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더블트리 호텔에서 진행된 제1회 '콘솔게임 디벨로퍼 컨퍼런스'의 첫 날. '요시다 슈헤이'가 참석했다. 인디 게임 산업의 '큰 어른'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는 그는 소니 재직 당시에도 수많은 게임들의 유통 및 퍼블리싱에 관여했으며, 다양한 인디 게임들을 찾아 발굴하고 키워냈던 바 있다.
이날 강연에서, '요시다 슈헤이는 콘솔게임의 특징과 한국 인디게임계에 대한 제언'이라는 강연을 진행했고, 바로 이어 제한된 미디어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인터뷰 중인 요시다 슈헤이
Q. 올해만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한국 인디 게임계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올해는 부산인디커넥트(BIC)에 참석했다. 이전까지는 독일 게임스컴이나 시애틀 PAX West 일정과 겹쳐서 방문하지 못했지만, 올해는 일정이 바뀌어 8월에 직접 갈 수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인디 게임이 전시되어 있었고, 완성도도 전반적으로 올라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몇 년 전 지스타를 찾았을 때는 키보드·마우스 혹은 스마트폰 게임이 대부분이라, ‘이 나라는 컨트롤러 게임을 만들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콘솔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도 활약하고 있어 앞으로 한국을 방문할 일이 더 많아질 것 같다. K-드라마와 K-POP이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는 만큼, 한국산 게임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고 본다.
Q. 소니 재직 당시 스텔라 블레이드 계약을 주도했다고 들었다. 당시 상황을 이야기해줄 수 있나?
“코로나 직전, 플레이스테이션 서드파티 팀과 함께 시프트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에서 훌륭한 콘솔 게임이 개발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직접 가보니, 예상과 완전히 다른 수준의 3D 액션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시프트업의 전작 ‘데스티니 차일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변화를 보고 꽤 놀랐다.
스튜디오 내에서는 보스 캐릭터를 피규어로 직접 제작한 뒤 이를 스캔해 게임에 구현하고 있었는데, 이런 개발 방식이 인상 깊었다. 방문 후 회사에 돌아와 ‘반드시 퍼블리싱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함께 간 팀도 같은 생각이었다. 만약 스텔라 블레이드가 성공한다면, 한국 개발자들에게 큰 자극이 될 거라 확신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 한국 콘솔 신(scene)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 중 하나가 그 작품일지도 모른다. 'P의 거짓'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면 나는 블러드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는데, 'P의 거짓'이 거의 비슷한 감각을 준 게임이었다. 지금은 그들의 차기작을 조용히 기대하고 있다.
▲ 데스티니 차일드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던 '스텔라 블레이드'
Q. 한국 정부가 인디 및 콘솔 개발 지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상황은 어떠하며, 현실적으로 어떤 방향의 지원이 옳다고 보나?
“일본 정부의 게임 지원은 거의 없었다. 최근 들어서야 프로토타입 제작 펀딩 같은 제도가 조금씩 생겼을 정도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이미 훨씬 진전된 환경이라고 본다.
성공적인 모델을 찾자면 호주 멜버른의 ‘스크린 빅(Screen Victoria)’ 프로그램이 좋은 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 개발자들에게 생활비와 펀딩을 지원하고, 프로토타입을 제작할 기회를 제공한다. 비즈니스 플랜 수립과 회사 설립 교육까지 병행하면서, 퍼블리셔에게 직접 피치(pitch)할 수 있을 수준까지 끌어주는 구조다.
인디 개발에서 가장 큰 과제는 ‘아이디어의 실현’이다. 좋은 기획만으로 자금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토타입이 있어야 퍼블리셔를 설득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제로 상태의 개발자에게 프로토타입까지 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 지원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젊은 개발자들이 리스크를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될수록, 창의적인 게임이 많이 나올 수 있다.
