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11일 베이징 국가 체육장('냐오차오')에서 열린 KPL 그랜드 파이널은 6만여석이 12초 만에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이들의 저력을 과시했다. 2016년 상금 185만 위안(약 3억 7,700만 원), 스폰서 1곳으로 시작했던 KPL은 9년 만에 총상금 1억 위안(약 204억 원), 연간 고유 시청자 2.6억 명, 스폰서 18개를 보유한 'e스포츠 제국'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KPL의 성공 배경에는 단순한 자본력이 아닌, 철저히 설계된 '시스템'이 있었다.
KPL 제국의 3대 기둥: 안정, 공정, 그리고 팬덤

KPL의 성장은 '고정 참가팀 제도', '샐러리 캡', '지역연고제'라는 3대 기둥 위에 세워졌다. 이는 리그의 안정성, 공정성, 그리고 팬덤의 확장을 동시에 잡기 위한 치밀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먼저 리그의 '안정성'을 확보한 것은 2018년 도입된 '고정 참가팀 제도(프랜차이즈)'다. KPL은 NBA 등 전통 스포츠 리그의 모델을 차용해 승강제를 공식 폐지하고 14개 팀의 고정 참가팀 제도를 도입했다.

KPL 연맹 운영 및 개발을 이끈 짱자신(Jiaxin Zhang) 리드는 "연맹 초기에 승강제를 운영했을 때, 클럽들은 강등의 불확실성 때문에 장기적인 투자를 망설였다. 고정석 제도를 도입하자 클럽들은 안심하고 홈 경기장, 유스팀, 브랜딩에 과감히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는 더 많은 우수 자본의 유입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기둥은 리그의 '공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샐러리 캡' 제도다. KPL은 e스포츠 업계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그리고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하한선' 규정까지 마련했다.
청 후앙 헤드는 "무분별하게 성장하던 시절, 일부 클럽이 선수들에게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샐러리 캡은 선수의 기본 급여와 수익 배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였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 제도는 "이성적이지 못한 투자를 통한 악순환을 방지하고, 리그 전체의 재무 건전성과 경기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핵심 장치"로서 기능하고 있다.
'지역 연고', KPL은 어떻게 성공했나

KPL 제국의 마지막 기둥은 '팬덤'을 폭발시킨 '지역연고제'다. KPL은 2020년부터 NBA에서 영감을 받아 이 제도를 과감하게 추진, 단 1년 만에 전면 지역화를 완성했다. 현재 베이징 JDG, 충칭 Wolves, 청두 AG 등 6개 도시가 공식 홈 경기장을 운영 중이다.
이에 대해 청 후앙 헤드는 "e스포츠가 상하이에만 집중되어 물리적 공간의 소속감이 부족했다. 도시 연고제는 NBA처럼 도시 간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고, 팬들이 '내 고장의 팀'을 응원하며 오프라인 경기장에서 e스포츠의 매력을 직접 체험하게 만들었다. 이는 클럽의 상업적 가치 확장과 도시 브랜딩(정부 후원)이라는 상생 효과로 이어졌다"고 답했다.
'보는 재미'의 극대화, "관중이 재밌어야 한다"

KPL은 안정적인 리그 시스템 구축에 그치지 않고, '보는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경기 방식의 혁신도 주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7년 전 세계 최초로 개척한 '글로벌 밴픽'이다. 이는 Bo7 경기에서 한 팀이 사용했던 영웅을 해당 팀이 다시 선택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KPL 고유의 규칙이다.
청 후앙 헤드는 "관중들이 기존 드래프트 모드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100경기가 넘는 내부 테스트를 거쳐,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대담하게 이 포맷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특히 7차전에서 진행되는 '피너클 컨텐더(Pinnacle Contender)' 모드는 양 팀이 3분간 서로의 픽을 볼 수 없는 '블라인드 픽'으로 진행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 시스템의 성공은 e스포츠 종주국이라 자부하던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2025년부터 LoL e스포츠가 이 룰을 적용하기로 했다고 현장에서 언급됐다.
또한 2021년에는 팀 간 실력 격차로 인한 일방적인 경기를 방지하기 위해 'SAB 그룹제'를 도입했다. 팀을 실력에 따라 S, A, B 세 그룹으로 나누고, 라운드 종료 후 그룹 간 승강을 통해 매 경기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시켰다. "B그룹부터 시작해야 재미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약팀의 반란' 스토리를 만들어내며 흥행에 성공했다.
선수의 목소리: "시스템이 우리를 지킨다"
이러한 KPL의 성공은 단순히 자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스템의 중심에 있는 '선수'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투자가 핵심이다.

