성도가 충분히 높다고 느껴지는데도 불구하고, 근접 무기가 너무 효율적이라 총을 꺼낼 이유가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 총을 쏘는게 더 재밌지만

▲ 압도적인 성능에 굴복해 근접 전투 위주로 플레이 하게 되는건 아쉽습니다

타격감은 확실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모션 자체는 화려하고 시각 효과도 훌륭하지만, 적을 때릴 때의 손맛이 다소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칼이 적을 베는 느낌, 탄환이 박히는 무게감이 기대만큼은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전투가 나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요즘 출시되는 최고 수준의 액션 게임들과 비교하면 한 단계 부족한 느낌입니다.

반면 이동의 자유로움은 게임의 큰 장점입니다. 스태미너 시스템이 없어서 언제든 달리고, 점프할 수 있죠. 회피 횟수에는 제한이 있지만 불편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제한은 아닙니다. '스태미너가 없어서 못 움직인다'는 답답함이 전혀 없습니다. 스파이럴 점프를 이용한 시원시원한 이동감이 타격감의 아쉬움을 어느 정도 보완해 줍니다.

▲ Z축 이동은 제한적이지만 XY축 만큼은 시원합니다

▲ 순수 재미 1황 헤이즐넛좌

듀엣 나이트 어비스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점과 아쉬운 점이 교차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뜨거운 감자였던 파격적인 BM은 아마 저를 포함한 대다수의 유저들이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부분일 겁니다. 지금 당장 큰 수익성이 있는 구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유저들의 애정만 더해진다면 콘텐츠 생산을 위한 동력으로서 기능할 것임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BM으로 인해 유저가 이탈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제로에 가깝다고 보이니 말이죠.

하지만 유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을 위해선 전반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을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할 필요성이 느껴집니다. 진중하고 어둡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스토리, 개발자들의 진심이 느껴지는 서브 퀘스트의 퀄리티와 길 위의 NPC들의 서사. 이 것들과 어우러지는 전투 시스템의 퀄리티는 아직 상당 부분이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고 느껴지는게 사실입니다.

다만, 대부분의 단점은 빠른 시일 내에 개선이 가능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게임 플레이 경험이 부족할지는 몰라도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딱히 찾지 못했거든요. 개발사 역시 개선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고, 또 유저 친화적인 스탠스로 피드백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말이죠. 게임사 측은 인벤을 통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일부 문제는 긴급히 처리,보완 중이며 최대한 빠르게 유저분들께 만족시킬 수 있는 답변, 최적화된 게임을 제공해드리겠다"고 직접 전하기도 했습니다.

유저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응원하고 있는 대형 게임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 저 역시도 다수의 서브컬처 게임을 즐기는 입장에서, 듀엣 나이트 어비스의 기조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죠. 이 응원에 힘입어 아무쪼록 빠른 개선을 통해 서브컬처 게임 시장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