Q. 인디뿐 아니라 대기업 주도하에서도 충분히 창의적인 게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할까?
“넥슨의 민트로켓 사례를 흥미롭게 봤다. 데이브 더 다이버 개발 당시 넥슨 측이 ‘창의적인 부분에는 간섭하지 않는다’고 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실제 여부를 떠나, 이런 자세는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게임이 성공할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소규모 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성과보다는 실험의 공간을 열어주는 게 중요하다. 독립 인디 개발자 입장에서도 이런 구조는 좋은 기회가 된다. 큰 회사의 자본을 빌리되, 창의성을 침해받지 않는 방식. 그것이 앞으로 가장 건강한 형태의 협력일 것이다.
▲ 대기업 주도로도 가능성을 보여준 넥슨-민트로켓의 관계
Q. 과거의 PS들은 늘 새로운 미디어와 대응하며 멀티미디어 기기로서의 역할을 했다. 차세대 플레이스테이션에도 이런 부분이 필요할까?.
“초창기 플레이스테이션은 CD, PS2는 DVD, PS3는 블루레이 같은 매체를 채택하면서 ‘멀티미디어 기기’로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PS4 이후로는 디스크 이용이 줄었고, PS5 세대에 들어서는 대부분 네트워크 기반으로 전환됐다.
이제는 TV 자체로 영상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콘솔이 굳이 추가적인 기능으로 승부하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게임 외 기능을 확장하는 방향’에는 회의적이다. 다만 SIE 하드웨어팀은 매우 창의적이어서, 상상하지 못한 형태의 변화를 보여줄 수도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다.
Q. 다중 플랫폼 동시 출시가 늘어난 시대다. 플랫폼 구분이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콘솔만의 경쟁력은 무엇이라 보는가?
“최근엔 모바일·PC·콘솔 계정이 연동되는 게임이 많아졌다. 나도 ‘원신’을 아주 재밌게 즐겼다. 이런 게임들이 성공하려면 ‘모바일 퍼스트’로 설계돼야 한다. 버튼이나 스틱이 없는 환경에서도 즐거운 플레이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콘솔의 가치가 줄어드는 건 아니다. 큰 화면, 높은 해상도, 안정적인 프레임레이트, 그리고 디테일한 그래픽 묘사 등 콘솔은 여전히 다른 플랫폼과 구분되는 체험을 제공한다. 이런 경험을 선호하는 게이머층은 여전히 존재하며, 그 점이 콘솔의 정체성을 유지시키는 핵심이라 생각한다.
▲ 모든 플랫폼을 크로스플레이로 묶은 포트나이트
Q. 일본에는 SIE와 닌텐도 같은 콘솔 제작사가 있다. 한국에 이런 기업이 없는 게 콘솔 게임 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꼭 그렇다고 보진 않는다. 일본에 콘솔 제조사가 있다고 해서, 일본 개발자들이 특별히 유리한 상황에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조건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하드웨어 유무보다도, 그 위에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내느냐다.
Q. 젊은 세대일수록 즐기는 콘텐츠의 길이가 짧아지고 자극이 압축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짧은 영상 콘텐츠가 젊은 세대의 주된 놀이문화로 자리잡고 있는데, 이런 흐름에서 게임 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보나?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등 짧은 영상 콘텐츠에 시간을 쓰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게임 플레이 시간이 줄었다는 데이터는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확실한 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언제나 새로움에 끌린다. 게임이 계속해서 참신하고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그 시간은 영상이 아니라 다시 게임으로 돌아올 것이다.
Q. 최근 인상 깊게 본 한국 인디 게임이 있나?
“BIC에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여러 개 메모해뒀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웨얼즈 마이 레드 볼(Where's My Red Ball)’이라는 퍼즐 게임이었다. 빨간 공을 찾아 고양이에게 전달하는 단순한 구조지만, 퍼즐의 설계와 고양이의 표정 연출이 인상 깊었다. 또 ‘마스터 오브 피스(Master Of Peace)’라는 전략 게임도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었다. 한국 인디 개발자들의 감각이 정말 다양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 눈여겨 본 인디게임 웨얼즈 마이 레드 볼
Q.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곧 이나후네 케이지의 강연이 시작된다. 그와는 과거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함께 제작했기에, 오랜만에 그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다.(웃음) 미안하지만 오늘 인터뷰는 여기까지 해야겠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있을 때 다시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