베이징 JDG 소속 '노피어(Nofear)', '롱(Long)' 선수와 '파파(Papa)' 매니저는 리그의 전문적인 지원 시스템이 선수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파파 매니저는 "인재를 발굴할 때 스킬, 승부욕, 그리고 팀워크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이 세 가지를 본다"며, "선발된 선수들에게는 병원, 심리 상담, 영양 관리 등 최고의 인프라를 제공하여 훈련과 시합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고 말했다.
선수들 역시 "처음엔 그저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지만, 리그의 초청을 받고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의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고 전했다. 특히 KPL 연맹은 선수들의 경력 연장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계자들은 "선수들이 은퇴한 후에도 코치, 해설위원, 리그 운영진, 매니저 등 e스포츠 생태계 내에서 제2의 커리어를 이어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과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1500만 달러 투자, '생태계 이식' 나선 글로벌 전략

탄탄한 내수 생태계를 완성한 '왕자영요' e스포츠는 2025년, 1,500만 달러(약 217억 원)를 글로벌 생태계 확장에 투입한다. 이는 단순한 '시장 진출'이 아닌 '생태계 이식' 전략이다.
글로벌 생태계는 '풀뿌리부터 글로벌까지(Grassroots-to-global)'라는 명확한 구조로 설계됐다. 랭크 제한 없는 '오픈 시리즈'(2025년 스플릿 3에만 15만 명 이상 등록)와 92개국 대학생 대상 '캠퍼스 시리즈'가 기반을 다지고, 7개의 프로 지역 리그(IKL, MKL, PKL 등)를 거쳐, '인비테이셔널', '월드컵(KWC)', '인터내셔널 챔피언십(KIC)' 등 3개의 글로벌 대회로 이어진다.
가장 큰 과제인 중국(KPL)과 해외 팀 간의 압도적인 실력 격차 해소를 위해, 텐센트는 '경쟁 상대'를 직접 육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KPL 코치들이 온라인으로 해외 팀을 교육하는 '파워업 프로그램', 우수 코치진을 해외로 파견하는 '차이나 코치 이니셔티브', 해외 팀을 중국으로 초청해 훈련하는 '부트캠프' 등 다각적인 지원책이 가동 중이다.
미래 10년의 과제: "더 좋은 콘텐츠와 지속 가능한 생태계"

KPL의 다음 10년 과제는 무엇일까? 짱자신 리드는 "앞으로 10년간 어떤 도전에 직면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두 가지 핵심 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유저 관점에서 어떻게 더 새롭고 멋진 경기 콘텐츠를 제공할 것인가, 둘째는 e스포츠 생태계 참여자(클럽, 선수)들이 어떻게 더 장기적이고 좋은 수익을 창출하고, 개인적인 성취감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가"이다. 그는 "이를 위해 시스템을 더욱 최적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임스 양(James Yang) 텐센트 게임즈 글로벌 e스포츠 센터 시니어 디렉터는 이러한 장기적인 포석에 대해 "우리는 더 빨리 가고 싶다. 중국 본토와 글로벌 시장 간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싶은 모습은, 언젠가 해외 팀이 KPL 팀을 이기는 것. 그것은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날이 온다면 정말 감동의 눈물을 흘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