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클랩트랩. 하도 촐싹거려서 얄미운데, 또 마냥 밉지는 않은 목소리. 궁금하면 위에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두 달 전, 한참 보더랜드4 리뷰를 진행하면서 참 지겹게 들었는데, 목소리가 진짜 너무 얄밉다. 표준어의 틀을 깨고 묘사하자면 '킹받는 목소리'가 딱 적당할 것 같다. 뭘 할 때마다 깐족거리는 목소리는 아주 훌륭하게 내 감정을 조종했다. 사람의 감정을 조종하는 목소리라니 이 얼마나 열받는가. 게임 속 한국어 VA가 이제 드문 일이 아니건만, 목소리만 듣고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처음이었다. 마침 나 말고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았으니까.
리뷰가 얼추 마무리될 즈음, 연락을 통해 '클랩트랩'의 VA를 맡은 김민주 성우와 연락을 시도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약속을 잡고, 서울 모처의 카페에서 직접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냥 상상하던 '클랩트랩'과는 너무 다른 느낌. 솔직히 말하면 그냥 동네 아는 동생 같았다.

만으로 스물 둘, 조금 이른 나이에 성우가 되기까지
"재수가 안 풀려서 일단 군대로 도망(?)갔어요. 대학을 좀 늦게 들어간 편이었죠."
열아홉 나이. 인천 태생의 청년 김민주는 수능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목표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선택한 건 빠른 군입대. 일반적으로 입영 영장은 스무살이 되어야 나오지만, 열아홉에도 군대를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동반입대 혹은 특정 병과를 지원하는 것. 청년 김민주는 고등학교 졸업식도 생략한 채 기술행정병으로 입대했고, 남들이 슬슬 입대 각을 재는 스물 하나에 전역, 1년 재수 끝에 스물 셋, 만 스물 둘 나이에 의약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웬 걸, 바로 그 해에 성우 시험에 합격, 대학 생활을 멈추고 성우의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꿈은, 중학생 때 시작되었다.
"제가 연기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누가 날 보는 건 또 거북해하는 이상한 성격이었어요. 자연스럽게 성우라는 직업을 인지하고 나서는 성우에 흥미가 생겼죠"

중학생 김민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성숙한 편이었다. 더빙된 외화를 즐겨보고, 라디오를 좋아했다. 당시 방과 후 활동으로 연극에도 발을 디뎠는데, 연기 자체는 즐거웠지만 곧 심각한 문제를 깨달았다. 중학생 김민주는, 누가 본인을 보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연기는 할 수 있되 시선은 받지 않는 '성우'에 관심이 쏠렸고, 자연스럽게 꿈이 싹텄다. 성우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인천에는 학원이 없다 보니 여의도에 있는 학원을 찾아갔지만, 돈이 없어 용돈 몇 달 치를 모아 한 달만 수강하고, 멈췄다 다시 몇 달치를 모아 한 달을 수강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징검다리로 학원을 다니고, 성우 지망생 카페에 목소리 녹음본을 올려 다른 지망생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인연을 쌓았다.
그렇게 쌓인 노하우가 수 년이 지나 대학교 1학년 때 폭발, 덜컥 성우 공채에 합격해버린 것. 그렇게 대학생 김민주는 스물 두 살이 되어 '성우 김민주'가 되어 우당탕탕 전속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데뷔작은 특촬물 '가면라이더 드라이브'의 악당 조무래기인 '로이뮤드'. 로이뮤드라는게 인물이 아닌, 그냥 가면라이더에 나오는 악의 세력 캐릭터들을(근데 번호가 달린) 죄다 칭하는 용어다 보니 보통 맞고 쓰러지는 상황에서 비명을 지르고 쓰러지는 연기를 해야 했다. 다른 작업들도 대부분은 비슷한 급의 단역들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어린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했고, 정말 운이 좋아 합격했지만 준비는 그만큼 되지 않았던 시절. 성우 김민주는 중요하지 않은 역을 맡았음에도 잦은 실수와 NG로 자존감이 많이 낮아졌고, '이럴 바에야 그냥 대학 졸업장이나 따러 다시 돌아갈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당시 작업을 함께하던 PD의 충고가 그의 마음을 붙잡았다.
"대학을 가는 이유가 필드에 들어가기 위함인데, 넌 이미 필드에 들어왔으니 여기서 성장해야지 왜 뒷걸음질을 치려 하니?"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잡은 성우 김민주는 '오소마츠 6쌍둥이'의 '에스퍼냥코' 역으로 처음 칭찬을 들었고, 자신감을 회복해 2년 간의 전속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프리랜서의 길로 접어들었다. 현재 그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만만치 않다.
