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후네 케이지는 게임 산업에서 굉장히 유명한 인물이다. 주홍글씨가 되어버린 마이티 넘버 나인의 흥행 참패 탓도 있지만, 그 이전의 커리어는 실로 어마무시하다. 메가맨(록맨) 시리즈부터 캡콤의 흥행작 대부분에 개발 지분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정력적으로 활동했고, 다양한 장르의 게임들을 만들어왔다. 앞서 말한 그 사건 이후 상당히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지만 말이다.

콘솔게임 디벨로퍼 컨퍼런스의 첫 날 이나후네 케이지의 강연에는 이 모든 세월이 다 담겨 있었다. 환상적인 성공의 시절부터 처참한 실패의 과정까지. 그의 인생이 압축된 45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연의 첫 시작은 '인정'에서 시작했다. 게임을 만드는 이유는 참 다양하지만, 결국 히트작을 만들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 시작이라는 것에 대한 인정 말이다. 그는 히트작을 향한 욕망이 창작의 동력이며, 그 욕망을 부정하거나 감추려 할수록 창의력은 위축된다고 했다.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이미지’, 즉 미래의 자신을 그려보는 상상력이다.

▲ 로켓 스튜디오 이나후네 케이지 대표

목표였던 '성공'이 개발자를 죽인다


그는 히트작의 경험이 개발자에게 자신감을 주지만 동시에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한 번의 성공이 오히려 새로운 시도를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에 매달리면 과거의 공식을 반복하게 되고, 그것이 곧 창작의 정체로 이어진다.

때문에, 한 번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고 성공적인 개발자가 되려면, 이 '최초의 성공'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최초의 성공만으로 끝나면 그건 곧 성공하지 못한 것이나 진배없기에 성공하려면 결국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나후네의 논리다.

이나후네는 스스로의 커리어를 예로 들었다. 메가맨, 로스트 플래닛, 데드 라이징, 귀무자 등 장르가 모두 달랐지만, 그럼에도 꾸준히 히트작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전의 성공 방식을 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에게 성공은 ‘기억’이 아니라 ‘경험’으로만 남는 것이다.

그는 이를 ‘리셋의 기술’이라 표현했다. 성공을 반복하려 하기보다, 과거의 성취를 완전히 비워내고 다음을 준비하는 사고방식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모두 경험으로만 남기고 잊어야 한다. 리셋할 수 있는 사람만이 연속적인 히트를 낸다.” 어떻게 보면 구시대적 정신론으로 볼 수도 있을 만한 주장이지만, 이를 방증하는 '원 히트 원더'들이 너무나 많다. 충격적인 데뷔 이후, 자가복제만 반복하다 사라진 스튜디오들이 이 주장의 근거인 셈이다.

너무나 원숙해진 산업, 한국은 아직 늦지 않았다


이나후네는 지금의 게임 산업이 지나치게 성숙해졌다고 진단했다. 패미컴이 등장한 지 40년이 지난 지금, 업계는 완성형에 가깝게 정착했고, 그만큼 새로운 시도를 꺼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안전한 선택을 한다. 이미 성공한 공식과 IP에만 의존한다.” 그는 이러한 흐름을 자연스럽지만 위험한 현상이라고 봤다.

그는 “후속작은 비즈니스적으로 필요하지만, 그것만 만드는 건 문제”라며 새로운 IP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콘솔 시장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일본처럼 방어적인 시장이 된다. 한국은 아직 늦지 않았다.”

그의 말은 단순히 산업 구조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창작자 개인의 태도에 대한 주문이기도 했다. 무엇을 만들든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5년, 10년 뒤에도 지금과 비슷한 게임만 넘친다면, 그건 업계가 아니라 사고방식이 멈춘 결과라는 메시지였다.

오타니 쇼헤이는 왜 아직도 마운드에 서는가?


강연의 후반부에서 그는 도전 정신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이미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이 여전히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성장에 대한 욕망이라고 했다. 그는 그 예로 메이저리그의 오타니 쇼헤이를 언급했다. “명예와 돈을 모두 얻은 선수가 여전히 투타 겸업을 시도한다.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한계를 넘기 위한 의지다.”

그는 이런 자세가 개발자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성공을 리셋하고 다시 도전하는 태도, 그것이 진짜 성장의 원동력이다.” 단순히 바람이나 목표를 갖는 것 만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어디에서 자극을 받고, 어떤 계기로 스스로를 다시 움직이냐다.

이나후네는 자신의 20대 시절을 떠올리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그 때는 하루 15시간씩 일하는 게 당연했지만,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기에 즐거웠다. 그게 나의 꿈이었던 시절이니까. 꿈을 잃으면 창작은 죽는다.”라고 말하며, 그는 한국 개발자들에게 도전 정신을 잃지 말라고 당부했다. 팔릴 게임이 아니라,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드는 것. 그게 곧 미래라는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