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가 '왕자영요(Honor of Kings)' 출시 10주년과 KPL(King Pro League) 출범 9주년을 맞아, 전 세계 주요 e스포츠 매체 기자들을 중국 베이징으로 초청해 '왕자영요 e스포츠 미디어 워크숍'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왕자영요'의 핵심 글로벌 파트너인 'e스포츠 월드컵(EWC)'의 최고위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텐센트의 강력한 IP 파워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막대한 자본과 결합해 어떻게 글로벌 e스포츠 지형도를 바꾸고 있는지, 그 청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왼쪽부터) EWC 파비안 슈어만 CGO, 마이크 맥케이브 COO, 레벨 인피니트 제임스 양 디렉터

'왕자영요'의 성공 신화가 어떻게 사우디 EWC의 미래가 되었는지, '왕자영요' 글로벌 e스포츠를 총괄하는 텐센트 게임즈 레벨 인피니트의 제임스 양(Jinho James Yang) 글로벌 e스포츠 센터 시니어 디렉터와 EWC의 운영 및 전략을 책임지는 마이크 맥케이브(Mike McCabe) EWC 파운데이션 부대표 겸 COO, 그리고 모든 게임사와의 파트너십을 관리하는 파비안 슈어만(Fabian Scheuermann) CGO(최고게임책임자)에게 직접 들었다.

이들의 대화는 단순한 파트너십 소개를 넘어, 중국의 성공 모델이 어떻게 글로벌 표준으로 진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한국 e스포츠 산업에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명확히 보여주었다.


"최고와 최고의 만남"…EWC가 '왕자영요'를 선택한 이유


EWC가 수많은 게임 중 '왕자영요'를 핵심 파트너로 선정한 이유는 명확했다. 마이크 맥케이브 COO는 "모바일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플랫폼" 이라며, "EWC가 전 세계 게이머들을 완벽하게 대표하기 위해서는 '왕자영요'와 같은 가장 큰 모바일 타이틀을 포함하는 것이 지극히 중요했다"고 밝혔다. 이어 '왕자영요'의 국제적인 성장이 중국을 넘어선 수많은 모바일 플레이어들을 EWC로 연결하는 다리가 될 것 이라고 확신했다.

제임스 양 디렉터는 이를 "최고와 최고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왕자영요'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플레이되는 MOBA이자, 게임 역사상 가장 큰 누적 수익을 올린 게임"이라며, "EWC 역시 최고의 e스포츠 토너먼트 중 하나이기에, 우리 둘은 서로를 원했다"고 말했다.

이들의 파트너십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제임스 양 디렉터는 "사우디 팀과의 협력은 EWC 이전 '게이머스 에이트(Gamers 8)' 시절을 포함해 이미 6년 전부터 시작됐다"며 단발성 협력이 아닌 장기적인 신뢰 관계임을 강조했다.


KPL의 성공 모델, EWC의 핵심 전략으로

마이크 맥케이브 COO는 "KPL은 규모 면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며, 특히 '클럽 기반의 팬덤'에 주목했다.

그는 "KPL을 보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각 클럽을 향한 팬들의 엄청난 열기였다. 우리는 그 열정을 EWC로 가져오고 싶었고, 이는 EWC '슈퍼팬(Superfan) 프로그램' 탄생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며 "우리는 KPL 클럽들과 협력해 그들의 슈퍼팬들을 리야드로 초청했고, 이 프로그램은 이제 전 세계 클럽으로 확대되었다"고 전했다.

EWC가 단순히 팬덤 문화를 차용하는 데 그친 것은 아니다. EWC의 핵심 전략 중 하나인 2천만 달러(약 290억 원) 규모의 '클럽 지원 프로그램' 역시 KPL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착안했다.

맥케이브 COO는 "KPL 클럽들은 대회 성적뿐만 아니라, 머천다이징, 오프라인 이벤트 공간 운영 등 다른 지역 클럽들은 상상하기 힘든 수준의 사업 다각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EWC의 클럽 프로그램은 바로 이 중국 클럽들의 성장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며 "40개의 글로벌 클럽들이 여러 종목의 로스터를 구축하고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갖도록 돕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EWC 지원 없었다면, 왕자영요 팀 창단 안 했을 것"


EWC의 이러한 '톱다운(Top-down)' 방식의 생태계 구축 전략은 실제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제임스 양 디렉터는 "EWC의 존재 자체가 '왕자영요' 글로벌 e스포츠 확장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EWC의 클럽 프로그램과 강력한 지원이 없었다면 많은 글로벌 프로팀들이 '왕자영요' 팀을 창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 디렉터는 "팀 창단을 결정하기 전, '왕자영요가 EWC에 포함되는가?', '지원 규모는 어떠한가?'를 묻는 팀들의 문의가 많았다며 EWC의 지원은 이들이 우리 생태계에 합류하는 데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한국 e스포츠 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스타크래프트' 시절부터 이어진 상향식(Bottom-up) 생태계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현재 글로벌 e스포츠 시장은 사우디의 막대한 자본력이 위에서부터 생태계를 설계하고 종목의 흥망을 결정짓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WC의 다음 단계: 'e스포츠 네이션스컵(ENC)'