애니메이션 '연의 편지'의 주인공 박동순, '퇴마록'의 벽공,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남자 주인공 마히토, 게임으로 넘어가면 '명조'의 구원, '메이플스토리'의 렌, 그리고 인터뷰의 계기가 된 '보더랜드'의 클랩트랩'까지. 젊은 캐릭터부터 중,노년층 캐릭터까지 소화하는 넓은 레인지로 다양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갓프리 시절 처음의 대형 롤 '클랩트랩', 성대결절을 선물하다
그렇게 2년의 우여곡절 전속 생활을 마치고 '갓프리(막 프리랜서가 된 성우)'가 된 김민주 성우. '보더랜드3'는 그의 프리랜서 커리어에서 처음으로 만난 대형 게임의 주역이었다. 보더랜드3의 경우 녹음 분량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시간으로 치면 100시간 가까운 분량이었다. 한번에 2~3시간씩 주 2~3회 녹음을 하면서도 몇 개월 간 이어진 작업. 김민주 성우는 보더랜드3 당시의 클랩트랩 녹음이 지금까지 모든 커리어를 다 합쳐도 물리적으로는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당시 대사 중에 비트박스와 랩이 섞인 라인이 있었거든요. 들으면서 따라하려 했는데 도무지 안 되서 원본 음원만 따로 받아서 반복재생으로 며칠 동안 계속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예 뇌에 박혀 버려서 아예 외워 버렸고, 본 녹음때는 듣지 않고 외워서 바로 해 버렸죠."
톤은 아예 자신만의 톤으로 만들었다. 원본 성우의 목소리를 따라하기 위해 성대모사로 시작했으나, 그렇게 하니 클랩트랩만의 특징인 '미친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원음보다 조금 높은 톤으로, 더 재기발랄하고 솔직한 톤으로 해석했는데, 이게 클랩트랩이라는 캐릭터와 찰떡같이 맞아떨어졌다.
그 높은 톤의 목소리를 계속 유지하며 오랜 시간 녹음하다 보니 성우와 가수들의 고질병이자 위기인 '성대 결절'이 와 버렸다. 평생 성대 결절 따위 겪을 일 없는 기자가 '결절은 어떤 감각인가?'냐고 묻자, 몸이 말을 안 듣는 느낌에 가깝다고 한다. 가령 오른손으로 어딘가를 지목하면 검지가 펴져야 맞는데, 갑자기 중지가 올라가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 이 때 이걸 억지로 돌리겠다고 힘을 쓰게 되면 결절이 만성이 되어버리고 진짜 큰 일이 나버리기 때문에 잘 쉬면서 발성을 회복하는게 중요했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것도 많은 법. 김민주 성우는 '클랩트랩'의 녹음 경험이 이후의 커리어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너무 힘든 녹음을 다 끝내고 나니, 그 이후의 작업들이 쉽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굉장히 힘들었지만, 그만큼 엄청난 성장을 만들어준 역할인 셈이다.

그렇다면, 김민주 성우가 생각하는 클랩트랩은 어떤 캐릭터일까? 잠시 생각의 시간을 가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너무 솔직한 캐릭터인 것 같아요. 뇌에 필터가 없이 그냥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음성 모듈에 꽂히는 느낌이죠. 외로우면 외롭다 말하고, 짜증나면 짜증난다 말하고. 솔직함 그 자체를 형상화한 캐릭터라 해야 할까요."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의 구름이 같은 캐릭터이면서, 원신의 페이몬 같은 캐릭터. 안내자이자 대표 캐릭터이면서 개그 캐릭터이고, 동시에 마스코트인 존재. 김민주 성우가 생각하는 클랩트랩이다. 3편 녹음 과정에서는 스스로를 다시 정의할 수 있었던 계기도 있었는데, 워낙 필터를 많이 쓴 목소리라 아무도 모를 줄 알았건만 동기 성우가 한 번에 알아챘다 한다. 말하는 톤이나 발성이 성우 김민주 그대로라면서 말이다. 그렇게, 성우 김민주는 뜻밖의 자아성찰까지 이뤄냈다.
4편에 이르러, 김민주 성우는 더 나아진 '클랩트랩'을 만들어냈다. 3편과 비교하면 다소 높아진 톤으로 이뤄지는 연기. 4편의 경우 3편에 비해 필터를 덜 입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기에 본 목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게 되고, 때문에 더 나은 표현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는 디렉팅을 해 준 '유창현 PD'님의 도움이 있었다. 감정이 과잉될 때마다 눌러주고, 선을 넘을때마다 다시 끌어주면서 균형을 잡아 준 것에 김민주 성우는 큰 감사를 표했다.
발버둥치는 백조와 같은 성우의 삶, 목소리는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주제를 이어, 다른 작업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 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저 목소리만으로 수많은 배역을 소화해야 하는 성우의 삶. 실제로는 어떤 모습일까?
김민주 성우에게 '클랩트랩'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면,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였다. 오디션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일반적으로 보내는 오디션 샘플 파일의 4~5배 분량의 녹음을 전달해야 했다.
본 녹음 또한 마찬가지. 감독과 작가가 지켜보는 앞에서 한 대사를 50번 넘게 반복해야 할 때도 있었는데, 김민주 성우는 그 당시를 회상하며 '공황이 올 뻔했다'라고 말했다.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는데, 계속 다시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무너질 뻔 했다면서 말이다.
'사이버펑크 2077'의 녹음은 조금 다른 의미로 아찔했다. 상황을 모르고 대사만 보며 녹음을 하는 상황. '입양해 주세요'라는 대사를 보고 불쌍한 아이인가 생각해 녹음을 진행했는데, 알고 보니 사창가에서 손님을 찾는 대사였다. 알게 되는 순간 아찔할 수밖에 없다. 별개로 욕도 참 많이 녹음했는데, 녹음을 하면서도 계속 '이래도 되나?'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나중에 V의 녹음을 듣고 나서야 원래 이런 거였구나 하며 납득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많은 배역을 소화하고, 때로는 아찔한 상황도 겪으며 갓프리 성우 김민주는 지금의 베테랑 성우 김민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경험에서 배우고, 또 때로는 먼저 나아간 선배들에게 배우면서 말이다.
"수많은 성우 분들이 엄청나게 노력해서 목소리를 만들어요. 고고히 떠 있는 백조가 발 밑에서는 떠 있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 처럼 말이죠"
모든 사람이 그렇듯, 김민주 성우는 아침이면 목소리가 잠긴다. 하지만 그가 현장에서 만난 선배 성우들은 굉장히 이른 아침에도 변함없는 목소리를 선보였고, 그 비결이 궁금했던 김민주 성우가 선배들에게 방법을 묻자 선배 성우는 굉장히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더 일찍 일어나면 돼"
성우가 되기 전, 중학생 김민주는 주역을 맡는 성우들을 동경했다. 강수진 성우, 엄상현 성우, 남도형 성우 등 이름만 들어도 머릿속에 목소리가 재생되는 대표적인 스타 성우들. 하지만, 업계에 들어온 후 그가 존경하는 성우들의 영역은 더 넓어졌다. 그는 결국 오래 하는 사람이 대단해 보인다고 말했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어떤 롤을 소화하려면 끊임없는 노력과 연구가 필요하기에 오랜 시간 꾸준히 일하는 선배들은 그 역할이나 비중과 관계없이 다 존경스러운 시선으로 보게 된다고 말이다.
이 '지속성'이 어려운 이유는 성우 업계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와중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성우 시장도 흐름이 있다. 먼 과거엔 외화 더빙이 그들의 대표적인 커리어였지만, 디지털 도서 시장이 커졌을 땐 오디오북이 대세가 되었다. OTT가 떠오를 땐 다시 더빙이 주류가 되었고, 게임 로컬라이징이 확대된 지금은 게임 녹음이 늘었다. 같은 목소리 녹음이지만, 원하는 방향과 디렉션은 모두 다르다.
예를 들어 FPS 게임의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다른 게임보다 딕션과 발음에 더 주의해야 한다. 자막에 집중하기 어려운 게임 환경 상 목소리가 유일한 정보 전달의 수단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작업을 할 수록, 성우는 계속 도전할 수 밖에 없다. 인맥이 이런 작업을 물어 주지는 않는다. 오디션의 기회까지는 어떻게 될 지도 모르겠지만, 인맥으로 어디에 꽂고 이런 건 전혀 없다. 어차피 얼굴도 못 보니 오디션 샘플만으로 배역이 결정된다.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이 '롱 런'을 만들어내는 셈이다.
어느덧 인터뷰의 마지막, 모든 이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 성우가 되고 싶으냐고 중학생도, 청년도, 대학생도 아닌 성우 김민주에게 물었다.
"10년 전에 제가 인터뷰 한 내용을 보니까 '신뢰감 있는 목소리를 내는 성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더라고요. 워낙 실수가 많았던 시절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이뤄낸 것 같고요. 이제 '나'가 아닌 '주변'을 볼 수 있는 성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10년 전의 성우 김민주는 스스로를 챙기기 급했다. NG 한 번, 실수 한 번에 식은땀이 나고 피부가 저릿해지던 시절. 주변을 바라보기엔 스스로를 감당하기도 벅찰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수신(修身)을 어느 정도 이뤄낸 성우 김민주는 이제 주변을 본다.
함께 작업하고 싶은 사람,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하는 그는 이제 중학생 김민주 때와 달리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슬슬 익숙해지고 있다 말했다. 얼굴을 드러내는게 어려워 성우의 길을 택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얼굴을 드러냄으로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시 10년 후, 성우 김민주는 어떤 모습일까? 그 때가 될 즈음, 다시 연락을 해 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