EWC 파운데이션은 클럽 대항전인 EWC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내년 11월 'e스포츠 네이션스컵(ENC)'이라는 국가 대항전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마이크 맥케이브 COO는 "FIFA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보듯, 국기를 가슴에 단 선수들을 향한 응원은 클럽 팬덤을 초월한다"며 "ENC는 e스포츠를 잘 모르던 주류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열린 문(aperture)'이 될 것" 이라고 비전을 밝혔다. ENC는 사우디에서 첫 대회를 시작한 뒤, 전 세계 대륙을 순회하는 글로벌 이벤트로 키울 계획이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파트너 역시 텐센트다. 파비안 슈어만 CGO는 "텐센트와의 파트너십은 '노 브레이너(no-brainer,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결정)'였다"고 단언했다. 그는 "ENC 역시 EWC처럼 가장 크고 중요한 게임들을 선보여야 한다. 우리는 EWC와 ENC라는 두 개의 거대한 이벤트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기에, 우리가 신뢰하고, 전례 없는 규모의 AAA급 토너먼트를 빠르게 스케일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파트너가 필요했다. 텐센트가 바로 그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아직 국가별 연맹(Federation)에 대한 지원책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맥케이브 COO는 "일부 국가는 이미 체계가 잡혀있지만, 어떤 국가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며 "이러한 격차를 줄이고 모든 국가대표팀이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 구조를 설계 중이며 곧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KPL은 우리의 북극성"…상호 학습으로 진화하는 e스포츠


이들의 관계는 일방적인 자본 투자가 아닌, '상호 학습'을 통해 진화하고 있었다. 마이크 맥케이브 COO는 EWC가 KPL에서 배운 점으로 압도적인 스케일, 선수 복지, 기술 안정성 3가지를 꼽았다.

먼저 △압도적인 스케일이다. EWC 개막식은 KPL과 같은 중국의 대형 토너먼트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됐다. △선수 복지는 KPL의 선수 지원 시스템은 EWC가 건강한 식단과 물리 치료 등을 제공하는 '플레이어 라운지'를 만드는 데 아이디어를 주었다. △기술 안정성은 KPL의 방송 다운타임(중단 시간) 지표는 EWC가 기술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북극성(North Star)'과 같은 기준점이 되었다.

제임스 양 디렉터는 EWC를 통해 "20개가 넘는 종목을 두 달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노하우"와 "e스포츠를 국가 발전 전략의 핵심 축으로 삼는 사우디 정부와의 협력 방식"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e스포츠'라는 미래 과제에 대해서도 양측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제임스 양 디렉터는 "'왕자영요'도 올해 말레이시아에서 첫 여성 대회를 열었다"면서도, "EWC는 최고의 무대인 만큼, 여성 e스포츠 생태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 합류시키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파비안 슈어만 CGO는 "EWC의 '북극성'은 남녀가 함께 경쟁하는 '혼성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핵심은 실력 차이가 아니라 '큰 무대 경험의 차이'"라며 "EWC는 이미 존재하는 여성 리그를 지원하고 있으며, 더 많은 여성 선수들이 큰 무대를 경험할 수 있도록 퍼블리셔와 함께 풀뿌리 생태계부터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스포츠, '진짜 직업'이 되기 위한 "의도적인 1-2단계"


마지막으로, e스포츠가 과연 '지속 가능한 직업'이 될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질문이 나왔다. 마이크 맥케이브 COO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내가 젊었을 때 부모님께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일하겠다고 하자 '진짜 직업(real job)을 구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인구 70%가 게이머인 사우디는 다르다. e스포츠는 이미 국가 핵심 전략다"라고 전했다.

그는 EWC와 ENC를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의도적인 1-2단계(intentional 1-2 step)" 전략이라고 정의했다.

맥케이브 COO는 "EWC의 '인생을 바꾸는 상금'은 e스포츠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대화를 시작하게 만든 '창의 끝(tip of the spear)'이었다. 그리고 ENC는 '국가대표 스포츠'라는 이름으로 e스포츠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두 번째 물결(second wave)'이 될 것이다. 이 두 이벤트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계신 기자분들, 방송 관계자, 코치 등 산업 전체가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갖도록 도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제임스 양 디렉터는 "KPL은 e스포츠의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최고의 사례)'" 라고 자부했다. 텐센트의 성공적인 IP 운영과 KPL이라는 '베스트 프랙티스', 그리고 이를 글로벌 무대로 확장시키는 EWC의 자본력과 실행력. '왕자영요' 10주년을 기점으로 중국과 사우디가 주도하는 e스포츠의 새로운 질서는 이미 완성되었으며, 이제 그 영향력을 전 세계로 확장하고 있다.